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의 새 가족질서 세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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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의 새 가족질서 세울 때
  • 이상연
  • 승인 2005.02.05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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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가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778조와 781조 1항 일부분, 826조 3항 일부분에 대해 재판관 9명의 6대 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를 둘러싼 오랜 논란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이에 따라 국회에 계류중인 호주제 폐지법안의 조속한 처리와 보완입법의 마련 노력에 탄력을 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주제는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한 헌재의 결정은 남녀평등의 시대적 요청을 반영한 것이다.


헌법과 전통과의 관계에서 헌재는 "헌법은 국가사회의 최고규범이므로 가족제도가 비록 역사적·사회적 산물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헌법의 우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며 "가족법이 헌법이념의 실현에 장애를 초래하고, 헌법규범과 현실과의 괴리를 고착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면 그러한 가족법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 헌법은 제정 당시부터 특별히 혼인의 남녀동권을 헌법적 혼인질서의 기초로 선언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래의 가부장적인 봉건적 혼인질서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결단을 표현한 것"이라며 "현행 헌법에 이르러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은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최고의 가치규범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고 덧붙였다.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전통문화란 것도 적어도 그것이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이념인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호주제 위헌성과 관련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서,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이고, 이로 인하여 많은 가족들이 현실생활과 가족의 복리에 맞는 법률적 가족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여러모로 불편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재판부의 지적은 적절하고도 명쾌하다. 숭조(崇祖)사상, 경로효친, 가족화합과 같은 전통사상이나 미풍양속은 문화와 윤리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계승,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호주제의 위와 같은 명백한 남녀차별성을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가 "호주제는 당사자의 의사나 복리와 무관하게 남계혈통 중심의 가의 유지와 계승이라는 관념에 뿌리박은 특정한 가족관계의 형태를 일방적으로 규정·강요함으로써 개인을 가족 내에서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해 혼인·가족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도 당연한 결정이다. 오늘날 가족관계는 한 사람의 가장(호주)과 그에 복속하는 가속(家屬)으로 분리되는 권위주의적인 관계가 아니라, 가족원 모두가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서 성별을 떠나 평등하게 존중되는 민주적인 관계로 변화하고 있고, 사회의 분화에 따라 가족의 형태도 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 등으로 매우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지난해 국회에 상정돼 해를 넘긴 민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호주제를 대신할 신분등록제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법원과 법무부가 이미 가족부 성격을 가미한 1인1적안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 새 제도가 가족법의 영역에서 도식적인 평등의 잣대로 전통가족문화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해체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다듬어져야 할 것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호주제 존치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접고 21세기에 맞는 남녀평등의 새 가족질서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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