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그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검사는 공소장을 들고서 그의 죄명 및 적용법조와 함께 세 개나 되는 긴 공소사실을 요령 있게 읽어치우듯이 낭독했습니다.
“피고인, 공소사실을 인정하나요.”
“네, 인정합니다.” 판사의 질문에 그 남자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변호인, 공소사실이 모두 세 개인데, 피고인은 각 공소사실에 대해서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인가요.”
“네,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이 맞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변호인도 짧게 대답을 마쳤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그 남자는 죄스러워 하는 얼굴을 떨구고 있었습니다.
검사가 미리 서면으로 제출해 놓은 ‘양형기준 적용 및 구형에 관한 의견’을 들여다보니, 일반양형인자 중 감경적 행위자요소인 ‘진지한 반성’에 체크를 해 놓았더군요.
‘아, 검사가 보기에도, 수사과정에서부터도 진짜 반성하는 것으로 보였구나.’
하지만 검사가 작성한 양형의견서에는 집행유예보다는 실형 쪽으로 결론을 내고 있었고, 그 이유로는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범행한 경우이므로 집행유예 부정사유가 있다는 점을 들고 있었습니다.
2.
폭행 및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협박).
이 무시무시하고 긴 죄명이 당시 피고인이 기소된 범죄였습니다.
그 남자는 재혼한 처와 한 10년쯤 살다가 별거하게 되었는데, 별거한지 한 달 반쯤 지난 어느 날 처가 일하는 식당으로 찾아갑니다.
거기서 처의 동료 종업원인 A씨의 뺨을 1대 때려 폭행하고, 주방으로 피하는 A씨를 따라가 옷 속에 미리 넣어 온 칼을 꺼내 들고 “찔러 죽인다”고 협박하고, 처에게도 칼을 겨누며 “죽여 버린다. 사시미로 떠 버린다”고 협박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A씨에 대한 폭행죄와 A씨 및 처에 대한 흉기 휴대 협박으로써 2개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협박)죄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놀라셨죠.
네, 깊이 뉘우치고 있던 그 남자는, 정말 깊이 뉘우치고 또 뉘우쳐야 할 험한 범죄를 저질렀던 거지요. 그것도 처와 그 동료, 두 명의 여성에게요.
반성한다고 해도 절대로, 절대로 봐주면 안 되고 꼭 징역을 보내야 한다구요?
네, 그런 생각이 바로 드실 겁니다. 처벌도 처벌이지만 그런 위험한 행동을 또 하지 못하도록 격리해 두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들게 됩니다.
과연 그 남자는 어떤 사람이고 왜 저런 흉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요.
왜 칼을 가슴에 품고 가서 10년을 함께 살았던 처를 향해 들었을까요.
3.
그 남자는 50대였는데 그때까지 위 범죄와 동종 범죄전력이 없는 것은 물론, 이종 범죄전력도 없이 살아오긴 했습니다. 그의 처도 그에 대해 경찰에서 말하기를, 전에 폭력을 쓴 일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고요.
그 남자는 전처와 사이에 자식을 전처가 키우기로 하고 이혼한 후, 지금의 처를 만나 재혼해 10년을 살았습니다. 재혼한 처와 사이에 자녀는 없었는데, 처에게도 전남편과 사이의 자식이 있어 그 자식을 데리고 함께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처의 다른 가족과도 함께 살게 되어 식구가 늘었지요.
그렇게 지내던 가운데 사소한 일들이 쌓여 그 남자는 그 가족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따돌려진다고 오해를 했달까요. 그것을 술 마시고 처에게 폭언하는 것으로 풀었던 것 같습니다. 처의 표현으로는 ‘술을 자주 먹는 것도 아닌데 뭔가 꽁해서 술을 한번 입에 대면 연거푸 5일은 마셔 대고 폭언을 하면서 쌓여 있던 것을 표출’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또 그 남자는 처에게 “다 한통속이다”면서 화풀이를 하고, 처는 “나도 중간에서 힘들다, 숨 좀 쉬고 살자”면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와 그 가족들에게 “내 집에서 다 나가라”고 하여 다 이사 나가고 혼자 남게 되었지요.
그 남자의 표현으로는 ‘처가 가출’하고, 처의 표현으로는 ‘집에서 내쫓긴’채로 그들은 약 한 달 반을 지내게 됩니다. 그가 몇 번 처에게 전화를 했지만 처는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4.
그 사건이 있던 날, 그 남자는 집에 쌓여 있던 처의 우편물을 들고 처가 일하던 식당으로 간 겁니다.
그리고 처를 불러서 했던 말은, “깨끗이 정리하자”였습니다. 그러니 처는 “아이고 고맙다, 그러자”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지요.
그 남자는 가지 않고 홀에 혼자 앉아서 안주도 없이 소주를 시켜서 마셨습니다. 바로 그 A씨가 걱정하면서 가져다 준 소주였습니다.
혼자서 술을 먹고 취기가 오르니 혼자서 궁시렁 궁시렁 하다가 드디어 A씨에게 욕을 하게 되었고, A씨가 그러지 말라고 하자, A씨의 뺨을 때리기에 이르렀습니다.
A씨는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을까요.
저는 어떻게 이런 내용들을 아느냐구요?
이 내용들은 모두 피고인의 진술, 피해자들의 진술, 즉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들과 공판에서 한 진술들, 그리고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그 밖에 조사된 증거와 자료들을 통해 재판에서 알게 되는 것들이에요.
