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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언론법의 세계적 권위자, 미국 오리건 대학 염규호(Kyu Ho Youm) 교수
김주미 기자  |  hova@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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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9  11: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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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판결 영향 미치는 선도적 학자
인생의 멘토, 해리 스톤사이퍼 자서전엔
“가장 똑똑하고 최고 열심인 학생” 극찬
권오곤 원장과의 돈독한 우정도 ‘눈길’

“미국에서 수정헌법 제1조 ‘성서’와 같아”
“‘너무 많은 자유’란 것은 존재하지 않아”
“한국, 너무 큰 망치로 파리 잡을까 우려”
“한국 언론대학원, ‘언론법’ 필수로 해야”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2월호에 실리는 글입니다 ※

저널리즘과 표현의 자유, 언론법에 대한 전문 지식과 열정으로 세계를 뒤흔드는 학자가 있다. 미국 오리건 대학교 언론대학의 염규호 교수다. 그는 남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박사를, 예일법대 및 옥스퍼드 법대에서 법학 석사를 받았다.

이민 1세대 한국 출신 학자인 염 교수는, 현재 언론법 분야 선도적 학자로서 굳건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학자 및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귀감으로 여겨지고 있다.

염 교수가 발표한 논문과 저서, 인터뷰 등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예의주시하는 신뢰도 높은 자료다. 각국의 법원에서 그의 견해들을 판결문에 인용할 뿐만 아니라, 국제무대를 발판으로 하는 여러 법률가들은 그의 견해를 근거로 삼아 ‘표현의 자유’라는 인권을 옹호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염규호 교수는 지난 10월 18일과 19일, 이틀에 걸쳐 개최된 제11회 한국법률가대회에 발표자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권오곤 한국법학원장은 특별히 염규호 교수와 관련, “미국 언론학회장을 역임한 언론법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염규호 교수의 참석을 확보한 것은 큰 성과”라면서 “(그와는) 다양한 방면에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친구”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 <LAW & JUSTICE>는 그의 학문적 열정과 언론법 분야 주요 화두에 대한 그의 전문가적 견해, 나아가 지금의 그를 만든 인생 스토리를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여러 번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도 그의 전문가적 면모와 사려 깊은 성품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다음은 염 교수와 나눈 문답이다.

- 권오곤 원장께서는 이번 컨퍼런스에 교수님을 섭외한 것이 큰 성과라고 극찬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두 분이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 제11차 한국법률가대회 당시 권오곤 한국법학원장과 염규호 교수가 함께 찍은 사진


“권오곤 원장님은 제게 여러 면에서 영감을 주시는 자상한 분입니다. 저는 그분이 헌법재판소 연구부장을 지낼 때부터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2007년, 그분은 제가 근무하는 오리건 대학이 개최한 법학 컨퍼런스에서 명쾌한 연설을 했습니다. 주제는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에 의한 형사 재판과 언론의 자유 사이의 균형’이었는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ICTY는 그분이 15년간 재판관 및 부소장으로 근무했던 곳이죠.

지난 10월 18일 발표를 통해 제가 언급한 것과 같이, 권오곤 원장님은 2000년대 초반, 제가 ICTY의 Randal 사건과 관련하여 국제법상 표현의 자유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편집자 주. Randal 사건은 2002년 12월 11일, ICTY가 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인 조나단 랜달에 대하여 전범 재판에서 입증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이다.)

저는 이 이정표적인 판례를 연구할 때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TY로 그분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ICTY의 재판관으로서 그분은 제게 상당한 도움이 되어 주었죠. 언론의 자유에 있어 획기적이라고 할 만한 이 판결을 제가 더욱 효과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권오곤 원장님은 많이 애써 주셨습니다.

저는 한편 그분이 친구로서 제게 보여준 너그러움에 대하여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013년 여름, 저는 미국언론학회(AEJMC) 회장으로서 벨기에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해 있는 동안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심각한 건강상 문제로 입원하게 된 제 소식을 접한 권오곤 원장님 내외는,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제가 입원해 있는) 벨기에의 르우벤 대학 병원까지 한걸음에 달려오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죠. ICTY의 선임 판사로서 많은 업무와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저를 위해 즉시 우선순위를 바꿔주었습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세계적 명성을 가진 분의 이번 컨퍼런스 초청은, 제게 더욱 특별했습니다.”

