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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트럼프 손자(孫子)를 불러내다 : 하노이의 협상전략과 청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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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트럼프 손자(孫子)를 불러내다 : 하노이의 협상전략과 청중들
  • 신희섭
  • 승인 2019.03.07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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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2400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손자(孫子 : 실제 이름 손무 孫武)를 불러냈다. 그것도 손자병법을 이용해 미국에게 승리를 이끈 베트남 하노이에서. 그것도 북한을 상대로. 그렇다. 북한전략이 손자병법을 활용했던 마오쩌둥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손자병법 제6편 허실편(虛實篇). “자신의 장점으로 상대의 허점을 쳐라.” 트럼프 대통령은 초강대국이란 배경과 수많은 협상경험이라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국제제재로 경제난이 심각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의 허점을 쳤다.

2019년 2월 28일.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이들의 예측을 깨고 노딜(no deal)을 선택했다. 스몰딜(small deal)과 빅딜(big deal)사이를 예측하던 전략가들은 황망하게 되었다. 막판에 매파인 존 볼턴 안보보좌관을 활용해 북한과의 2차 정상회담을 엎어버린 것이다. 협상 당사자인 북한도 중개자인 한국도 그리고 협상장을 제공한 베트남도 모두 -밝게 웃으면서 합의를 포기한- 트럼프에게 일격을 당했다.

평소 가장 즐겨보는 책이 손자병법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행동을 통해서 “누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회담 결렬 30분 전까지도 회담의 결과를 낙관한 한국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복기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대처를 해야 할까?

아무래도 2차 회담 파국의 최대 수혜자는 트럼프대통령 본인일 듯하다. 그가 누구를 향해서 어떤 메시지를 날려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인 지부터 복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트럼프대통령의 첫 번째 ‘청중(audience)’은 전 세계 지도자들이다. 그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소를 지으며 판을 깼다. 예측불허 이미지의 강화. 이로서 향후 트럼프를 상대해야하는 국가지도자들에게 협상은 더욱 골치 덩어리가 될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결렬 뒤인 3월 4일 인도와 터키에 제공하는 특혜관세를 폐지하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북한에게 보낸 것처럼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국익을 위주로 국정운영을 할 것이라는 일관된 신호를 송출했다.

두 번째 청중은 미국 국민들과 민주당이다. 트럼프대통령은 어중간한 합의문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여러 스캔들로 아비규환인 국내정치의 제단에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또한 ‘전략적 인내’로 한반도 문제를 방치한 민주당에게도 한 방 먹였다. 북한처럼 다루기 힘든 상대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매우 의기양양하게.

국내여론이라는 '청중'말고도 상대파트너인 북한에게도 어마어마한 외교적 부담을 던졌다. 우선 북한 지도부가 생각하는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나게 만들었다. 게다가 북한의 엘리트층에게는 최고 지도자가 협상을 통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도 각인시켜주었다.

내년 대선까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손자병법의 가르침대로. 실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대통령과의 단독회담 전에 인터뷰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한테 시간이 귀중한데 편안한 시간 주시면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최고 지도자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시인한 북한에 대해 바로 그 지점을 공격한 것이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으니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미국 입장에서 오래되고 불편한 문제인 북한 핵 문제에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정부와 한국인 청중들에게도 공을 넘겼다. 판은 깨졌지만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중개자역할을 하기 바란다”는 말과 함께. 북한과 미국 사이의 중재자가 얼마나 속이 탈지를 뻔히 알면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중국의 청중들에게도 중대한 신호를 보냈다. 미국입장에서 북한 핵카드는 버릴 수 있는 카드이며 그 한계선이 명확하다는. 그러니 미국과 중국의 통상문제에 좀 더 집중해야 좋을 것이라고.

현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구사한 협상전략의 규범적 타당성은 부차적인 문제다. 핵무기와 핵물질이 걸린 국가이익 앞에서는 정치적 현실이 규범을 뛰어넘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분히 현실주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즉 이 행동과 전략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이슈를 여러 개로 나누고 시간을 끌면서 협상을 파국으로 끌고 가는 전술은 원래 북한의 전유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썼던 방식으로 북한을 상대했다. 그가 존 볼턴 보좌관을 마지막에 배석시켜 판을 깬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은 급하지 않으니 북한이 자신의 요구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 상황을 뻔히 꾀고 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국제제재들이 실제 2017년부터 그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2017년 북한 GDP는 -3.5%(한국은행통계)로 하락했다. 1995년 전후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던 시기 다음으로 나쁜 하락세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2018년 수출은 2017년의 1/10 수준으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2017년 총 17억 불 수준이었던 수출 규모로 볼 때 2억불이 안 되는 정도로 수출이 격감한 것으로 보인다.

냉철한 이익을 중심으로 살아온 사업가출신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상황이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북한이 굽히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제재는 미국 혼자 푼다고 풀리지 않는다. 독일과 프랑스처럼 북한 핵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다른 국가들을 설득하려면 명분도 있어야 한다. 그러니 북한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지도자 절대사상을 가진 북한이 잘 못했다고 먼저 숙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대통령은 한국이 중간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미국의 협상 기준이 공개된 만큼 북미간의 합의는 쉽지 않게 되었다.

냉철한 국가이익 차원에서나 인도주의적 입장이나 민족주의적 입장에서도 북한 문제의 장기화는 대한민국에게 커다란 부담이다. 여기서 미국에게 북한 핵문제의 기준을 낮추어달라고 설득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판이 어디로 넘어왔는지를 아는 손자병법의 달인이다. 그러니 관건은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는 것과 그 이후의 보상을 설득하는 방법밖에는 없어 보인다. 이럴 때 중국을 활용해서 북한을 설득해가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로 깜짝 놀라긴 시진핑도 마찬가질 테니. 게다가 북한카드 보다 중요한 미국과의 통상협정을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중개자. 그 여정의 어려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정부의 새로운 상상력과 외교적 돌파력이 필요한 때이다. 이 어려운 시점에 문재인 정부가 역사적인 전환점을 만들기를 대한민국 국제정치학도로서 응원한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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