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공룡들의 타락, 김용의 죽음과 김앤장의 잘못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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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공룡들의 타락, 김용의 죽음과 김앤장의 잘못된 변론
  • 오시영
  • 승인 2018.11.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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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아지랑이를 향해 칼질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검객이다. 잘리지 않을 것 같은 대상을 자르겠다며 노려보는 검객은 언젠가는 그 대상을 자르고 만다.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모두 물을 가르고, 공기를 가르고, 사람의 마음을 갈랐다. 천룡팔부의 중국무협작가 김용이 지난 10월 30일 운명하였다. 홍콩 일간지 밍파오(明報)를 창간한 주필로 중국 민주화를 위한 글을 쓰기도 하였던 그는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작가임이 틀림없다. 그의 죽음 소식에 3억 명이 넘는 독자들이 추모하였다니 그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사조영웅전, 의천도룡기, 소오강호, 동방불패 등 지금도 차이나케이블티비에서 자주 방영되고 있는 유명한 무협영화의 원저작자이기도 하다. 무협지는 모든 청소년의 로망이다. 대부분의 중고생이 무협지를 통해 호연지기를 배우고, 정의가 무엇인지를 깨우친다. 지금이야 더 흥미진진한 게임 등이 많이 출시되어 그 경향이 약해졌을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세대에서 중국 무협지는 학생들이 스스로 독서를 시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무협지에 맛을 들이면서 독서습관을 익히게 되고, 덩달아 다른 책도 함께 읽게 되기 때문이다. 김용, 그가 중국 장쑤 성 쑤저우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무협지의 기본 코드는 영웅의 일반적 서사 형식인 어린 시절의 고난,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 과거에 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복수 또는 단죄, 정의의 승리라는 도식적 과정을 거친다. 이처럼 무협지는 기본적으로 선과 정의의 필연적 승리라는 권선징악 내지는 사필귀정의 진리를 독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필자도 50년 전에 한 번밖에 읽지 않았던 군협지의 주인공이 서원평이고, 무유지의 주인공이 방조남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니, 무협지가 청소년 때 끼친 영향은 참으로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제징용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는 자신을 강제징용하여 무자비하게 노동을 착취했던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월 30일 대법원전원합의체에서 1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최종승소판결을 받아내었다. 신일철주금의 소송대리는 국내 최대 규모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가 맡았으나 결국 그들은 패소하고 말았다. 이춘식 씨는 1997년도에 일본 법원에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일본 법원은 그의 청구를 1965년에 한일 정부 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 의도한 “개인의 청구권 역시 소멸”이라는 이유로 패소하고 말았다. 그 후 이춘식 씨는 2005년경 국내 법원에 본건 소를 제기하였으나, 일본 법원과 같은 이유로 1심과 2심에서 패소하였다. 그런데 대법원 상고심에서 2013년도에 뜻밖에 원심판결을 파기하라는 승소판결이 내려졌다. 그 이유는 위 한일간의 협정은 정부 대 정부의 조약일 뿐 국민 개인의 청구권 소멸에 대한 협약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민의 대일본기업에 대한 청구권은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파기환송받은 고등법원은 2013년도에 대법원 파기 사유에 맞춰 피고 신일철주금으로 하여금 원고(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각 1억 원씩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이에 신일철주금이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였는데, 이 사건이 5년이 지나고서야 지난 10월 30일에 그대로 인정되어 확정된 것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며칠 전 구속되었다. 구속사유는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지시에 의해 부당하게 재판에 개입하였고, 그 중심에 임종헌 전 차장이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고등법원에서 신일철주금에 손해배상책임을 묻자 일본정부와 우리 박근혜 정부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위 대법원판결은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오던 대일청구권협정에 대한 반란으로, 국민 개개인의 대일본기업 상대의 청구권 소송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 정부와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국민 개개인의 청구권 소멸을 묵인한 것에 대한 “사법적 단죄”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위대한(?) 치적에 대한 말살 행위로써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와 상고법원 신설에 목을 매고 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협잡”이라는 전무후무한 사법농단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고등법원이 손해배상을 하라고 한 판결은 그 전의 대법원 파기환송사유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원은 위 사건에 대하여 자신들의 파기 사유를 그대로 따른 판결이므로 그대로 인정하면 그만이었다. 즉 신일철주금이 두 번째로 제기한 상고심사건을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청와대의 압력과 양승태 전 대법원체제의 상고법원 도입 로비 욕망이 어우러져 “어떻게든 위 고등법원 판결을 어찌”하기로 모의한 후 묘수를 짜내었지만 그게 결국 죽을 꾀가 되고 말았다. 신일철주금 소송대리를 맡은 김앤장법률사무소로 하여금 의견서를 내도록 하였는바, 그 내용은 “외교적 관계가 있는 사건의 경우 정부(외교부)의 의견”을 듣자는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 김앤장과 정부 및 대법원 사이에 이에 대한 모종의 의견 교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고, 그러한 과정이 이번 사법농단 수사과정에서 규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재판규범인 “민사소송규칙”에는 그러한 정부의 의견을 듣는 절차가 규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민사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의 의견을 들은 후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그에 대해 법률을 적용하면 되는 것이지 제삼자인 정부의 의견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기가 막힐 일이다. 물론 행정재판에서는 사익에 관한 민사소송과 달리 당사자의 말이 맞은 경우에도 더욱 큰 공익을 위해 ‘재량판결’을 할 수 있는 예외가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따라 의견을 청취할 수는 있다) 먼저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하는 일을 선행적으로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신설된 정부의 의견을 듣도록 된 규정에 근거하여 정부(외교부)에 위 이춘식 할아버지의 소송에 대한 외교적 파장에 대한 의견을 제출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외교부가 작성해야 할 의견서마저 임종헌 전 차장이 사실상 골격을 작성하여 외교부에 건네주었고, 외교부가 이것을 자신들의 의견인 양 다시 법원에 제출하는 사법농단이 자행된 것이다. 