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오시영의 “길의 약속”, 나경원 원내대표의 무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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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오시영의 “길의 약속”, 나경원 원내대표의 무모함
  • 법률저널
  • 승인 2019.05.0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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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길은 이야기이다. 길 속에 인생이 있고, 길 속에 진리가 있다. 길의 의미를 모르는 자는 아직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없다. 길은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으며, 지금 서 있는 곳도 역시 길이다. 까닭에 길은 인생의 시작이고 끝이며, 길을 모르면 인생을 모르는 것일 수밖에 없다. 도시의 복잡한 길에는 이정표가 있다. 실타래처럼 얽혀있기에 무언가 정리가 필요한 까닭이다. 하지만 시골길, 넓은 길에는 이정표가 없다. 십 리가 지척이며, 천 리가 지척이니 구태여 이정표가 필요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길은 거대한 도시의 한복판인가, 아니면 인적 없는 광야의 한복판인가? 언제나 길을 걷지만, 길 위에서 길을 잃는다.

필자의 시 “길의 약속”을 본다. “낯선 길에서/ 길을 물을 수 있음은/ 아직 길가의 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땅 끝에 이르러도/ 길은 제 안에 알을 품고/ 언제나 침묵한다// 걷는 자에게만 대답하는 길은/ 밟히면서 빛이 나고/ 눈물을 삼키며 단단해진다// 묻지 않고 그냥 걷기만 해도/ 꿈을 지키겠다는 길의 약속은/ 언제나 유효하다/ 길 위에서는 스스로/ 시효를 만들 이유가 없다” (전문, ‘여수’에 수록, 황금알 간). 저 시집에서 필자는 서문을 “여태 내가 한 일은/ 길을 걷는 것이었다/ 앞으로 할 일도/ 길을 걷는 일뿐이다// 걷고 있는 동안. 길은 끝이 없었다/ 길이 나였고/ 내가 길이었다// 한 번쯤 푹 쉬고 싶었다/ 그 쉼터가 바로 여기였다”라고 썼다. 필자가 좋아하는 단어 몇 가지 중 “길”도 그 하나이다. “길의 약속”은 필자 개인적으로는 무척 좋아하는 시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시이기도 하다. 그래도 무슨 상관인가, 그냥 내가 좋아하면 그만인 것을.

“낯선 길에서 길을 물을 수 있음은 아직 길가의 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도입 전반부에서 필자는 과정 중의 한 인간, 과정 중의 세계를 관조하는 시선으로 길 위를 걷는 한 인간을 상상한다. 길을 걷기를 멈추는 자는 죽은 자이다. 산 자는, 아직 살아 있다면, 스스로 실패해서 좌절하지 않는다면 그는 길을 걷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풍요 속에 살기 힘든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이 길 위를 걷기를 포기하고 마는지, 주변을 둘러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저 시는 그러한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면서 “자, 자, 기운들을 내자!”라고 북돋아주고픈 마음에서 그들의 귀에, 그들의 마음에 속삭이는 언어로 시작하였던 것이다.

