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5)-형사재판에도 회복적 사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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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5)-형사재판에도 회복적 사법이 필요하다
  • 임수희
  • 승인 2019.05.3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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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피고인이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으며 피해자에게 사과 및 피해배상을 하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하여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이 사건 경위에 있어서 피고인도 층간 소음 문제로 인해 고통을 받아 오다가 이 사건에 이르게 된 점, 피고인에게 벌금형을 넘는 동종 전과는 없는 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다.

그러나 한편 피고인은 동종 전과가 7회나 있음에도 또다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러 이 사건 죄질 중하고, 피고인의 동종 전과 대부분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일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범죄도 피고인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새벽에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하여 저지른 것인데다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다시 이른 아침에 피해자의 주거를 찾아가 범죄행위를 계속하였고 심지어 출동한 경찰 앞에서도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 나아가 피고인은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출석하였을 때조차도 술에 만취한 상태로 경찰서에 출두하기까지 하였으니, 비록 이 사건 피해자에 대해서는 원만히 피해회복을 하였다고 하지만, 이 사건 죄질 중하고 피고인이 다시 술에 취하여 재범하여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할 것이니, 피고인에 대하여 경한 형사책임으로 방만히 용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피고인의 범죄에 관한 특별예방 및 일반예방 효과를 확실히 기대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을 일정기간 사회와 격리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형벌은 책임주의에 입각해서 필요최소한으로 부과되어야 할 것인바, 혹여 피고인이 깊이 자성하고 알콜의존증(의심) 내지 그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폭력성의 발현에 대하여 적절한 관리 및 감독 하에 치료를 받는 등의 조치를 수인한다면, 피고인에 대하여 실형을 꼭 집행하지 아니하더라도 피고인이 사회 내에서 가족과 직장 생활 등 정상적인 활동을 하면서 피고인의 범죄에 관한 특별예방 및 일반예방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할 것이니, 이 법원은 피고인에 대하여 이번에 한하여 보호관찰 및 알콜중독과 폭력 치료 수강명령을 부가하는 조건 하에서 실형의 집행을 유예하여, 피고인으로 하여금 사회 내에서 형사책임을 다하며 갱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여하기로 한다.”

2.
어느 형사 판결문의 ‘양형의 이유’ 전문인데요.

사건의 내용이 언뜻 나오기는 하지만, 대체 어떤 스토리일까, 궁금해지시죠?

징역형에 대해서, 알콜중독치료 및 폭력치료 프로그램 80시간의 수강을 받아야 하고 2년간 보호관찰을 받는 조건 하에서 형 집행을 2년간 유예하는 판결을 선고했던 사건인데요.

이 피고인이 불구속 상태로 기소되어 공판기일을 열기 시작했을 때는 사실, ‘아이고, 이 분은 법정구속하게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사건이에요.

새벽 2시에 남의 집에, 그것도 3살, 5살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 쳐들어가 현관 앞의 유모차를 집어 던져 부수고 출입문을 발로 차 부수고 그 깨진 유리가 흩어진 거실에까지 걸어들어 가 방문도 발로 차서 부수고, 다시 아침 7시에 대화하겠다고 또 찾아가서 문 안 열어준다고 현관문 발로 차고, 경찰이 출동해 있는데도 아이 아빠를 발로 차며, 말 그대로 난동을 부렸거든요.

게다가 벌금형이지만 동종 전과 일곱 번에 피해 회복도 안 되어 있으니, 징역형을 피할 도리가 없어 보였어요. 오히려 불구속 상태로 온 것이 용할 지경이었지요.

‘왜 불구속 상태로 왔지?’

