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법무부의 민법 총칙편 개정안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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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법무부의 민법 총칙편 개정안에 대한 단상
  • 백경일
  • 승인 2018.11.15 20: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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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일 교수
숙명여대 법과대학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2월호에 실리는 글입니다 ※

최근 법무부가 그동안의 딱딱하고 난해했던 민법을 '알기 쉬운 민법'으로 만든다는 목표 하에 민법개정안을 만들어 민사법학회에 검토를 의뢰하였다. 그 중에서도 총칙편을 가장 먼저 내놓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몇몇 조문을 읽어보니 확실히 예전보다 알기가 쉬워진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법무부의 그러한 의욕과 개정작업에도 불구, 대부분의 법조문은 여전히 이해가 쉽지 않았으며, 그동안 학계에서 지적한 사항들도 반영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 구체적 내용을 아래에 간단히 적어보기로 한다.

1. 우리나라 민법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라는 관형격 조사로 점철이 되어 있다. ‘피성년후견인의 법률행위의 범위’, ‘설립등기 외의 등기의 효력과 등기사항의 공고’, ‘이사의 대표권 제한의 대항요건’ 같은 문구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러한 관형격 조사의 중첩이 전형적인 일본식 표현임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동해의 작은 섬 바닷가 백사장에’라고 말할 것을, 일본에서는 ‘동해의 작은 섬의 바닷가의 백사장에(東海の小島の磯の白砂に)’라고 표현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문장에 관형격 조사 ‘~의’가 연속될 경우, 이게 일본식 표현이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말의 맥이 빠지고 가락이 엉켜버린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게다가 조사 ‘~의’는 이것이 주격인지 목적격인지 소유격인지 애매한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가급적 신중하게 써야 하는데, 여전히 우리 민법전에는 ‘~의’라는 조사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다.

2. ‘~하지 않으면 ~하지 못한다’는 구문은 영국인,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자주 쓰는 관습적 부정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사의 대표권의 제한은 등기하지 않으면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는 본디 서양의 법조문에 자주 등장하는 ‘can't ~ until ~’ 구문이나 일본의 법조문에 자주 등장하는 ‘~나께레바 ~나이(~なければ、~ない)’ 구문이 그대로 직역된 것이며, 우리 옛말에는 이런 표현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지 않으면 ~하지 못한다’를 ‘마땅히 ~하여야만 ~할 수 있다’는 문장으로 표현해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고전 한글소설에 등장하는 “마땅히 미리 살펴야만 궁색함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문제는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중부정 표현이 우리나라 법조문에 남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뜩이나 우리에게 어렵기만 한 법조문의 이해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정말 ‘알기 쉬운 민법전’을 만들고자 한다면, 종래의 이러한 관습적 부정문부터 모두 우리 전통의 긍정문으로 고쳐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3. ‘~에 의하여’는 일본어 ‘~니 요리(に 依り)’를 직역한 말이다. 대개 일정한 근거를 제시할 때 사용하는 일본식 한문투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민법전은 이를 여러 법조문에서 마치 영어 ‘by’의 번역 표현처럼 남용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영어 ‘by’는 수동태 문장에서 능동적 주체 앞에 놓이는 전치사다. 그런데 이미 능동적 주체가 존재하는 문장에 ‘by’의 번역표현인 ‘~에 의하여’를 삽입할 경우 한 문장에 능동적 주체가 중복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A는 B의 청구에 의하여 X를 하여야 한다” 같은 문장이 전형적인데, 이 경우 A는 B가 X를 청구하지 않더라도 B한테 X를 청구하게끔 지시하여 X를 해야 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A는 B가 X를 청구할 때에 한하여 X를 해야 한다는 말인지 알기 어렵다. 사견으로는 앞으로 법조문 전체를 완전히 재구성해서라도 ‘~에 의하여’라는 국적불명의 수동태 표현은 가급적 삭제하거나 다른 말로 대체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4. 관형절과 관형구가 중첩될 경우 문장의 이해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취소할 수 없는 피성년후견인의 법률행위의 범위’ 같은 말이 그러하다. 이 경우 문장을 풀어서 다시 써야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 있다.

5. 우리 민법전에는 일본어 ‘혼닌(本人)’을 직역한 ‘본인’이라는 지시어가 너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1항의 명령 후 본인이 재산관리인을 정한 경우에는 법원은 본인의 청구에 의하여...”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그런데 문제는 전후 문장을 아무리 읽어도 그 ‘본인’이 누구인지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가급적 누가 그 ‘본인’인지 일일이 명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리관계에서 ‘본인’이라는 말은 이미 법률용어이므로, 이 경우에는 ‘본인’을 그대로 써야 할 것이다.

6. 우리나라 문장은 사람을 주어로 삼는 능동태 문장을 기본으로 한다. 어색한 수동태 문장은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읽히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우리 민법전에는 아무리 봐도 수동태 문장이 너무 많다는 데 놀라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의 절(節) 안에 능동태와 수동태가 겹쳐 있는 문장도 꽤 많다는 것인데, 당연히 이러한 문장을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파산절차참가는 채권자가 이를 취소하거나 그 청구가 각하된 때에는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 같은 말이 그러하다. 이러한 문장은 가급적 능동태 문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7. 한 문장에 여러 개의 절이 겹쳐 있는 경우, 그것도 시간절, 조건절, 양보절이 중복되는 경우, 그 문장은 잘 읽히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부재자가 재산관리인을 정한 경우에 부재자의 생사(生死)가 분명하지 않은 때에는 법원은 재산관리인, 이해관계인 또는 검사의 청구에 의하여 재산관리인을 다시 선임할 수 있다.” “가정법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제1항에 따른 동의 또는 제2항에 따른 승낙이 없더라도 제867조제1항에 따른 입양의 허가를 할 수 있다.”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이 경우 그 문장을 가급적 나누고 끊어줄 필요가 있다. 특히 양보절의 경우 독립된 문장으로 분리하여 뒤에 배치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기본전제에 따라 필자는 민법일부(총칙편)개정안의 개별조문에 대한 검토의견을 마련하여 지난 11월 14일 법무부에 송부하였다. 앞으로도 우리 학회는 법무부와 협조하여 우리 민법 개정을 위한 작업을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우리 민법을 ‘알기 쉬운 민법’으로 개정하기 위한 법무부와 우리 학회의 노력이 부디 결실을 거둘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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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1-16 03:22:11
뻘짓좀 그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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