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허의행 시인의 “개소리”, 양승태의 구속과 손혜원의 오만방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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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허의행 시인의 “개소리”, 양승태의 구속과 손혜원의 오만방자함?
  • 오시영
  • 승인 2019.01.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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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한때 죄 있는 자가 죄 없는 자를 심판하는 세상이 있었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괴롭히던 때도 있었다. 거짓이 진실을 덮을 때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질서인 듯싶지만 뒤죽박죽이다. 완전한 인간들만 살면 완전할 것 같지만, 완전한 인간들만 산다면 그 세상은 더욱 뒤죽박죽일 것이다. 나의 완전은 너의 불완전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완전과 완전이 부딪히면 두 완전은 깨어지게 되어 있다. 세상이치가 그렇다. 미운 놈을 죽이는 유일한 방법은 미운 놈보다 오래 살면 된다. 먼저 죽는 미운 놈을 향해 “이놈아 너 죽었다”라고 호통치는 것으로 미운 놈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 앞에 겸손해야 하는 까닭이다. 자주 해온 말이지만, 우리는 시간을 잊고 살면 안 된다. “미운 놈마저 죽여주는 시간의 전지전능함”을 미처 깨닫지 못한 자들은 스스로 시간을 통제한다고 자만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시간은 결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어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의 주범으로 구속되었다. 그 하루 전에는 서지현 검사에 대한 성추행과 검찰인사권 전횡으로 안태근 전 검사장이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대법원장은 인간 세상에서 최종적 최고심판자의 직무를 수행한다. 다만 그 직무수행은 일정한 시간 안에서만 가능한 한정적 권한이었다. 그가 역사를 제대로 인식했더라면, 시간 무서운 줄을 알았더라면 감히 그러한 사법농단에 앞장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검찰이 구속영장신청서에서 밝힌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에 대한 재판거래,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수집 지시,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 및 일부 판사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가해,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3억5천만 원 조성 등”의 반헌법적 중대범죄에 대한 혐의에 대해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발급사유를 밝혔다. 검찰이 밝힌 양 전 대법원장의 구체적 범죄혐의 40여개를 대부분 인정한 셈이다.

손혜원 국회의원이 지난 23일 목포 구도심지 투기 의혹과 관련하여 자신이 매입한 구도심지 적산가옥 내에서 기자회견을 겸한 유튜브 해명 방송을 하였다. 야당측에서는 손혜원 의원이 버려진 땅 목포 구도심지의 적산가옥 등을 매입하는 등 투기를 하였고, 그 후 이 지역을 문화재거리로 지정받아 정부지원을 받는 방법으로 이익상충행위를 하였다고 맹공하였다. 이에 대해 손혜원 의원은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이 지역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서의 가치가 역사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며 이를 보호 육성하기 위해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홍보하여 왔으나 별다른 호응이 없자 자신이 나서서라도 해야겠다는 충정에 매입에 나섰던 것이고, 문화재보호구역 지정이나 예산 배정 등에 자신이 압력을 행사하거나 한 바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곳에 박물관을 만들어 나전칠기작품 등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문화재급 유물들을 전시할 것이며, 종국으로는 재단을 만들어 이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헌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기자회견 직후 일 년 동안 국회의원이 모금할 수 있는 정치자금 한도인 1억5천만 원이 1만여 명의 국민들에 의해 순식간에 답지한 것으로 보면 국민들이 그의 진정성을 믿은 모양이다. 전화위복이 되어버린 셈이다.

