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7) / 미국 소송과 데포지션
상태바
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7) / 미국 소송과 데포지션
  • 박준연
  • 승인 2019.03.29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1. 미국 소송 고유의 제도, 데포지션이란?

데포지션(deposition)이 우리말로 증언 조서, 선서 증언, 증언 녹취 등으로 알려져 있는 이유는, 재판 이외의 절차에서 증인의 질문을 하여 증언을 청취하는 과정을 일컫기 때문이다. 이 증언은 사실만을 진술하겠다는 선서 (oath)를 전제로 한다. 청취 과정은 속기록(transcript) 형식으로 기록하고, 이와 별도로 비디오나 오디오 기록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장소는 소송 당사자 대리 로펌의 회의실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데포지션은 미국 소송의 증거 개시 절차 (디스커버리)의 일환으로, 서면 질문(interrogatory)이나 문서 제출(document production)과 함께 소송 전에 사실 관계를 조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특히, 판사의 개입이 없는데도 증인과 소송 당사자 변호사만 참여하여 증인이 선서 후 증언하도록 하는 데포지션은 강력하고 효과적인 디스커버리 절차라고 할 수 있다.

2. 데포지션 진술의 활용

데포지션에서 취득한 진술은 재판이 진행되면 재판 증언과 비교하여 일관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또 해당 증인이 재판에서 증언할 수 없게 되는 경우, 재판의 증거로서 채택될 수 있다. 많은 민사 소송이 재판 전에 화해로 종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데포지션의 진술은 화해 조건 교섭의 수단으로서도 중요하게 활용된다고 할 수 있다.

3. 데포지션 운용 규칙

소송이 진행되는 관할권 지역의 민사 소송 절차, 증거법, 관할 판사 개인의 규칙, 재판소 규칙, 관련 판례 등이 데포지션 진행에 적용된다. 각 주의 관련 규칙은 자주 개정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최신 규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개정의 근저에는, 미국 소송에서 데포지션을 비롯한 디스커버리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이런 시간과 비용을 가급적이면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고려가 있다.

연방 민사 소송 규칙(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은 디스커버리의 절차와 기한 등을 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소송 당사자들의 합의(stipulation)에 따라, 재판소가 정한 재판 일정(scheduling order)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한, 데포지션 관련 사항을 비롯한 디스커버리 일정과 구체적 사항을 합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

4. 데포지션 요청

소송 당사자의 증인을 데포지션에 요청하는 경우, 데포지션 통지(notification of deposition)를 발송한다. 데포지션 통지에는 데포지션 일시와 필요 시간, 질문 사항 등을 기입한다. 한편, 소송 당사자와 무관한 제3자를 증인으로 데포지션에 소환하는 경우, 소환장(subpoena)을 발급받을 필요가 있다.

5. 법인에 대한 데포지션

연방 민사 소송 규칙 30조 (b)(6)항은 법인을 대상으로 한 데포지션을 실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제공한다. 법인에 대해 데포지션을 실시하더라도 법인은 법인에 속하는 증인 개인을 통해서 밖에 답변을 제공할 수 없다. 하지만, 데포지션을 요청하는 소송 당사자는 법인을 대표하여 데포지션에 출석, 답변할 개인을 지정하지 않고 데포지션의 질문 내용을 설명함으로써 해당 법인이 그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개인이 데포지션에 출석하여 답변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수 있다. 또한 개인 자격으로 데포지션에 출석하는 증인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항(personal knowledge)에 근거하여 답변할 의무 이상의 부담이 없는 반면, 법인을 대표하여 데포지션에 출석하는 증인에 대해서는 해당 법인이 관련 내용을 합리적으로 조사하여 법인 대표 증인이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킬(educate) 의무가 있다.

6. 데포지션 준비

데포지션을 하는(taking a deposition) 측에서는 해당 데포지션을 통해 소송 전략상 어떠한 목적을 성취할지 먼저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 계획에 따라, 질문의 주제, 세부적인 질문, 질문시 제시할 문서 등을 결정하게 된다. 문서는 증인측 소송 당사자가 제출한 문서뿐 아니라 데포지션을 진행하는 소송 당사자나 제3자가 제출한 문서, 그 외의 문서를 이용한다. 데포지션을 하는 측에서는 데포지션 기록을 위한 속기사(court reporter), 필요한 경우 통역사의 참여도 준비한다. 데포지션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특수 용어에 대해서는 미리 속기사와 통역에게 용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데포지션 기록 정정을 위한 수고를 덜 수 있다.