위 의견서의 골자는 위와 같은 판결은 한일기본조약을 위반한 것으로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맹목적 일본 편들기”였다. 이러한 의견서를 접수한 담당 대법원 소부(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는 이 사건이 중대한 사건으로 대법관 전원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전원합의체로 회부하였다. 외교부 의견서를 핑계 삼아 이를 파기할 음모를 꾸민 것이다. 그런데 전원합의체라고 하여 그 전에 자신들이 첫 번째 대법원판결에서 판시했던 파기 사유를 다시 번복할 법이론을 손쉽게 만들어낼 재간이 없는지라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하고 캐비넷에 처박아 둔 채 5년 넘게 재판을 방치한 것이다. 그러다가 사법농단사건이 드러나고 임종헌 전 차장이 구속되는 등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대법원전원합의체가 5년이 지나서야 이춘식 할아버지에 대한 판결을 원심대로 그대로 판결하였으니, 대법원의 직무유기는 국민의 지탄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형국이다. 5년 사이에 함께 소송을 제기했던 세 명의 할아버지는 자신들의 한을 대한민국 사법부로부터 해결 받지 못한 채 운명함으로써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법농단의 뒤에는 “김앤장법률사무소”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변호사집단이 있다. 변호사법은 로펌의 종류를 법무법인, 법무법인(유한), 법무조합 등 세 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김앤장법률사무소는 위 세 가지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법인이 아니다. 그냥 “변호사 2명 이상이 사건의 수임, 처리나 그 밖의 통일된 형태를 갖추고 수익을 분배하거나 분담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합동법률사무소”일 뿐이다. 김앤장법률사무소는 김영무 변호사와 장수길 변호사가 동업으로 설립한 “합동법률사무소”이다. 그 안에는 500명이 넘는 변호사와 200명 가까운 변리사가 있다. 그런데 그 소속 변호사나 변리사는 통상적인 법무법인의 파트너(구성원)가 아니라(파트너인 경우에는 주식회사처럼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있고, 그 지분의 범위 내에서 의결권 등을 행사할 수 있어 오너의 독단적 경영을 견제할 수 있어 구성원 상호 간에 어느 정도 수평적 권한 행사가 가능하게 된다) 합동법률사무소의 대표인 김영무 변호사 또는 장수길 변호사와 개별적인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형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들이 모두 외부적으로는 독립된 형태의 변호사 위치를 갖게 됨에 따라 상대방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변호사법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 폐해가 심각하게 됨에 따라 정부는 변호사법을 개정하여 법무법인 등이 아닌 김앤장 같은 합동법률사무소의 경우에도 “하나의 변호사”로 보도록 함으로써 같은 법률사무소에 속한 변호사들이 원고와 피고를 모두 담당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변호사법은 “법관, 검사, 장기복무 군법무관, 그 밖의 공무원직에 있다가 퇴직하여 변호사 개업을 한 공직퇴임변호사는 퇴직 전 1년부터 퇴직한 때까지 근무한 법원, 검찰청, 군사법원,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경찰관서 등 국가기관이 처리하는 사건을 퇴직한 날부터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다.”고 하여 전관예우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문제는 김앤장이 소위 “고문”이라는 직책으로 비변호사인 수많은 공직퇴임자들을 채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직 국무총리, 각부 장관은 물론이고 금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정책기관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했던 이들이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다수 포진하여 대 정부 로비활동을 사실상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일반적인 사무직원처럼 근무하지도 않고, 사안별로 필요에 따라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거나 소위 자문이라는 형식의 의견 제시 등을 하여 준 대가로 많게는 수억 원이 넘는 사례비를 지급받고 있다. 변호사가 아니면 법률사무나 이에 대한 자문 등의 대가로 금전을 지급받으면 형사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엄밀하게 보면 소위 고문이라는 이름의 전직고위관료들이 변호사도 아니면서 대정부 로비활동을 벌리는 것은 모두 범죄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자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는 명백한 변호사법위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김앤장의 막강한 대정부 로비력은 위와 같은 소위 고문들의 로비 영향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법조계에서는 공공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을 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로비의 일단이 드러난 것이 이번 이춘식 할아버지의 신일철주금 상대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소송이라고 할 것이다. 사법농단 실체가 드러나면 날수록 김앤장의 로비활동이 더 많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김앤장 소속의 수많은 변호사의 위력을 선거로 선출되는 대한변호사협회장이나 서울지방변호사회장들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당선 취임 후 김앤장 소속의 변호사를 협회 등의 상근이사로 추천받거나 변협 등에서 추천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나 법원 등의 각종 위원회 위원으로 추천하기도 하여 그들의 영향력 극대화에 일조하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한 시대의 청소년들을 사로잡았던 김용 무협작가는 94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무협소설을 통해 “무협”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겼다. 김앤장법률사무소는 초창기에 우리나라 법률사무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선진적 기법(김영무변호사는 판사를 지원하지 않고 사법연수원 졸업 즉시 미국로스쿨에 진학하여 미국법률문화를 습득한 후 이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접목하였다)을 도입하여 우리나라 변호사업계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그러나 거대해지면 거대해질수록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말처럼 거대로펌으로 성장하다 보니 국민정서에 맞지 않은 변론에 깊이 관여하는 사례가 늘어나 국민의 불신을 받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사건 처리를 위해 무리한 수를 두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듯싶어 우려스럽다. 무협지의 주인공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불의한 자는 반드시 필망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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