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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인생술집'과 ‘얼큰한 여자들’의 의미
신희섭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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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8  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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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술과 담배 중 무엇이 더 끊기 어려울까? 둘 다 끊기 어렵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술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 담배는 끊었지만 술은 아직도 못 끊고 있으니.
   
담배는 습관이다. 음주도 습관이다. 그런데 담배는 일일 정량이 있다. 이것을 못 채우면 금단증세가 온다. 그러니 비행기 안에서 피우다 적발되는 경우까지 나오는 것이다. 술은 일일정량이 없다. 알코올 의존증이 아주 강하지 않으면 일일 정량을 못 채운다고 금단현상이 오지는 않는다. 그렇게 보면 술이 훨씬 끊기 쉬워 보인다.
   
그런데 술은 사회적 행위이다. 반면 담배는 개인적 행위이다. 담배도 한 가치 정도 나누어 줄 수 있어 사회 재분배 기능이 있다. 그러나 담배는 본질적으로 혼자 태우는 것이다. 꼭 누군가가 같이 있어야 담배를 태우지는 않는다. 
   
‘영웅본색’의 주윤발을 떠올려보라. 복수를 마치고 온몸에 피를 묻히고 입에 한 개비 담배를 문다. 그리고 어두운 밤하늘로 고독하게 연기를 내뿜는다. 그때 옆 사람이 “나도 한 개피만 줘”라고 하든지 담배를 돌려 피운다고 생각해보라. 그럼 그것으로 영웅본색은 끝이다. 바로 B급 영화인 ‘양아치 본색’이 될 것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사회적 행위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술은 누군가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술을 혼자 먹는 경우는 주변에 같이 술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거나, 알코올 의존증이 강해 주변 사람들이 떠났거나, 마시는 술이 너무 귀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생각이 없어서 일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술은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량과 관계없이.1) 
   
같이 하는 이들 사이에 술은 윤활제 역할을 한다. 술은 같이 하는 이들의 경계심을 낮추어주고 속내를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 알코올이 인류에게 준 혜택이다. 평소에 못하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고 평소 불편하던 이야기를 던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래서 술은 인류 역사의 정사(正史)보다 야사(野史)를 담당해왔다.  
   
꼭 술이 취해야만 음주의 사회적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술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 왔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이다. 개인적으로 음주를 잘 못하거나 즐기지 않지만 다른 이들과 자리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자리를 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 물론 반쯤 강제로 혹은 마지못해 술자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음주에 대한 개인들의 선호는 모두 다르니 ‘술자리를 하는 사람 = 친(親)사회적 인간’은 아니다.   
   
술자리의 핵심은 같이 한다는 것이다. 음주는 화상채팅으로 하지 않는다. 먼 타지에 있지 않는 한. 물론 오프라인 상에서 사람 간의 접촉이 이루어지다 보니 말썽도 생기고 사고도 발생한다. 이것은 술이 과해서 생기는 것으로 술자리가 만드는 사회적 기능의 본질은 아니다.  
   
술이 가진 사회적 기능은 국가별 문화에 따라 다르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유독 술을 권한다. 약간 취하는 것을 정을 나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먹을 것이 부족한 농경사회에서 술처럼 노동을 권하거나 위로하기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도 술을 권하거나 방조하는 현상은 두드러진다. 이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방송프로그램 중에 술을 마시면서 하는 프로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술집’이나 ‘얼큰한 여자들’이 대표적이다. 2018년 11월 첫 방송을 한 ‘지붕위의 막걸리’도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누가 누가 술을 더 잘 마시는지를 경연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실제로는 술을 마시고 본심을 드러내는 인터뷰를 하거나 실제 일상 모습을 여과 없이 공개하는 것이 프로그램 취지이다. 예전에는 공중파에서 술을 직접 마시면서 방송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음주방송이 가능할 뿐 아니라 권해지고 있다.
   
이렇게 음주 프로그램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먹힌다는 것이다. 그럼 이런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을 불러서 굳이 술을 마시게 할까?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술일까? 음주방송에 거부감을 가지고 보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한 가지 해석은 한국문화의 맥락이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편하고 보는 사람도 편하기 때문이다. 방송에 나온 사람은 커피보다는 술의 힘을 빌려서 이야기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그런 행위가 좀 더 진정성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문화도 있다. 게다가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지 않다. 공감이입이 쉽기 때문이다. 같은 자리에서 한 잔하고 있다는 느낌. 
   
여기에 더해 방송트렌드도 있다. 지금은 ‘먹방’시대다. 음주는 ‘먹방’의 진화한 버전이다. 복잡한 머릿속을 배로 대신 채워주는 것을 넘어 음주로 머리 자체를 가볍게 한다. 술은 용기와 함께 망각도 가져오니.  
   
방송에서 술을 권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들이 있다. 음주는 사회적문제가 될 수도 있다. 술의 힘을 빌려서 폭력을 사용하거나 인간 의식세계를 벗어나서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술자리를 가지려는 것은 퍽퍽한 삶속에 “같이 하고픈”, 그래서 “위로를 주고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친구 사이에, 연인사이에, 부부사이에, 가족 사이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술자리를 가지는 것. 그것은 일상의 하루 하루를 고단하게 지내고 버티는 이들이 그 고단함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술자리는 아직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방송까지 할 만큼.
   
그래서 나는 아직 술을 못 끊겠다.

각주)-----------------
1) 최근 혼술족이 늘고 있다. 자발적으로 혼자 술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혼술족에 대해 반사회성명제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술자리를 가지는 것의 사회적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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