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동물국회, 식물국회, 방탄국회: 사람의 국회는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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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동물국회, 식물국회, 방탄국회: 사람의 국회는 언제쯤?
  • 신희섭
  • 승인 2019.05.0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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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19년 4월 30일 국회는 패스트트랙 통과과정에서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4월 25일부터 29일까지의 육탄투쟁과정에서 ‘동물’국회가 되었다. 사실 ‘원 펀치’국회나 ‘해머’국회의 전력이 있어 이 용어가 특별하지는 않다. 인상적인 것은 국회의 변신 ‘속도’다. 국회는 2018년 5월 방탄국회였고 2019년 4월전까지 식물국회였다. 
   
국회 비판은 일상적이라 특별할 것이 없다. 매년 공공기관 신뢰도에서 국회는 최하위다. 오죽하면 길에서 처음 본 사람보다도 국회의원 신뢰도가 낮다는 기록을 가질까!
   
국회는 한국정치 후진성의 상징이다. 식물국회, 동물국회 담론만 있지 않다. 돈값어치를 못한다는 비판도 만연해있다. 2019년 4월에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84.3%가 국회의원의 연봉이 과하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서는 국회의원에 대한 성과급제도 도입(53%찬성)안이나 무보수 제도 도입(65%찬성)안도 제시되었다. 이런 여론조사는 비판프레임 공식의 전형이다. ‘국회의원 ? 쓸모없음 ? 높은 연봉 ? 세금낭비’의 논리구조이다. ‘동물국회, 식물국회, 방탄국회’라는 담론이 가세하면 ‘동물국회, 식물국회, 방탄국회  ? 국회의원 ? 쓸모없음...’의 비판프레임은 더욱 강화된다. 
   
이런 틀에서 대한민국 국회를 비판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비판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다는 점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이 ‘대의’민주주의라서 그렇다. 대의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의회’를 통해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를 반영하는 대의민주주의는 의회가 군주와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인민의 대표인 의회가 법을 제정함으로서 “인민의 뜻”을 정치체제에 “간접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어원과 역사로 볼 때 대의민주주의에서 의회는 유권자의 거울이다. 의회는 유권자를 대의(代議)한다. “대신하여 의논한다.”는 영어표현인 representation은 다의적이다. 대리(delegate)하다와 표상(表象)하다(presentation)의 의미를 가진다. 둘을 합치면 (의회에)대표를 보내 실체인 유권자를 “있는 그대로” 체현한다는 것이다. 개념적으로 대의민주주의는 유권자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뭔 소리냐고 반문할 것이다. 아니 왜 가만히 있는 ‘나(I)’를 저속한 의원 ‘그들(they)’과 싸잡느냐고 도덕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 내 선택과 관계없이 그들이 따로 노는데 왜 책임이 나에게 돌아 오냐고 제도적차원에서 항의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 국회를 사람이 아닌 무엇으로 비판하든 그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 비판이 그저 편하지만 않은 것은 그 비난의 화살이 결국은 유권자인 내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실제 유권자들이 대표를 선택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대표를 선출할 때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 이론가 제인 맨스브릿지(Jane Mansbridge)는 대의민주주의의 선택기준으로 4가지를 제시하였다.1) ‘약속에 입각한 대의(Promissory Representation)’, ‘예측에 입각한 대의(Anticipatory Representation)’, ‘자이로스코프적 대의(Gyroscopic Representation)’,  ‘대리 대표에 의한 대의(Surrogate Representation)’이다. 
   
‘약속에 입각한 대의(Promissory Representation)’는 유권자가 공약이행 정도(사후 책임성)를 가지고 대표를 선정한다. ‘예측에 입각한 대의(Anticipatory Representation)’는 유권자가 향후 대의를 잘 할지 여부(정치과정에서의 응답성)를 예측하고 이 예측이 사후적으로 지켜질지를 기준으로 대표를 선택한다. ‘자이로스코프적 대의(Gyroscopic Representation)’란 내비게이션의 평형추인 자이로스코프처럼 유권자는 대표의 공약이행정도나 유권자에 대한 응답성(responsiveness)과 관계없이 자신과 비슷한 성향과 정체성을 보유한 대표를 “일관되게” 선발(정체성확인 작업)한다. ‘대리 대표에 의한 대의(Surrogate Representation)’는 유권자가 자신의 지역구 의원에 실망하여 다른 지역구 의원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 4가지 논리들은 정당정치가 약한 다분히 미국적인 상황을 반영한다. 하지만 유권자의 선택기준을 일반화하였다는 점에는 의미가 있다.  
   
맨스브릿지의 논리를 이용한 분석2)에 따르면 한국정치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자이로스코프적 대의(Gyroscopic Representation)’에 해당한다. 한국에선 유권자들이 이념(ideology)과 지역주의(localism)를 기준으로 대표를 선택한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대표가 선거전 공약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따지기 어렵다. 또한 국회의원임기동안 의견을 나누며 응답성을 높여 이 결과를 선거에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와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렇게 대안이 부족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진보-보수, 출신지 지역주의와 같은 손쉬운 정체성확인을 선거에 반영한다. 
   
유권자가 한국정치문제들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관료정치가 강력한 한국에서 정치가 무조건 국회를 중심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더구나 아니다. 사실 존 스튜어트 밀이 의회중심의 대의민주주의를 만들고자 할 때부터 이미 의회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전문화되고 발전된 사회구조에서 의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국가 관료제도나 대기업에 비하면 보잘 것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정치공동체에 관철할 수 있는 “최소한의” 민주주의 장치로서 의회는 필요하다. 
   
‘의회’민주주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제 20세기 초반 서구에서는 보통선거권 확대와 함께 정당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 간의 대립이 있었다. 유권자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정당’민주주의는 유권자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의회에 보내고자 했다. 반면 ‘의회’민주주의는 유권자보다 우월한 이들을 대표로 보내고자 했다. 현재 한국에서 이런 논의는 현실적이지 못하며 공허하다고 평가받는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란 비판 담론에만 안주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유권자들이 “최소한”의 민주주의 장치로서 한국의회가 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하고 이 역할을 지지해주어야 한다. 원론적으로 볼 때 의회는 투쟁과 토론과 심의의 공간이다. 유권자와 대표가 정치적 타협의 지난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아니면 토의를 거친 합의가 어렵다는 점을 학습하고 합의해야 한다. 한국의회가 결정성이 떨어져도, 시간이 좀 걸려도, 새로운 이해관계가 걸려도 말이다. 유권자의 책임추궁도, 전망적 기대도 이를 토대로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편안하게 정착된 ‘이념정치’와 ‘지역정체성’이 과연 유권자와 국회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각주)-----------------
1) Jane Mansbridge "Rethinking representation", M. Saward,『Democracy Ⅲ』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2007),pp. 361-390.
2) 최준영, "갈등과 교착의 한국 대의민주주의 :누구의 책임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정당학회보 제 17권 제 2호 2018년』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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