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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법으로 양념한, 맛있는 무비토크- 방황하는 칼날
김주미 기자  |  hova@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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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1  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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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변호사와 한 명의 영화감독. 그들의 영화 이야기에 법이라는 양념을 치면 제법 맛깔이 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세 명의 영화 수다는 과연 달랐다.
초등학교 동창인 이병화 변호사와 이정향 영화감독, 한국사내변호사회 집행부로서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춘 이병화 변호사와 이소림 대표, ‘영화’를 전면에 내세워 일을 하고 있는 이정향 감독과 이소림 대표. 이들은 마치 세 원의 교집합을 표현하는 벤다이어그램처럼 서로 잘 어우러졌다.
이 세 명의 영화 수다, ‘법으로 양념한, 맛있는 무비토크’ 여덟 번째 이야기는 이정호 감독의 <방황하는 칼날>이다.
취재, 정리 김주미 기자

이소림 (이하 ‘소림’)
위드윈필름 대표이사, 변호사, 前CJ E&M 영화사업부문 전략기획팀장

이정향 (이하 ‘정향’)
영화감독,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 「오늘」

이병화 (이하 ‘병화’)
법무법인 광장, 前한국사내변호사회장, 前영화진흥위원회 고문 변호사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왼쪽부터 이정향 감독, 이소림 대표, 이병화 변호사


제8장. 이정호 감독, 정재영 주연 <방황하는 칼날>

범죄, 스릴러/ 한국/ 122분/ 2014. 4. 10. 개봉
출연 : 정재영(이상현), 이성민(장억관) / 청소년 관람불가
줄거리 : 한 아이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을 잃은 피해자가 되고, 이제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버려진 동네 목욕탕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여중생 수진. 아버지 상현(정재영)은 하나뿐인 딸의 죽음 앞에 무력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상현에게 범인의 정보를 담은 익명의 문자 한 통이 도착한다. 그리고 문자 속 주소대로 찾아간 그곳에서, 소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죽어가는 딸의 동영상을 보고 낄낄거리고 있는 철용을 발견한다. 순간, 이성을 잃고 우발적으로 철용을 죽인 상현은 또 다른 공범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무작정 그를 찾아 나선다. 한편 수진이 살인사건 담당 형사 억관(이성민)은 철용의 살해현장을 본 후, 상현이 범인임을 알아차리고 그를 추격하기 시작하는데...
- 출처 : 네이버 영화 -

 

   
 

병화
이 영화가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소재는 사적 복수가 아닐까 생각해요. 거기에서 파생되는 게 ‘용서’의 문제인데, 이정향 감독이 영화 <오늘>을 만들기 위해 천착했던 문제이기도 하죠.
영화의 주인공처럼 딸 가진 아빠 입장에서... 그러고 보니 이 중에 딸 가진 사람은 저 혼자군요?(웃음) 어쨌든, 쉽게 이입이 되더라구요. ‘저거 죽이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같이 손에 땀을 쥐고 영화를 봤어요.

소림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을 빽빽하게 채워서, 긴장이 고조된 채로 스토리가 쭉 흘러가게 만들었어요. 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 등장인물의 고뇌를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주기보다는, 급박하게 전개되는 영화의 흐름에 관객들도 덩달아서 따라가도록 만들었죠.

정향
<오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방황하는 칼날> 소설이 나와서 바로 읽었어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딜레마적 상황에 처한 인간을 다뤄서 흥미로워요.
그 뒤 일본에서 영화로도 나왔고, 한국 영화는 그로부터 5년 뒤에 나왔어요. 두 작품의 스타일이 많이 달라요. 일본판은 심심할 정도로 여백이 많고, 심지어 여행 화보집인가 싶도록 자연 풍경 묘사가 지나치죠. 거기에 비하면 한국판은 상황도 빽빽하고 대사로 많은 걸 쏟아내요. 다만, 제목이 왜 ‘방황하는 칼날’인지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더라고요.

소림
아 일본에서도 만들어졌었군요! 한국판에서는 보다 장르적으로 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성공적인 리메이크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왜 ‘방황하는 칼날’인지는 저도 궁금하네요.

정향
일본 영화에선 대사로 나와요. 피해자 소녀의 아버지가 살인범 소년 중 한 명을 죽이고 나머지 한 명도 죽이려고 찾아 나서잖아요. 경찰에게는 살인범을 아버지보다 먼저 찾아내서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죠. 그때 젊은 형사가 선배한테 물어요. “우리 경찰이 하는 일이 고작 그 살인범을 복수로부터 보호하는 건가요?” 선배 형사는 그게 이 나라의 사법제도라고 단호히 답하죠. 젊은 형사는 다시 물어요. “우리 경찰은 시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법 자체를 보호하는 겁니까?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필요도 없이?” 그러자 선배가 “그렇게 방황할 거면 수사에서 빠져” 라고 합니다.