3.
사건을 심리하면서 보니, 술 취한 상태로 범죄를 저질렀다가 술 깨고 나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는 잘못을 싹싹 빌고 온순하게 수사에 협조해 왔고(술 취해서 저지른 범죄라 괜찮다는 뜻이 절대 아니라, 어쨌든 맨 정신에는 멀쩡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수사에 협조하니 증거인멸우려가 전혀 없고 피해자를 해할 우려가 없다는 의미 쪽에 방점이 있어요), 그도 직장과 아내와 중학생 딸이 있어서(사회 내 네트워크 안에 안정적으로 있는 사람이니 도주우려도 없다는 의미죠) 구속할 사유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는 피해자 아랫집에 사는 40대 아저씨였는데, 한 4개월 전 윗집에 아이 둘을 키우는 피해자 부부가 이사를 오면서 층간 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어 오던 끝에 결국 범죄를 저지르게 된 거였어요.

처음에는 조용히 해달라고 청하고 관리사무소를 통해서 말해 보기도 했는데 나아지지가 않았고 중학생 딸이 밤에 잠을 못자며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니 점점 화가 났던 거예요.

사실 피해자 부부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소음을 줄이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수사기록에 있었던 그 집 사진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거실 바닥 전체에 촘촘히 매트를 깔아 놓았던 사진이었죠. 하지만 집 자체의 한계인지, 아이들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는 한계인지,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래층에서 느끼는 층간 소음으로 인한 고통은 줄지 않았던가 봐요.

그러니 윗집 아랫집 사이에 자꾸 싸움이 생겼는데, 아랫집 아저씨가 점점 술 먹고 찾아와 힘들게 하는 일이 늘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위층 부부는 불안감에 현관 앞에 CCTV도 설치하고, 싸우는 중에 녹음도 하게 되었죠. 그 때문에 아래층 아저씨는 더 화가 나게 되었고요. 결국 어느 날 새벽 술 취한 상태로 퇴근했다가 아내와 딸이 윗집 때문에 시끄럽다고 호소하는 얘기를 또 들으니 화가 난 그는 그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4.
그 범죄 발생 이후, 윗집 피해자 부부는 너무나 불안하고 두려워서 이사를 가려고 집을 부동산사무실에 내 놨고, 아랫집 아저씨와는 완전히 접촉을 피했어요. 당연하죠.

물론 아랫집 아저씨는 그 이후 절대 찾아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고 배상하고 싶어도, 그와 같은 단절 상태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상태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이 시작되어 저와 만나게 된 것입니다.

피고인은 잘못을 뉘우치면서 사과하고 배상하고 싶어 했지만, 형사재판은 법정에서 판사가 피고인에 대해 범죄사실을 확정해서 형벌을 정하는 절차일 뿐입니다. 피고인에게 사과하는 기회를 주거나 피해를 회복하는 절차가 아니지요.

양형증인으로 윗집 피해자를 법정에 소환해서 피해정도와 피해회복여부 등에 대해 심리를 하긴 했는데, 피해자는 당연히 피해회복을 원하지만 피고인을 접촉하고 싶지는 않았고 이사를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나 금전으로 환산되는 금액 면으로나 피해가 컸습니다. 그리고 역시 형사재판은 법정에서 판사가 피고인에 대한 양형요소를 심리해서 그에 따라 형을 정하는 것일 뿐이니, 피해가 크고 피해회복이 안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확인만 할 수 있을 뿐, 피해자에 대한 실제 피해회복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줄 방법은 없지요.

5.
답답하시다구요?

네, 이런 평행선 같은 답답한 상황을 늘 접하는 게 우리 형사재판의 일상이고 모습입니다.

저 상황에서 피고인과 피해자를 도와 줄 방법이 없냐구요?

네, 없습니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형사재판 절차에서 법원이나 판사가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개입할 아무런 제도적 방편을 마련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형사재판 중에 그 절차 밖에서, 법원 밖에서, 피고인과 피해자가 서로 안전하게 접촉해서(직접적인 대면 접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또는 비대면 방식도 포함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잘못의 인정과 사과, 배상을 하고 피해자는 피고인으로부터 그와 같은 것들을 받아들이며 그 외에 피해회복에 필요한 조치나 책임을 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사회적 여건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형사재판 절차 진행 중에 피고인과 피해자가 상호 안전하게 원만하게 실질적인 피해회복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길은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피고인은 자칫,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 등 오해받을지 모르고 그 때문에 구속될지도 모를 위험을 각오해야 피해자에 대한 접촉을 시도할 수 있고, 피해자 역시, 피해자 측에서 피고인을 안전하게 만나(대면 또는 비대면) 잘못의 인정, 사과나 배상, 기타 피해회복조치를 요구하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6.
그러면 대체, 이 사건은 어떻게 저런 ‘양형의 이유’와 판결의 결론이 나게 된 것인지 궁금하시다구요?

