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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길을 물을 수 있는 스승님이 계시다는 것은.
신희섭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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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7  14: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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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나에게는 존경하는 스승님이 계시다. 늦게 시작한 대학원공부에서 나를 지도해 주신 강성학 교수님이시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해 송구하지만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언제든지 여쭐 수 있는 그런 스승님이 계시다.

학생 때도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교육계에 있다 보니 스승님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커졌다. 누군가를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다른 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가르칠 내용이 부족해서 어렵고, 가르치는 방식이 미흡해서 어렵고, 배우려는 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어렵다. 자녀교육에서 특히 많이 느낀다. 다른 많은 부모들처럼 나도 애당초 내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가르치는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속이 터지고, 화가 치밀어 올라오고, 그래서 관계만 나빠진다. 자신의 아이도 가르치기 어려운데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가르치는 일은 근본적으로 어렵다. 배움과 실천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식만 채운다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지혜가 되고 이를 실천하여 자신의 것이 돼야한다. 그때 가르침이 가능하다. ‘그릇 속의 물’과 원리가 같다. 찬 뒤에 넘친다. 지식도 쌓여 지혜가 되고 그것이 차고 넘쳐야한다. 게다가 지혜를 자신이 행하지 않으면 배우는 이들의 귀감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은 어렵다.

가르치는 일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예전부터 우리는 가르치는 일에 존경을 보냈다. 대표적으로 ‘선생(先生)’과 ‘스승’이란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선생’은 도를 깨우친 사람 그리고 도를 깨우쳐 덕을 이루고 이를 제자들에게 알려주며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백결선생’처럼 역사 속에서 존경받아온 인물들이 있다. 가르침을 준다는 ‘스승’이란 용어 또한 동일하다. 스승은 종교 특히 불교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은사(恩師)’가 “중이 되어 처음 길러준 스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때 스승은 부처님의 뜻을 먼저 배워 제자들에게 알려주는 사람과 세상을 교화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내 지도 교수님은 그런 점에서 ‘선생(先生)’이시고 ‘스승’이시다. 30년이 넘는 고려대학교 교수 생활동안 그 누구보다도 학문에 열중하셨다. 매일 아침 7시 전에 연구실 나오셨고 10시가 넘어서야 연구를 마치셨다. 이런 학자다운 삶 자체가 제자들에게는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 보유하신 수 만권의 장서는 ‘현실적인 부(富)’와 바꾼 ‘지적인 부(富)’이며 이런 ‘지적인 부’ 덕분에 제자들은 세상을 더 명확히 볼 수 있다. 정치외교학과 교수로서 얼마나 많은 현실정치에서의 유혹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내 스승님은 학자로서 올곧게 학문의 길을 걸으셨다. 이 ‘올곧음’이 35권이 넘게 저서를 출판하시고 박사 제자만 50명이 넘을 정도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게 하였다. 지금도 수많은 제자들이 지도교수님의 ‘한결같으심’을 본으로 삼고 자기 분야에서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정년퇴임 하신 후에도 식지 않는 학문적인 열정과 제자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계시다. 창립하신 ‘한국지정학연구원’에서 매달 토요일마다 제자들과 함께 ‘셋토네’라는 세미나를 진행 중이시다. 이 세미나는 2017년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윈스턴 처칠’의 전기로 시작했다. 2019년 올해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전기를 읽고 있다. 이 책들에 빽빽하게 채우신 기록들은 ‘배움과 가르침’의 열정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우리 기억 속에 좋은 스승님 한 분쯤은 계시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행운인 것처럼 좋은 스승님을 만나는 것 역시 행운이다. 게다가 그 ‘행운’은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과는 다르다. 배우자는 반쯤의 운과 반쯤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또한 배우자는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지만 가르침과 깨달음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 보다 중요하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이 지나갔다. 1965년 스승의 날은 5월 26일에서 5월 15일로 바뀌었다. 5월 15일은 세종대왕의 탄생일이다. 한글을 창제하여 한국인들에게 가르침을 주신 세종을 스승의 표상으로 삼으려는 취지였다. 이는 “위대한 군주가 위대한 스승이 된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스승’들과 ‘선생’들이 계시다. 다양한 분야에서 도를 깨우치고 이를 제자들에게 알려주는 분들이 계셨고 지금도 계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치 분야에서는 이런 스승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분야이다 보니 반대 진영까지 포괄하여 ‘스승’으로 칭송받기가 어려운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이 공감하듯이 정치 스승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교사나 교수가 좋은 기억으로만 있지는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기억하기 싫은 교사 한 사람 정도는 떠오르기 마련이다. 최근 ‘스쿨 미투’는 우리 사회에 스승은 적어지고 ‘지식전달자’만 많아지는 아픈 현실을 반영한다. ‘선생’과 ‘스승’의 자리를 그저 ‘직업인’이 차지하고 있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존경’의 자리가 ‘무관심’과 ‘적대감’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이 선생님들과 스승님들의 빈자리가 아쉽다.

이런 맘 아픈 상황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언제든지 길을 물을 수 있는 스승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의 스승님처럼 우리 사회를 이끌어 주는 스승님들이 계시기에 아직 우리 한국에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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