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E] 박연철, 엄상익 변호사의 담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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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E] 박연철, 엄상익 변호사의 담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8.12.01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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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Q. 지난 11월 1일, 대법원(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재형)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유죄로 판단했던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고 종래 대법원 판례를 변경했습니다.
다수의견을 낸 8명의 대법관은 “병역의무자가 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정이 그로 하여금 병역의 이행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수 있고, 그 사정이 대다수의 다른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습니다.
나아가 “소극적 양심실현의 모습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표출한 이들에게 형사처벌 등 제재를 통해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라고 설시했습니다.
법원은 또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의 심리와 판단 기준으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할 것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을 것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성질일 것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을 것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아울러 살필 것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이러한 양심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하면, 검사가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할 것 등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두 변호사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박연철
지난 6월 헌법재판소 판결에 이어 이번에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이 이렇게 나온 것을 아주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남북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큰 진전이죠. 군 인권뿐만 아니라 우리 법 전반의 인권 문제로서 아주 중요한 화두가 되어 온 쟁점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분들은 많은 고통을 당하고 눈물을 흘렸죠. 우리 사회가, 어쩌면 유별나다고도 할 수 있는 이분들을 돌아보게 됐다는 것, 이들의 양심을 인정하게 됐다는 것, 그것이 저는 굉장한 진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타인의 눈물은 그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도 온전히 헤아리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래도 저는 인권변호사로 살아오면서 많은 경우들을 만났고, 형식적이고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는 법의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양한 인간이 존재하는데, 법은 그들 모두가 인간다울 수 있도록 대해주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대법원 판결이 ‘양심’이라는 이 고귀하고 숭고한 단어에 좀 더 주목하게 됐다는 것도 아주 큰 성과이자 진보라고 저는 평가합니다. 지금은 소극적으로 병역을 거부한 것만이 문제가 됐는데, 좀 더 다양한 양심, 자신의 일생을 바치고 때로는 인생의 궤적을 바꾸게 만드는 인간의 양심이라는 것에 우리가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적 사유는 아니지만 평화를 지향하고 사랑하며 이를 인생에 실현하고자 하는 양심에 기하여 병역을 거부한 오태양 씨 사례도 우리 사회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엄상익
박연철 변호사님도 마찬가지지만 저도 최전방에서 근무를 한 사람입니다. 나는 특히 남들의 두 배인 5년이라는 시간을 군복무로 보냈어요. 저는 솔직한 심경으로, 최전방에서 근무하시고도 이번 판결을 반긴다고 말씀하시는 박연철 변호사님이 아주 천사 같은 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군사법원 판사를 오랫동안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병역거부자들을 재판했고, 판결을 내리기 위해 그들의 양심을 깊이 생각했죠. “창과 칼을 쳐서 낫과 보습을 만들라”는 성경 말씀을 삶에서 실현시키려는 그들의 양심을, 나 또한 똑같이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요.
먼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내가 만난 모든 병역거부자들이 하나 같이 무척 착한 사람들이었단 것입니다. 순진하고 성실한데, 심지어 감옥 안에서까지 눈에 띄게 성실해서 그것 때문에라도 이들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솔직하게, 그들을 대하는 내 안에 어떤 마음이 있었냐면 “그럼 나는 뭐야, 나도 대체복무 하고 싶었어. 고시공부 하다가 군에, 최전방에 끌려와 있으려니 매일 같이 탈영하고 싶었어.”라는 마음이 올라와요. 사람의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옭아매는 제복이 싫고, 계급장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대우하는 군대라는 집단이 양심적으로 너무 싫었습니다.
내가 젊은 시절 군판사로서 법대 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형을 선고하면서 한 말은 이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과 가르침이 여러분의 양심인지 의문이다. 왜 굳이 헌법이 국민의 의무로 정하고 있는 국방의 의무에서만 예외를 주장하려는 것인가.”
이번 대법원 판결은 법 논리적으로도 완벽히 수긍하기 어렵단 생각이 들어요. 그저 시류에 따라 ‘이들을 인정하기 위해’ 추상적인 표현들로 억지로 짜 맞춰 법 논리를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게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박연철
이분들이 인정받은 그 종교적 양심의 실체를 무엇이라고 보아야 할지에 대하여는 많은 의문들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종교 교리를 현대의 삶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의 타당성에 대해 의구심들을 제기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분들의 양심을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여전히 소수자의 지위에 머물러 있는 거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소수자의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소수자와 자신을 같은 비교선상에 올려놓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태도가 소수자 핍박의 불씨가 될 수 있고 역사는 반복적으로 그래 왔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 소수자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주장하는 목소리를 우리들은 한 발 물러나 더 귀를 기울여 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소수자 보호일 것입니다.
물론 편법과 왜곡의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단순히 부모가 여호와의 증인이니까 자식도 의무적으로 병역을 거부한다, 이런 차원에 그친 양심도 당연히 예외로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에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서 봐도 걸러질 양심입니다. 맹목적인 의무감과, 내밀하고 진정한 개인의 양심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하고 걸러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면밀한 검토와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이런 연구들은 이미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이 화두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양심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칼 같은 눈초리로 바라보며 검증하고 도려내려 하기보다는, 큰 틀에서는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되 소수의 거짓된 양심을 판별하겠다는 태도를 가져주는 데까지 우리 사회가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엄상익
저는 이미 쌓여 있는 이 연구들이 많은 부분에서 언어유희를 하고 있고 논리로 장난치는 격이라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해 ‘양심적으로’ 군대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박연철 변호사님께서는 한국에 애국자가 많아서 병역을 기피하려는 사람들보다 국방의 의무를 제대로 지고 내 가족과 이웃, 나라를 지키고자 마음먹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 하시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해야 하는 게 아니면 하는 사람은 대체 뭐랍니까. 더구나 청년들 사이에서 ‘감옥과도 같다’고 이야기 되는 군대인데 말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숫자가 아직까지는 극소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법의 이름으로, 양심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조금씩 조금씩 구멍을 내기 시작하면 결국은 누구나 빠져나갈 이름이 되어 버릴 겁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예외가 생겼다 하더라도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박 변호사님 말씀처럼 애국자의 심장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국방의 의무를 지기를 권합니다. 감옥 안에서도 사람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자기 발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습니까? 군복무 중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 음악 하고, 운동 좋아하는 사람 운동하고, 책 좋아하는 사람 책 보고, 상당히 발전적인 방향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제 대체복무의 범위와 정도에 대한 논의가 깊어지는데, 적어도 군 생활 이상의 사회 복무와 봉사가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외의 ‘특권’을 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총을 들고 쏘는 것만 빼줄 뿐, 국민들이 봤을 때 군복무의 형태와 정도 면에서 같다고 여겨질 내용으로 대체복무를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저는 이번 판결을 포용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정리 김주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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