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법으로 양념한, 맛있는 무비토크- 봉준호 감독,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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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법으로 양념한, 맛있는 무비토크- 봉준호 감독, ‘마더’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8.11.19 0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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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두 명의 변호사와 한 명의 영화감독. 그들의 영화 이야기에 법이라는 양념을 치면 제법 맛깔이 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세 명의 영화 수다는 과연 달랐다.
초등학교 동창인 이병화 변호사와 이정향 영화감독, 한국사내변호사회 집행부로서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춘 이병화 변호사와 이소림 대표, ‘영화’를 전면에 내세워 일을 하고 있는 이정향 감독과 이소림 대표. 이들은 마치 세 원의 교집합을 표현하는 벤다이어그램처럼 서로 잘 어우러졌다.
이 세 명의 영화 수다, ‘법으로 양념한, 맛있는 무비토크’ 여섯 번째 이야기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다.
취재, 정리 김주미 기자

이소림 (이하 ‘소림’)
위드윈필름 대표이사, 변호사, 前CJ E&M 영화사업부문 전략기획팀장

이정향 (이하 ‘정향’)
영화감독,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 「오늘」

이병화 (이하 ‘병화’)
법무법인 광장, 前한국사내변호사회장, 前영화진흥위원회 고문 변호사
 

▲ 왼쪽부터 이정향 감독, 이소림 대표, 이병화 변호사

제6장. 봉준호 감독, 원빈 주연 <마더>

드라마, 범죄, 미스터리/ 한국/ 128분/ 2009. 5. 28. 개봉
출연 : 김혜자 (마더 역), 원빈 (윤도준 역), 진구 (진태 역)
줄거리 : 아들의 살인혐의, 엄마의 사투. “아무도 믿지마, 엄마가 구해줄게”
읍내 약재상에서 일하며 아들과 단둘이 사는 엄마. 그녀에게 스물 여덟의 아들, 도준은 온 세상과 마찬가지다. 나이답지 않게 제 앞가림을 못하는 어수룩한 도준은 동네 친구 진태와 함께 자잘한 사고를 치고 다니며 엄마의 애간장을 태운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살해당하고 어처구니 없이 도준이 범인으로 몰린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엄마. 하지만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종결짓고 무능한 변호사는 돈만 밝힌다. 결국 아들을 구하기 위해 믿을 사람 하나 없이 범인을 찾아 나선 엄마. 도준의 혐의가 굳어져 갈수록 엄마 또한 절박해져만 간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병화 : 첫 장면부터 강렬했죠. 김혜자 배우의 춤, 그리고 표정. 그 표정과 춤 동작이 대체 무얼 의미하는 건지, 초반부터 강렬하게 물음표를 하나 탁 던지고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정향 : 저도 처음에 김혜자 배우의 춤이 너무 기이하게 여겨졌어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본 후에 그 장면을 떠올려 보니, 정말 딱 맞는 춤이더라구요. 정신 줄을 놓고 추는.

소림 : 전 ‘역시 봉준호 감독님이다’ 싶었던 게, 시골 세트장을 어쩜 그렇게 촌스럽지 않게 잘 담으셨는지, 시골 느낌이 제대로 살아있으면서도 묘하게 세련됐잖아요.

정향 : ‘마더’는 연출, 연기, 촬영, 미술, 음악 등 각 분야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서 일관된 하나의 톤을 만들어냈단 게 대단해요. 이 영화에 참여한 각 분야 전문가들은 영화판에서도 개성이 뚜렷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이거든요. 일류 스태프들이 모여서 자신의 개성과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도 그 모든 게 한 톤, 즉 봉준호 감독이 원하는 그 기기묘묘한 분위기로 똘똘 뭉쳐졌다는 게 같은 감독으로서는 ‘정말 멋졌다’라고 감탄하게 돼요.

소림 : 기묘한 분위기로는 현장 검증 씬이 절정이었죠. 마네킹 인형을 들고 사건을 재현하던 원빈이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올려다보고, 그때 흐르는 기이한 음악... 관객들로 하여금 행간을 읽어내라고 자극하죠.
 

 

정향 : 이 영화엔 수사 절차가 담긴 장면이 많이 나와서 짚어볼 법적 논점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병화 : 대표적으로 자백에 관한 형사소송법의 두 원칙인 ‘자백배제법칙’과 ‘자백의 보강법칙’을 살펴볼 수 있어요. 피고인의 자백을 기초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 거쳐야 할 두 개의 관문과도 같은 원칙이죠.
‘자백배제법칙’이란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등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에요. 또 자백의 임의성이 인정되더라도, 자백 외에 자백을 보충하는 증거, 즉 보강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자백의 보강법칙’이죠.

정향 : 영화에서 원빈이 고문으로 인해 범행을 인정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이 부분에 자백배제법칙이 적용되겠군요. 자백배제법칙은 상식선에서도 이해가 어렵지는 않은데, ‘자백의 보강법칙’은 조금 생소한 감이 있네요. 영화에서는 어떤 장면을 연관시킬 수 있나요?

소림 : 영화에서 보면, 사건 현장에서 원빈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적은 골프공이 발견되잖아요. 이러한 골프공이 그 자체로는 살인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없지만, 피고인의 자백이 있는 경우에는 그 자백의 보강증거로는 사용될 수 있어요. 만약, 그 골프공도 없고, 기타 다른 증거도 없다고 한다면 아무리 임의로 자백하였다 하더라도 유죄 인정을 할 수는 없다는 게 ‘자백의 보강법칙’이죠.

병화 : 고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화에서 진범이라는 동팔이의 실루엣을 보여주다가 천천히 선명해지는데, 뚜렷이 보고 나니 다운증후군 배우잖아요. 그걸 보면서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더라고요. 그 장면 이전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막연히 동팔이가 건달, 양아치 같은 인물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니까요. 동팔이도 결국 고문 등 수사기관의 위법행위의 희생양이었던 거죠.