이 내용들 중에 범죄사실, 즉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요건사실들이 있습니다만, 그 외에도 범죄의 경위, 동기라든가, 죄질이라든가, 피해의 정도라든가, 그리고 당사자의 나이나 건강상태나 가족, 직업, 경제적 상황 등등 양형을 정하는데 참작할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항들이 포함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수사단계부터 면밀하고 신중하게 조사되는 것이고 기소 후에 공판과정에서도 선고 직전까지 재판의 자료로 제출될 수 있는 것입니다. 피고인 자신이 스스로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으로서, ‘제가 분명히 잘못을 했고 무척 반성합니다, 다만 이만저만해서 그런 행위를 하게 된 것이니 불쌍히 보시고 참작해 주세요’와 같이 적어서 내기도 합니다. 반대로 피해자도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변명을 늘어놓지만, 원래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던가 또는 ‘이러이런 점을 보아 또 잘못을 저지를 사람이니 엄벌에 처해 달라’는 등을 적어서 내기도 하구요.
5.
아무튼 갑자기 뺨을 맞은 A씨는 주방으로 그 남자를 피해 도망갔습니다.
그 남자가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텐데, 주방으로 따라가면서 일이 커집니다. 그 남자는 웃옷 안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왔던 칼을 꺼내 듭니다. A씨에게 칼을 겨누고 찌를 듯이 하면서 “죽여 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칼은 처와 함께 살 때부터 집에 있었던 회칼세트 중의 하나로, 그 남자는 처를 찾아 가려고 집을 나설 때부터 그걸 꺼내서 옷 속에 품어가지고 나왔던 거죠.
그 모습을 본 처는 얼른 A씨에게 저리 가라고 하고서는 그 남자의 양 손을 잡고 막았습니다.
어떻게 칼을 든 남편을 처가 붙잡고 막을 수가 있었냐고요? 처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어떤 수술로 장애가 생겨서 몸이 불편한 상태인데 술도 취해서 스스로 몸을 잘 가누지 못하니 남편을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그 남자가 욕을 하면서 “놔라”고 하니, 처는 “그럼 손을 놓을 테니 칼을 놔라”고 하여 순순히 칼을 도로 상의 안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거기서 상황이 종료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남자는 가게를 걸어 나가려고 하다가 말고 다시 처를 돌아보고는 욕을 하면서 재차 칼을 꺼내 들고 “죽여 버린다, 사시미로 떠버린다”고 말함으로써 또 1개의 중한 범죄행위를 추가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는 A씨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체포가 되었습니다.
6.
여러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협박)죄의 법정형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벌금형이 아예 없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만 처하도록 정해져 있는 범죄였습니다. 제가 왜 과거형으로 말씀을 드리냐면 2015년도에 헌법재판소에서 이 조항이 위헌결정되면서 2016. 1. 6. 이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네, 이 사건은 그 이전에 제가 형사재판을 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쨌든 피고인은 당시 1년 이상의 유기징역, 즉 1년 이상 30년 이하의 유기징역형에 처하게 되어 있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협박)죄를 2개나 지어, 가중하면 1년 이상 50년 이하의 유기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데다, 추가로 1개의 폭행죄까지 얹어져 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남자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드시나요. 어떤 형이 적당하다고 보이시나요.
범죄전력은 없었지만 무거운 범죄를 저질렀고, 반성을 한다고는 하나 집에서부터 칼을 품고 갔던 행위이니 죄질이 경하다고 볼 수가 없지요. 피해자도 두 명이고요. 다친(상해 입은) 사람은 없지만, 칼을 들고 협박한 것은 매우 중한 행위인데다 분명 피해자들은 몸이 아닌 마음에 상당한 상처가 각인되었을 것이니 피해가 중하지 않다고 할 수가 없지요.
6.
안타까운 것은, 사실 이런 범죄가 매우 흔하고, 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너무 자주 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지금도 연일 신문이나 TV에서 접하는 흔한 사건입니다. 여자와 남자가 헤어지는 과정에서 어느 날 남자가 술을 먹고 여자에게 칼을 드는 일. 이게 너무나 흔하다는 것은 참 마음 아픈 일인 동시에 무척 화가 나는 일이기도 하지요.
나이가 어리나 많으나, 결혼을 했나 안했나, 또는 초혼인가 재혼인가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자주 벌어집니다. 여성들은 사귀던 남자, 동거하던 애인, 사실혼 남편, 결혼한 남편, 재혼 남편 등등으로부터 헤어지는 과정에서 크던 작던 폭력적인 대우를 당하고 그것이 형사사건화되어 언론에도 보도되는 일이 잦습니다.
그 남자는, 아니 그 피고인은 법정에서 제가 물었을 때, 그리고 변호인이 대변해 말하기는, 사실은 이혼을 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당에 찾아갔을 때도 이혼을 원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왜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고, 그 말대로 나간 처에게 칼을 품고 찾아가서는 “끝내자”고 하고, 그 말대로 “그러자”고 하는 처에게 칼을 꺼내 들게 된 것일까요.
그 남자에게 범죄전력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초범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참작사유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누구든지, 무슨 일이든지 ‘처음’이란 것이 있지 않나요. ‘처음’ 시작해 본 그 행위를 이제 다시 반복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과연 있을까요.
그 남자에게 적정한 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족한 것일까요.
우리는 그 남자, 그리고 그의 처인 그 여성에 대해, 저 비극적인 사건, 아니 그 남자의 흉한 범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 남자와 그 여자, 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우리 사회 모두에게 좋은 방향 말입니다. 왜냐하면 언제 또 그들의 주변에서 A씨와 같은 희생자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자, 벌써 이렇게 지면이 찼으니, 그 남자의 스토리를 쫓아가 보는 것은 다음 회로 이어서 계속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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