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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75 / 담보평가 수수료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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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75 / 담보평가 수수료 정산
  • 이용훈
  • 승인 2019.05.0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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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구약성경 후반부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친 이스라엘의 귀환을 조명하고 있다. 근동지방의 패권자 바벨론에 멸망당한 이스라엘은 70년 간 타향살이를 해야 했다. 그 기간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 제국은 피지배국민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정책을 폈다. 옛 터전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가도 좋다는 칙령을 반포한 것이다. 훗날 총독의 자격으로 이스라엘로 복귀한 느헤미야라는 인물은 리더십의 전형으로 추어올려지고 있다.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자국민을 생각해 자발적으로 조세 징수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족 간 돈놀이를 금지해서 고리대금에 휘청대는 하층민을 유산층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게 해 줬기 때문이다. 사채의 늪에 빠진 사람과 사채의 폭리를 향유하는 사람이 동포여선 안 된다는 상식적인 목소리를 낸 것뿐인데도, 총독의 이런 호통이 아니었으면 귀환 공동체의 삶의 기반은 더 엷어졌을 게 뻔해, 그만큼 존경받는 것이다.

가끔, 친구에게 30만 원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했던 20대 초반 때 사건이 떠오르곤 한다. 잔상이 여전한 건, 떼인 돈이 아깝다기보다 떼먹고 연락 끊은 친구가 얄미워서다. 빌려 준 돈이 조금만 큰 돈 이었다면 돌려받을 양으로 먼저 연락을 취했을 텐데, 없어도 될 돈이라고 생각하니 구차한 마음에 연락하는 것이 주저됐다. 저 쪽에서 연락 주기를 기다리다 결국 20년이 흘렀다. 우정을 잃어버린 어리석음 그 자체다. 아예 줘 버린 돈으로 치부했다면 오히려 연락하는 마음이 가볍지 않았을까. 받을 욕심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소인배가 자초한 참사다.

최근, 금융기관의 미지급 감정평가 수수료 문제가 몇몇 언론을 통해 기사화됐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실행하기 위해 담보 감정평가서를 제공받은 은행이, 담보 감정평가서에 대한 수수료를 평가법인에 제대로 주지 않아 왔다는 내용이다. 사유는 여러 가지다. 은행직원이 애써 대출금액과 대출조건을 맞춰 놓고 고객의 대출신청서만 기다리고 있는데 고객의 변심이 발생했다면, 평가법인 감정평가서는 무용지물이다. 고객의 신용등급과 부동산 담보평가액은 문제없는데, RTI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미끄러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두 경우 다 은행은 감정평가서를 활용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용역은 수행됐으므로 대출 실행 여부와 무관하게 수수료를 입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평가법인 일방의 주장일 뿐, 용역의 결과물로 어떤 이득도 기대할 수 없는 은행은 수수료 부담을 떠안기 곤란해 한다. 감정평가서는 평가법인으로 반송되고 은행은 출장실비 지급 의무만 생각한다.

정상적으로 대출이 진행됐는데, 감정평가 수수료가 계속 미수로 남아 있기도 한다. 대출이 진행됐는지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발급받아 확인할 수 있다. 평가서를 발송한 시점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을구란에 감정평가를 의뢰한 금융기관이 설정한 근저당권 표기가 있는지 보는 것으로 족하다. 대출의 흔적은 명료한데도 ‘미수’를 만든 건 예외 없이 대부계 담당자의 해태와 게으름 탓이다. 업무의 종결은 깔끔한 정산인데 한 쪽은 목 늘어지게 돈 받기만 기다리다 지친다. 독촉과 종용을 해태한 평가법인 탓을 할만도 하지만, 잠시 잠깐이면 받을지도 모를 외상값을 우량한 거래처에게 채근하는 것을 내키지 않아하는, 하청업체의 처지도 눈치껏 생각해 줄 일이다.

이렇게 감정평가서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의 출장실비와 활용하는 경우의 평가수수료 중 아직 정산되지 않은 금액이 꽤 많다는 것이 이번 기사였는데, 그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쌍방의 인식은 꽤 달라 보인다. 미수 평가수수료에 출장실비로 분류돼야 할 건이 합산돼 있을 가능성이 높으면 추산된 금액은 부풀려졌을 것이고, 그 반대면 오히려 과소평가됐다. 쌍방의 전산 처리가 어떻게 됐는지도 살펴 볼 일이다. 언론마다 ‘돈 떼먹었다’느니 ‘갑질’이니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데, 평가법인과 금융기관은 아랑곳없이 앞으로도 공생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악어와 악어새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특정 은행에서는 대출이 실행됨과 동시에 감정평가수수료를 지급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고 했고, 향후 제 때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페널티가 가해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은행도 있다. 주기적인 정산구조도 미수 잔고를 줄여줄 것이다.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에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비율뿐만 아니라 담보평가 수수료 부담도 녹아 있다고 보인다. 수익이 발생하는 곳에 비용이 드는 법. 이번 일은 의뢰자와 수임인 간 깔끔한 정산을 독촉하는 목소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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