정향 : 김혜자가 굳이 동팔이를 만나러 가서 “부모님은 계시니? 너, 엄마 없어?”라고 묻는 장면, 그 대사 한 줄에 이 영화의 제목인 ‘마더’가 집약적으로 담겨 있죠. 섬뜩하게 차가운 대사예요.

소림 : 여기서 한 가지 깜짝 질문 해볼게요. 우리가 김혜자의 상황이라고 생각을 해 보죠. 진범을 알고 있고, 내가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진범인 내 아들 대신 동팔이가 무고한 희생양이 된다는 걸 알아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진실을 밝히실 건가요?

병화 : 당연히 자식을 위해 묻겠죠. 굳이 내 아들이 범인이라고 어떻게 밝힐 수가 있겠어요.

소림 : 네. 이게 도덕적으로 어떻게 평가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법적으로 저촉되는 것은 아니란 걸 짚고 싶었어요. 즉, 일반인이 진범을 알고 있고 그가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억울하게 희생된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이 굳이 진실을 밝히지 않은 게 위법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병화 : 그렇죠. 일반인에게는 고발의 의무가 없죠. 법이 사회적, 직업적으로 의무를 지우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요.

정향 : 법이 의무를 지우고 있다는 건 어떤 경우죠?

소림 : 예를 들면 경찰과 같은 수사 기관이 대표적인데요. 이들은 법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힐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진범을 알면서도 덮어버리고 다른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었다면 위법한 행위예요.

병화 :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일반 사람이라면 도둑이 어느 회사에서 절도를 해 나가는 걸 봤다고 해도 굳이 방지하거나 신고할 의무는 없어요. 그러나 그 회사의 경비라면 물건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절도행위를 보고도 아무 행동도 안 한 경우에는 절도죄의 방조범이 성립될 수 있어요.
또 수영장의 구조요원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이 수영장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어도 일반 사람들이 그를 구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 수영장의 구조요원은 그럴 때 구호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 만약 물에 빠진 사람을 빤히 보고서도 아무런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될 수 있어요.

정향 : 그럼 부모가 경찰이면요? 자식의 죄를 덮어버려도 괜찮은가요, 위법인가요?

소림 : 그 경우는 논점이 하나 추가되는 건데요, 우리가 <특별시민> 토크 때 이야기 나눴던 부분이죠. 친족 간에 적용되는 특례가 있어서 부모가 경찰이어도 처벌되지는 않아요.
 

 

병화 : 사실 저를 비롯해서 ‘영화는 편하게 보고 싶다’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고 다소 음습한 분위기의 봉준호 감독 영화는 정서상 살짝 안 맞을 수도 있어요.

소림 : 봉준호 감독님이 ‘국민 감독’이라고 불릴 만큼 대중의 상당한 사랑을 얻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봉 감독님의 영화 자체에 대하여는 호불호가 갈리긴 해요. 하지만 저로서는 이 영화가 너무 잘 됐다는 생각을 해요. 너무 사실적이어서 불편하기까지 할 수 있는 정서를 봉 감독님처럼 매혹적으로 담아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아무리 영화에 복선을 깔고 암시를 줘도 관객이 전혀 궁금해 하지 않고 눈치도 못 채면 그건 실패잖아요. 봉 감독님의 영화를 두고서는 관객마다 해석이 분분한데, 이건 감독이 심어놓은 장치들이 다 성공했다는 방증일 거예요.

정향 : 봉준호 감독과는 영화아카데미 동문이라 20대부터 알고 지냈어요. 졸업 작품도 잘 만들었지만 대학 시절에 만든 단편도 뛰어났기 때문에 다들 그가 장편도 잘 만들 거라고 기대했죠,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만들었을 때 아카데미 동문들이 축하 메시지를 써주기로 해서 판넬이 돌았거든요. 저는 거기에다 “10년 전에 이미 당신의 오늘을 알았습니다.”라고 썼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이들 그의 성공을 예견했죠.

병화 : 이 감독은 봉 감독 영화 중 어떤 작품을 제일 좋아하나요?

정향 : 저는 이 영화 ‘마더’와 그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가 가장 봉 감독다운 영화라고 생각해요. ‘플란다스의 개’는 돈 안들이고 소박하게 찍은 작품인데, ‘봉준호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만들죠. 저 개인적으로는, 봉 감독이 큰 예산을 따서 투자한 사람들의 기대치를 반영하며 만들 때보단, 적절한 예산에서 소박하게 본인의 스타일대로 만든 영화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소림 : 정서가 살아있는 영화하면 또 정향 감독님 영화죠.

정향 : 하하 고마워요. 그런데 감독의 실제 정서와 영화에서 보이는 정서는 꼭 같지만은 않는 것 같아요. 제 데뷔작 ‘미술관 옆 동물원’을 보고서는 “감독이 이슬만 먹고 살 것 같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대요(웃음).

병화 : 글쎄, 친구인 나조차 그랬다니까요. 하하.

정향 : 사실, 저는 배우를 혹독하게 트레이닝 시키는 걸로 악명이 높았어요. 잘 나올 때까지 계속 찍으니까요. 영화 ‘집으로’ 같은 경우 유승호 배우가 아홉 살이었고 주인공 할머니는 70대였는데, 그런 것도 감안하지 않고 완벽한 연기가 나올 때까지 여러 번 찍었죠. 똑같은 장면을 열 번 이상 찍은 적도 있는데 할머니가 저를 빗자루로 때려주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구요(웃음).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집으로 할머니의 생신이네요. 찾아뵈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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