 

   
 


병화
아 그런 의미에서 나온 제목이라면 여기서 ‘칼날’은 사법권을 의미한다고 해도 되겠어요. 딜레마적 상황에 처한 사법권을 제목으로 삼은 거군요. 사실 엄연히 사법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적 복수가 얼마만큼 허용될지, 그 정당성의 문제는 늘 논란을 낳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소림 대표가 이 작품을 성공한 영화로 본다고 하니 조금 의외네요. 소재도 무겁고, 청소년 관람불가라 흥행 요소는 거의 없어 보이는데요.

소림
제가 전 직장 근무할 때는 파이낸싱 담당이었지만 지금은 기획 제작을 하고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 각색 방향이나 완성도면에 좀 더 비중을 두어서 영화를 보게 되더라고요.

정향
요즘 심심찮게 제기되는 사회 문제가 미성년자의 형사 처벌 수위잖아요. 이 영화가 여러 등장인물들을 통해 계속 던지는 질문의 핵심 소재이기도 한데, 소년범에 대한 가벼운 처벌이 과연 올바른가... 너무 가벼워서 죄책감마저 없애는 건 아닌가...

병화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사건을 떠나서는 ‘소년이니까 경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원론적으로 말들 하지만, 아까도 이야기했듯 자신의 아이에 대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에요. 저부터라도 “내 딸이 죽었는데 너도 죽어야 한다”라고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인간적으로.

정향
일본은 소년범에 대한 처벌이 한국보다는 좀 더 엄격할 걸요. 한국은 소년범 처벌 연령이 몇 세부터죠?

소림
형사미성년자는 14세인데 이걸 하향할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요. 중학생만 되어도 성인처럼 형사처벌을 받는 건데, 찬반 대립이 팽팽하죠.

병화
외국은 10세부터인 곳도 있다고 해요.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14세는 꽤 높은 편이라고 볼 수 있죠.

정향
일본은 1996년까지 16세였다고 해요. 그런데 1997년, 14세 소년이 6학년짜리 아이 머리를 잘라서 동네 학교 교문에 걸어놓고, 시신 일부를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면서 주변에 자랑까지 한 경악스런 일이 일어났어요. 또 망치로 다른 애를 죽이기도 했고요. 그 사건 때문에 소년범 연령이 14세로 하향됐죠.
그 후로 6년 뒤인 2003년에는 12세 소년이 네 살짜리 아이를 칼로 난자하고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여요. 그때 또 한 번 하향 조정이 돼서 12세가 됐다고 해요.

소림
일본이 문제 생길 때마다 즉각 그에 맞게 법을 바꾼 거군요.

정향
위의 14세 소년은 의료 소년원에서 정신과 치료만 받고 2005년에 사회로 복귀. 2년 전에는 자신의 범행을 책으로도 출간했어요. 유족들이 얼마나 기가 찰까...
요즘은 문제 제기를 청와대 사이트에 가서 청원의 형식으로 하잖아요. 이게 법 바꾸는데 효력이 있나요?

병화
법안은 국회의원이 제출하는 법안이 있고 행정부가 제출하는 법안이 있어요. 청원 올라온 것을 보고 관계부처가 법안을 만들어 올릴 수 있죠. 요즘은 행정부에서 제출하는 법안이 상당히 많거든요. 물론 의결은 국회에서 해야 하지만요.

소림
지금 국민 정서는 함무라비 법전에 나온 것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여야 한다는 쪽에 가깝죠. 국민 눈에는 법이 늘 가해자들을 그 죄에 비해 가볍게만 벌한다고 여겨질 거예요.

정향
그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게 정확한 응보를 말하기보다 ‘눈 뺐으면 눈만 빼지 그 이상은 하지 말라’는 과잉 복수의 제한 또는 경계점을 설정한 거라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병화
어떻게 됐든 사적 보복의 결과는 아름답지도 않고 행복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가 개입이 적절하고 유효하게만 있어준다면, 심적으로는 평생 괴로울지 몰라도 영화처럼 피해자 가족이 직접 복수를 하다가 그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는 파국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소림
딸 죽어가는 장면을 직접 본 어느 아버지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을까요.

정향
일본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칼로 조용히 죽이는데, 한국 영화에서는 야구 방망이로 요란하게 죽여요. 더 잔인한데 정서의 차이인지, 몇 년의 시간차를 둔 세태의 변화인지 모르겠어요.

병화
한국 사람들이 또 성정이 불같잖아요. 만일 우리 사회에 사적복수가 허용된다면 순간적인 분노감 해소를 위해 자신의 인생까지 파국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이 생길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사적복수를 규제하고 국가 개입을 원칙으로 하는 건 정말 옳은 방향이라고 보여요.

