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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7) / 사문화된 피의사실공표죄
신종범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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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30  10: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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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가천대 겸임교수
http://nulimlaw.com/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예전에 어느 초등학교 시험에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 이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많은 아이들이 '침대'를 답으로 선택했다. 아이들이 침대를 답으로 택했던 것은 당시 히트를 쳤던 광고의 영향이었다. 모 침대회사 광고에서 유명 배우는 다음과 같은 말로 광고를 끝맺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많은 순진한 오답자를 양산했던 그 시험문제 사건 이후 더 이상 그 광고를 보기 힘들어졌다. 요즘에 다음과 같은 역사 문제가 나온다면 어떨까? ‘사도세자의 배우자이고, 정조의 어머니로 궁중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한중록」을 지은 사람은?’ 답은 ‘혜경궁 홍씨’다. 그런데, 아마 ‘혜경궁 김씨’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필자도 요즘 좀 헷갈리고 있다. 언론에서 ‘혜경궁 김씨’가 너무나 많이 오르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경찰은 ‘혜경궁 김씨’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하여 허위사실 등을 유포한 혐의로 고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 부인 김혜경씨 사건에서 김혜경씨가 ‘혜경궁 김씨’ 계정의 소유자가 맞다고 하면서 김씨를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친절하게 '혜경궁 김씨' 계정의 주인을 김씨로 판단한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지난 2014년 김씨가 자신의 카카오스토리 계정에 올린 이 지사의 과거 대학입학 사진이 10분 뒤 ‘혜경궁 김씨’의 트위터에 올라왔고, 지난 2013년 이 지사가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 가족의 영정을 들고 있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혜경궁 김씨’는 다음 날 낮에 이 사진을 리트윗했고, 김씨는 그로부터 13분 뒤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이를 캡처해서 올렸으며, 또 ‘혜경궁 김씨’의 트윗을 작성한 휴대전화 기종이 바뀐 시점에 김씨 역시 휴대전화를 교체하였다는 것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경찰의 발표 이후 이 지사는 '혜경궁 김씨'가 올린 트윗 수만 개 가운데는 아내인 김씨가 계정 소유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많을 텐데, 경찰이 비슷한 몇 개만 찾아 꿰맞추고 있다면서 강하게 반발했고, 이 지사의 지지자들 또한 정권 실세에 의한 유력 정치인의 탄압이라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의 발표 이후 연일 이어지는 논란에 이제는 역사 속 인물 마저 ‘혜경궁 홍씨’인지 '혜경궁 김씨’ 인지 헷갈린다.

경찰이 그동안 많은 의혹이 있었던 ‘혜경궁 김씨’의 실체에 대하여 7개월이 넘게 조사하여 어느 정도 근거를 가지고 국민들의 관심사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행위가 법적으로 정당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경찰은 김씨의 피의사실을 떳떳이 공표했다. 우리 형법이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라고 하여 ‘피의사실공표’를 범죄로 규정하고 엄격히 처벌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규정이다. 증거에 의해 입증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 공표로 인하여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그럼에도 검찰이나 경찰이 유리한 방향으로 수사를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또는 특정의 정치 세력과 결탁하기 위하여 은밀하게 수사정보를 언론에 유포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김씨 사건처럼 범죄수사결과 발표나 기자회견 또는 보도자료의 형식으로 피의사실을 공공연하게 공표하여 언론에 보도되게 하는 것은 거의 관행처럼 되어버렸다. 이처럼 처벌 규정까지 있음에도 피의사실 공표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범죄의 주체가 수사기관이어서 고소, 고발을 당해도 기소하는 경우가 없고, 무죄추정의 원칙보다는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위법성조각사유를 거의 무한정 인정하기 때문이다. 실제 2013년부터 5년간 접수된 200여건의 ‘피의사실공표죄’ 사건 중 기소된 사건은 1건도 없고, 그 이전에도 ‘피의사실공표죄’ 관련한 형사판례를 찾아 볼 수가 없다. ‘피의사실공표죄’는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우리는 경찰,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폐해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에는 고 노회찬 의원이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 공표로 인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때마다 수사기관들은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개선 방안들을 내놓았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검찰이나 경찰은 법적 근거도 없는 내부 훈령을 근거로 자의적이고, 때로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피의사실공표를 해오고 있다. 그 때마다 국민들은 알권리 충족보다는 혼란과 분열에 빠진다. 특히, 공표된 피의사실이 재판에서 무죄로 확인되더라도 이미 훼손된 명예와 인격은 회복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히 법제처에서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고 한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을 어겼을 경우에 법률에 따라 엄격히 처벌하는 관행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무분별한 피의사실공표를 관행이라고 하면서 수사기관 스스로 살아 있는 형법 규정을 사문화시키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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