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1)-남편과 아내에게 형사법정의 의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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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21)-남편과 아내에게 형사법정의 의미란?
  • 임수희
  • 승인 2019.04.0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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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피고인, 방금 양형증인인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마쳤습니다. 증인신문 결과를 고지해 드리자면, 요지는,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피해회복 받은 것이 없고, 현재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피고인석에서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았고, 찾아가 보려 해도 변호인한테서 혹시 불리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자제하라고 주의를 받은 터라,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공판 날 법정 방청석 맨 뒤에 앉은 아내를 보니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판사는 법원 참여관이 연락하니 피해자가 증인으로 나와 주겠다고 했다며 아내의 출석 경위를 설명해 주었고, 아내를 보고 나와 줘서 고맙다고도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아 이제 뭔가 여지가 생긴 것인가 싶어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증인신문 동안 법정 밖에 맘 졸이며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왔더니, 판사가 뭐라 뭐라 길게 말을 하는데 마지막에 ‘처벌을 원한다고 한다’는 겁니다.

저게 대체 뭔 소린가? 내가 들은 것이 맞나? 믿기지도 않고. 그 남자는 다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2.
재혼해서 10년을 함께 산 사이인데다, 범죄 자체가 식칼을 들고 ‘죽인다’고 위협을 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협박) 사건이기 때문에, 피해자인 아내가 증언하러 법정에 나오기로 마음먹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은 들대로 들었지만 또 한편은 무섭고 떨리기만 한 남편이 고작 몇 걸음 앞 피고인석에서 빤히 보고 있는 상태에서 그 아내가 제대로 입이나 뗄 수 있을까요.

저는 아내인 피해자의 양형증인으로서의 신문에 앞서, 피고인을 형사소송법 제297조 제1항에 따라 퇴정시켰습니다.

즉 증인이 피고인의 면전에서 충분한 진술을 할 수 없다고 인정된다고 고지하고, 피고인에게 법정 밖에서 증인신문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한 신문은 변호인이 충분히 할 수 있으니 염려 말라고 하고서요.

그리고 그 아내에게는, 진술하기에 법정만큼 안전한 곳은 없으니 솔직하게 자신의 진짜 의사를 잘 말씀하셔도 괜찮다고 안심시켰지요.

“피고인은 이 사건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고요. 저희가 보기에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절대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시고요.”

“부모 앞에서도 다시는 안 그런다고 빌어 놓고도 며칠을 안 갑니다.”

“그러면 피고인이 이 사건 전에 집에서도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었나요.”

“네.”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저는 뭐라고 질문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현재 피고의 처벌을 원하시는 건가요.”

“네.”

이젠 진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혹시 변호인에게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 증인에게 물어 볼 말이 있으면 신문을 하라고 했습니다.

피고인의 양형상 이익을 위해 공판기일 속행을 간곡히 청했던 성실한 국선변호인, 누구보다도 피해회복을 위해 피해자와의 대면을 간절히 원했을 그였지만, 글쎄요. 저 만큼이나 당황했을까요. 사실 그 이후 변호인이 무어라 묻고 증인이 무어라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변호인이 극도로 조심스러워 했던 것만 기억이 나고, 뭐라 물었던지, 물으려 했던 건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실제로 뭘 물었다 해도 별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변호인으로서도 잘못 물으면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언만 줄줄이 나올지 모를 상황이니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 당연했고, 아예 안 묻는 게 나을지도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3.
그렇게 허무하게 금방 끝나버린 피해자 아내에 대한 증인신문 후, 퇴정했던 피고인을 재정시켜 증인신문 내용의 요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 뒤로 공판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변론종결 단계에 이르렀고, 검사는 징역 1년 6월을 구형했으며, 피고인과 변호인의 최후진술을 마치고 변론은 끝이 났습니다.

이 남편과 아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냐구요?

여러분도 허무한 느낌이 드신다구요?

네, 보통의 숱한 사건들이 이런 식으로 그냥 끝이 납니다.

이렇게 변론종결 하고, 별 다른 일도 없이 선고기일이 닥치고, 합의시도를 하다가 도저히 안 되는데 돈이 좀 있는 분들이라면 공탁이라도 하고 그게 끝입니다.

재판이라는 게 그렇지요. 거기에 무슨 드라마틱한 기적 같은 일이 있겠습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니 드라마틱이라고 하겠지요. 현실의 재판에서는 무미건조한 현실이 있을 뿐입니다.

그저 과거의 사실관계를 증거에 의해서 조사하고 그에 기초해 법을 적용하고 판단을 할 뿐이지요. 과거의 그 행위와 그 피해결과로 인해, 현재 어떤 어려움이 있든, 미래에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가고 싶든,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단지 과거 사실관계에 대한 확정과 그에 대한 법 적용에 따른 판결, 그 뿐입니다.

그럼, 그 남자는 어떻게 되느냐구요? 징역 1년 6개월 구형을 검사로부터 받았는데 징역을 살아야 하냐구요?

아니, 그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요?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요?

그럼, 그 대목에서 제가 질문을 하나 드려보고 싶습니다.

그 여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좋습니다. 그 남자가 잘못을 저질렀고 검사가 1년 6개월을 구형하여 법원에서도 엄정한 형 선고로 이어져 그 남자가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고 나왔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그 여자를 다시 찾아가겠지요? 연락하겠지요? 왜냐면 그의 아내니까요.