한편 데포지션을 방어하는(defending a deposition) 측에서는 데포지션 전에 증인을 데포지션에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 소송에 관여한 경험이 없는 증인이라면, 데포지션이라는 절차 자체가 생소하므로 그 설명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하고 증언하는 과정이며, 결과가 기록으로 남는 만큼, 성실하게 답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당사자주의(adversarial system)에 입각한 미국 소송 절차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것 이상의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주지시켜야 한다. 예컨대, 상대방 변호사가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질문을 계속한다면, 질문의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데포지션에서 증인은 질문 받은 내용 이상을 상대방에게 설명해줄 필요가 없다. 데포지션 일자가 가까워지면, 데포지션을 방어하는 변호사는 증인과 함께 “실전”과 비슷하게 연습을 한다. 즉, 대리하는 변호사가 상대방 변호사의 역할을 맡아 데포지션에서 제기될 만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7. 데포지션의 진행

형식적으로 데포지션은 재판의 심문과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즉 변호사가 증인에게 질문을 하면, 질문의 내용 및 형식에 따라 증인측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질문에 대해 이의(objection)를 제기한다. 재판 중의 심문과 데포지션의 가장 큰 차이는 데포지션 과정에 제기된 이의에 대해 검토할 판사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포지션 과정에서 제기된 이의는 기록으로 남겨, 추후에 해당 데포지션 기록을 증거로 이용(admission)할 지에 대해 다시 판단하게 된다. 이의가 제기 된 후, 증인은 질문에 답변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예외가 변호사-의뢰인 간의 비밀 유지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을 비롯한 특권(privilege)이 적용되는 내용에 대한 질문에 대해 변호사가 증인에게 답변을 하지 말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또 다른 정당한 이유 없이 순전히 증인을 괴롭히거나(harassing) 위협할(intimidating) 목적의 질문, 재판소 명령에 반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변호사가 증인에게 답변하지 않도록 지시할 수 있다. 증인 자신도 연방 수정헌법 제5조(Fifth Amendment)에 따른 자기 부죄 금지의 특권을 근거로 답변을 거부할 수 있다.

연방 민사소송 규칙에 따르면, 질문에 대한 이의는 이의의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소위 설명하는 이의(speaking objection)은 증인의 답변에 대해 변호사가 개입한다는 이유로 금지된다. 설명하는 이의가 아니라도, 증인은 변호사의 이의에서 답변의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된다. 예컨대, 질문이 애매하다는(vague) 이의에 대해서 증인은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다시 설명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질문이 복잡하다는(compound) 이의에 대해서는 하나의 질문에 포함된 여러 내용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요청할 수 있다. 연방이나 주 규칙에 따라, 이의 제기 시에는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는 이의 제기시 자세한 설명을 함으로써 증인에게 답변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이 있다.

데포지션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양측 변호사들은 분쟁을 기록으로 남긴 후 추후에 재판소의 결정을 요청하거나, 데포지션 중에 재판소에 연락을 하여 바로 재판소의 판단을 요청할 수 있다.

8. 데포지션 기록의 확인

증인은 데포지션 후 기록(transcript)을 확인하고 필요할 경우 수정을 한 후 서명해야 한다. 수정을 하는 경우, ‘에라타(errata)’라고 불리는 양식을 이용하여, 수정 내용과 함께 그 이유를 기재할 필요가 있다.

9. 맺으며

데포지션을 준비하다 보면, 클라이언트 측 증인의 대부분이 데포지션의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데포지션이라는 절차 자체에 대해서도 생소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다. 미국의 특수한 제도이고, 미국 드라마에서조차 현실의 데포지션과는 달리 변호사가 규칙에 반하여 장황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런 만큼, 데포지션이 생소한 증인도 충분히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로벌 비즈니스, 특히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기업이라면 법무 담당 부서는 물론이고 사업 부문에서도 데포지션을 비롯한 미국 소송 절차에 휘말릴 가능성을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park@lw.com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