- 프로필에 ‘조나단 마샬 수정헌법 제1조 교수’라고 표기된 것이 눈에 띱니다. 어떤 직함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Jonathan Marshall First Amendment Chair’라는 저의 기부석좌교수 직함은 아리조나주 <Scottsdale Progress>의 편집인이자 발행인이었던 故조나단 마셜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교수직입니다. 필적할 사람이 없는 수정헌법 제1조 운동가이자 열정적인 정보의 자유 옹호자인 조나단 마셜은, 그의 모교인 오리건 대학 언론대학에 수정헌법 제1조 교수직을 만들도록 상당한 기금을 기부했지요.

저는 2002년에 이 수정헌법 제1조 교수직에 첫 번째로 임명되었습니다. 외국 태생 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저널리즘 스쿨 최초로 만들어진 권위 있는 교수직에 임명된 점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10여 년 전쯤, 3,700명 가량의 미국 저널리즘 교육자와 실무가들로 구성된 미국언론학회(AEJMC, Association for Education in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회장직에 입후보하여 당선된 바 있습니다. 저는 당시 미국이 언론의 자유라는 의제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것을 돕는 데 있어 AEJMC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원했습니다.
이 의제는 현재 제가 마샬 교수로서 하고 있는 모든 작업을 압축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른 언론대학 교수들처럼 저는 강의하고 연구하는 일을 합니다만, 오리건 대학은 이 직함을 가진 제가 특히 수정헌법 제1조와 관련된 강의와 연구, 공공 서비스 분야의 지도자로서 기여하길 기대하죠. 저는 미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언론의 자유에 관한 공적 지식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전문지식을 미국이나 해외 주류 언론, 그리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서도 열심히 공유합니다. 수정헌법 제1조에 관한 논문들을 주요 학술지나 저널, 법조 간행물 등에 발표하는 것은 물론이죠.

그렇게 발표된 저의 전문적 견해들은 미국법과 여러 외국의 법에 영향을 끼치는데, 영국, 캐나다, 호주 등 국가의 대법원에서 제 연구를 인용했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언론 분야 변호사들이 제 글을 근거로 하여 그들의 고객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기적으로 학술 및 전문 컨퍼런스들을 기획하거나, 발표자로서 참여하기도 합니다. 내년에는 특히 수정헌법 제1조에 관한 미국 대법원의 첫 번째 기념비적인 판결인 Schenck v. United States (1919)의 100주년 기념 컨퍼런스를 여기 오리건 대학에서 마련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는 <The Free Speech Century>(2019)의 공동 편집자이자 前시카고 법대 학장 제프리 스톤을 포함한 몇몇 선두적인 학자와 법률가들을 초대할 계획이죠.

그리고 또 중요한 언론 학회에 패널 제안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인데요. 세 명의 저명한 미국 변호사들과 한 명의 일류 언론법학자로 구성된 이 패널들은, 명예훼손법, 프라이버시, 정보의 자유, 언론의 취재원 보호권 등에 대해 논할 것입니다.

저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역발상을 장려하는 학자, 언론인, 언론의 자유 옹호자, 기타 관련자들 간의 깊이 있는 대화를 촉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 한국법학원 컨퍼런스에 참석한 염규호 교수 / 그래픽 김현진 디자이너


- 미국으로 오시게 된 과정, 그리고 ‘언론법’ 연구에 이처럼 깊이 몰두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70년대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정치를 경험했습니다. 권리 의식을 가진 다른 많은 학생들처럼 제 딴에는 정부에 대항하려고 저돌적인 저항을 했고, 이에 대한 대가는 육군 신병 훈련소로 즉각 보내져 사실상 ‘한국 민주주의 101’을 교육받아야 했습니다.

이후 삼성에서 잠시 근무한 후, 1980년 광주 혁명이 일어난 중에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 학생이던 제게 미국은 의심의 여지없는 자유의 땅이었죠. 1987년 민주 항쟁이 보여준 한국인의 힘은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제 학문 인생을 말씀드릴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법학자인 남일리노이 대학 카본데일 캠퍼스의 故해리 스톤사이퍼(Harry W. Stonecipher) 교수님입니다. 제가 그분의 뉴스 리포팅 수업을 들었던 1980년부터 그분이 작고한 2004년까지, 그분은 제 삶을 변화시킨 멘토이죠. 우연히도 저는 그분으로부터 언론법을 공부한 그분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국인’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첫 해에 그분의 언론법 수업을 들었을 때, 저는 제가 무모하게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고, 절망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첫 시험이 끝난 후 스톤사이퍼 교수님은 저를 그분의 연구실로 부르셔서 제게 수업을 철회할 것을 제안하셨어요. “강의 목록에 있는 책들과 저널 기사들을 다 읽은 후에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죠.

