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한미군사훈련 유예, 정치와 안보 사이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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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미군사훈련 유예, 정치와 안보 사이의 갈등
  • 신희섭
  • 승인 2018.10.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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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18년 10월 19일 미국 군사당국은 12월 예정된 한미 연합공군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 유예를 제안했다. 이것은 8월에 예정되었던 을지프리덤 가이드 훈련과 7월과 9월에 예정되었던 한미 해병대연합훈련의 유예 이후 3번째 한미군사훈련 유예조치이다. 미국 측이 제안한 이번 유예는 현재 진행 중인 북미비핵화교섭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훈련유예조치는 문재인대통령의 ‘평양선언’과 ‘남북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의 국회 동의 없는 비준과 겹치면서 다시 한 번 한국 사회 내의 논쟁을 불러왔다.

크게 두 입장이 대립한다. 찬성측은 모처럼 온 한반도의 평화 무드를 위해서 군사훈련의 유예나 남측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며 이번 조치들은 이런 필요성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남과 북은 현재 한반도의 신뢰구축과 함께 군비통제조치들을 취해가고 있고 이러한 노력들로 향후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대 측은 북한의 신뢰할 만한 조치들이 없는 상황에서 군사훈련유예 조치들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남북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와 함께 남한 안보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주장들이 오가고 있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정치와 안보 사이의 관계로 요약된다. 불분명한 안보이익보다 정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이익이 당연히 안보고려보다 중요하다는 입장. 안보는 만에 하나를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고려와 별개로 중요하다는 입장. 양자가 다투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간 대립의 안보버전인 것이다.

그렇다면 안보와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원론적으로 정치는 공동체가 지향할 가치를 결정한다. 반면에 안보는 공동체가 지향할 가치 중 하나이다. 따라서 정치가 안보의 상위에 있다. 정치적 결정에 의해 안보의 중요성이나 안보에 대한 투자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안보를 배제하고 정치를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서 공동체는 정치를 논할 수 없고 공동체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니 안보는 정치를 구성하고 유지하게 하는 하나의 기둥이다. 이 지점이 정치와 안보의 접점이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 사이의 관계로 돌아와 보자. 2018년 들어와 복잡하게 진행되는 이 3자간의 관계는 비핵화를 얻어내고 싶은 미국과 비핵화카드를 통해서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최대화하고 싶은 북한과 북미 간의 갈등을 해결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만들어보려는 남한의 중개자 노력으로 요약된다. 이 과정에서 중개자가 주도권을 쥐고 3번의 남북정상회담과 한 번의 북미정상회담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정치’가 주도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국제제재를 해결하여 숨통을 트이게 하고픈 중개자 한국은 국제사회에 ‘현재’ 북한이 바뀌고 있다는 점과 선제적인 협력을 통해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때 결정적인 문제는 북한의 변화의지를 확인하기에는 북한의 변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북한은 출발선에서 미적거리고 있고 북미간의 관계는 걷는데 남북관계만 내달리다 보니 남한 혼자 너무 멀리 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진보적 정치와 보수적 안보가 충돌하고 있다.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의 의도 파악이다. 만약 의도만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북한이 핵 없는 미래가 두렵지만 점진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받아들여 경제발전으로 나갈 것이라는 의지만 확인되면 대북안보장치들을 해체하는 것에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내기는 어렵다. 북한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의도를 읽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상대의도를 파악 못하는 게 되는 너무나 많은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상대방이 자신의 의도를 속일 수 있다. 더 문제는 상대방 자신이 너무 강렬한 믿음으로 자신을 속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장 나쁜 상황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희망적 사고’에 기초해서.

상대의도를 너무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데 미래지향적 정치는 자기 확신이 강하며 그 확신은 상대의도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안보는 의도를 보고 결정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능력’을 보고 결정해야 실수가 적다. 판단에 있어서 주관성을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성에 근거하여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중개자 역할을 하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고통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확인하기 어려운 북한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평화’라는 대명제를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들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속도를 내서 조심스러운 미국과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유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판을 뒤집거나 혹은 북미관계 진전 없는 남북관계 개선만을 고집한다면 한국정부의 노력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이 고통스러운 줄타기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정책은 변화를 이끌되 안보의 틈새를 비우지 않는 논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논리 구성은 결국 철학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는 변화와 안보 간에 무엇을 중시할 것이며 어떻게 평화와 안보간의 모순을 줄일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물론 문재인정부가 선거과정과 정부운영과정에서 정치-안보 논리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 직면한 구체적인 이슈들에서 이 논리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안보에 대한 우려를 최소화하면서도 정치적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논리의 강화는 북한에 대한 대응에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걱정하는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며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정부 스스로가 정책을 좀 더 명확히 풀어나갈 수 있게 하는 자기 확신을 강화할 것이다. 모처럼 만든 기회를 문재인 정부가 잘 활용하기 바라는 마음과 걱정에 한 마디 전해본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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