대법원장으로서 최고의 심판자였던 그가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투기라는 인식을 전혀 인식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는 손혜원 의원은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면 대부분 꼬리를 내리고 사과를 한다. 한데 손혜원 의원은 반대로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자신을 비난하며 공격하는 이들을 향해 “사실관계를 잘 알지 못한 무식한 자들”이라고 역공을 가한다. 공격이 최선이 방어임을 잘 알고 있는 전략가의 기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녀의 진심을 국민은 아주 예민하게 깨닫는다. 며칠 사이에 답지한 1만여 명 국민들의 정치후원금 쇄도가 이를 반증한다. 야당의 일부의원들은 그녀의 당당함에 “무례하다”고 비난을 가하지만, 당당해야 할 때 당당할 줄 알고, 겸손해야 할 때 겸손하면 족한 것이다. 오만방자함이 아니라 진실당당함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행위 결과에 어떠한 반전이 일어날 것인지 여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자신의 소신을 직접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해명하는 것은 나름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기자들에 의해 발췌되어 전달되는 “기자의 조작 가능성”을 원천차단하고, 직접 자신의 육성으로 자신의 진심을 피력하는 것은 다른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그녀의 수많은 육성 중 가장 폐부에 와 닿은 말은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무식하다”라는 말이었다. 필자도 똑같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반발할지도 모른다. 내가 대학을 어디를 나오고, 어느 분야에 최고의 전문가인데 나를 무식하다고 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발은 손혜원 의원의 “무식한 국회의원들이라는 질책”이 “편파적이고 지혜롭지 못한 국회의원들”이라는 말임을 알아듣지 못하는 또 다른 무식을 드러내는 행위일 뿐이다.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 흥분하지 않은 이성과 지성의 화학작용을 통해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될 것을 무조건 고함부터 지르고, 맹목적 편가르기 이분법을 사용하는 후안무치함을 너무 자주 드러내온 것에 대한 통렬한 야유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실관계를 비틀고 왜곡하여 진실을 오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무식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그게 거짓인지 여부, 정의로운지 여부를 다 아는데 그들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허의행 시인이 시집 “시시한 순수”를 보내왔다. 은퇴 후 삶을 관조하고 있는 허시인의 시들은 제목 그대로 “시시한 순수”의 노래들이다. 혼탁한 세상에서 혼자 순수한들 누가 알아줄까마는 그러기에 그의 순수는 더 맑고 깨끗하게 빛이 난다. 수많은 시인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순수를 고집하는 그의 시정신은 같은 시인의 입장에서도 존경스럽다. 하지만 때묻지 않은 그의 시시한 순수에는 개소리가 많다. 그의 시집에 수록된 산문시 “개소리”를 본다. “개들이 짖었다 개의 임무를 다하며 짖었다 옆집 개가 짖으면 무엇 때문에 짖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덩달아 짖어야만 했다 송곳니를 세우며 목덜미의 갈기를 세우고 으르렁거리며 독을 품은 눈으로 최대한 사나워 보이도록 짖어야만 했다// 숨이 차 헐떡이며 짖었다 주인이 인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끈질기게 짖었다 목줄에 매어서 눈치를 보면서 충성을 다했다 낮에도 짖고 밤에도 짖었다 잠결에도 일어나 짖었다 무조건 따라 짖는 것이 가치 없고 존재 없어도 개이기 때문이다” (전문, ‘시시한 순수’에 수록, 2018.12, 시산맥사 간)

개소리가 난무하는 “개들의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지막 문장 “무조건 따라 짖는 것이 가치 없고 존재 없어도 개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골수를 때린다. 세상에서 출세하였다고, 성공하였다고,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거들먹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세상이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한 시인의 눈에는 “태생이 개를 닮은 족속쯤”으로밖에 비치지 않는 모양이다. 그것은 그들이 개처럼 살고 있고, 살아온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시인의 혜안이 있기에 가능한 평가이다. 짖는 것밖에 알지 못하는 개들은 짖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임무인 양 자신이 먼저 짖다가 옆집 개가 짖으면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짖다가, 짖다가 신이 나 더 크게 짖는다. 그 더 크게 짖는 모습을 “송곳니를 세우며 목덜미의 갈기를 세우고 으르렁거리며 독을 품은 눈으로 최대한 사나워 보이도록 짖어야만 했다, 숨이 차 헐떡이며 짖었다 주인이 인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끈질기게 짖었다”라고 묘사한 대목에 이르면 오히려 슬퍼진다. “목줄에 매어서 눈치를 보면서 충성을 다했다 낮에도 짖고 밤에도 짖었다 잠결에도 일어나 짖었다”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슬픔의 한계를 넘어 비참해지다가 헛웃음을 짓게 된다. 그렇게 발악하며 짖은 결과가 무엇인가? 차가운 철창행이다. 불명예와 비참함뿐이다.

