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북한의 신년사와 남한의 중개자, 그 어려운 길의 한 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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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북한의 신년사와 남한의 중개자, 그 어려운 길의 한 복판에서.
  • 신희섭
  • 승인 2019.01.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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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19년 새해가 열렸다. 달력 교체하듯이 새로운 해(year)가 지난 해(year)와 이별하기는 어려운가 보다. 2018년의 민간인사찰 의혹,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들이 2019년이 새로 시작해도 따라 붙는 것을 보면.

2019년 1월 1일.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니 해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8년 가장 주목받은 인물인데 비핵화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보니 많은 이들은 그에게 다시 주목할 수밖에 없다.

당일, 김정은 위원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잘 짜인 각본으로 성공리에 신년사발표라는 공연을 마쳤다. 객관적인 외교전략 견지에서 보면 북한의 신년사는 성공적이다.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이미지외교’와 ‘이중전략’이 그것이다.

이미지 외교 전략은 성공했다. 북한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이슈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정은 위원장은 잔뜩 기대한 관객들에게 자신의 발언보다 소파 퍼포먼스에 더 관심을 가지게 했다. 양복을 입고, 양복을 입은 보좌진 몇 명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소파에 앉아, 양쪽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형초상화를 두고 신년사를 발표했다. 그가 강조해서 말하고자 한 ‘자력갱생’과 ‘비핵화’에 이들 이미지로 변화의지에 방점을 찍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서양식 거실모습을 연상시키는 잘 꾸며진 서가이다. 그런데 이 장면 대단히 낯설다. 북한의 정체성 때문이다. “혹시 노동당 기를 채우고 있는 낫(농민)과 망치(노동자)가 대체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헷갈리는 것은 낫과 망치의 사회주의를 서양식 지식국가로 대체해보겠다는 것인지 혹은 3대 세습을 정당화하면서 한편으로 플라톤식의 ‘지식국가’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연출이 북한의 ‘정상국가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이 ‘정상’국가라면 이는 ‘깡패’국가(rogue state)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고자 함이다. 그런데 깡패가 아니기 위해 플라톤이 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이미지 외교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있다. 바로 관성과 인지의 일관성이다. ‘서구식 거실=변화’의 공식은 ‘여동생 = 비서 혹은 차기 후계자’의 공식으로 인해 쉽게 깨진다. 전제군주 국가에서 가능한 3대를 넘어서는 세습제도는 누가 지켜보는지와 전혀 관계가 없다. 이미 일상이 되어 어색함도 부끄러움도 없는 것이다.

서가와 초상화는 변화의 의지와 관성의 상충을 상징한다. 이것이 현재 북한의 상황이다.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급조한 만큼이나 급하다.

김정은과 북한 관료들은 왕조체제에 너무나 익숙해서 특별히 문제라고 여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북한의 외교전술에도 녹아있다. 베풀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왕이 백성들에게 은혜를 하사하듯이. “개성공단도 금강산관광사업도 조건 없이 재개할 용의가 있다”라는 김정은의 발언이 그 증거이다. 우리는 이런 발언을 유체이탈화법이라고 조롱하면 안 된다. 이 발언은 영혼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믿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두 번째는 이중외교 플레이다. 이중외교를 설명하기 위해 신년사에 담긴 수많은 내용을 분석할 필요는 없다. 핵심만 집어보자. 대단히 안타깝게도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그가 비핵화를 어느 정도 이루려는 의지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는 미래(추가 개발 금지)는 약속했지만 과거(기존 보유 핵 폐기)는 확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해석의 공을 상대방에게 던졌다. 포기할 수도 있다 다만 미국의 행동이 전제조건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북한식 이중 외교이다. 그저 받은 사람만 헷갈릴 뿐이다.

그러니 확실하지 않은 북한의 의도를 두고 ‘갑론을박’할 필요 없다. 무슨 뜻인지 헷갈릴수록 북한이 처한 상황과 조건을 보아야 한다. 북한의 ‘정치체제’나 2012년부터 보여준 지도자 김정은의 ‘행동들’은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게다가 앞서 본 것처럼 왕조체제의 관성도 작동하고 있지 않나.

의도를 확신하기 어렵다면 우리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그저 미래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반도가 안정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우리가 예상해 볼 수 있는 그림은 두 가지다. 좋은 그림과 나쁜 그림. 먼저 장밋빛 그림들. 2차 북미정상회담과 북미간의 대화 재개와 비핵화프로세스운영. 이 과정 중 남북 간의 도로-철도 연결과 남북경제협력재개. 이후 중국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와의 연결과 북한과 지역통합 연계. 반대로 암울한 그림들. 미국의 뜨뜻미지근한 반응과 미국의 전략적인 중국 연계와 중국에 대한 북한 문제 부담 압력. 남-북-미 3자게임의 남-북-미-중 4자게임화와 전략적 복잡성의 증대. 이에 따른 북한의 한국에 대한 강력한 압박. 이어지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 중국과 북한의 한국에 대한 동시적 압박과 강요. 게다가 다자주의에 따른 한국외교의 주변화가능성.

항상 그렇듯이 좋은 그림대로 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문제는 나쁜 그림이다.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화해보자. 중개자(mediator)의 입장에서. 여기서 중개(mediation)는 중재(arbitration)와 다르다. 중재는 분쟁당사자들이 상호 문제해결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제 3자가 제시한 대안이 분쟁당사자들 사이에서 구속력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중개는 분쟁당사자들에게 제 3자가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2017년까지 북한과 미국 간의 극한 대립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문재인정부의 ‘운전대’외교는 중개(mediation)외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중개자의 입장에서 보자. 중개자의 중개가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분쟁당사자가 가진 ‘목적’이 강력하지 않아 당사자 간의 갈등 해결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둘째, 중개가 작동하게 하기 위한 유인책으로서 ‘정치적 자산’이 많아야 한다. 셋째, 다른 국가들의 ‘지원’이 있으면 좋다.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럼 예상되는 중개가능성은 어떤가? 첫째 조건. 북한에게 핵문제는 절체절명이다. 오죽하면 한국전쟁시기부터 김일성이 핵무기에 관심을 가졌겠는가! 김정일과 김정은도 동일하다. 이들 부자는 수많은 제재를 비웃듯이 6차례의 핵실험을 거쳤다. 둘째 조건. 북한에 다자적인 국제제재가 겹겹이 가해진 현재 상황에서 대한민국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은 그리 많지 않다. 셋째 조건. 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 한 다른 국가들의 지원은 그저 수사에 불과할 뿐 이다. 2018년 유럽 국가들을 보라. 그들은 한국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에 대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개자. 2018년, 대한민국은 그 어려운 길에 들어섰다. 2019년, 대한민국은 어려운 중개자의 길 한복판에 서있다. 어느 쪽 길도 열려있다. 그러니 더 많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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