제가 교수님의 수업을 재수강했을 때, 저는 결코 그분을 실망시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수업을 최고점으로 수료하였죠. 이것이 제 학문 인생 과정 중 가장 본질적인 의미가 된 순간입니다.

제 미국 유학 과정 초기에 보여준 스톤사이퍼 교수님의 ‘사랑의 매’와 같은 충고야말로 지금의 저, 즉 미국 언론법 학자 및 교수이면서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애호가인 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원 2년 과정 때의 기억도 떠오르는군요. 저는 스톤사이퍼 교수님의 언론법 연구 방법론 세미나를 들었고, 그때 저는 기말 논문을 다섯 번이나 다시 써서 제출한 끝에 점수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PC로 쓴 것이 아니죠. 수정키가 없는 타자기로 작성한 논문입니다!

그렇게 그분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제가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전을 주었습니다. 제가 제 연구 논문을 가지고 그분의 집을 얼마나 자주 방문했는지, 그 횟수를 세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헌신적인 선생님이었던 그분은 항상 저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고, 그분의 개인서재에 함께 앉아서 몇 시간씩 설명을 하시는가 하면, 때로는 수많은 첨삭과 논평을 자세히 풀어 주시면서 저와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제 아버지 같은 멘토, 스톤사이퍼 교수님의 자서전, <Meaningful Connections: A Personal Perspective>(1995)에는 저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습니다. 특히 이 책 156페이지에는 “나의 학생 중 최고이자 가장 똑똑한 학생, 가장 열심히 하는 학생 중 한 명은 염규호였다”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교수님의 다른 학생들만큼 제가 훌륭하고 총명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만, 열심히 하는 학생인 건 분명했습니다. 독립적인 저의 3학점 연구를 위해 30페이지짜리 기말 논문을 제출하기로 되어 있었던 1983년 여름, 저는 273페이지의 논문을 제출하기도 했으니까요.

제 큰 아들 Harry의 이름은 해리 스톤사이퍼 교수님의 성함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또한 저는 2013년, 1970년대 스톤사이퍼 교수님의 첫 박사학위 제자 중 한 사람인 펜실베니아 주립 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의 학장 더글라스 앤더슨 교수와 함께 기금을 내어 AEJMC Harry W. Stonecipher Award라는 언론법 연구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그분께 대한 저의 영원한 감사의 표시와 같죠.”

 

   
▲ 1980년부터 2004년까지 염규호 교수의 아버지 같은 멘토였던 스톤사이퍼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


- 미국에서 수정헌법 제1조, 즉 표현의 자유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까?

“미국민은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이례적일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정헌법 제1조를 마치 성서와 같이 여기죠. (편집자 주.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정한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한 미국은 세계적으로 특이한 국가입니다.

‘혐오 표현’ 그 자체는 범죄가 아닙니다. 정부 비판에 관한 명예훼손도 가치가 인정됩니다. 정치 자금 기부는 보장받는 자유로운 표현의 일부이죠.

표현의 자유에 있어 가장 유명한 변호사인 Floyd Abrams가 적절히 칭한 것처럼, 수정헌법 제1조는 “미국 헌법의 락스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상의 열린 시장을 실험해 보려는 미국인의 노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 보장은 문자 그대로 ‘절대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미국에서조차 그와 같은 절대적 자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지 또는 제한해야 할지에 대해 모호함이 존재하는 경우, 표현의 자유를 다른 상충하는 이익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가정합니다.

이 같은 점은 ‘현실적 악의’에 대한 ‘New York Times v. Sullivan (1964)’ 판결 및 언론이 정부 기밀문서를 공표(보도)할 권리에 대한 ‘미국방성기밀문서’ 판결, 즉 ‘New York Times v. United States (1971)’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것들은 왜 미국이 언론의 자유에 있어 세계의 신호등과 같은 존재가 되는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역사적으로, 국가로부터의 자유(의 정도)는 미국 국민과 정부와의 관계를 정의해 왔습니다. 이는 자유의 소극적인 개념이죠. 표현의 자유가 미국의 다른 개인적 자유, 사회적 가치들과 균형을 이룬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미국인들은 개방을 택했습니다. 이렇게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기능을 유지해온 것이죠.”

- 그렇다면 교수님이 보시기에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요?

