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생생한 형사법 사례와 해결- 정치자금법위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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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생생한 형사법 사례와 해결- 정치자금법위반 사건
  • 이창현
  • 승인 2018.12.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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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교수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3도11650 전원합의체 판결 -

[사건 개요]

(1) 건설회사 대표 A가 분양대금 편취혐의로 구속 기소되고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수감생활을 하던 중 검찰에 A씨가 전 국무총리 H에게 정치자금을 여러 차례 주었다는 제보가 있었다. 검찰은 위 건설회사의 회계장부를 통해 A에게 사용처가 불분명한 비자금의 사용내역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면 그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추가 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고, 난처한 상황에 놓인 A는 가석방도 기대하면서 H에게 정치자금을 3회에 걸쳐서 주었다고 진술하게 되었다.

(2) 그리하여 이미 ‘5만 달러 뇌물수수’사건으로 재판을 받아 무죄가 확정된 H는 A로부터 ① 2007. 3. 31.부터 2007. 4. 초순경 사이 H의 아파트 단지 부근의 구 도로에서 여행용 가방에 담긴 현금 1억5,000만원, 액면금 1억원의 자기앞수표 1장 및 5만 달러(‘1차 정치자금’)를, ② 2007. 4. 30.부터 2007. 5. 초순경 사이 H의 아파트에서 여행용 가방에 담긴 현금 1억3,000만원 및 17만4,000달러(‘2차 정치자금’)를, ③ 2007. 8. 29.부터 2007. 9.초순경 사이 H의 아파트에서 여행용 가방에 담긴 현금 2억원 및 10만3,500달러(‘3차 정치자금’)를 기부받아 합계 약 9억원 상당의 정치자금을 수수하였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가 되었다. 이때 H의 비서였던 G도 A로부터 현금 5,500만원을 수수하고, 신용카드를 제공받아 29,352,040원 상당의 물품을 취득하거나 용역을 제공받고, 버스 및 승용차를 무상 제공받아 사용하는 등 정치자금을 기부 받은 혐의로 함께 기소되었다.

(3) 법정에서 검사는 H에 대한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직접증거로 ① H에게 직접 9억원을 전달하였다는 취지의 A의 검찰 진술조서를 제시하고, 이를 보강하는 증거로 ② 자금조성을 담당하였던 건설회사 경리부장의 검찰 및 법정 진술(A의 여러 언행을 통해 H에게 정치자금을 주는 것으로 당연히 알았다는 취지의 일관된 진술), ③ 경리부장이 작성한 채권회수 목록, 접대비 세부내역, B장부, ④ 9억원 상당의 자금조성 및 환전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금융자료, ⑤ 3억원의 현금과 달러를 담았다는 여행용 가방(캐리어) 구입 내역 및 그 가방에 현금과 달러를 담는 과정을 촬영한 시연 사진, ⑥ A의 휴대전화 복구내역 등을 제시하고 있으며, 9억원 수수사실을 추단할 수 있는 정황증거로 다음과 같은 간접사실들, 즉 ⑦ A가 이후에 H로부터 2억원을 반환받은 사실, ⑧ A가 H에게 전달하였다는 정치자금 중에 포함된 1억원권 수표를 H의 동생이 전세자금으로 사용한 사실, ⑨ H 및 H 남편의 계좌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다액의 현금이 입금된 사실, ⑩ H의 아들 유학자금으로 출처를 알 수 없는 다액의 달러가 송금된 사실, ⑪ A가 구속된 이후 H에게 3억원을 요구하였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이 사건의 폭로를 계획하고 있었던 사실, ⑫ A가 H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였다는 소문이 건설회사 직원들과 채권자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던 사실 등을 제시하였다.

제1심에서 A는 검찰 진술의 진정성립과 임의성을 인정하고, H에게 주기 위하여 자금을 조성하였던 것은 사실이나 1차 정치자금에 해당하는 3억원 상당은 G에게 빌려주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 사용하였으며 H에게는 전혀 준 사실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하였고, 이에 따라 제1심에서는 A의 법정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며 H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에서는 오히려 A의 검찰 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H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하였다.

