신희섭의 정치학-적절한 조직의 크기 : 국회의 의석수는 적당한가?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적절한 조직의 크기 : 국회의 의석수는 적당한가?
  • 신희섭
  • 승인 2019.06.14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홉스(T. Hobbes)의 인간에 대한 관찰이 타당하다. 인간은 적당히 이성적이지만 강하게 본능에 지배받는다. 인간은 무엇을 혼자 하기에는 모자라고 여럿이 하기에는 이기적이다. 조직 원리도 이 원칙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 개인들이 조금씩 부족하니 조직을 만들지만 본능적인 이익 충돌로 다툰다.

왜 이런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냐고? 조직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조직은 복잡하지만 생각보다 재미있다. 실제 그런지 한 번 들여다보자.

조직이라는 것이 복잡하니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어제 학기를 마쳤다. 학기의 마지막은 항상 조별 발표를 한다. 대학에서 조별 발표라는 것이 일반화되어 뭐 특별할까 싶겠지만, 나름의 교육관에 기초하여 조별 발표라는 학습 방식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간단하게나마 조직운영방식을 배워보라는 뜻에서.

나는 내 조별 발표가 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내용’과 ‘형식’때문이다. 기말시험을 대체한 조별 발표는 특정 주제를 요구하지 않는다. 관련 과목과 관계된 것 중에서 무엇이 되었든 다른 학우들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면 된다. 발표방식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가장 잘 전달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 예상 밖의 재미있는 발표들이 많다. 우주 쓰레기, 해적문제, 노스트라다무스와 같은 일반적으로 국제정치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주제들도 있다. 발표 방식 중에는 정상회담, 퀴즈 쇼, 유튜브 활용, 연극형식도 있었다. 제한 시간이 15분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자신들의 주제가 정확하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주제도 세부적이어야 하며 방식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PPT를 틀고 한 사람이 단조롭게 읽는 방법으로는 제한된 시간 내에 다른 학우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별 발표의 평가 기준은 ‘참신성’이다. 주제와 전달 방식의 참신성. 이것이 객관적으로 평가가 되느냐고? 당연히 된다. 듣는 사람들이 흥미 있어 하는지로 평가하면 된다. 너무 뻔한 주제와 흔한 발표 방식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들의 조별 발표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안다.

이 방식은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흥미로운 주제와 참신한 발표방식으로 15분 동안 청중들의 집중을 유도해야 한다. 그래서 듣는 이들의 다양한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강력한 압력 요인들은 조별발표를 하는 구성원들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합의를 하는 전 과정이 관리가 잘 안될 수도 있다. 여기서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을 배울 수 있지만 말이다.

어려운 과정이지만 학생들은 대체로 잘해낸다. 그래서 마지막 조별과제 발표 시간이 학기 중에서 가장 활기차다. 강의를 하는 입장에서는 정체성에 소소한 위기의식을 주지만 말이다.

모든 조직이 그렇지만 부작용도 있다. 조별 발표들이 대체로 성공적이지만 몇 가지 문제도 생긴다. 합리적이지만 이기적인 인간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다 보니.

첫째는 '무임승차(free-rider)'문제이다. 한 두 사람이 다른 조원들에게 부담을 넘기고 참석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런 문제가 생길 때면 정치 리더십을 발휘해서 조원들 내부에서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이 불화가 생긴 조직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직 이해관계가 적은 학생신분이고, 조별 발표가 특별한 권한이나 유인책이 없으니 그렇다.

둘째는 '조의 크기(size)'다. 수업참석인원이 많으면 그룹의 크기를 늘려야 한다. 만약 100명이 수업을 듣고 5명씩 그룹을 구성하면 조가 20개가 된다. 1주에 5팀이 발표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 발표에만 4주가 걸린다. 만약 한 조를 10명으로 구성하면 총 10개 조가 된다. 이러면 2주에 끝낼 수 있다. 그러나 15분짜리 발표에 과연 10명이나 되는 인원이 필요한지의 문제가 생긴다. 대체로 이 정도 발표면 3-4명 정도면 충분하다. 만약 조직이 커지면 3-4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구성원들은 할 일이 없다. ‘잉여 자원’이 생기는 것이다. 첫째 ‘무임승차’가 의도적으로 이익만 누리고자 하는 문제라면 둘째 잉여자원은 조직의 과잉확장 문제이다.

여기에 조직의 가장 핵심문제가 있다. 발표하는 구성원들이 아직 학생들이고, 조별발표에 큰 이권이 없는데도 무임승차와 잉여자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이익으로 똘똘 뭉친 사회에서 이권과 권력이 걸리면 무임승차, 잉여자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우리가 마주하는 정치는 어떤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국회를 보라.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보이는 의원들. 놀고먹는 것처럼 보이는 의원들.

이런 문제는 최근 논란이 많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국회라는 조직을 현재의 크기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이다.

“바람직한지”는 주관적 평가이다. 주관적 기준으로 이 용어는 두 가지 상이한 입장을 만든다. 첫째, 세비가 아까우니 의석수를 줄이자는 입장이다. 둘째, 한국은 유권자대비 의원정수가 세계 3위(최근 4위로 하락했지만)에 해당하는 만큼 유권자의 의사를 좀 더 반영하기 위해서는 의석수를 늘리자는 입장이다.

조직의 원리는 조별 발표나 국회나 동일하다. 무임승차가 있고 잉여자원이 있다. 그런데 의회는 조별발표와 다른 면이 있다. 의회는 누군가의 의사를 대변해야 하는 역할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더 많은 의석이 더 많은 시민의 의사를 정확히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처럼 유권자 70만 명이 의회에서 한 석을 차지하는 것과 아이슬란드처럼 유권자 5천 명이 의회에서 한 석을 차지하는 것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의원이 세비가 아깝다고 강하게 항의하는 유권자들의 뜻을 거슬러 의석수를 늘리자고 대놓고 주장하기 어렵다. 스스로 의석수를 줄이자고 하기도 어렵다. 정치인 자신에게는 두 가지 모두 자살행위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국회라는 조직의 적정한 인원수에 대해 논의해 볼 때이다. 특히 어떤 ‘기준’으로 국회를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 무임승차나 잉여자원도 불편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의원이 없는 것도 불편하니 말이다.

조직은 재미있지만 좀 어렵다. 이성적이며 본능적인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다 보니 말이다. 그럼 점에서 홉스의 관찰은 역시 날카롭고 타당하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