“저는 한국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비교법학자로서 보건대, 한국이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크게 상이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명예는 똑같은 권리로 보장됩니다. 최근 몇 년 간 한국 법원은 표현의 자유 해석을 좀 더 폭넓게 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는데요. 표현의 자유는 더 이상 한국에서 공허한 수식어가 아니며, 교과서 상의 자유와 실제의 자유 간 간극이 이제는 더욱 좁혀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한국인들이 미국 수정 헌법 제1조의 법칙을 전면적으로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문화에 기반한 법은 한국의 전통과 관습을 반영하게 되어 있고,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특별한 지정학적 상황은 표현의 자유와 국가 안보 균형에 대한 한국 법원의 판단에 계속해서 고려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명예훼손이 범죄로 처벌되는 것과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세계적으로 우려의 대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정치적으로 남용되거나 오용되어 표현의 자유를 희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한국이 ‘결함 있는’ 민주주의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표현과 정보의 자유에 대해 최대한 선처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출신의 미국 언론법 학자라는 제 배경을 고려하여, 저는 <Media Asia>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한 바 있습니다.

“나는 실생활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어떤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가 남용되고 있고,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억압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보통 그런 주장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때로 너무 많은 자유는 사회에 파괴적이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무 많은 자유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죠.

물론, 우리는 보통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교정하는 메커니즘도, 자유가 적을 때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릴 때에만 가능합니다.””

- 한국에서는 현재 ‘가짜뉴스’ 논점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이 ‘가짜뉴스’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염규호 교수가 AEJMC 언론법 패널로서 발표하는 모습이 잡힌 TV 화면


“가짜 뉴스는 새롭게 발견된 현상이 아닙니다. 인쇄기가 발명된 시점부터 있었죠! 요즘 특히 문제되고 있는 가짜뉴스, (‘온라인 오보’라고 할까요?) 그것이 주는 영향은 인터넷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악화되긴 했습니다.

사실 가짜뉴스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를 두고 많은 견해가 제기됩니다. 대개는 ‘대중 호도의 목적을 띤, 뉴스 형식으로 만들어진 의도적인 거짓말’을 가짜뉴스라고 말하죠.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가 좁아질수록, 그것이 저널리즘적으로 잘못된 보도들을 제한하는 구실로 악용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미국법상으로 가짜뉴스는 과도하게 포괄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개념은 미국 수정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바를 넘어서게 될 테니까요. 미국에서 거짓 정보는 여전히 보호되고 있는데, 그것은 ‘거짓’이 충분히 가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진실한 정보가 억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정헌법 제1조가 마련해 놓은 ‘숨 쉴 공간’은 우발적인 실수(오류)를 위한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선 가짜뉴스를 정의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미국과 한국의 가짜뉴스 정의에는 유사점이 많습니다.

미국에서 가짜뉴스가 범죄로 단속될까요? 아닐 것입니다. 만일 의회가 가짜뉴스 방지법을 통과시킨다면, 정부는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진짜인지’에 대하여 검열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진리부(Ministry of Truth)를 상상하시면 되겠네요.

하지만 미국에서 가짜뉴스를 불법화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은, 꼭 ‘미국인들이 취할 만한 법적 조치가 없기 때문’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선택지가 있는데, 사실 가짜 뉴스 생산자에 대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방식이죠. 거짓으로 인한 가벼운 사생활 침해와 고의로 타인에게 정신적 고통을 끼치는 일은,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와 같이, 한국의 명예훼손 법률도 가짜뉴스 생산자에 대하여 적용할 수 있습니다. 공직선거법은 정치 후보자에 대한 가짜뉴스에 적용될 수 있고요.

전기통신기본법도 가짜뉴스에 대해 적용될 수 있었는데,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법상 ‘허위 정보’와 ‘공익’의 판단이 지극히 모호하다며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죠.

인터넷에 의해 촉발된 소통 혁명 가운데 어떤 국가는 가짜 뉴스를 비롯한 유사 논점을 다루는 데 있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더 많은 자유와 더 적은 제한으로 실험을 합니다. 반면 또 다른 국가들은 개인과 사회적 이익 보호라는 명목으로 전면적 제한조치를 취하면서 황급히 대응하기도 하죠.

그러나 앞서도 말씀드렸듯 가짜뉴스가 내포하고 있는 고유의 개념적 영역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개념적으로 모호한 경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법으로 가짜뉴스를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합니다. 범죄로써 규율할 수 있는 범위가 대개 명확하지 않죠.

