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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아프리카 돼지 열병과 세계화 : 거리의 축소와 도덕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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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아프리카 돼지 열병과 세계화 : 거리의 축소와 도덕의 확대
  • 신희섭
  • 승인 2019.05.0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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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삼겹살 가격이 금값이다. 회식의 대명사인 삼겹살이 ‘금겹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인은 중국의 ‘아프리카 돼지 열병.’ 이 열병으로 중국정부가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중국이 돼지 사육두수의 35%까지 살처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돼지들이 걸린 이 전염병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경로는 이렇다. 전염병의 발병과 살처분 ⇨ 돼지공급량축소 ⇨ 중국인들 돼지소비량(전 세계 돼지의 1/2 소비)유지 ⇨ 외국산 돼지 수입증가 ⇨ 한국의 돼지 수출 증가 ⇨ 국내 수요 대비 공급 부족 ⇨ 삼겹살 가격인상.

2018년 8월 중국에서 발병한 이 돼지 콜레라는 다방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몽고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 전염병의 영향이 단순히 질병- 방역 경로만은 아니다. 돼지고기가격 인상과 대체재의 가격인상 경로로 물가를 견인한다. 최근 브라질이 이 경로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지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세계화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일상이 되었지만 이런 큰 사건들이 생기면 다시 한 번 세계화의 위력을 절감하게 된다. 이 글은 너무 오래된 주제인 세계화의 ‘파급효과’와 ‘범위’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는 세계화의 두 가지 면이 엮여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거리’와 ‘도덕.’

‘흑사병’사례에서 보듯이 (질병을 포함한)세계화는 그 역사가 길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화는 상호의존이 강화되면서 ‘거리(distance)’를 더욱 축소하고 있다. ‘거리’는 시간과 비례한다. 시간이 짧아지면 '거리'는 축소된다. 4시간 반 걸리던 부산이 2시간대로 시간이 단축되면 ‘거리’도 축소된다. 그런 점에서 거리는 ‘심리적’인 것이다.

세계화로 거리가 축소되면서 ‘공감(compassion)’의 범위는 늘어난다. 예전에는 신경 쓰지 않던 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마음을 졸일 때가 생기는 것이다. 일례로 2018년 6월 태국의 동굴 소년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공감이 늘어나면 가치 판단이 끼게 된다. 단지 정서적으로 마음이 아픈 것에서 끝 날 수도 있지만 도덕적인 판단으로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쓰고 애통해하는 과정은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을 가져온다. 공감이 반드시 도덕성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유주의는 세계화와 거리축소가 사해동포주의(cosmopolitanism)적 사고를 이끌어 낸다고 주장한다. 몰랐다면 관심 가지지 않을 일들에 대해 인식, 감정, 도덕성의 지평을 늘리는 것이다. 지구 환경문제나 빈곤과 인권문제가 그렇다.

지리의 축소와 확대된 공감에 의해 세계적인 이슈가 된 것이 있다. 바로 북한의 식량부족 문제다. 세계보건기구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북한 인구 중 거의 1/2에 가까운 이들이 심각한 영양공급 부족상황이다. 게다가 2017년부터 나빠진 경제가 겹쳐 북한 내 식량 부족 문제는 우리가 듣는 것보다 더 심각할 것이다.

세계화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은 북한 문제에 민감하다. 국제적인 관심 촉구로 더욱 민감하게 된 것이다. 진보와 보수 입장을 떠나서 어떤 정부라도 북한 식량문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북한 식량문제에 대해 더 관심이 높다. 중재자로서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정책적인 판단 때문이든 진보입장의 인권문제에 대한 규범적인 선택 때문이든.

사해동포주의에 기초한 ‘공감(compassion)’이나 민족주의에 기초한 ‘동정(sympathy)’에 기초하여 북한의 굶주린 인민들(people)을 돕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굶고 있는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단지 휴전선 위쪽에서 태어난 것 말고.

그런데 ‘도덕’기준에서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은 단순하지 않다. 북한의 정치 때문이다. 현재 북한의 식량부족은 북한 지도자와 지도부의 정치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그 결정이 ‘작위’ 책임이든 ‘무작위’ 책임이든. 북한 정부의 ‘잘못한 일’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도적’지원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논리가 필요하다. 책임 주체와 지원대상이 다르다거나, 식량과 기아 문제는 전정치적(pre-political)으로 해결할 막중한 도덕적 책임이 따른다거나. 더 심각한 것은 도덕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지원이 북한정부의 무책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도덕적’인 행위자에 대한 ‘도덕적인’ 행동은 어려운 것이다.

2019년 5월 9일 현재 한국 정부는 대북식량지원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북한 문제에 한 푼도 쓰고 싶지 않은 미국을 찾아 협상에 들어갔다. 미국은 굳이 노(No)라고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공은 전적으로 우리 정부의 몫이다. 앞서 본 것처럼 식량지원문제는 도덕적으로 '양가적(ambivalent)'측면이 있어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논쟁에 휩싸일 것이다.

세계화를 가장 극단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북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거리’상으로 가장 먼 북한. 남과 북의 ‘거리’는 언제쯤 가까워질 수 있을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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