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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18)-깨진 마음을 이어주는 마술사들
임수희  |  sooheelim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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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31  12: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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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피고인 ○○○씨!” 선고를 하기 위해 호명을 하고 법정을 둘러보는데 피고인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 안 나오셨나? 그럴 리가 없는데’하며 다시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낯선 젊은이가 피고인석으로 성큼 걸어 나와 앉으며 “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지난 공판기일에 봤던 그 피고인과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어? 이 분이 그 분인가?’ 분명 더 나이든 사람이었는데, 얼굴이 확 피고 더 젊어 보이는 사람이 대답했던 거지요.

‘웃고 있어서 그런가?’ 게다가 환한 표정에 미소까지. 그러니 누가 봐도 형 선고 받으러 온 사람으로는 안 보일 정도였죠. 신분을 확인하니 지난 공판기일에 나왔던 그 피고인이 맞았습니다.

선고를 하기 전에 다시 법정을 둘러보며, “혹시 피해자 아버지 △△△씨 안 나오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공판기일에 봤던 피해자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질 않았으니까요.

“네!” 갑자기 법정 맨 뒤에서 어떤 남자분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그 역시 제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 저 분이 맞나?’ 다시 물었습니다. “저, 이 사건 피해자는 □□□씨인데요. 그 아버지 나오셨는지 여쭌 겁니다!”

“네, 저 맞습니다!”

그 말을 듣고 찬찬히 얼굴 모습을 확인하는데, 갑자기 저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 주위가 시큰거렸습니다.

자세히 얼굴 모습을 살펴보니, 지난 공판기일의 그 피해자 아버님이 분명 맞긴 한데, 그 때 그렇게도 시커매 보였던 얼굴이 환히 밝아졌고, 잔뜩 인상을 써서 깊게 패여 보였던 주름이 다 없어지고 한 십년은 젊어 보이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구부정 움츠리고 있었던 어깨도 피고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진짜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이랬던 분이 그렇게도 힘들어서, 죽을 만큼 힘들어서, 정말 죽을 것 같은 얼굴로 계셨던 거였구나!’ 그럼에도 비극과 절망 속에서 용기를 내고 힘을 쥐어 짜내 대화의 자리에 나서 회복적 사법이라는 과정을 한발 한발 디뎌 준 노고가 되찾아 준 원래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저는, 법대에 앉아 있는 판사와 피해자 아버지라는 관계를 잊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갑자기 울컥한 것이었지요. 판사고 뭐고 간에, 인간적으로, 그 분이 보여 준 용기와 노고에 숙연해 지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피고인 얼굴이 달라져 보였던 것도 그래서였겠구나!’ 마찬가지로 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피고인과 피해자 아버지, 두 분이 존경스러웠고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서둘러 마음을 추스르고 또박 또박 선고를 하고는, 두 분께 평안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고 나니, 저도 덩달아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2.
지난 열여섯 번째, 열일곱 번째 회복적 사법 이야기에 계속 이어서 우리는 지금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한 아버지와 피고인, 역시 두 딸의 아버지였던 한 피고인의 형사재판 이야기의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지난 회, 지지난 회를 읽어 보신 분들은, 제가 묘사한 저 선고 때의 상황이 믿기지 않을 겁니다. 제가 거짓말을 하거나 최소한 글을 쓰려고 과장을 하거나 극적으로 포장했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겪은 그대로 묘사한 것입니다.

사실 저도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이 선고기일 전에 합의서를 제출하면서, 피고인이 피해자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피해자 유족은 이를 받아들여 용서를 했고 원만히 합의금액을 정하여 지급까지 완료하였기에 피해자 유족으로부터 처벌불원서를 받아 제출한다는 서면을 보고서, 긴가민가했습니다.

딸을 잃은 슬픔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계속 진정했던 피해자 아버지가 어떻게 ‘피고인을 용서’할 수 있게 됐단 말인가.

과실이 큰 피해자에 대한 원망과 형사피고인이 된 억울함에 사무쳐서 사과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던 피고인이 어떻게 ‘진심어린 사과’를 할 수 있게 됐단 말인가.

저도 믿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러다 선고기일에 완전히 변한 얼굴로 나타난 두 사람을 직접 보고서야, 아 진짜였구나! 하고 그 모든 과정이 이해된 것이었죠.

지난 공판기일에 단지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 프로그램을 안내해 주면서, “담당 전문가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받아서 참가여부에 관한 의사를 최종적으로 말해 주세요”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 뒤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특히 피해자 아버지는 분명 법정에서부터 벌써 안하겠다고 고개를 흔들며 갔었는데요. 그 뒤에 어떻게 저렇게 변화가 일어나게 된 걸까요.

3.
유감스럽게도, 여러분께 죄송하게도, 제가 재판을 했던 사건에 대해서는 경험한 범위와 당사자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여러분께 사법제도 개선을 위해 필요한 목적 하에 일정한 내용을 나눌 수 있습니다만, 당시 공판절차와는 분리해서 진행된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에서 담당 전문가들이 피고인과 피고인의 아내, 피해자 아버지와 또 다른 딸 등 유족과 상담하고 그들 사이를 중재하여 형사적인 조정에까지 이르게 된 과정의 디테일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영역이 되지 못합니다. 제가 경험한 것이 아니기도 하고 법적으로도 그렇구요.

하지만 당시 절차를 관리했던 담당 재판장으로서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에 들어간 당사자들이 어떤 과정 또는 절차를 거쳤는가는 여러분께 정리해서 말씀드릴 수 있고 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께 아직은 생소한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란 것이 무엇인지 이해의 저변이 넓어지지 않을까 해서요.

