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20 20:31 (금)
신희섭의 정치학-관광지 태국과 정치 격전지 태국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관광지 태국과 정치 격전지 태국
  • 신희섭
  • 승인 2019.03.29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태국의 카오 락(Khao Lak)에 다녀 온 적이 있다. 푸켓 공항에서 한 시간 걸리는 시골마을. 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영장을 가진 세계적인 호텔들과 리조트들이 곳곳에 있는 휴양지.

그런데 이질적인 장면 하나. 대나무 뗏목 투어를 하는 개울가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으리으리한 호텔 수영장과 개울의 대비. 그때 딸아이들이 물어보았다. 왜 저 아저씨들은 여자 친구랑 워터파크를 안가고 여기서 노느냐고.

그렇다. 현재 태국과 한국은 차이가 나는 국가가 되었다. 한국에서 태국은 주로 관광지로 유명하다. 방콕, 파타야, 푸켓이 과거형이면 치앙마이와 크레비(krabi)나 카오 락(Khao Lak)은 현재형이다. 2017년에만 3,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태국을 찾았다. 그중 한국인관광객도 146만 명(2016년 기준)이나 된다. 태국은 관광지로 좋다. 한국에서 가깝고, 따뜻하고, 물가 저렴하고, 이국적이고.

태국이 관광지로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유일의 '군부지배 국가(junta regime)'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태국은 정치학교과서 그 자체이다. 가장 훌륭한 롤 모델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문제들 거의 대부분을 태국정치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지 태국의 국민들은 대체로 순하고 착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사는 이 국가는 어쩌다 정치학의 표본국가가 된 것일까!

현재 태국정치는 우리에게 정치학교과서에 실린 ‘제도’와 ‘권력관계’와 ‘민주주의 인식’이 현실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구체적으로 보자.

2019년 3월 24일. 태국에서 총선이 있었다. 2014년 5월 군부가 쿠데타-1932년 입헌군주제 개편이후 19번째 쿠데타였다-를 통해 권력을 잡은 후 5년 만에 치fms 선거다. 또한 2011년 민주적 선거이후 8년 만의 선거였다. 현재까지의 개표상황에 기초해 볼 때 이번 선거에서는 군부의 ‘팔랑쁘라차랏(Palang Pracharath)당’(태국어의 의미로는 ‘국민의 힘’)이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군부가 쿠데타가 아닌 “선거로” 다수당이 될 수 있게 된 것은 2017년 헌법 개정 때문이다. 태국 군부는 헌법 개정을 통해 의회 750석 중 상원 250석 전체 지명을 군부 몫으로 떼어두었다. 그리고 하원 500석 중 350석은 지역 선거로 150석은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하게 바꿨다. 또한 군부는 민주파의 대부인 탁신 전총리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지역투표의 당선 수에 반해서 비례 대표의석수를 배분하게 고쳤다.