백 마디 말보다 침묵이 나을 때가 있다. 허의행 시인의 또 다른 시 “0의 세계”를 보자. “K회장은 공포에 떨면서 죽음의 세계로 기어들어 왔다 죽음의 세계는 무소유의 세계였다 죽음의 경험이 낯설어 허둥댔다 죽음의 개념은 짐승들의 죽음이나 벌레들의 죽음이나 회장님의 거룩한 죽음이나 똑같은 0의 세계였다// 다시 살아나고 싶어 애걸하는 k회장은 한번 죽으면 또 죽지는 않기에 죽음의 공포나 괴로움은 없다고 했다 죽음의 개념과 진리를 깨닫지 못한 K 회장에게 죽음의 세계는 모든 것이 0이고 평등이라는 것을 반복 주입시켰다” (전문, 위 같은 책). 죽음은 모두에게 똑 같은 0의 세계, 한번 죽으면 다시는 죽지 않으니 죽음의 공포나 괴로움이 없다는 허시인은 그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해 허둥거리는 K 회장에게 현실을 받아들일 것을 반복 주입시키고 있다. 독자들에게 이를 알리고 있다. 대문자의 K와 소문자의 k가 상호교차한다.

사법부 최고 수장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범죄로, 그것도 재판조작과 관련된 범죄로 구속된 사실은 대한민국 오역사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대법원장이 앞장서서 재판조작을 하였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법원은 개소리를 내는 개들의 집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법관이 되는 순간 “0의 세계”를 깨닫는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 법관은 매일 죽어야 한다. 그래야 죽음의 세계가 무소유의 세계임을 깨닫게 되고, 무소유의 세계에서 무엇을 가지겠다는 욕망 자체가 무의미함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0의 세계”를 깨닫게 될 때 “죽음의 공포와 괴로움”이 없어지고, 현실에서의 헛된 욕심도 사라지게 된다. 손혜원 의원 역시 아무도 하지 않기에 자신이 앞장서서 목포 구도심지의 적산가옥 등을 구입하여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원이라면 자신이 직접 행동대장처럼 일선에 나설 것이 아니라 정책과 입법을 통해 그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조정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의 진심이 진심으로 계속 유지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박물관을 만들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헌납할 것이라는 그의 약속이 어떻게 실현될지도 주목할 일이다. 아예 소유권과 운영권을 모두 넘기고 자신은 손을 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재단을 만들어 재단 이사 임명권을 자신이나 자신이 지명하는 자가 갖고 박물관이 공적 기능을 수행토록만 할 것인지 여부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전자라면 자신의 말을 100% 지키는 것이 되겠지만, 후자라면 결국 개인 재산을 재단 명의로 바꾼 것에 불과하고, 그 재단을 자신이나 자신으로부터 지명된 자가 지배하게 되면 결국은 국가환원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개소리에 불과하게 되고 만다. 거기에 또 시간이 어떻게 개입되어 장난을 칠지 순수를 지켜갈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시간만이 알 뿐이다. 산 자 중 아무도 “0의 세계”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개소리가 난무하는 산 자들의 세상에서 “0의 세계”를 관통하자는 시인의 주장은 말 그대로 개소리일 수도 있다. 이렇게 지껄이는 필자의 소리 역시 개소리일 수도 있다. 오늘은 전직 대법원장도 구속된 판에 모두들 개소리를 한 번 해 보는 것도 뭐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개소리가 아닌 사람소리가 잔잔한 시냇물처럼 들려오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칭송받는 이들 중에 왜 순수가 사라지고 있을까?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는 “심판자 시간” 앞에 조금은 엄숙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노출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모두는 일거수일투족이, 일구일언이 모두 기록되고 지워지지 않는 세상을 살고 있다. 속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세상”을 우리는 스스로 열심히 만들어왔다. 우리가 만든 족쇄에 우리가 갇혀 몸부림치고 있다. 까닭에 감추어진 사람이 들추어진 개로 살게 될 확률은 더더욱 높아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구시대 적폐청산의 정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경제적폐의 청산과 정치적폐의 청산이 남았다. 무식한 국회의원들의 개소리가 사라지고 허의행 시인이 꿈꾸는 “시시한 순수의 시대”가 도래할 수는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 “0의 세계”를 깊이 깨닫고 오늘 순수하게 살았으면 한다. 순수, 참 좋은 말이다, 참 좋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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