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 PSAT 전국모의고사 특별연재 1-<언어논리 킬러문항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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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 PSAT 전국모의고사 특별연재 1-<언어논리 킬러문항⑥>
  • 여성곤
  • 승인 2019.02.15 11: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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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곤 PNCS연구소장

2019년도 5급 공채 대비 법률저널 전국모의고사에서 언어논리 대표 감수를 맡고 있는 여성곤 선생입니다. 지난주 시행된 전국모의고사 언어논리 40문항 중 가장 정답률이 낮고, 복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문항에 한해 기고하고 있습니다. 이번 법률저널 제8회 전국모의고사와 관련해서는 20여페이지가 넘는 이의제기가 있어 세밀하게 답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만 그 중에서 특히 문 37(25%), 문 24(37%), 문 21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문항은 정답률 25%의 문 37입니다. 이의제기, 출제자의 답변, 검수자의 생각을 탑재합니다.

문 37. 다음 논쟁에 대한 평가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갑1 :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언제나 자기 생각만 하고 욕망에 지배당하기 때문에 때때로 남에게 상처를 준다. 한마디로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득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그냥 내버려 둔다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질 뿐이다. 사람에게 남을 돕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나, 인간의 선은 교육 등의 후천적인 노력인 인위(人爲)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다.

을1 : 사람이 길을 가다 우물에 빠진 아이를 발견했다면 못 본 척 할 수 없다.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못 본 척할 수 없는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일을 하려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물론 교육의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본래부터 인간에게 있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간을 교육하는 목적은 이러한 마음을 잘 길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노력해서 덕을 획득한 군자에게 사람들을 지도하고 교육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갑2 : 사람이 모두 선하다면 사회의 규칙인 ‘예’는 왜 있는 것인가? 인간에게 본래 선을 행하는 본성이 있다고 한다면 예 따위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 선인들이 만들어놓은 예의 존재는 인간이 교정과 노력으로 선을 실현해왔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예로써 사람들을 교화하는 예치주의가 사회의 이상이다.

을2 : 나는 사람들을 교정하는 것만이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자의 도덕적인 자태에 사람들이 감회를 받아 내면적으로 인을 발휘하는 덕치주의야말로 정치의 이상이다. 또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특정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왕도정치야말로 정치의 이상이다.

<보기>
ㄱ. 갑과 을은 모든 인간은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교육 등의 후천적인 노력이 없다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ㄴ. 갑과 을은 사람들이 학문을 닦거나 군자에 의한 지도를 받아서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길러낼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ㄷ. 갑은 인간이 사회의 규칙을 통해 선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을은 인간이 사회의 규칙 없이도 선을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① ㄱ
② ㄴ
③ ㄱ, ㄷ
④ ㄴ, ㄷ
⑤ ㄱ, ㄴ, ㄷ

[이의제기 내용]
1. 을의 주장은 결국 선천적으로 측은지심과 선한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사회의 규칙 없어도 선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2. 을2가 '교정하는 것만이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자의 도덕적 자태에 사람들이 감회를 받아 내면적으로 인을 발휘하는 덕치주의야말로 정치의 이상이다.'라고 하는데 감회를 받아 인을 발휘하는 것은 사회의 규칙 없이도 선을 실행하는 것이므로 ㄷ은 옳습니다.

3. 을은 을1에서 '태어날 때부터 좋은 일을 하려는 마음의 움직임'과 '본래부터 인간에게 있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음'을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의 규칙으로서 예에 의하지 않고도 충분히 선을 실현할 가능성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일을 하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나, 본래 인간에게 있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 각각이 사회의 규칙에 해당하지 않음 역시 명백해 보입니다.

4. 을은 본래부터 인간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규칙이랑 무관하게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회의 규칙 없이도 선을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왜 알 수 없어서 틀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규칙이 있든 없든 마음이 있고 군자의 도덕적 자태를 보고 감회를 받으면 할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왜 ㄷ이 알 수 없다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5. 을은 사회의 규칙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알 수 없다는 것이 해설인데, 을의 경우 본래부터 인간에게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당연히 사회의 규칙의 존재여부와 무관히 선을 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6. 을은 "본래부터 인간에게 있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보므로 갑과 달리 사회의 규칙 없이도 선을 행한다고 추론 가능한 것 아닌가요?