성급하게 통과된 다양한 가짜뉴스방지법이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얼어붙게 할 거란 사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업체들은 이른바 온라인 거짓 정보를 삭제하거나 금지할 것을 선택할지 모릅니다. ISP 업체들이 온라인 표현을 삭제하도록 요구받거나 상당한 제재에 직면했을 때, 그들이 이런 선택을 할 거라는 건 가설이기보다는 현실에 가깝습니다.

이번 한국법학원 컨퍼런스에서 제가 주장한 바와 같이, 국제인권법 전문가들은 한국의 입법자들이 ‘망치로 파리를 죽이는 것’에 대해 경고합니다.

저는 한국의 입법자들이 인터넷 상 가짜뉴스와 같은 표현의 자유 이슈들을 골칫거리로 다루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 자기절제를 발휘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 연결이 잘 되어 있는 국가인 한국은, 지금 2018년도에 그런 것처럼 (앞으로도) ‘부분적으로만 자유로운’ 나라로 남겨질 것입니다.”

- 미국에서 언론법 연구가 활성화된 것에 비하면 한국의 언론법 연구는 아직 활성화된 분야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언론법 연구 발전을 위해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오하이오 대학에서 그의 통신법 연구에 대해 Guido H. Stempel III Award를 수여했다.


“미국에서 언론법은 1960년~197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저널리즘과 매스컴을 가르치는 독립된 주제로 등장했습니다. 현재 언론법은 미국 공인 프로그램상 저널리즘 및 매스컴 전공 과정에서 필수 코스로 요구되고 있죠.

1970~1980년대 미국에서의 언론법 연구 증가의 원인은, 검색엔진인 ‘Westlaw’나 ‘Lexis’를 통해 사례와 법률자료에 대한 접근이 보다 쉬워진 점, 그리고 미네소타 대학교, 남일리노이 대학교 카본데일 캠퍼스,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의 언론법 박사과정 개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학계와 실무자들을 위한 언론법 강의와 연구에 초석이 된 사건은 1977년, 가장 종합적인 언론법 관련 판례집인 <Media Law Reporter>가 발간된 것인데요. <Media Law Reporter>는 주로 언론에 영향을 미치는 법원 결정들에 대하여 신속히 접근할 필요가 있는 저널리즘 교육자, 저널리스트, 법률가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은 온라인과 인쇄된 자료, 양쪽 다 접할 수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는 저의 언론법 관련 친구 및 동료들은 모두 강의와 연구에 이것을 지속적으로 사용합니다. 미국에서의 이와 같은 언론법 강의와 연구의 발전은 한국에도 유익한 참고가 되겠군요.

사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번, 한국에서도 <Korean Media Law Reporter>를 발간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의 미디어 학자들과 법률가, 기타 전문가들을 위한 체계화된 언론법 추적 메커니즘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법의 지배 아래 있는 민주 국가인 한국에서 언론법은 더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저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왜 한국의 저널리즘과 매스컴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언론법을 필수로 이수하게 하는 곳이 없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운 것은 정규 과정으로써 언론법을 가르치는 언론대학원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소위 ‘일류’라고 하는 서울 소재 대학들의 어느 곳에서도 언론법 교육과 연구를 전공으로 하는 교수진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실제적이거나 감지할 수 있는, 한국에 언론법 중심 커리큘럼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잠재적인 언론법 교수나 학자들에게 ‘언론법이 강의 및 연구 주제로써 적절하지 않다’는 의도치 않은 메시지를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미국에 있는 한국인 대학원생들이 언론법에 집중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죠.

21세기에 한국의 언론법은 더 이상 한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Media, Advertising & Entertainment Law Throughout the World>의 편집장인 Andrew Ulmer 변호사는 제게 “한국은 주요한 언론법 국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새로운 한국은 개방적인 정치 체제를 통해 경제 강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갖추게 되었죠. 울머가 한국에 대한 챕터를 기고해 달라고 저를 초대한 것이 10년 전이긴 하지만, 그는 “내 책은 한국을 빼고는 만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외국의 학자와 법률가, 저널리스트 등의 사람들이 한국 언론법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한국에 관한 수준 있는 논문을 쓴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주요 국제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저는 AEJMC의 언론법 분과로부터 저의 한국 논문이 ‘미 언론법 회원들의 관심 밖’이라는 이유로 퉁명스럽게 거절당했지만,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그와 같은 모욕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리 김주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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