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2)-회복적 사법이 문제해결법원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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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2)-회복적 사법이 문제해결법원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
  • 임수희
  • 승인 2019.04.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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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지금은 사단법인 갈등해결과 대화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2013년 당시에는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부설 갈등해결센터였습니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형사재판의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를 하기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던 6개의 회복적 사법 전문기관 중 하나였지요. 10여 년간의 재혼관계를 흉악범죄의 징역형으로 마감하게 될지 모를 절박한 상황의 남편과 그 아내, 피해자-가해자 대화모임(VOM, Victim-Offender Mediation)을 맡아 준 곳 말입니다. 당시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였던 여혜숙 선생님과 그 부설 갈등해결센터 센터장이었던 김선혜 선생님이 그 남편과 아내 사이의 대화의 가교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지난 19회부터 이어지고 있는 재혼 부부 흉기 협박 사건에 관한 회복적 사법 이야기입니다. 앞의 세 편의 이야기를 참고해 주세요.)

남편이 아내에게 식칼을 들고 ‘죽인다’고 위협하여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협박)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된 사건의 재판장이었던 저는 별다를 것 없이 진행된 변론을 종결하며, ‘처벌을 원한다’는 피해자인 아내와 그 남편인 피고인에게 당시 시범실시 중이었던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관한 안내를 해 주었을 뿐, 사실 큰 기대는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실은 대화 성사가 과연 가능할까 싶어 내심 반 이상 접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아무리 회복적 사법 전문가라 하더라도 마술을 부리지 않는 이상 무슨 수로 그들을 대면시켜 대화가 오고 가게 할 수 있겠나 싶었던 거지요. 그 아내가 과연 남편 얼굴을 보려고나 할까 싶은 정도였으니까요.

2.
아니나 다를까, 두 분 담당선생님들이 아내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녀는 남편과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편의상 ‘조정자’라고 칭하며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지요. 그녀는 조정자들에게, 남편과 만나고 싶지 않다, 마주 대화하기가 겁나고 싫다, 너무나 힘들다, 몸도 아프다, 그냥 모든 것이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고 하더군요.

여러분, 그녀의 상태가 이해되시는지요. 얼마나 힘이 들지, 괴로울지, 그리고 남편을 떠올리면 얼마나 무섭고 불안할지, 앞으로의 일들을 그려 보는 것이 얼마나 막막하고 걱정될지.

사람이 이런 상태에 있을 때는 에너지도 너무 떨어져서, 주변에서 도와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조차도 버거울 수 있습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수술을 하려해도 수술을 버텨낼 최소한의 체력은 있어야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녀의 상태를 이해한 조정자들은 감사하게도 수고스러움을 마다않고 그녀가 나오기 편한 주거지 인근까지 찾아가 동네에서 그녀를 만나 주었습니다. 그리고 반나절 가까운 긴 시간 동안 함께 하며 공감하고 위로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정 그녀가 원하는 것, 그녀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함께 의논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을 위해 시부모에게 얼마나 헌신하고 애써왔는지, 남편이 몸이 아파 일을 못하게 되자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전남편과 사이의 딸과 함께 살면서 남편과 사이에서 노심초사 갈등 해결을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그런 그녀가 결국 남편에게서 쫓겨나고 칼로 위협까지 당하니 이젠 더 이상은 결혼을 유지할 수 없겠다는 포기와 절망감에 이미 마음이 굳고 얼마나 슬픈지. 그리고 남편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뒤엉킨 복잡한 마음들.

그녀는 지지적 태도로 자신의 말을 공감적으로 들어주는 조정자들에게 그동안의 힘들었던 마음을 실컷 쏟아내고 나자 비로소, 왜 싸울 때마다 ‘내 집에서 나가라’고 했는지, 자신을 아내로,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건 아닌지, 남편에게 그 이유를 들어 보고 싶다며, 관계를 종결하기 위해서라도 남편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했답니다.

