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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뫼비우스의 띠
송기춘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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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6  11: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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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며칠 전 중간고사를 봤다. 기본권을 다루는 과목이라, 최근 문제되는 자전거 헬멧(인명보호장구)착용을 강제하는 도로교통법 관련조항에 관한 문제를 냈다. 시의적절(!)한 소재기도 하고, 인간과 국가에 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기에 좋고, 과거 헌법재판소의 좌석안전띠 사건 결정이 나름의 참고가 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했다.

시험이 끝나고 제출된 답안지를 보니 앞면에 몇 글자 적은 답안이 있다. 그 답안을 작성한 학생은 이렇게 썼다. “최하점을 주시기 바랍니다. 살 권리뿐 아니라 죽을 권리도 있기에, 1등을 향해 모두가 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뒷부분 풀이는 수업에 대한 예의로 적습니다.” 뒷면의 답안 내용은 최고는 아니어도 문제의 쟁점에 적절하게 접근하고 충실하게 작성된 것이었다. 당연히 최하점을 받을 답안은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이 학생은 왜 이런 글을 적었을까? 내가 수업시간에 한 말 때문일까? 인격권을 강의하면서 농반진반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A학점을 받은 사람들은 C학점을 받은 친구에게 감사해야 한다. A학점은 C학점을 받은 친구가 밑에서 받쳐줘서 가능한 것이다.” 나는 기본권 수업 첫머리에 조세희 선생이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한 챕터를 읽게 한다. 책의 첫 장 「뫼비우스의 띠」이다.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읽어보라 한다. 무지무지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이제껏 겪은 바로는, 인권의 문제는 주로 약자와 소수자의 문제이지만 이것이 강자와 지배자의 문제에 연결되어 있다는 나름의 생각 때문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군가 아픈데 다른 사람들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하고 나왔는데, 한 사람은 얼굴이 깨끗하고 한 사람은 더러우면 누가 얼굴을 씻으려 하겠는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굴뚝 청소를 정말 했다면 얼굴이 깨끗한 채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 함께 사는 세상에서 고통이 고통받는 자의 것일 수만은 없다.

상대평가제도는 성적이 과대평가되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다. 수강생의 성적을 다 잘 주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우선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학생의 학업성취 정도에 따라 성적을 부가해야 하는데, 그 정도가 낮은데도 좋은 평가를 하는 것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잘한 학생과 못한 학생 사이에 차별성이 없어 잘한 학생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생긴다. 정당하게 평가를 해야 할 평가자의 윤리에도 위반된다. 나쁘게 말하면, 안 맞는 물건을 계속 팔기 위해 아주 잘 맞는다고 속이는 꼴이기도 하다. 학교도 돈 버는 사업체의 성격이 있으니까. 여러 과목 가운데 어느 과목만 성적을 잘 주면 그 과목으로 수강생이 몰리고 다른 과목은 폐강되는 일도 발생한다.

그래서 상대평가라는 제도가 등장한다. 학생이 각각 독립된 개인인데도 우연히 편입되게 된 집단의 틀 안에서 다른 사람보다 잘 했는지에 따라 평가한다. 서로 경쟁을 부추기고 이것이 학습효과도 낳는다. 성적 ‘인플레’를 막고 다양한 과목 개설에 도움이 된다. 절대평가와 그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야말로 나와 무관하게 형성된 어느 집단에 우연히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약 그가 다른 집단 속에 있었으면 받았을 평가와 달리 평가받았다면 이게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그저 학교 성적은 그런 상대평가의 틀 속에서 받은 것이라는 전제가 충실하게 지켜진다면 모를까, 일단 성적의 높고 낮음을 보는 평가의 틀이 건재하다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찾아가고 편입된 집단에 나보다 잘 할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 과목을 변경하는 것은 약삭빠르기보다는 지혜로운 것으로 보아야 되지 아닐까. 상대평가 틀 안에서는 모두가 모두의 경쟁자이고 서로 협력하는 관계형성은 힘들다. 그것이 이 제도가 가르치는 ‘삶의 지혜’(?)이다.

앞에서 말한 그 학생은 아마도 상대평가제도 속에서 동료와의 관계가 삭막해지고 모두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살벌함에 고민이 깊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누군가를 딛고 올라서야 받는 좋은 학점의 모순에 절망하고 나름의 얻은 답이 ‘내가 밑을 받치고 말지’였을 듯하다. 그래도 답안 내용이 괜찮으니 소원대로 최하점을 주지는 못하겠다. 누구나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삶의 몫이 있고 공부를 잘 하면 그것으로써 세상에 봉사할 적절한 자리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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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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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이게 2018-10-26 15:51:19

    악마의 편집같아 보이지만, 윗 글 중에 '안 맞는 물건을 계속 팔기 위해 아주 잘 맞는다고 속이는 꼴이기도 하다. 학교도 돈 버는 사업체의 성격이 있으니까. ' 이게 지금 로스쿨의 현주소라고 봅니다만.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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