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상상의 동물, 고야의 유령들, 관음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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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상상의 동물, 고야의 유령들, 관음의 시대
  • 오시영
  • 승인 2019.02.01 11:4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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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인간은 상상의 동물이다. 상상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정신작용이지만, 상상의 뿌리는 경험으로부터 도출되어지는 모순적 정신세계이다. 플라톤은 인식에서의 상상적 계기(eikasia)를 이데아(이성)로부터 분리된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상(fantasia)을 감성적 지각(aisthētikón)과 사유(noûs)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정의하였다. 상상력은 칸트 철학의 중심, 즉 초월론적 기능을 수행하는 중심축이 되었고, 나아가 낭만주의에 영향을 미쳐 예술, 인식론, 형이상학에 관계하는 모든 활동의 핵심 부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상상에 머물던 상상은 현대에 들어와 IT기술과 AI기술과 접목하여 현실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상상하지 않는 자는 도태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든 상상하면 현실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상상의 세계가 곧 현실세계라는 동일시 오류를 쉽게 범한다. 하지만 상상의 세계가 곧 현실의 세계는 아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실이 존재”해야 한다. 진정한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한 상상은 상상일 뿐이고 현실은 아니다. 설령 수많은 사람들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집단 최면 상태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상상은 상상일 뿐 결코 현실이 아닌 것이다.

상상이 사람을 잡는 시대가 되고 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상징하듯, 세 사람이 거짓말로 없는 호랑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없는 호랑이는 백 명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없다. 없는 호랑이가 거짓말로, 상상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관음의 시대이다 사회에 팽배한 관음증(觀淫症)이 인간 지성을 파괴하고 있다. 관음증, voyeurism은 “남을 엿보는 심리”를 말한다. 모르는 사람에 대한 훔쳐보기를 통해 성적 쾌락을 느끼는 심리이다. 인간은 관음의 갈증을 문학이나 연극 또는 영화 등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며 충족하여 왔다. 우리에게 소설 춘향전이 그렇고, 영화 애마부인이 그렇다. 이 단계는 초보적 관음단계로 모두가 이해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영상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포르노필름이 우리의 관음을 그대로 충족시켜 주고 있고, 나아가 휴대용 전화기의 발달로 영상촬영과 음성녹음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게 됨에 따라 자기에 대한 관음과 타인에 대한 관음이 일상화되는 현실 속에 우리 모두가 살고 있다.

섹스를 하지 않는 성인이 어디 있으며, 화장실을 들락거리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는가? 인간은 아무리 지성을 뽐내지만 근본은 동물이다. 동물적 본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숙명적 생명체인 것이다. 지성의 고고함에도 불구하고 배고프고, 갈증을 느끼며, 성적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배변에 조급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육신 속에 갇힌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잘난 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좀 웃기지 않는가? 내가 그러니 남도 그럴 것이고, 남이 그러니 나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성은 동물적 본능에서 인간을 어느 정도 제어해준다. 남이 그렇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남들이 다 해도 나는 안 할 수 있는 바늘구멍 같은 자기신념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집단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비오류는 항시 존재할 수 있다. 반대로 개인이 오류에 빠지더라도 집단의 비오류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런 틈새에 인간의 위대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얼마 전 “고야의 유령들(Goya’s Ghosts)”이라는 영화를 우연히 뒤늦게 보게 되었다. 그의 작품명을 영화화한 것이다. 10여 년 전에 상영되었는데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면서 스페인 가톨릭종교재판소의 모순을 은근히 비판하는 영화이다. 화가 고야는 당대 최고의 궁중화가로서 명성을 날리는데 미녀 아네스를 모델로 하여 초상화를 그리다 그녀에게 영혼을 빼앗기게 된다. 일방적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대인이라는 의심을 받게 되고 종교재판소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카톨릭교도인데도 유대인이라는 거짓자백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유죄가 인정되어 가톨릭성당 지하 감방에 15년 간 갇힌 채 로렌조 신부에게 강간당하게 되고 딸아이를 낳게 되지만, 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으로 보내지고 모녀는 생이별을 한다. 그녀의 아버지 토마스로부터 구명부탁을 받은 궁중화가 고야는 그녀를 강간한 신부 로렌조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성당 개보수 자금을 대겠다는 조건으로 청원을 넣지만 가톨릭 주교는 종교재판소의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며 성당보수자금을 뻔뻔하게도 헌금을 받은 후에도 그녀를 석방해 주지 않는다. 돈을 받고서도 석방해 주지 않는 탐욕을 이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와 로렌조가 만나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종교재판에서 자백했기 때문에 유대교인이 맞고 유죄판결이 맞다고 우기는 로렌조 신부의 확신, 자기 진실이 맞다면 어떠한 고문이 있더라도 결코 거짓자백을 하지 않는 신념을 신이 주었다고 고집하는 로렌조에 맞서, 딸을 석방시키기 위해 애간장을 태우는 아버지 토마스는 말로 설득하다가 되지 않자 로렌조 신부를 붙잡아 고문을 가하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간다. 고문에 못이긴 로렌조 신부는 아네스가 고문 앞에 무너지며 유대교인이라고 자백하였듯 “나는 침팬지와 오랑우탄의 호로자식”이라는 황당한 자백서를 쓰게 된다. 고문 앞에 무너지는 고귀한 성직자의 추악한 진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의 석방이 거부되자 토마스는 이 자백서를 스페인 가톨릭 주교에게 보내어 “고문에 의한 자백으로 이루어진 종교재판”이 얼마나 추악한 것이며, 로렌조 신부마저 고문 앞에 거짓 자백을 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다시 말해 주교 당신도 고문 앞에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통렬히 야유한다. 로렌조는 위와 같은 황당한 자백서를 써 가톨릭을 모욕하였다는 죄로 신부 자격을 박탈당하고 스페인 가톨릭으로부터 추방당한다.