3.
한편 조정자들은 국선변호인을 대동한 그녀의 남편과도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재혼해서 둘이 살다가 아내의 딸과도 함께 살게 되자 소외감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제대로 대화로 풀지 못한 채 술을 마시고 화풀이를 반복하다 보니 아내와 갈등이 깊어 졌고, 아내가 가출한 후(아내는 남편이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여 결국 짐을 싸게 된 것인데, 남편은 아내가 ‘가출했다’고 느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내의 마음을 돌리려고 전화를 여러 번 했지만 아내가 받아주지 않았다고 하면서(이 역시 아내 입장에서는 일하는 중에 전화를 해서 자꾸 시비조로 말하니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남편은 전화를 해도 아내가 번번이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내에게 범죄를 저지른 것은 잘못했지만, 왜 그렇게까지 된 것인지를 구구절절 조정자들에게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역시 반나절 가까운 긴 시간동안이나요.

범죄자의 변명인데 왜 들어주고 있냐구요? 그러면 가해자가 자기를 두둔해 주는 줄 알고 잘못을 모르지 않겠냐구요?

여러분, 조정자들이 피해자-가해자 대화모임에 앞서 왜 가해자와 이런 대화의 시간을 가지는 걸까요.

아무리 범죄자라도 억울한 것은 있지요. 아무리 잘못한 행위라도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는 늘 있기 마련이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조정자가 충분히 들어주어서, 가해자가 마음속에 자기 억울한 것이나 자기 응어리진 것이 어느 정도 풀려야, 피해자를 대면했을 때 피해자에게 나가는 말들이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사과의 뜻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명백한 잘못을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억울함이 속에 있으면 피해자를 만나서 말을 할 때 자기 억울함이 묻어서 나가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려고 해도 변명부터 늘어놓게 되거나 잘못을 인정하는 말 보다는 자기합리화나 자기정당화의 표현들이 먼저 나가기 십상이니까요. 그러면 피해자는 듣기에 불편할 뿐 아니라 때론 점점 화가 돋구어 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칫 준비되지 않은 가해자를 피해자에게 성급히 대면시킨다면, 안 하니만 못한 대화가 될 수 있고, 나아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힐 우려도 있는 것이거든요.

이 사건의 조정자들은 회복적 사법에 기반한 피해자-가해자 대화모임을 진행할 수 있는 전문가였기 때문에 당연히 사전 준비로서의 가해자에 대한 공감적 대화에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들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 결과 피고인 남편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리고 내려가면서, 아내와 대면했을 때 자신의 입장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아내의 편에서 아내의 말과 아내의 마음을 들어 줄 마음의 공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4.
그러면 결국 조정자들이 제가 기대하지 못했던 마술을 부린 결과가 되는 건가요?

이렇게 정성을 들여 양쪽을 준비시킨 후 조정자들이 남편과 아내를 대면시켜서 대화모임을 진행했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풀어야 할 이야기들이 많았기에 역시 반나절이상의 마라톤 대화모임이 진행되었지만 조정자들은 찬찬히 끈기 있게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아내는 자신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려고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그리고 ‘그 날’도 자신은 오히려 칼을 숨기며 남편을 보호하려 했었다는 것을 남편이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마음도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바랐고요.

남편은 의도적으로 그런 게 아니고 술에 취해서 그런 것임을 반복해서 말했는데, 술 때문이라고 변명하려는 뜻이 아니라 결코 아내에 대한 나쁜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아내에게 잘 전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일에 대해서 자신이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는 마음을 진정성 있게 전했고, 아내에게 그날 이후 처음으로 진심어린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얼마나 무서웠고 또 지금도 무서운지, 아내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이혼을 원하지 않지만 아내가 원한다면 그 뜻대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 대화모임의 말미에 남편은 더 이상은 결혼관계의 지속을 아내에게 요구하지 않게 되었고, 아내의 이혼의사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진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요. 혼자서는 쉽지 않았거나 적어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 일이 조정자들의 도움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아내는 ‘답답한 마음이 많이 편해졌고 상담받기를(대화모임 가진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잘했다’고 후일 법원의 모니터링 과정에서 진술했습니다.