그 결과는? 이번 선거에서 해외 망명중인 탁신(전총리)을 지지하는 정당인 ‘푸어타이(Pheu Thai)당’(태국 명 ‘태국을 위하여’)은 지역에서 135석만을 얻었을 뿐이다. 117석을 얻은 군부정당보다는 많지만 의회 다수당은 못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탁신을 지지하는 푸어타이당이 742만 표를 얻어 1위인 군부정당의 793만 표에 뒤진다는 점이다. 즉 더 많은 유권자가 민주적 선거에서 군부정당을 지지한 것이다. 물론 2014년 쿠데타 이후 권력을 잡고 있는 쁘라윳 찬-오차 총리의 군부정당은 750석 중 375석을 채우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군소정당과 연립하여 그는 ‘민주주의 옷’을 입은 수상이 될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첫째, 그럼 군부는 어떻게 헌법을 고쳐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 수 있었을까? 둘째,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민주주의의 제도 붕괴에도 불구하고 태국 시민들은 왜 저항하지 않을까?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은 ‘권력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현 태국정치는 국왕-군부-경제엘리트 층의 지배연합과 탁신-민주주의 지지자-농민과 노동자의 저항연합으로 나뉜다. 이 대립구조에서 중심축이 국왕이다. 그간 수많은 쿠데타와 빈번한 민주화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국왕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국왕은 태국에서 ‘쿠암뻰타이(khwampenthai : 타이적인 것)’를 대표한다. 영토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인도차이나 반도란 공간과 근대화란 시간에서 태국만의 정체성 구성에 있어서 국왕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2016년 10월 서거한 푸미폰 아둔얏데 국왕(라마 9세)은 70년간 재위하면서 태국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국왕은 국가이익 뿐 아니라 왕실의 이익을 고려하면서 군부와 민주파 사이를 오갔다. 그는 민주주의 혁명시기 군부지도자들에게 국외로 나갈 것을 조언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 쿠데타시기 쿠데타를 추인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왕-추밀원(국왕을 보완하는 기구)-군부’가 보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경제엘리트들과 이익을 공유했다. 군부가 푸미폰 국왕서거 후인 2017년 헌법 개정을 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런 거대 연합에 대해 탁신 전총리는 포퓰리즘을 무기로 인구가 많은 북부에서 농민,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었다. 2001년 총리선출 이후 그는 새로운 정치를 폈다. 경찰공무원에서 사업가로 변신에 성공한 탁신은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해 가난한 태국인들에게 30불 의료보험제, 농업정책 개편, 최저임금인상 등의 민중주의 정책을 사용하였다. 이에 사회하층부는 절대적인 지지 세력이 되었다. 2001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탁신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특히 2006년 군사 쿠데타로 총리자리를 빼앗기고 망명생활에 들어간 뒤의 선거에서 조차 그를 추종하는 이들에 의해 승리해왔다.

당시 투표결과의 의미는 명확하다. 지니계수 0.536(1992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 불평등이 높은 태국에서 하나의 대안세력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를 꾀한 탁신 등장 이후 태국정치는 ‘친탁신 vs. 반탁신'으로 정치투쟁에 돌입했다. ‘탁신과 민중주의 개혁연대 vs. 군부와 국왕의 기득권 거부연대’의 대립.

태국은 2개로 나뉜다고 한다. 방콕과 태국으로. 방콕 중심의 공업지대와 나머지 지역이 있는 것이다. 화교자본과 일본 기업들이 지배한 태국경제구조에서 전체 인구 6900만 명의 중 80%가 넘는 타이족은 대체로 가난하다. 이렇게 구분된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투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시민들은 왜 지금도 군부를 지지하는가? 이것은 정치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시민들의 인식과도 관련된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3차례 진행된 아시안 바로미터 서베이(ABS)에 따르면 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선거와 정당이란 ‘제도’보다는 자유와 평등 같은 ‘추상적 가치’로 인식한다. 민주주의에서 ‘빈부격차축소’와 ‘부정부패가 없는 정부’라는 가치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보다 더 선호한다. 또한 민주주의에서 ‘정부의 공공서비스 제공’을 중시한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태국인들이 민간 정치인이나 민간 정당보다 군부와 국왕에 대한 신뢰가 높게 나오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들에게는 현실적인 경제문제 해결이 정치투쟁보다 중요하다. 최근 민주주의를 ‘결과’로 이해하는 이들에게 “민주주의가 가장 좋은 정부형태”라는 확신도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 태국 상층부는 전근대의 상징인 ‘국왕’과 근대의 상징인 ‘군부’ 그리고 새로운 현대를 원하는 ‘민간’이 권력투쟁중이다. 그런데 그 기저에는 지나친 빈부격차로 인한 체념과 능력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이 자리 잡고 있다. 상층부의 기약 없는 권력투쟁과 하층부의 무기력이 동시에 진행 중인 것이다.

나는 카오 락에서 1970년대 가난했던 한국을 보았다. 화려한 리조트 옆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던 태국 젊은이들이 떠오른다. 순박하게 여자 친구를 개울로 불러내는 태국 젊은이들에게 미래는 어떻게 그려질까!

각주)--------------------------------------
 3월 24일 치fms 태국의 선거결과는 부정선거의 의혹이 있어서 공식적인 최종 결과는 5월이 되어야 발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글을 쓰는 현재 시점(월 28일)까지 나온 94%정도 개표 율을 보인 선거결과의 정보만을 토대로 분석한 것이라 세부적인 의석수나 득표수는 바뀔 수 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