네, 이 사건은 예외적으로, 당시 법원에서 형사재판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를 하면서 그 적용을 받을 수 있었던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변론기일 이후 선고기일 사이에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사과와 적정한 배상을 받고 처벌불원서도 써 주게 된 것이었어요.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의 지난 16회부터 18회까지 ‘교통사고 치사 사건’, 19회부터 22회까지 ‘재혼가정 폭력 사건’, 두 케이스에 관한 말씀을 드릴 때, ‘당시 법원에서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를 했었어요’라는 말씀을 드렸었던 것 기억하시죠. 이 사건도 그런 케이스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이 케이스는 단지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 적용대상 사건으로 정해졌을 뿐인데, 그러한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안전한 공간이 생겼어요. 법원에서 정한 조정자(Victim Offender Mediation을 진행하기 위하여, 한국평화교육훈련원의 이재영, 정용진 두 분이 담당해 주셨습니다)가 실제로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개입을 하기도 전에, 피고인의 변호인이 정성스레 썼던 편지에 피해자가 마음을 돌이켜서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회복적 무드가 조성이 되어서 원만한 해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형사재판 단계, 형사재판 절차, 형사재판 과정에서도 피고인과 피해자에게 회복적 사법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뜻밖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계기가 되었지요.

그런데 이런 결과가 정말 ‘예외적’인 것이고, 일반적인 형사재판에서는 ‘회복적 사법’ 절차나 프로세스가 정말 없단 말이냐구요?

네, 정말 없습니다. 전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아요. 형사재판 단계나 절차에는 없습니다. 형사소송법 기타 관련 법령에 전혀 근거가 없다는 뜻입니다. 단지 일회적으로 시범실시로서만, 2013년도에 회복적 사법을 형사재판 10개의 사건에 대해 적용하는 시도를 한 적이 있을 뿐, 그 이후 제도적인 도입이 아직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요.

7.
‘우리나라에서는’이라는 말을 하는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하시다구요?

사실 전 세계적으로 형사재판 단계에 회복적 사법이 도입되어 있는 곳이 많거든요. 북미와 유럽은 물론, 심지어 중국조차도 2012년 형사소송법에 ‘당사자가 화해한 공소사건소송절차’를 신설해서 형사화해제도를 입법했다고 합니다. ‘피의자, 피고인은 아래 공소사건에서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피해자를 향해 손해를 배상하고 예를 갖추어 사과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피해자의 용서를 얻고 피해자가 스스로 원하는 경우, 쌍방 당사자는 화해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하니[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외국사법제도연구(13) 631면에서 인용했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2002년 UN에서 채택한 ‘형사사건에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적용에 관한 기본원칙’은 제6조에서 ‘회복적 사법은 형사 절차의 모든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Restorative justice programmes should be generally available at all stages of the criminal justice process.).'고 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단계에 재판 단계가 포함됨은 물론입니다.

지난 2018년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에서 채택한 ‘형사사건에 대한 회복적 사법에 관한 권고’도 제6조에서 ‘형사사법은 형사 절차의 어느 단계에서든 활용될 수 있다(Restorative justice may be used at any stage of the criminal justice process.).'고 정하면서, 체포, 기소 단계 뿐 아니라 재판 단계에서도 형 선고의 일부로서 적용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위 UN의 기본원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입니다.

우리의 형사사법은 이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침묵하고 있는 것인지, 저는 그것이 궁금하네요.

형사재판에의 회복적 사법의 도입, 그 제도적 도입을 위한 법제도의 정비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시작되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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