5.
이후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의 조력으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의 후속 합의가 매우 전향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용서해 주고 법원에 처벌불원서를 내 주기로 하였고, 남편은 아내의 원대로 협의이혼을 해 주기로 하였으며, 이혼 위자료 및 재산분할과 손해배상 명목으로 남편 명의로 있던 집을 아내에게 소유권이전등기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손해배상은 범죄행위에 대한 것으로서 민사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이자 형사합의금 성격을 띄는 것이었으니, 집의 소유권이전등기로 민사 및 형사, 그리고 가사 위자료 및 재산분할이 일거에 해결된 획기적인 합의였습니다.

당시 그 집은 그 남편과 아내의 유일한 재산이긴 했지만, 상당한 비율의 대출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그 대출을 떠안고 명의를 이전받으면 계산상으로는 약 1천만 원 정도를 남편으로부터 민, 형사 합의금 및 이혼 위자료와 재산분할 명목으로 받는 셈이었습니다. 어떠세요. 합의 내용도 이 정도면 적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예정되었던 선고기일에 피고인에 대한 변론이 재개되었고, 피고인에 대한 양형자료로 위와 같은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에서의 결과물들, 즉 피고인에 대한 처벌불원서와 합의서, 협의이혼신고서 등이 제출되었으며, 공판검사는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구형했던 것을 변경해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구형을 다시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선고된 형도 실형이 아닌 검사가 구형한 것과 같은 집행유예 형이었습니다.

6.
회복적 사법 전문기관의 도움으로 피고인 남편은 그 이상 받기 어려운 양형상의 이익을 받았다고 보입니다. 지금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단이 되어 삭제된 조항이지만 당시 남편이 기소되었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협박)죄로 그 이상 선처를 받을 수는 없는 양형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는 그냥 거저 선처된 것이 아니라, 그 남편이 용기를 내서 자신의 잘못과 직면하고 아내와 진솔하게 대화한 노력의 결과물로서, 자기 행위의 의미를 제대로 자각해서 진정한 책임을 지면서 자신도 아내에게 이해를 받고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 것이니, 그 남편은 양형상 선처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피해자인 아내가 받은 이익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일 것 같습니다. 아내가 남편과의 ‘대화모임’으로 나아간 용기가 주었던 선물은 실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편에게서 제대로 사과를 받고 상처가 치유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법적인 문제에서 민사소송이나 이혼소송을 따로 하는 고통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단순히 약속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이행이나 집행문제를 신경쓰지 않아도 될 수준까지 일거에 해결하는 양질의 합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이 찾아와서 또 폭력을 쓰지 않을까, 괴롭히지 않을까 하며 마음 졸이고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으니 평온한 일상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이 가치를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요.

지난 회에 문제해결법원(Problem Solving Court)의 일종인 미국 뉴욕 주의 통합가정폭력법원(Integrated Domestic Violence Court, IDVC)에 대해 소개해 드렸었는데, 우리는 그와 같은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남편과 아내의 회복적 사법 대화모임이 가져다 준 놀랄만한 결과는 IDVC 수준 이상의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제해결법원이 별도로 설치되지 않더라도 만약 이와 같이 당사자 간에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관련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문제해결법원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고, 대화를 이어주는 회복적 사법 전문가들이 바로 문제해결법원의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삶에서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 당사자들이 스스로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국가도 사회도 제도도 지원해 주는 사람들도 결국 그들을 도울 수 있을 뿐이지,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사법제도의 힘을 빌리거나 정치세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그만큼 질적, 양적으로 확장될 수 있고 풍요로워 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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