[출제자의 답변]

을은 인간에게 있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교육을 통해 이러한 마음을 잘 길러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의제기 하신 대로 사회의 규칙이 없다고 해도 을은 선을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는 듯하지만, 을1의 주장에 대해 갑2가 반박을 하며 ‘사회의 규칙’에 대해 언급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정확한 을의 의견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마음을 잘 길러내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언급하였고, 사회의 규칙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을이 생각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검수자의 생각]

제시문의 논쟁에 나타난 을1의 “물론 교육의 필요성은 있다.” “인간을 교육하는 목적은 이러한 마음을 잘 길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노력해서 덕을 획득한 군자에게 사람들을 지도하고 교육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와 을2의 “나는 사람들을 교정하는 것만이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등을 통해서 볼 때 을이 일방적으로 ‘사회의 규칙’이 필요 없다는 입장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출제자의 취지를 수긍하여 복수정답 처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풀 때, 을의 전반부에 제시된 “사람이 길을 가다 우물에 빠진 아이를 발견했다면 못 본 척 할 수 없다.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못 본 척할 수 없는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일을 하려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에 경도되어 빨리 ㄷ을 판단했다면 좋은 풀이습관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실제 기출문제와 비교하여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항들이 있음에 대해 지면을 통해 양해를 구합니다. 주지하시다시피 실제 기출문제는 대체로 논란을 피하는 출제를 하기 마련입니다. 수험의 관점으로는 다소 러프한 형태의 전국모의고사로 단련되는 과정을 통해 실제 기출에서의 깔끔함의 정도와 잘 구별하여 실전에서 잘 맞혀내시기만을 바랍니다.

다음 문항은 정답률 37%의 문 24입니다. 오답률이 높은 선지인 2번에 이의제기가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의제기, 출제자의 답변을 탑재합니다. (참고로, 검토단계에서 적지 않은 검토자들이 다소 악의적인 선지였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기출에서도 매회 40문 중 1~2문항이 이러한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겪어봄으로써 실제 시험장에서의 완급능력을 기르게 하기 위한 취지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쉽게 윤문하고 개선할 수 있지만, 그대로 출제하기도 하는 것임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문 24.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의 건축은 목조가구식구조가 주류를 이룬다. 이 구조는 벽체가 하중을 받는 구조와는 다르게 구조재가 하나의 선으로 인지됨으로써 그 조형의 기저는 선적(線的)인 구성을 이루고 있다. 또한 입면에서 창호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동일한 목조가구식구조의 동양 삼국 건축에 있어서도, 중국과 일본의 건축이 일반적으로 창호지를 창호의 바깥 면에 붙여 시각적으로 외적으로는 면적(面的)인 구성인 것과 반대로, 한국건축은 창호지를 안쪽에 바름으로써 방 바깥으로는 선적 구성이고 방 안에서는 면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또 창호 살 짜임새가 다양하여 입면구성에 많은 선적 변화를 이루게 됨으로써 더더욱 선적 구성을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한국건축의 선은 유연성을 갖는 것이 특성이다. 이 유연성은 지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의 지붕은 처마선과 용마루선이 유연한 곡선을 이룬다. 용마루를 만들 때 기와장이들은 양 끝단 사이에 새끼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가 두개의 잡은 점을 안쪽으로 조금 밀어주면 새끼줄의 무게에 의하여 형성되는, 중앙부가 쳐지는 자연스러운 곡선인 현수선을 형성하는데, 이 선을 따라 용마루를 구성한다. 이처럼 한국의 지붕선들은 전체가 현수선으로 이루어지지만, 중국 지붕의 처마선은 긴 수평선으로 이루어진 중앙부에 비해, 극히 짧은 끝단만이 극히 완만한 앙곡을 이루는 곡선이나, 용마루선은 전체가 직선이다. 그리고 일본 지붕의 처마선과 용마루선은 모두가 일반적으로 직선을 이루고 있어, 이들 중국과 일본의 지붕선들은 모두 한국 지붕선과 대조적이다.

선의 유연성은 구조재인 목재의 형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휘어진 나무를 휘어진 모습대로 대들보나 문지방으로 사용하고, 또 나무의 껍질을 벗기는 정도로만 손질하여, 자라면서 이룬 자연스러운 나무 모습 그대로 사용한 기둥들에서 볼 수 있다. 한편 처마의 서까래 배열에 있어서도 일본은 날카롭게 손질된 곧은 각재들을 정률적으로 배열하여 시각적으로 날카롭고 기계적인 맛을 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서까래들은 단면이 둥근 서까래를 사용하여 유연한 곡선을 이룸으로써 일본건축과는 달리 부드러운 맛을 주고 있는 것이다.