[법적 쟁점]

(1) H는 당시 지방선거에서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고, 5만 달러 뇌물수수사건의 제1심 재판 중에 있는 상황에서 나쁜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정치적 목적에 의한 소추재량권 남용’임을 주장하였고, 또 금품교부 일시와 장소, 방법 등이 구체화되지 못해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지장을 준다며 ‘공소사실 불특정으로 인한 방어권침해’를 주장하였지만 제1심에서부터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핵심은 A의 검찰 진술과 번복된 법정 진술 중에 어느 것에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있었다.

(2) 대법원은 견해가 나뉘어 전원합의체로 판단을 하였다. 1차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대법관 전원 일치의견으로 항소심과 같이 유죄를 인정하였고, 2차와 3차 정치자금에 대해서 다수의견(8인 의견)은 유죄를 인정하였으나 소수의견(5인 의견)은 이에 반대하였다.

먼저 1차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A의 검찰 진술에 객관적인 증거와 정황사실에 의하여 그 신빙성이 뒷받침된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① H의 동생이 1억원권 자기앞수표를 전세자금으로 사용한 것이 분명히 확인되었고, ② 비록 G를 통해 2억원이 A에게 반환되긴 하였으나 H의 A에 대한 병문안 직후에 반환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반환 직후에 H와 A가 2회나 직접 통화한 것을 보면 2억원의 반환도 H가 한 것으로 보이기에 H가 A로부터 1차 정치자금을 받았음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2차와 3차 정치자금에 대해서 다수의견은 경리부장의 진술과 B장부의 기재 등은 경리부장이 A의 지시로 구입한 여행용 가방의 영수증 등 다른 증거들 및 9억원 중 3억원이 H에게 전달되었음이 객관적으로 나타난 사정 등과 결합하여 A의 검찰 진술 중 어느 특정한 부분만이 아닌 진술 전체의 신빙성을 보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치가 있으므로 경리부장의 진술이나 B장부 등의 기재 내용을 작위적으로 나누어 그 신빙성 내지 증명력을 따로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뿐더러 근거도 없다며 1차 정치자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A의 검찰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모두 정치자금의 수수를 인정하였다.

그런데 소수의견은 A가 2010. 3. 31. 서울구치소로 이감되어 2010. 4. 1.부터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제1심 증인신문기일인 2010. 12. 20.까지 70회 이상 출석하여 조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음에도 2010. 4. 4.부터 2010. 5. 11.까지 H에 대한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1회의 진술서와 5회의 진술조서만이 작성되었을 뿐 그밖에 60회가 넘게 검찰청에 출석하였음에도 그동안 A가 어떠한 조사를 받고 어떠한 진술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아무것도 없는 등 검찰의 A에 대한 일련의 증거수집과정이 수사의 정형적 형태를 벗어나 수사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그 과정에 허위가 개입될 여지도 있다고 할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얻어진 A의 검찰 진술은 그 신빙성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한 함부로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보았다. 또 A가 자신의 횡령죄 처벌을 면하거나 감경시키고 회사의 경영권을 되찾을 생각으로 H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여부나 그 규모 등과 관련하여 허위나 과장진술을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결국 A의 검찰 진술을 믿기가 어렵다고 하였던 것이다.

H는 항소심에서 선고된 징역 2년형이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확정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문재인 정부 시작 얼마 후에 만기 출소하였다.

(3) 위 사건은 제1심 선고가 2011. 10. 31.이었고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2015. 8. 20.이므로 제1심 재판기간까지 합치면 재판이 무척이나 오래 지속되었고, 덕분에 H는 그 사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임기 4년의 대부분을 누리기도 하였다. 최근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보면서 정치인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위하여 정치자금 규제가 완화되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위 사건에서 정치자금으로 받은 돈의 대부분을 정말 정치를 위한 자금이 아니라 아들의 해외유학 비용이나 동생의 전세자금 등 개인적인 사용이었음을 살펴보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자금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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