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96)-재판과 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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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96)-재판과 개판
  • 강신업
  • 승인 2019.01.1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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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2015년 5월에 이런 일이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국회에 파견 나가 있던 부장판사를 통해 법사위 위원 서영교 의원의 재판청탁을 받았다. 총선 당시 서 의원의 연락사무소장을 지낸 지인의 아들 A씨가 강제추행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죄명을 공연음란으로 실형 대신 벌금형으로 선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민원을 접수한 임종헌 차장은 서울북부지법원장을 통해 담당 판사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임 차장은 또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을 통해 A씨 재판을 맡은 재정합의부장에게도 청탁을 넣었다. 재판 결과 죄명은 변경되지 않았지만 A씨는 징역형을 피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위 일이 있기 직전 2015년 4월에는 또 이런 일이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임종헌 차장은 법사위 위원 전병헌 의원으로부터 “정치자금법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어 있는 자신의 보좌관이자 손아래 동서인 임모씨를 조기에 석방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임 차장은 사법지원실 심의관에게 임씨 항소심 사건의 ‘예상 양형 검토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뒤 전병헌 의원에게 검토 결과를 설명해줬다. 재판부는 양형 검토보고서 대로 임씨를 보석으로 석방한 뒤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2015년 8월엔 이런 일도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은 서울행정법원 공보관으로부터 정의당 소속 서기호 의원이 법관 재임용 탈락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의 판결문 파일을 전달받았다. 이 판결은 이날 오후 2시 선고였는데 법원행정처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전에 판결문을 확보한 것이다. 인사총괄심의관실은 선고 결과와 판결 이유를 정리해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에게 보고했다.

검찰이 이번에 추가기소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차장 공소장에는 법원행정처가 당시 서기호 의원 재판에 어떻게 개입했는지가 자세히 나타나 있다. 2015년 3월 27일 조모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는 임 차장으로부터 서기호 의원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조 수석부장판사는 담당 재판부를 확인한 후 재판장 박모 부장판사에게 연락했다. “법원행정처가 서기호 의원 사건을 추정한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사건의 신속한 종결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박 부장판사는 조 수석부장판사에게 “문서서제출명령 신청사건에 대한 재항고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기일을 추정했는데 결정이 나고 양쪽에서 더 다투는 것이 없으면 다음 기일에 종결 하겠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내용을 보고받은 임 차장은 2015년 5월 26일 재항고가 기각된 사실을 확인한 뒤 조 수석부장판사에게 신속히 종결한 것을 재차 요구했다. 그러자 조 수석부장판사는 3일 뒤인 6월1일 박 부장판사에게 즉시 기일을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 때까지 재항고 사건 결과를 모르고 있던 박 부장판사는 조 수석부장판사 연락을 받고 곧바로 7월 2일을 변론기일로 잡았다. 조 수석부장판사는 변론기일이 지정됐고 변론을 종결할 계획이라고 임 차장에게 전달했다. 실제로 해당 날짜에 변론이 종결됐고 결과적으로 서기호 의원은 재임용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버젓이 일어난 일이다. 양승태 사법부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법원행정처로부터 일선 재판부까지 한 통속이 되어 상고법원에 찬성하거나 도움이 될 만한 의원의 재판청탁을 들어주고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판사출신 서기호 의원이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낸 재임용거부처분 취소 소송은 단 하루라도 먼저 패소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사법부의 감춰진 민낯이다.

법원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국민들은 그렇게 믿어 왔다. 국민들은 대한민국 판사가 국회의원실을 드나들며 재판청탁을 받아 법원행정처에 전달한다는 것도, 법원행정처장이 법원장을 통해 일선 재판에 개입한다는 것도, 재판을 담당한 일선 판사들이 윗선에서 지시받은 대로 주문형 판결을 내린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오로지 불쌍한 건 선량한 국민들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것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가 이 정도인지 줄 몰랐다. 정말 재판인지 개판인지 모를 지경이다. 국민들은 묻고 있다. 대한민국이 진정 법치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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