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9) / 공소장일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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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9) / 공소장일본주의
  • 신종범
  • 승인 2018.12.2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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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가천대 겸임교수
http://nulimlaw.com/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군법무관 시절 국방부의 ‘군내 불온서적 차단지시’(2008년 국방부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베스트셀러와 청소년 권장도서 등이 포함된 23종의 서적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군내 차단 대책을 지시하였다)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낸 적이 있었다. 당시 국방부는 필자를 포함하여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들을 징계했다. 그때 필자가 받아본 징계혐의사실 앞부분의 상당부분은 이적단체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회연합)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총련이 장병들에 대한 반정부·반미 의식화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교양도서(23권)를 군에 보내는 운동을 전개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필자는 21세기 우리 군에서 불온서적을 지정하여 이를 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고 장병들의 읽을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재판청구권의 행사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을 뿐인데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한총련의 책보내기 운동 등이 징계혐의사실로 들어가 있었다. 징계사유와 양정을 판단할 징계위원들에게 징계당사자에 대한 심각한 예단을 가지게 하는 내용이었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들이 마치 한총련이라는 이적단체에 동조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처럼 징계혐의사실이 작성되어 징계위원들에게 제출되었으니 징계의 결론은 이미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부 군법무관에게 유례가 없었던 파면처분이 이루어지는 등 헌법소원을 제기한 전원의 군법무관들에게 징계처분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 징계처분은 거의 10여년이 지난 올해 법원의 재판으로 취소되었다.

우리 형사소송법의 원칙 중 ‘공소장일본주의’라는 원칙이 있다. ‘공소장일본주의’란 검사가 기소할 때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공소장 외 법원이 예단을 갖게 할 서류나 기타 물건 등을 첨부·인용해서는 안되고, 공소사실과 관련 없는 피고인의 행위를 기재하여서도 안된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254조는 공소제기 시 공소장에 기재할 내용을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규칙 제118조는 ‘공소장일본주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즉, 형사소송규칙 제118조 제2항은 "공소장에는 제1항에 규정한 서류 외에 사건에 관하여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공소장일본주의’는 군사법원법 제296조를 통하여 군사재판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렇게 ‘공소장일본주의’를 규정한 취지는 공소사실과 무관한 피고인의 경력이나 환경, 성행, 사회적 또는 정치적 배경 등이 기재되거나 증거조사를 거치지 않은 서류 등이 첨부되면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법관에게 선입견이나 예단을 심어줄 수 있기에 이를 배제하여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앞에서 비록 징계절차이긴 하지만 단순히 헌법소원청구인이었던 군법무관들에 대하여 마치 한총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징계혐의사실이 작성되어 징계위원회에 제출됨으로써 징계위원들은 이미 예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형사절차에서 이런 예단배제를 위한 ‘공소장일본주의’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군사독재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등 시국사건에서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배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공소사실과 무관한, 피고인에게 빨간색을 덧칠하기 위한 온갖 내용이 적시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또 다시 ‘공소장일본주의’ 논란이 일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과 관련하여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판준비기일에서 변호인이 ‘공소장일본주의’ 위배를 주장하였다. 변호인은 법관에게 예단을 심어줄 수 있는, 공소사실과 무관한 내용들이 상당 부분 들어 있어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검찰은 사건의 특성상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위해 사건의 경위, 배경 등이 기재된 것일뿐이라고 주장한다. 양측 주장 모두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제 그 판단은 법원 몫으로 남겨져 있다. 보통 ‘공소장일본주의’가 문제되어도 대부분 변호인은 이를 주장하지 않는다. 주장하더라도 법원은 공소기각 대신 관련 부분을 삭제토록 하고 재판을 진행한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이와 함께 ‘공소장일본주의’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정립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이다. 후회와 아쉬움은 뒤로 하고, 새로운 희망과 다짐으로 새해를 맞이했으면 한다. 모두 올 한 해 고생 많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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