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화제의 미국판례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신체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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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화제의 미국판례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신체의 자유
  • 전윤성
  • 승인 2018.12.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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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성 변호사
사단법인 크레도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Han Kim v.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미국 연방 항소법원 판례를 통해서 본 신체의 자유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다 2000년에 북한 공작원에 의해서 강제 납북된 김동식 목사는 4년 동안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다가, 김 목사를 납치한 중국 동포 류 모씨가 국내에 들어와 있던 중 2004년 공안당국에 체포되면서 강제 납북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정부는 김 목사의 송환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05년에 미국의 국제인권단체인 ‘쥬빌리 캠페인(Jubilee Campaign)’은 류씨에 대한 공소장을 증거로 하여 유엔인권위원회의 ‘강제적 또는 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에 김 목사에 대한 진정을 제기하였다. 납치 당시 대장암 수술을 받고 인공항문을 달고 있는 중환자였던 김 목사는 북한에서 각종 고문 후유증, 폐쇄 공포증에 의한 우울증, 영양실조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동식 목사의 유가족은 2009년 11월에 미국 워싱턴 DC 연방 지방법원에 북한 정부를 상대로 김 목사의 납치와 고문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칙적으로 해외 국가기관은 외국주권면책특권법(Foreign Sovereign Immunities Act, FSIA)에 따라 주권면제가 적용된다. 그러나, 국가 주도의 테러(state-sponsored terrorism)와 관련된 고문, 비사법적·자의적 처형, 인질 범죄 등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이 있는데, 이것이 소송의 근거가 되었다. 소송 대리는 이스라엘 인권단체인 ‘슈랏 하딘(Surat Hadim)’이 맡아 주었다.

북한은 소송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았고, 법정에 출석하지도 않았다. 원고는 궐석재판을 청구하였으나, 1심 법원은 북한이 김 목사를 납치한 후 정치범 수용소인 ‘관리소’에 감금하였고, 고문으로 살해하였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면서 기각 판결을 내렸다.

원고는 항소하였고, 연방 항소법원은 2014년 12월에 “북한이 정치사상범들을 납치·고문·살해해 온 것은 사실이고, 그런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극한 상황에서, 주지하는바 김 목사의 납치와 사망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판결하였다. 그리고, 1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항소법원도 1심 법원과 같이 김 목사의 납치범에 대한 한국 서울중앙지방법원의 2005년 판결을 증거로 채택하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판결문에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첩보원이었던 피고의 증언, 그리고 직접적으로 납치에 가담하였던 전 북한 요원 한 명의 증언에 기초하여 김동식 목사의 납치와 과거 일본국적을 가졌던 량추옥 씨와 그 가족, 그리고 북한 주민에 대한 기타 12건의 납치 등 북한의 납치 행위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였고, 피고에 대해 징역 10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1심 법원이 이 증거 하나만을 채택하고, 이 증거만으로는 궐석 재판을 내리기에는 부족하다고 한 것과는 달리, 항소법원은 추가적으로 2명의 전문가의 증언을 증거로 수용하였다.

북한 인권 전문가로서 정치범 수용소인 관리소에 수감 되었던 수십 명의 탈북자를 인터뷰한 데이비드 호크 교수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은 굶주림, 폭행, 강간, 강제 낙태 등 각종 가혹행위를 당한다는 증언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김 목사가 관리소에 수감되어 가혹행위로 인해 사망하였을 것으로 믿는다고 진술하였다. 관리소에서는 매일 최소 12시간의 강제 노동을 해야 하고, 완전히 눕거나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좁은 독방에 감금 되어 혈액 순환 장애와 다리 수축의 고통을 받게 되며, 수 주 후에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증언하였다. 또 다른 전문가인 더니스트 다운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이사는 그가 들었던 1000명의 북한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의 증언 중에 고문을 당하지 않은 사례는 단 한 건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증언을 하였다.

김 목사에 대한 비사법적 처형 사실에 대해서 법원은 원고가 김 목사가 적법절차 없이 처형되었다는 점만 입증하면 충분하다고 판시하였고, 이에 호크 교수는 김 목사가 굶주림으로 사망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법원은 북한이 김 목사가 스스로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을 하지 못하게 하였고, 더욱이 북한 정부가 응소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원고가 북한의 책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증거들을 제출했다고 보았다. 북한이 국경 밖으로 어떤 증거도 유출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반적인 판결 기준을 따를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항소법원은 북한 정권이 김 목사를 고문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이 논리적인 결론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항소심 판결에 따라 재개된 소송에서, 2015년 4월 연방 지방법원은 북한에게 징벌적 배상을 포함하여 총 3억 3천만 달러의 배상금을 김 목사의 아들 김한 씨와 동생 김용석 씨에게 배상하라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미국 법원이 개인을 납치하여 행방을 알 수 없게 한 외국 정부에게 그 사람이 살해되지 않았음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고 한 최초의 판결이다. 또한, 북한뿐만 아니라 납치 살해 등 테러행위를 일삼은 정부를 상대로 피해자 가족들이 소송을 할 수 있는 길을 넓혔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김동식 목사의 납치와 살해에 대하여 그의 조국이 아무런 송환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추후에 사법적 구제를 받을 길 조차도 마련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미 대통령과 부통령 부부가 꼭두새벽에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미국인들을 공항까지 마중 나가는 모습을 보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지도자가 소중히 여기는 미국 민주주의 제도의 강점을 부러움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제가 미국 국민이란 게 정말 자랑스럽다.”라고 당당히 말했던 한 미국인의 인터뷰 내용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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