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합, ‘여순사건 사형 피고인’에 재심사유 최초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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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합, ‘여순사건 사형 피고인’에 재심사유 최초 인정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9.03.2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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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진술 등으로 군경의 무차별적 체포·감금 인정
“판결서 미작성·멸실 등의 사정 있어도 재심 대상”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여순사건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돼 사망한 피고인들에 대해 최초로 재심사유를 인정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졌다.

피고인들은 1948년 11월 14일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죄, 국권문란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확정돼 사형이 집행됐다. 피고인의 유족들은 피고인들을 연행한 경찰 등이 구속영장 없이 불법 체포·감금한 점이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등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결에 대해 재심을 개시할 것을 청구했다.

1심에 이어 원심도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단, 재심개시결정의 했지만 검사가 재심사유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음을 주장하며 재항고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가 규정하고 있는 재심사유로서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피고인들을 불법 체포·감금했다’고 인정한 원심의 사실인정이 적법한지 여부와 재심대상판결의 존재 여부다.

대법원은 먼저 재심사유의 사실인정과 관련해 “사실인정의 전제로서 하는 증거의 취사선택과 증거의 증명력은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하고 형사재판에서 심증형성은 반드시 직접 증거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간접증거로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항고이유 주장은 원심의 사실인정이 잘못돼다는 내용으로 실질적으로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하는 원심의 증거 선택과 증명력에 관한 판단을 다투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법원은 “기록에 따르면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들에 대한 체포·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고 피고인들의 연행 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한다”며 “피고인들을 체포·감금한 군경이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 체포·감금했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판결의 존재 여부에 관해서는 “판결서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판결서가 판결 그 자체인 것은 아니므로 판결서가 작성되지 않았거나 작성된 후 멸실됐더라도 판결이 선고된 이상 판결은 성립한 것이고 ‘유죄 확정판결’인 이상 재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돼 집행된 사실은 판결의 내용과 피고인들의 이름 등이 기재된 판결집행명령서와 당시의 언론보도 내용으로 알 수 있는 점, 판결서 원본은 국가가 작성하고 보존할 책임이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대법원은 “여순사건 당시 선포된 계엄령과 그 계엄령 선포에 따라 설치된 군법회의에 대해 위헌·위법 논란이 있으나 국가공권력에 의한 사법작용으로서 군법회의를 통해 판결이 선고된 이상 판결이 당연무효가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판결의 성립은 인정된다”며 아울러 “재심을 통한 구제를 긍정하는 것이 재심제도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해 조희대, 이동원 대법관과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재심사유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거나 판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기환송 의견을 냈다.

조희대, 이동원 대법관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재심사유로 규정하되 그 증명방법을 확정판결만으로 제한했고 제422조에 정한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증명’도 그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증명돼야 한다”며 “이 사건은 위와 같은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이 사건 재판이 실제로 있었는지, 피고인들이 사형판결의 집행으로 사망한 것이 사실인지 의문”이라며 “설령 재판이 있었다고 보더라도 그 절차적 하자가 매우 중대해 규범적 의미에서는 재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나아가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현재 그 공소사실을 알 수 없는 이상 형사재판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재심도 불가능하다. 공소사실을 알 수 없다면 재심사유의 존부도 판단할 수 없고 재심을 허용하더라도 충분한 구제가 될지 의문이므로 재심은 타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여순사건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판결이 확정돼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들에 대해 재심개시결정을 확정한 최조의 사건”이라고 의의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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