“땅끝에 이르러도 길은 제 안에 알을 품고 언제나 침묵한다”라는 도입 후반부에서 필자는 “길의 존재”를 모두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내려 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땅끝은 우리의 관념 속에서 끝일 뿐, 길은 스스로 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땅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땅끝은 언제나 새로운 길의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다. 끝난 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 우리는 모두 다 잘 알면서도 또 다 잘 모른다. 눈 앞에 펼쳐지는 땅끝이 진짜 땅끝인 줄 알고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땅은 스스로 여기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까닭에 땅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라는 새로운 알을 품고 침묵 속에서 땅끝에 선 한 존재가 그 진리를 깨달으라고 침묵하고 있다. 그 침묵의 세계에서 이를 깨달으면 그 존재는 새로운 첫 땅의 시작을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걷는 자에게만 대답하는 길은 밟히면서 빛이 나고 눈물을 삼키며 단단해진다.” 중반 도입부에서 필자는 길을 걷는 자에게 길은 절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원래 길이란, 인생이란, 존재란 밟히기 마련이고, 눈물을 흘릴 일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더욱더 단단해지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싶었다. 절대 좌절하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묻지 않고 그냥 걷기만 해도 꿈을 지키겠다는 길의 약속은 언제나 유효하다.” 중반 후반부에서 필자는 길에서 쓰러지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계속 걸을 용기만 있다면, 실천적 삶만 있다면 결국 처음에 품은 뜻을 이루고 말 것이라며, 길은 언제나 걷는 자를 위해 존재하는 본질적 가치를 결코 훼손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길 위에서는 스스로 시효를 만들 이유가 없다” 중반부에서 우리는 결코 스스로 시효를 만들어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무효화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존재 의미를 찾고 싶었고, 독자들과 교감하고 싶었다. 아주 단순한 내용의 시이지만, 필자는 나름 “길의 약속”을 좋아한다. 그 길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그 길이 있음을 항시 느끼며 묵묵히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직선거법 및 공수처법 등이 패스트트랙이라는 국회선진화법의 강행규정에 의해 지난 4월 30일 새벽 0시를 전후하여 처리되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나머지 3개 야당의 합의로 패스트트랙 지정되던 날, 자유한국당은 이에 대하여 그 이전부터 물리력을 동원하여 이를 막아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이를 막지 못하였다. 공직선거법의 주요 쟁점은 지역구 의원 수를 225명으로 축소하고, 비례대표를 75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비례대표를 예전 배분 비율과 달리 각 당의 득표율의 50%에 해당하는 의원 수를 산정한 후 지역구에서 당선된 자를 제외한 숫자를 비례대표로 할당하고, 위와 같이 할당하고 남은 인원을 다시 각 정당 득표율로 배정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국민의 투표 중 사표(死票)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것이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2:1(200:100) 정도로 하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3:1(225:75)로나마 현실 타협을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게 되면 다양한 정강정책을 가진 정당이 국회에 들어오게 되고, 절대다수의 정당이 군림하지 못하게 되어 보다 민주적 민의가 수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었다. 물론 군소정당이 난립할 경우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 국정이 혼란스러워질 우려를 전혀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안별로 군소정당과 다수정당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어느 정도 가치군집(價値群集)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쌈박질보다는 합의와 양보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공수처법도 대통령을 비롯한 판, 검사, 경무관 이상의 고위직 경찰 공무원 등에 대한 수사권을 갖는 것이기에 부패 방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휩싸이지 않고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공직사회의 청렴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이 수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음은 유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여 년 전부터 공수처를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던 것에 비추어 보면 만시지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왜 반대를 하면서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해 가면서 물리력을 동원하여 위 법들의 법안 심사(패스트트랙)을 막으려 하는 것일까? 법률적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자유한국당이 누리고 있는 의석수가 줄어들 것이 예상되어 당세가 약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다. 전문가들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20석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지지만 받는다면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국민의 지지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유리 또는 불리하게 되는 것이지, 제도 변경 자체가 불이익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공수처법의 제정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진정 이해할 수가 없다. 현재의 검찰이나 경찰을 활용하는 것이 정권을 잡은 측으로서는 훨씬 용이하다. 그것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강력한 권한을 갖는 공수처는 청와대로서도 장악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따라서 집권당이나 집권세력의 공직 비리를 척결하는 데 더 앞장설 것이기 때문에 야당이라면 찬성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자유한국당이 그렇게 하지 않고 반대하는 까닭은 “언젠가 자신들이 집권당이 될 경우 자기들을 겨누는 화살이 될 것이라는 먼 미래를 예상하고 사전에 이를 방지”하려는 의도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 험난한 길, 현재의 저조한 지지율 상태에서 어떻게 집권을 할 것인지, 이에 대한 염려와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먼저일 텐데, 나중에 집권한 뒤에 공수처로부터 수사 공격을 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음은 참으로 난감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이면에는 자신들이 집권세력이었을 때 불법을 저질러본 경험이 DNA로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언젠가 집권하면 자신들이 또 권력 독점에 따른 부정부패를 저지를 것이라는 황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럴 때 현재의 검찰 조직이라면 충분히 억누를 수 있는데(김학의 사건이나 디도스 사건 또는 세월호수사방해사건 등등)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지레 겁을 내는 꼴이니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국회 회의 진행 방해 행위는 국회선진화법 165조와 166조를 명백하게 위반하고 있어 그 후유증이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회 사무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나 단체 등이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을 형사고소하였으니 검찰에서는 수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친고죄가 아니니 설령 그들이 고소를 취하한다고 하더라도 수없이 채증된 영상이나 녹음 등 증거 등이 채집되어 있으니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내릴 수도 없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불기소처분을 이제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만일 검찰이 그런 결과를 내놓는다면 국민은 검찰을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고소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검찰로서는 관련 위반자들의 직위를 막론하고 수사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기소되면 당연히 유죄선고가 내려질 것이고, 그로 인해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지 못하는 의원들이 상당수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설령 재판이 길어져 다음 총선에서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임기 중 재판이 종료되면 다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까닭에 검찰은 신속한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고, 법원도 지체함이 없이 속전속결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해결책이라고 할 것이다.

사안이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이다. 소위 국회선진화법 165조나 166조는 “범죄구성요건”을 너무 명확히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고, 그 요건사실의 해당성은 전 국민이 거의 생중계로, 유튜브로, 개인 핸드폰으로 촬영되어 있어서 빼도 박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얼마나 무모한 행동이었는지, 동료 의원들을 무차별 차도살인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는지, 아마 지금쯤은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겁을 먹고 있을 것이다. 당직자 아닌 다른 일반 의원들은 어느 정도 정상참작사유라도 있겠지만, 이 모든 국회 의사일정 방해의 총책임자이자 총감독자 역할을 담당한 나경원 원내대표는 결코 법망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온실에서만 살면서 “입으로 말하면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요술나라 공주”로 살아왔던 인생길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길이든, 낯선 길이든, 쉼 없이 걷고 걷다가 어느 순간 쉬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길가의 꽃이 아니기에 스스로 시효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쉬지 않고 길을 걷는다. 꽃길이든, 가시밭길이든, 모래사막 같은 길이든 걷고 또 걷는다. 먼 길을 걷기 위해서는 한 켤레 신발이 필요하다. 모든 맨발의 존재들에게 한 켤레 신발이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길이 꽃향기 가득했으면 한다. 하지만 우리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이 되지는 않지 않는가? 이번 공직선거법안 등의 패스트트랙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의안으로 상정된 것일 뿐 아직 의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도 이제 냉정함을 되찾아 합리적 대안세력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실질적인 내용 협상에 나서 얻을 것은 얻고, 줄 것은 주면서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내일, 그대도 길을 걸을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 영원히 멈추어 서 버리려는가? 그러면, 진짜 길이 끝난다. 멈추는 곳이 바로 길의 끝이다. 낭떠러지이다. 계속 걷고 걸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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