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법적 구제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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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법적 구제의 현주소
  • 오영근
  • 승인 2001.09.13 0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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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법대 교수이다 보니 가끔씩 법률상담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곤란한 것이 500만원 정도를 빌려줬는데 채무자가 갚지를 않는데 어떡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상대방이 재산이 있는가 확인하고, 돈 빌려줬다는 증거를 갖추어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받은 후 채무자의 재산을 강제집행하면 된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곤란한 질문은 두 번째 질문이다. 위와 같은 대답을 하면 채무자의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소송의 제기와 강제집행의 방법, 비용, 돈을 변제받거나 강제집행하는데 필요한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리느냐 하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아는 범위에서 대답을 해주면 대개 상대방은 난감한 표정을 짓곤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에는 이런 사건에서는 소송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채무자에게  자꾸 찾아가서 돈달라고 조르고 그래서 절반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상대방도 그렇게 소송을 통해 돈받기가 어렵다면 분하지만 절반이라도 받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수긍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법적 구제의 현실이다.
외국의 예가 다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와 대조되는 예를 독일에서 본  적이 있어서 소개하기로 한다. 유학생 중 한 사람이 자동차(주인은 그 차의 엔진만은 아직도 어느 차보다 좋다고 주장하지만, 10년 정도된 고물차)를 타고 가는데 어떤 어린 아이가 차에 돌을 던져 앞유리창에 흠을 냈다. 미관상으로는 좋을 게 없지만, 자동차 운행에는 별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흠이었다. 그런데 마침 차주인이 자동차관련 법률보험(Rechtsschutz)를 들고 있었다. 이 보험은 자동차사고나 기타 자동차에 관련된 법률문제를 해결해 주는 보험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보험료는 1년에 3-4만원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차주인은 변호사에게 찾아가  상담을 했고 약 2주후 다음과 같은 대답을 받았다. 돌을 던진 아이의  아버지와 상의하여 총 180마르크(당시 환율로는 약 7만원)의 수리비를 물어주기로 했고, 다만 한꺼번에 줄 능력이 없어서 60마르크는 지금 주고 나머지 돈은 한달에 20마르크씩 6개월에 걸쳐서 은행구좌에 자동이체 시켜준다고 하는데 이런 조건을 수락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돈을 받으리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던 그 유학생으로서는 그 조건을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결국 180마르크를 받을 수 있었다. 손해를 입은 그 유학생이 한 일은 딱 한번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는 것이었고, 기타 모든 일은 손해액수의 산정이나 가해자와의 의견조정 등은 모두 변호사가 맡아서 해주었다.
위에 든 두가지 예에서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법률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설사 많은 비용을 법률전문가들에게 지급했다 하더라도 증거나 상대방에 대한 정보의 수집 등은 모두 의뢰인이 또 해야 한다. 소송을 한번 하면, 본인이 피곤한 것은 물론이고, 주변사람들도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던 피해를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소송을 하는 사람은 법정이나 변호사사무실에 여러차례 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근무처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처음에 소송하는 것과 그를 위해 근무처를 비우는 것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직장상사나 동료들도 횟수가 거듭되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소송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법조인들 특히 변호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변호사들이 소득이 높고, 수임료가 너무 비싼 것에 대한 불만 즉 일종의 시기심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하는 법조인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법조인들이나 변호사들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불만의 진정한 이유는 자신들이 지급하는 돈과 법조인들이 제공하는 법률서비스 사이에 너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 돈은 교환수단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지급한 액수와 그 대가로 받은 것과를 비교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돈의 지출은 지출액 그 자체 보다는 지출액과 대가의 비교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100만원이라는 큰 돈을 지출하였어도 120만원에 해당하는 대가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비록 1000원이라는 적은 돈을 지출하였다 하더라도 900원 가치의 대가밖에 못얻었다고 생각하면 불만이 생기게 된다. 

 

법률서비스는 수요자 중심으로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법률서비스의 수요, 공급 체계는 수요자인 국민 보다는 공급자인 법률전문가들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법률서비스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 등 전문가들이 관여하는 모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심화된다. 국민들은 전문가들이 윤리와 양심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거나 약국에 가서 약을 사먹을 때, 의사와 약사들을 신뢰할 수밖에  없고 일일이 그 주사나 약이 나에게 꼭 필요한가를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실생활에서 보면 이들이 반드시 양심적이 아닌 경우들을 보게된다. 예를 들어 감기약을 사러 약국에 가면 약사가 조제하여 줄 것인가를 물어보거나 은근히 권유하는 경우를 누구나 당했을 것이다. 진통제의 정확한 약명을 대지 않고 막연히 진통제를 달라고 하는 경우 대체로 우리가 흔히 이름을 듣는 진통제를 살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진통제가 아니라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의 진통제를 주는 경우도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약사들이 이런 행위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환자의 신뢰 보다는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이것 보다 더 심한 일들이 법률서비스 분야에서는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전문가집단의 독재화는 없어야

 

과거 우리 사회는 독재정권의 권한남용으로 신음하였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전국민들이 노력하였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이러한 독재정권들이 생겨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래 사회에서 독재가 문제된다면 그것은 전문가집단의 독재이다. 군사독재가 힘을 그 수단으로 하였다면 전문가집단의 독재는 그들의 전문지식을 그 수단으로  한다. 따라서 전문가집단의 독재는  군사독재 보다 훨씬 교묘하고 적발하기 힘들고 또 고치기도 힘들다. 또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한다는 책임전가의 논리 때문에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전문가들이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게 된다.
현대 사회는 전문가에 의존하는 사회이다. 사회가 건전하고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양심적으로 자신들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전문가의 불로소득이란 곧 국민들의 피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고시열풍이 이러한 독재를 할 수 있는 전문가집단에 속하려는 노력이 아닌지 반성해야 될 때가 왔다. 또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미래 사회에서는 이런 사고나 관행이 통할 수 없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도 자신이 노력과 실력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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