① 한국건축은 창호의 살짜임을 다양하게 변화시킨 것으로부터 유연성을 발견할 수 있다.
② 한국건축은 일본건축과 달리 목재의 손질을 최소화하여 자연스러운 선의 부드러움을 강조한다.
③ 목조가구식구조의 건축에서 곡선적인 구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한국 건축의 고유적인 특징이다.
④ 한국건축은 중국과 일본의 건축과는 달리 건축물의 내부에서는 선적 구성을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없다.
⑤ 동양 삼국의 건축물은 지붕의 처마선으로 구분이 가능하며, 그 중 중국이 한국과 일본의 중간적인 특징을 가진다.

[이의제기 내용]

1. 5번이 답인 것은 정확히 알겠으나, 2번이 답이 안 되는 것이 이해가 어렵습니다. 해설에는 대들보 등은 일부지 한국건축 전부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고 나와 있는데 대들보 등 일부 사례를 통해 한국건축이 목재의 손질을 최소화했다고 볼 수는 없나요?

2. 선지 5번에서 '동양 삼국의 건축물은 지붕의 처마선으로 구분이 가능하다'는 부분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2문단 마지막 문장의 '중국과 일본의 지붕선들은 모두 한국 지붕선과 대조적이다'라는 표현을 고려하면, 선지 내용처럼 '중국이 한국과 일본의 중간적인 특징을 가진다'고 추론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선지 2번의 해설을 보면 '자연스러운 나무의 모습을 활용한 일부 예시가 주어지고 있으나, 한국 건축이 모든 건축물에 대하여 목재의 손질을 최소화하여 사용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해설은 조금 억지스러운 것 같습니다.

3. 5번이 답인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나 2번 또한 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번 보기가 성급한 일반화를 범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2번의 경우, '한국의 건축은 목조가구식구조가 주류를 이룬다' '한국건축의 선은 유연성을 갖는 것이 특성이다' '선의 유연성은~기둥들에서 볼 수 있다' '~일본건축과는 달리 부드러운 맛을 주고 있다' 등에 비추어 목재의 손질 최소화가 일부 한국건축이 아닌 '한국건축'의 특징이라고 판단됩니다.

[출제자의 답변]

한국 건축에서는 선의 유연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예시로 손질을 최소화한 목재와 곡선적인 구성의 사용을 들고 있습니다. 일본 건축과 달리 곡선적인 구성을 통해 선의 부드러움을 강조한 것은 지문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으나, 일본 건축에서 목재의 손질을 최소화하여 사용한 예시가 없다는 것은 지문으로부터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음 문항은 정답률 84%의 문 21입니다. 정답률이 낮은 문항은 아니지만 복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의제기, 출제자의 답변, 검수자의 답변을 함께 수록하는 바입니다.

참고로, 출제자는 문제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는 답변을 하였지만 검수자 그룹에서 ‘정답 이상 없음’ 처리를 하였는데, 그 논리를 곱씹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 21.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592년에 시작된 임진왜란은 전국 곳곳에 전쟁의 상처를 남겼다. 특히나 한양은 그 어느 곳보다 더욱 비참하였다. 임금이 떠난 궁궐은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불탔으며, 종묘와 문묘 등 주요 전각들이 왜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1593년에 한양으로 돌아온 국왕은 들어갈 궁궐이 없어 월산대군 집에 기거하였으며, 종묘의 신주도 제 곳을 찾지 못하고 개인 집에 임시로 모셨다.

