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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쌈 하나 싸드릴까요? : 쌈 싸기 교육과 공화(共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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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쌈 하나 싸드릴까요? : 쌈 싸기 교육과 공화(共和)
  • 신희섭
  • 승인 2018.11.30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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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18년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사회적 ‘갑질’이 아닐까. 4월. 조현민 상무와 대한항공일가. 10월. 양진호 회장의 폭행사건. 11월. 조선일보 방정호 전무의 초등학생 딸아이의 폭언.

갑질은 현재진행형이다. 2018년이 끝나려면 12월 한 달이나 남았으니 어떤 이슈가 또 터질지 알 수 없다. 다른 어떤 문제가 한국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줄지 모른다.

갑질. 한국 사회를 ‘갑’과 ‘을’로 나누는 이 담론은 굉장히 강력하다. 이것은 ‘금수저 vs. 흙수저’의 논리와 다르다. '금수저 vs 흙수저'는 계급 대립의 담론을 한국적 맥락으로 풀어쓴 것이다. 하지만 갑질은 계급을 초월한다. 갑질은 사회적 위계구조가 존재하는 모든 상황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전방위적이다. 쉽게 말해 흙수저가 흙수저에게 갑질을 할 수도 있다.

이 칼럼은 다음 두 가지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첫째, 갑질이 과연 존재하는가. 둘째, 갑질 담론이 사회 운영원리 중 위계성을 교묘하게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갑질’이란 개념은 진화해갈 것이다. 쉬운 개념이고 전 층위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초점을 두고 싶은 것은 갑질과 교육과의 관계이다. 갑질 모두가 잘못된 교육 탓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대한항공 일가 문제나 조선일보 손녀 문제는 가정교육의 문제이다. 양진호 회장 문제는 잘못된 사회화 즉 사회적 교육의 문제이다.

“교육이 갑질과 관련된다”는 너무 뻔 한 주장이다. 문제는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이다. 그래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해 본다. 그것은 바로 ‘쌈 싸주기’이다.

쌈 싸주기? 쌈 싸주기가 교육기능을 수행한다고? 어떻게?

쌈 싸주기가 공화(共和)의 개념을 가르칠 수 있어서 그렇다. 이 퍼즐을 풀어가 보자.

그런데 이야기를 하기 전 한 가지 전제. 이 칼럼은 등장인물인 나의 가족을 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확실히 교육주제는 민감하기 때문에 가족문제를 말하기에는 조심스럽다는 점을 먼저 말한다.

얼마 전 여러 가족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었다. 매해 열리는 이 모임은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삼겹살을 먹기 위해서는 4개 이상의 버너를 사용해야한다. 삼겹살은 맛이 좋지만 굽는 과정에서 기름이 많이 튄다. 그래서 아빠들이 주로 이 ‘위험한’ 일을 수행한다. 그러다보니 아빠들이 삼겹살을 굽고 엄마들은 열심히 아이들에게 구워진 고기를 먹인다. 분업이 작동하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이 늘면 또 다른 분업도 작동한다. 3세대가 모이면 할머니들은 삼겹살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반찬들을 준비해주는 경우가 많다. 할아버지들은 나중 정리를 도우시거나 아니면 아이들과 함께 삼겹살 만찬만을 즐긴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만찬의 최종 수혜자인 경우가 많다.

올 해도 삼겹살 만찬이 있었다. 삼겹살 만찬은 많은 가족들이 고기를 같이 먹는 즐거움이 있다. 한편에는 번거로움도 있다. 굽고, 치우고, 분배하고. 기타 등등.

이 와중에 가장 바쁜 사람은 굽는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들이나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들은 굽고 있는 아빠들에게 “먹으면서 구우”라고 한다. 안타까움에 혹은 약간의 어색함에.