제가 경험한 것은, 마법이 일어나기 전과 마법이 일어난 후의 모습뿐입니다. 사실 정말 더 극적이고 더 감동적인 것은 그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 순간들이겠지요. 그 구체적인 과정은 저 역시도 정말 알고 싶고 궁금합니다.

대체 그 전문가들은 내 당사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한 걸까요.

4.
절차를 관리했던 제가 보고 받아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우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혹시 여러분이 상상하시기를, ‘회복적 사법 전문가들이 어느 날을 정해서 양쪽 당사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어떤 특수한 대화 기술을 써서 쏼라쏼라 블라블라 얘기 하니까 갑자기 양쪽 마음이 다 녹아 극적으로 사과와 용서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화해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피고인 측은 피고인 측대로, 피해자 측은 피해자 측대로, 각각 따로 전문가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우선 피고인 측은 피고인과 국선변호인이 함께 전문가들을 만나서, 그 전문가들이 피고인이 억울해 하는 사정을 충분히 공감해 주었다고 합니다. ‘충분히’라고 우리가 말할 때 보통은 ‘그냥 적당히’의 의미가 많지만 이 경우의 ‘충분히’는 문자 그대로의 ‘충분히’가 분명했을 것 같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선고기일에 목격한 피고인의 달라진 얼굴일 테니까요.

피고인의 억울함이 모두 남김없이 풀릴 때까지 ‘충분히’ 공감적으로 말을 들어주고 - 아 정말 말이 참 쉽네요. 하지만 이렇게 표현하는 도리 밖에 없어 보입니다. - 피고인이 자기 억울함을 비워낸 공간이 생긴 후에 비로소, 상대인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피고인의 사과의 말이 어떻게 들릴 수 있는지를 얘기해 보면서, 함께 어떻게 하면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과를 할 수 있는지 고민도 하고 연습도 해 보는 시간들을 가졌다고 합니다.

1회의 세션으로는 부족해서 2회째에 피고인과 그의 아내까지 함께 만나서 전문가들이 피고인 측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더군요.

피해자 아버지 쪽의 변화는 참 놀라웠는데, 분명 절대 안하겠다고 하신 분인데, 전문가가 전화를 드렸더니 “절대 안 하겠다”고 하는 말을 반복적으로 거의 한 시간을 하시는 걸 들어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후 피해자 아버지가 그 전문가께 전화를 걸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또 한 시간 정도를 “절대 안 하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 드렸더니 전화를 끊을 때쯤 그 전문가 분들만 한번 만나보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전문가 분들이 그 피해자 아버지를 만나러 가서 어느 커피숍에서 그 유족들을 만났는데, 그 만남 이후 마음이 변하여, 피고인을 한번 만나는 주겠다고 하셨답니다.

이것은 실화입니다. 제가 보고 받은 전부입니다. 들어주었더니 전화를 걸어왔고 들어주었더니 만나자고 했고 들어주었더니 피고인도 만나보겠다고 했다. 대체 어떻게 들어 준 것일까요. 신기했습니다.

그 이후 한 자리에 피고인과 그 아내, 피해자 아버지와 유족이 그 전문가들과 함께 만나는 한차례의 대화 세션을 열어, 거기서 피고인은 사과를 했고 피해자 아버지는 그 사과를 진정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밖의 필요한 모든 대화가 이후 순탄하게 진행되어 앞서 여러분께 말씀드린 결말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대체 각각의 세션과 만남, 대화에서 무슨 얘기가 어떻게 오간 것일까. 저야말로 진짜 궁금합니다. 그 전문가들은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일까요.

그 전문가들이 회복적 사법 이야기를 써 주신다면 그 얘기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사자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라면 역시 자세한 얘길 듣긴 어려울 겁니다.

쉬운 방법은 여러분들이 직접 갈등 당사자일 때 회복적 사법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보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이 방법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람이고 당연히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을 겪습니다. 그런 제 문제를 들고 가서 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대체 그 분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시는 건지 직접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5.
이 마법을 부린 분들은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캐서린 한, 이연미 선생님이었습니다.

당시 형사재판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에 참여했던 기관은 그 외에도 (가나다순) 비폭력평화물결(대표 박성용), 이화여대 로스쿨 회복적사법센터(대표 조균석),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부설 갈등해결센터(대표 김선혜), 한국갈등관리조정연구소(대표 문용갑), 한국평화교육훈련원(대표 이재영)이 있었습니다.

유엔에서 발간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관한 핸드북(Handbook on Restorative Justice Programmes)에 회복적 절차의 참여자들 중 ‘5.1.9 Facilitators’란 부분이 있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회복적 사법의 전문가들이 바로 ‘Facilitators’에 해당하는데요. 우리 말로 뭐라고 번역하면 좋을까요. 참고로, 조균석 교수님 외 여러분이 하워드 제어의 책을 번역한 <회복적 정의 실현을 위한 사법의 이념과 실천>이라는 책에서는 이를 ‘전문진행자’라고 번역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 유엔 핸드북에서는, 회복적 사법적인 개입이 성공하는데 있어서 회복적 사법 전문진행자(facilitator) 또는 조정자(mediator)의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사자들이 자유롭고 안전한 소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능력,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능력을 포함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감정적 긴장을 다루면서 도울 수 있는 능력, 어려운 것들을 말하고 들을 수 있도록 돕는 능력, 참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나 힘의 균형을 잡아 줄 수 있는 능력, 공감과 지지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능력을 갖춘 분들이 있고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에서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해 진다면 정말 멋지지 않나요, 여러분!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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