얼마 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을 침공하고 스페인 왕정이 무너지자 아네스는 석방되어 딸아이를 찾는데, 딸아이는 매춘부가 되어 있다. 프랑스혁명군의 종교지도자가 되어 금의환향한 로렌조는 스페인 가톨릭 주교를 가두고 복수를 가하던 중 딸의 출생을 알게 되자 그녀를 찾아 나선다. 딸을 찾은 후에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방해가 되는 사생아를 미국으로 강제추방시키려 획책하는 사이, 스페인군의 반격으로 프랑스군이 패망도주하게 되자 로렌조도 함께 도망하다가 붙잡힌다. 추방당하던 딸아이는 도중에 스페인군을 돕기 위해 출병한 영국군 장교에게 구출되면서 그의 연인이 되고, 붙잡힌 생부 로렌조가 스페인 가톨릭과 군에 의해 처형당할 때 생부인 줄도 모른 채 그의 죽음을 구경하며 이층 발코니에서 웃고 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조금 정신이 나간 아네스는 딸아이의 생부인 로렌조가 처형당하기 직전 그의 손등에 키스하며 자신을 겁탈한 로렌조를 용서하고, 처형 후 그의 시체를 운반하는 수레 뒤를 말없이 따라간다. 어린 아이들이 수레 주변을 뛰놀며 노래하고 춤춘다. 마치 로렌조 영혼의 구원을, 하늘나라로 가기를 기도하는 듯, 야유하는 듯한 이중적 모습이다. 그 뒤, 아네스의 뒤를 고야가 묵묵히 슬픈 듯 애절한 듯 따라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과 구원”이 무엇인지 생각에 빠지게 한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벨라스케스와 렘브란트, 그리고 자연을 자신의 스승이라 칭하며 사실적 작품을 많이 그렸다. 1792년 완전히 귀가 먹은 후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후 성찰과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되고, 세상을 풍자하는 작품, 특히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를 발간한다. 판화집 속의 판화들은 당시 가톨릭이 주도하는 스페인사회의 문제점들을 풍자하고 있다. 인상파의 단초를 제공한 고야는 약 2천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저 영화 고야의 유령들 속에 등장하는 아네스와 로렌조 신부는 물론 허구의 인물이지만, 종교계의 타락과 모순을 가까이에서 체험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끊지 못해 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왕실의 초상화를 그리며 자신의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자 노심초사하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고야의 배경이야기로 충분한 모멘트를 제공한다.