올해도 열심히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갑자기 상추쌈 하나가 입에 쏙 들어왔다. 얼굴을 돌렸다. 다음 쌈이 대기 중이었다. 첫째 딸과 둘째 딸아이가 고기 굽고 있는 아빠가 먹지를 못하니 쌈을 싸서 가져온 것이다. 기특했다. 이 맛에 고기 굽는 거지 뭐,

그 뒤에도 딸아이들은 준비로 바쁜 할머니들과 아기 때문에 식사를 못하는 이모들까지 살뜰히 챙겼다. 쌈 원정대. 두 아이가 바쁘게 나른다고 해서 식사를 못하고 있던 분들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아졌다. 모두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런데 쌈 배달은 내 아이들만 수행했다. 다른 가족의 아이들은 엄마들이 챙겨주는 쌈을 먹기 바빴다. 정치학적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삼겹살 굽기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상황인 무정부(anarchy)상황을 상기시킨다. 자기가 자기를 보호해야만 하는 상황. 내 가족과 내 아이만 챙기는 상황. 이 원초적인 상황에서 아이들은 그저 보호 받는 존재이다. 한 점이라도 더 먹고, 한 점이라도 더 빨리 먹어야 한다.

쌈 배달은 이 원초적 상황과 인간본성을 거부한다. 같이 먹는 것. 노동을 하는 사람도 같이 이 만찬을 즐기는 것. 그래서 ‘나의 만찬’이 아닌 ‘우리의 만찬’으로 만드는 것. 쌈을 싸서 나누어 먹는 것은 무의식적이지만 나누는 사람 사이에 공감을 만들고 공동체의식을 불러온다.

조금만 더 나가 보자. 쌈을 싸서 같이 나누는 행위의 본질은 개인 인식의 전환에 있다. 이기적 개인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 정체성전환이 이루어진다. 원자적 이기심에서 공동체감을 가지는 것. 더 많이 나가면 이 행위는 공화주의의 본질을 건드린다. 공화주의가 지향하는 res publica 즉 publica(우리)의 res(것)이 뭐 별거인가! 쌈을 싸서 같이 먹는 공동체가 공화적인 공동체 아닌가!

그럼 내 딸들은 왜 쌈을 싸게 되었을까? 천성적으로 쌈을 싸는 착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약간의 분쟁과 교육이 있다. 가족들이 고기를 구워먹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고기 먹어가면서 굽게나”라고 하셨다. 예전에도 자주 듣던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생각해보자. 이게 말이 되나. 굽는 사람이 고기를 먹자고 들면 다른 사람들이 시간 내에 먹을 것은 부족해진다. 게다가 구우면서 먹는 사람이 가장 유리하다. 그러니 얼마나 게걸스럽게 보이겠는가! 그래서 옆에 있던 와이프와 아이들한테 한 마디 했다. “그런 걱정하지 말고 쌈을 싸서 주라고.” 와이프는 아무 죄 없이 유탄을 맞았다.

순간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하지만 약간의 고통 뒤에 보람이 따른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약간의 소동이 있은 뒤 아이들은 아빠가 고기를 구울 때 항상 쌈을 싸준다. 애정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배고파도 짜증내지 말라는 예방차원에서.

쌈을 싸서 먹여주는 것. 이 단순한 행동은 굽는 사람(노동자와 을)과 먹는 사람(자본가와 갑)을 구분하지 않게 해준다. 애정 어린 쌈 싸기는 노동의 의미를 더 값지게 만든다. 게다가 먼저 먹고 싶다는 본성을 억제하면서 같이 먹어야 한다는 인식도 만들어준다. ‘나’에서 ‘우리’로. 단순하지만 굉장히 강력한 사회화다.

그래서 결론. 쌈을 싸주는 것처럼 단순하지만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교육이 중요하다. 먹는 것과 노동 사이에서 쌈을 싸는 것이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쌈을 싸서 나누어먹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생활 속 교육과 실천이 아니겠는가! 연대감(solidarity)이나 공동체인식. 복잡한 이런 개념들을 가르치기 전에 아이들에게 쌈을 싸게 하자. 쌈을 싸며 배려를 배우고, 나누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그것이 공화의 핵심이 아니겠는가!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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