정향
피해자 유족들의 말인데요, “우리가 원해서 직접 복수하려는 게 아니다. 사회가 나서주지 않으니까. 사회가 나만큼 화내주지 않으니까 내가 직접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사회가 나처럼 울어주고 나처럼 화내주었다면 우리의 아픔과 상처도 더 빨리 아물었을 것이다.” 공감이 가요.

소림
정말 가슴 아프죠. 세월호 사건을 두고도 그런 얘기들을 하잖아요. 우리가 조금 더 깊이 공감해 주고 유족들과 마음을 같이 해 주었다면, 우리 사회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이 정도의 사회적 비용과 대가를 들이지 않았을 거라는 견해들이 많죠.

병화
그런데 이 영화에선 가해자 부모들의 미묘한 관점 차이를 보는 것도 흥미롭더라구요. 자식을 위하는 마음들이 그 입장에 따라 다 다르게 표출되잖아요. 피해자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가해자 학생의 부모들이 “착한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다”며 울부짖는 장면이나, 범행을 방조한 혐의를 받는 학생의 부모가 그 자식을 보호하고픈 마음에 “쫓기고 있는 다른 가해자 학생이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장면도 인상 깊게 다가오더군요.

 

   
 

정향
이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저는 소년범과 그 부모를 함께 벌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문제 소년 뒤에는 문제 부모들이 존재하거든요. 소년만 교화할 게 아니라 부모가 교화되어야 근본적으로 문제가 바뀌죠. 일본만 해도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흉악범이 잡히면 그 부모가 나와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어요.
제가 소년원에도 가봤는데, 퇴원하면 무조건 집으로 돌려보낸대요. 폭력적이고 문제 있는 부모 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그 소년들이 결국 성인 범죄자로 컴백한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할까요?

소림
한국의 부모들은 대개 자녀가 작은 잘못을 할 땐 엄히 혼내다가도, 감당할 수 없는 큰 일이 벌어지면 감싸는 경향을 보이곤 하죠.
아이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로 문제인 것 같아요. 연령이 어리니까 그렇겠지만, 자기가 저지른 일의 중대함을 인식 못하고 자신에게 향해지는 손가락질, 그걸 더 기분 나빠하죠. 그 작은 손가락질 앞에 오히려 뻔뻔해지잖아요. 철이 없으니까.

정향
부모의 비정상적인 자식 사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인데요, 몇 년 전 신문에서 봤어요. 방위병 아들이 귀찮다고 툭하면 출근을 안 해서 엄마가 잔소리를 했더니 아들이 엄마를 칼로 찔렀어요. 근데 엄마는 칼에 찔린 상황에서도 아들한테 도망가라고 하고 마치 강도를 당한 것처럼 집안을 어질러놓고 신고를 해요. 엄마의 수술실에 온 가족이 모였는데도 연락이 안 닿는 아들을 수상쩍게 여긴 경찰이 아들을 체포하고 밤새 취조를 했는데 아침에 아들이 형사에게 핸드폰을 빌려 달라더래요. 엄마 수술 경과가 걱정되어서 그러나보다 하고 줬더니 여친에게 “좋은 아침이야. 잘 잤어?” 라고 문자를 보내더래요.

병화
저도 얼핏 듣기로는 고등학생 된 아들에게 맞고 지내는 엄마들이 참 많다고 해요. 사랑할수록 자녀를 제대로 혼내고 반성하게 해야 하는데, 자식을 보호한다는 맹목적인 사랑 때문에 한두 번 비정상적인 상황을 용인하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그러한 관계가 굳어지는 것 같아요.

소림
가족이라는 게 참 특수해서 그런 것 같아요. 남한테 그런 대응을 당하면 도저히 못 견딜 일도, 가족이니까 참고, 또 그러다 보니 정말 이상한 관계들이 가족 간에 형성이 되죠. 아내가 남편을 참아주고 남편이 아내를 참아주는 그 기이하게 뒤틀린 정서 관계가 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말예요.

정향
부모한테 받은 분노를 부모한테 되 쏟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요. 대체로 무고한 제3자에게 화풀이하잖아요. 착하고 만만한 친구를 왕따 시키고, 괴롭히고, 폭행하고...
부모한테 잔뜩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항상 해주던 관습적인 말이 있죠. “부모님은 너를 사랑한다.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이러니 아이들이 미치는 거죠.
“자식을 사랑하지 못하는 부모도 있다. 그건 너희 잘못이 아니니까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에 집착하지 말고, 그만큼 자기가 자신을 더 사랑하자.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 주면 너희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병화
미성년자가 저지른 강력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소년법 폐지 또는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요. 성인보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학생들에게 관용의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형벌 강화 못지않게 교화나 예방 강화에 초점을 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청소년은 아무래도 미성숙하고, 살아갈 날이 너무 많잖아요. 한 번의 실수로 성인과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보다는, 우리 사회가 이들을 최대한 생각하는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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