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16 19:38 (월)
신희섭의 정치학-연동형 비례대표제 : 재미없고 유용하지도 않은 논쟁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연동형 비례대표제 : 재미없고 유용하지도 않은 논쟁
  • 신희섭
  • 승인 2019.03.22 1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독일 기본법 제1조.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두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는 이렇게 다르다.

모든 정치 제도는 가치를 담고 있다. 제도는 중립적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제도는 제도 창설자들의 철학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대통령제도는 ‘자유’확보 목적아래 권력분립원리에 초점을 두고 미국에서 발명되었다. 내각제도는 영국에서 ‘의회주권’사상아래 만들어졌다.

왜 이렇게 거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요즘 가장 뜨거운 연동형비례대표제 때문이다.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개편논의가 한창이다.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연동형비례대표제도는 독일식 혼합형선거제도의 비례대표제 운영방식이다. 그런데 논의가 진행되면서 독일방식의 비례대표계산법(정당별 득표율 × 의회 전체의석수)에 더해 권역별비례대표제(정당별 득표율 × 각 권역별 의석수)와 일본의 석패율제도(지역선거에서 가장 적은 표차이로 패배한 후보를 비례의석으로 구제해 주는 방안)까지 합쳐졌다.

지금 논의되는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유머 같다. 그것도 복잡하고 재미없고 유용하지도 않은 유머. 그런데 제안한 사람들은 너무나 진지해서 이 유머를 그저 유머라고 치부할 수 없는 유머. 비례대표 75석을 1/2로 나누겠다는 발상을 보라.

무엇이 이 복잡한 제도조합을 유머수준으로 만드는가? 두 가지가 문제다. 첫 번째는 제도가 추구하는 ‘가치’가 불명확하다. 두 번째는 제도들 간의 ‘조응성’이 떨어진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모든 제도는 제도가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 선거제도이론을 빌리면 당선자결정규칙이 있고 대표형성원칙이 있다. 정확히 대표형성원칙(가치)이 먼저고 당선자결정규칙(제도)이 다음이다.

비례대표제도의 대표형성원칙은 ‘대표성’에 있다. 이 제도는 유권자들의 의사-가치 체계와 사회갈등구조-를 의회에 최대한 반영하고자 한다. 소수의 의사들도 최대한 의석수로 전환한다. 다수대표제도가 사회에서 누가 다수인지를 정해 ‘힘의 집중’을 추구하는 것과 대비된다.

제도 기원상 비례대표제도는 1885년 덴마크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원래 이 제도는 유럽의 사회주의정당과 같은 소수정당들이 주도한 제도이다. 또한 이 제도는 이론적으로 ‘거울의 원리’에 기초한다. 사회구성원들의 의지를 거울처럼 국가에 그대로 투영한다는 것이다. 의회는 사회갈등의 축소판인 것이다.

사회갈등의 대변. 이 ‘가치’가 다수제도와 가장 구분되는 지점이다. 다수제도는 특정한 기준을 충족한 후보자와 정당만이 의석을 얻고 나머지 지지자들의 표는 사표가 된다. 모든 것을 가지거나 아무 것도 못 가지거나(all or nothing)의 승자독식구조다. 반면에 비례대표제도는 대체로 정당이 얻는 득표비율이 의석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소수지지 정당도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대표형성원리라는 사회구성원들의 철학이 제도를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정치학자 레이파트(Arend Lijphart)는 국가들의 제도 선택이전에 사회균열(Social cleavage :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회 갈등)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유럽에서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사회갈등이 전개되어 언어, 종교, 혈통과 같은 정체성의 대립이 강한 국가들이 많다. 이들 국가들은 정치제도를 선택할 때 타협을 중시하는 합의제(consensus rule)에 기초하여 정부형태, 정당체계, 선거제도들을 조합했다. 반면에 영국처럼 자본주의가 빨리 발전하면서 주로 계급대립만 있고 언어, 종교, 혈족이 유사한 사회에서는 다수결주의를 채택했다. 유럽 국가들에 대한 그의 연구는 사회적 갈등이 선행하고 선출제도들이 선택되었다고 말한다. 즉 사회적 갈등(가치충돌)이 제도선택이전이다.

이런 유럽역사에 기초한 논리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왜 유럽처럼 사회균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제도들을 선택했냐?”고 반문하기 어렵다. 1948년 만들어진 신생국가 한국은 정치제도들의 원류인 유럽과는 역사적 유산이 다르다. 임시방편으로 그때그때 미국식 제도와 유럽식 제도들을 수입한 한국에서 정치제도들은 충돌해왔다. 기본적인 국정철학이 부족한 상태에서 모순된 가치를 가진 제도들을 조합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도 간의 조응성이라는 두 번째 기준이 문제가 된다. 이번 선거제도 개편방안은 기본적으로 소수정당의 의석수를 보장해줌으로서 현재 다당체제를 유지 또는 강화한다. 47석에서 75석으로 비례 의석수를 늘리고, 75석 중 1/2을 전국선거구로 뽑고 나머지 1/2의 의석은 6개의 권역(거대지역 구분)별로 뽑겠다는 것이다. 현재 안으로 선거결과를 예측하면 바른 미래당과 평화민주당과 정의당의 의석수는 증대한다. 이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조응하지 않는다. 비례대표제도는 연립정부가 가능한 유럽의 의원내각제도와 조응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제도들의 구성논리를 보면 결과는 더 명확해진다. 한국 대통령제는 ‘인물’중심으로 선출한다. 한국 정당체계는 ‘인물’중심과 ‘정당’중심의 하이브리드형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인물중심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정당체계에서 ‘정당’의 영향력을 강화한다. 인물중심 대통령과 정당중심 의회간의 교착 강화라는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대통령제 + 다당제강화 = 정책집행가능성하락’ 예상되는 공식이다. 이 비판에 대해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첫 번째 반론, 다당제는 비례성을 높인다. 두 번째 반론, 대통령제와 다당제에서도 대통령리더십이나 정부-의회 간 합의는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300석의 의석구조를 그대로 두고 비례 대표를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린다고 정당이 사회균열을 더 반영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동안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사회균열의 반영보다는 정당의 영향력 강화 장치로 사용되어왔다. 게다가 한국정치는 합의와 타협문화가 약하다. 지역주의와 이념정치의 어색한 조합으로 대통령은 의회를 설득하기 어렵다. 의회도 토론과 숙의와 타협을 이루지 못 해왔다.

제도개혁은 필요하다. 한 번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번 제도 개혁방향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정서상 국회 의석수를 늘릴 수 없다는 가정 하에서 논의되는 현 제도개혁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명확하다. 소수정당의 의석수 보장. 석패율 제도를 통한 한명이라도 아쉬운 유력 정치인 구제책. 권역별 비례대표를 통한 지역주의의 상징적 완화. 이번 제도개혁이 추구하는 가치들이다. 완벽한 개편이 어려우니 차선이라도 선택하겠다는 의원들의 절박한 마음이야 이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조금이라도 반영하는지 그리고 제도간의 조응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더 숙의해야 한다.

제도는 가치를 반영한다.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현재 제도개편 논의는 지양하기 바란다. 의석수 확대가 불가능하다면 이번 기회에 한국 사회가 대표할 가치를 한 번 더 숙고하기 바란다. 그저 자기 의석수 챙기기가 아니어야 시민들의 지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