그런데 잠시 멈췄던 전쟁이 왜군의 침입으로 다시 시작되던 1598년, 한양 남대문 밖 도제고현에서는 독특한 행사가 치러진다. 한 달 전에 세워진 건물의 푸른 기와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큰 글씨로 ‘협천대제’, ‘위진화하’라고 적힌 깃발이 높다란 장대에 매달려 바람에 따라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마당엔 광대들이 여러 가지 재주를 보이며 놀이를 펼쳤고 이를 구경하는 명나라 장수와 군인 그리고 조선인들이 모여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오랫동안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축제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모인 기와집엔 대춧빛같은 붉은 얼굴에 봉황의 눈을 하고 수염을 배까지 드리운 관우의 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이 날은 관우의 생일로 관왕묘의 낙성식을 거행하는 중이었다. 이 관왕묘는 당시 원병으로 조선에 왔던 명나라 유격장 진인이 세웠다. 진인은 숭례문 밖에 가옥 한 채를 얻어 중국에서 가져온 관우상을 모셨다. 이를 본 명나라 장수 양호 등 여러 사람들이 비용을 내고 나라에서도 이를 도와서 새 건물을 지어 관우를 모셨는데 이것이 한양에 처음으로 건립된 남관왕묘다. 관우의 사당 건립을 몸소 감독했던 진인은 듣는 사람들이 허망된 것으로 여길 정도로 관우의 영험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 관우에 대한 신앙은 비단 진인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이 관왕묘의 건립에 양호를 비롯한 여러 명나라 장수와 군사들이 참여했으며, 완공된 후 군사들은 전쟁에 나아갈 때면 이곳에서 전승과 안위를 빌었다. 또한 진인이 세운 남관왕묘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성주, 안동, 남원 그리고 강진의 고금도에서도 관왕묘가 건립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명나라 군사들이 자신의 주둔지에 세운 것이다. 그리고 명나라 군사들이 물러간 후인 1601년에 한양 동대문 밖에 현재 동묘로 알려진 동관왕묘가 세워짐으로써 관왕묘 건립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① 남관왕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는 국왕이 직접 참여하였다.
② 임진왜란 중 종묘의 제사는 남관왕묘로 옮겨 지내도록 하였다.
③ 명나라 장수 진인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문묘를 한양에 재건립하였다.
④ 명나라 장수와 군사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 동관왕묘에서 제사를 지냈다.
⑤ 임진왜란 중 전국 각지에 위치한 관우의 사당에서 전쟁의 승리를 비는 제사가 이뤄졌다.

[이의제기 내용]

1. 본문에 전승과 안위를 빌었다는 문구만 있을 뿐 제사를 지냈다는 문구가 없을 뿐더러 전국 각지에 관왕묘가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 역시 찾아볼 수 없으므로 5번이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2. 답이 되는 5번 선지의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남관왕묘'의 경우 완공된 후 군사들이 전쟁에 나아가기 전 전쟁의 승리를 비는 제사를 지냈지만, 전국 각지에 세워진 다른 관왕묘에서는 명나라 군사들이 자신들의 주둔지에 관왕묘를 건립하긴 하였지만 전승을 비는 제사를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명확한 근거로 알 수 있는 선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3. 5번 보기에 전국각지에 위치한 사당에서 제사가 이뤄졌다고 나와 있는데 지문에는 마지막문단 밑에서 9번째 줄에 '이 관왕묘의 건립에 여러 장수가 참여했고 완공 후 군사들은 전승과 안위를 빌었다' 이 부분은 남관왕묘에서 제사를 지냈지 전국각지의 사당에서 지냈다고 추론하는 게 오류 아닌가요?

[출제자의 답변]

‘~남관왕묘다. ~ 이 관왕묘의 건립에 양호를 비롯한 여러 명나라 장수와 군사들이 참여했으며, 완공된 후 군사들은 전쟁에 나아갈 때면 이곳에서 전승과 안위를 빌었다.’로부터 ‘남관왕묘’에서 전쟁의 승리를 비는 제사가 이루어진 것은 추론할 수 있으나, 그 뒤에서 언급된 ‘진인이 세운 남관왕묘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성주, 안동, 남원 그리고 강진의 고금도에서도 관왕묘가 건립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명나라 군사들이 자신의 주둔지에 세운 것이다.’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검수자의 답변]

전국 각지에 위치한 관우의 사당에서 전승을 비는 제사가 이루어졌는지는 ‘유추’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건립된 남관왕묘에서의 전승과 안위를 빈 것임을 통해 전국 각지(성주, 안동, 남원 그리고 강진의 고금도)에 위치한 (특히) ‘각 명나라 군사들의 주둔지’였음에서 또 다른 관왕묘를 건립한 목적이 의심할 바 없이 전승을 비는 제사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답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한편, 알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부합’ 문제가 아니라 ‘추론’ 문제로 구성되는 것이 최근 출제경향이기도 합니다. 정답지에서 ‘임진왜란 중’에 대한 근거는 “1592년에 시작된 임진왜란은~(1문단 첫 번째 문장)”과 2문단 첫 번째 문장, 그리고 마지막 문단 전반적인 내용(특히 마지막 문장)을 종합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합이 아닌 추론적 사고를 통해 풀이해야 하는 구성방식입니다(2016년도 언어논리 4책형 1번 문제의 정답 2번도 이와 같이 구성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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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카이 2019-02-21 21:47:22
진짜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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