4.
여러분, 이 사건 범죄가, 불화로 별거 중에 아내를 찾아간 남편이 이혼하자고 던진 말에 아내가 그래, 하자고 했다고 칼부림이 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징역을 1년 6개월이나 살고 나온 남편이 다시 아내에게 연락하고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제가 극악무도한 범죄자 남편에 온정적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신다구요?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 아내 입장에서 그 이후 삶의 추이를 가늠해 보며 질문을 드려 보고 있습니다.

아내 입장에서 한번 봅시다. 남편이 저지른 이 사건 범죄의 상처 자체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그 흉측한 일이 있은 후 남편 얼굴을 처음 본 것은 법정에서 증인 설 때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요. 법정에서도 남편 얼굴만 보았을 뿐 남편과 말을 허심탄회 주고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남편한테서 사과를 받은 것도 아니었구요. 그 일로 무서운 것, 화나는 것, 상처 입은 것, 모두가 그냥 그대로였을 겁니다.

남편이 징역형의 선고를 받고 나서 교도소에 있게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아내가, 옳다구나, 이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다, 하게 될까요. 오히려 아내 입장에서는 더 불안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남편이 출소 후에 찾아와서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속해서 남편과 아내로서 법적으로 묶여 있는 사이 아닙니까. 그러니 출소 후에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아, 남편이 교도소에 있을 때 재판상 이혼청구를 해서 이혼절차를 밟으면 된다구요?

네, 법을 아시는 분들은 그렇게 아내를 구제할 방법을 찾아내실 수도 있습니다. 재판상 이혼 청구를 하면 형사판결이 있으니 인용될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런데 설령 재판상 이혼청구를 해서 법적으로 이혼을 한 들, 출소한 전남편이 찾아오는 걸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그녀가 설령 남편이 교도소에 있을 때 이혼판결을 받는다 해도, 그녀의 불안한 마음이 해소될 수 있을까요.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이혼판결문이 전남편으로부터 그녀를 안전하게 지켜 줄 무슨 실질적 무기가 되기라도 한답니까.

혹시 어디에서 지켜 서서 기다리고 있다 나타날까, 집에 있는데 아무 때고 찾아올까, 혹시 또 술이라도 먹고 직장에라도 와서 또 행패를 부리지나 않을까,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딸이나 다른 가족을 찾아가서 괴롭히면 어쩌나. 이런 걱정과 불안이 들지 않을까요.

5.
이 사건처럼 남편이 아내에게 범죄를 저질렀고 아내가 이혼의사가 있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남편의 범죄는 형사재판으로, 아내에 대한 피해배상은 민사재판으로, 이혼과 위자료(이혼위자료를 말하므로, 이 사건 자체로 인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으로서의 민사상 위자료와는 구분됩니다) 및 재산분할은 가사재판으로 각각 다른 법정에서 취급됩니다.

한꺼번에 하면 참 좋을 텐데 싶으시죠.

놀랍게도 가정폭력과 결부된 형사 및 가사재판 등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사법시스템을 가진 나라도 있긴 합니다.

예컨대 미국 뉴욕 주에는 통합가정폭력법원(Integrated Domestic Violence Court, IDVC)이라는 것이 있는데, 2018. 1. 1. 현재 뉴욕 주 전체에 39개의 IDVC가 있다고 합니다 (http://ww2.nycourts.gov/Admin/OPP/dv-idv/index.shtml).

이는 “하나의 가정은 한명의 판사에게(One Family - One Judge)"라는 이념 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정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에 관련된 형사 문제와 이혼 등 가사 문제를 한 명의 판사가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서, 대표적인 문제해결법원(Problem Solving Court)으로 꼽히는 것이지요(https://www.nycourts.gov/ip/domesticviolence/index.shtml).

여기서 ‘한명의 판사’라는 뜻은 판사 1명이 그 일을 다 처리한다는 그런 식의 의미가 아니라, 민, 형, 가사가 분리되지 않고 같은 법원에서 같은 판사에 의해 처리된다는 뜻입니다.

즉 민, 형, 가사가 분리된다는 뜻은, 예컨대 형사판결로는 중한 징역형을 받은 남편인데, 가사법정에서는 아이의 양육권을 가지게 된다거나, 민사 위자료와 가사 위자료가 모순 또는 중첩될 수 있게 된다거나 할 위험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를 ‘한명의 판사’가 한다는 뜻은 ‘모순된 재판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 ‘그 가정에 필요한, 모순되지 않은 한 방향의 재판결과가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에 수반하여, 당사자들이 법원 출석을 두 번, 세 번 할 것을 한 번 해도 되게 될 것이고, 소송과 절차 비용이 적게 들 것이며, 모든 절차가 종결되기까지의 시간도 더 적게 걸리는 이익도 있지요.

솔깃하게 들리신다고요? 우리도 도입되었으면 좋겠다구요?

네, 우리도 “하나의 가정은 한명의 판사에게(One Family - One Judge)"라는 시스템이 도입되면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불행히도, 이 사건 형사재판에서는 그런 기회가 올 수 없는 제도적 한계 하에서 그 남편과 그 아내에게 많은 해결할 삶의 문젯거리들을 남긴 채 변론이 종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한편 다행히도, 그 당시에 저희 법원에서는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사업을 하고 있어서, 그 남편과 그 아내에게 원하신다면 회복적 사법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겠냐는 안내를 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재판의 변론이 종결된 후에, 회복적 사법 전문가들의 도움 손길에로 인계된 그 남편과 아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네, 다음 회에 계속 이어서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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