JTBC 손석희 대표의 자동차 접촉 사고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 사안은 간단한 차량접촉사고로 당사자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져 끝난 사건인데, 그 이후 김 모 기자의 취직청탁과 방송 관련 프로젝트 참여 기회 제공 등의 문제가 얽히면서, 그리하여 간단한 신체접촉이 폭력사건으로 비화되고 손 대표의 공갈협박죄의 맞고소로 확대되고 있다. 본질은 손 대표가 김 기자로부터 협박을 당하였는지와 손 대표의 폭력행위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심야에 주차장에 손 대표가 누구랑 동승하고 있었느냐는 관음증에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펼침으로써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과연 손 대표가 어떤 여성과 함께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기사화하겠다며 취직청탁을 하였다면 여성의 동승 여부는 협박을 당한 원인이 되기 때문에 범죄의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손 대표가 여성의 동승을 부인하며 “단지 차량접촉사고 후 피해 차주와 합의 없이 도주”하였다는 사실을 기사화하겠다는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전자는 동기에서 배제되고 후자, 즉 차량접촉사고 후 무단도주만이 협박의 동기가 된다.

김 기자와 손 대표의 주장이 서로 다르고, 이를 객관화할 수 있는 물적 증거가 없는 마당에 수사가 이루어진다면 후자의 범위 내에서 수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만일 전자가 사실로 밝혀지고 협박이 인정된다면 김 기자의 죄질은 더 나빠져 형량이 증가하는 모순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기자는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형량이 늘어나게 될 위험요소인 여성의 동승 여부를 집요하게 주장할 개연성이 크다. 이를 “관음의 모순”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문제는 설령 손 대표가 여성과 동승하였다고 하더라도, 동승 자체가 무슨 범죄는 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조수석이나 뒷좌석에 동승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음증은 여기에서 상상을 하게 된다. 무엇 때문에 늦은 밤에 인적이 한적한 곳에 여성이 동승한 채 주차하고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손 대표는 결코 여성이 동승하지 않았다고 하므로 그러한 전제를 가정한 채 관음증을 발휘하는 것은 상상일 뿐 결코 현실이 아니다.

복잡한 현실을 살기에도 바쁜 판에 무에 남의 일에 이렇게 모든 관음의 촉수를 전 국민이 뻗고 있는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당신은 동물의 본능이 없는가? 본능의 일들은 본능의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 한다. 필자도 간혹 늦은 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밤하늘 달이 너무 밝아 예쁘면 나도 모르게 아무 데나 차를 세우고 달을 정신없이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다. 비가 오는 날도 그렇고, 하루 일이 너무 힘들어 피곤이 쌓일 때도 그렇다. 천성이 타고난 시인의 기질을 어찌할 수 없어, 법률가로서의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신앙인으로서 절제하려 애쓰지만, 감정의 세계에 푹 빠져 떠오르는 한 줄의 싯귀에 몇 시간을 길가나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상념에 잠길 때도 있다. 어찌 보면 사유의 동물인 인간은 누구나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남의 사생활 관음에 빠져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지 말고, 존재하지 않은 현실을 존재하는 것인 양 상상의 나래를 펴지 말고, 밤하늘의 별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달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스쳐가는 바람을 한 번 더 느끼는 고요가 더 좋지 않은가? 스페인 여행길,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에서 만났던 “고야의 유령들”을 되새김하게 만든 영화 “고야의 유령들”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종교와 인간, 영혼과 유령, 사랑과 배신 그리고 맹목과 탐욕의 교차점에 내가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치판은, 사법부는 성창호 부장판사의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유죄 선고 및 법정 구속을 놓고 시끄럽다. 성 판사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법원행정처에서 사법농단관련 업무를 보았고 비서실에서 근무한 전력으로 보복성 정치재판을 했다고 비난하는 한편이 있는 반면 증거에 입각한 엄격한 재판을 하였다며 칭찬하는 다른 편이 있다. 상급심이 남아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상상은 아름답고 자유롭지만, 관음이 끼어들면 지저분해진다. 멋진 상상을 해보자,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늘을 날겠습니다, 이왕이면 독수리처럼 날겠습니다, 독수리처럼. 으윽, 참새도 못된 친구가 감히 하늘을 난다고요? 그래도 한 번 날아 볼랍니다, 독수리처럼, 독자분께서도 함께 날아봅시다, 아래 세상 참 시시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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