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북 법률가 교류협력과 통일 형사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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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북 법률가 교류협력과 통일 형사법 제정
  • 김영철
  • 승인 2018.10.1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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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변호사(법무법인 대종)·법학박사 / 전 건국대 로스쿨 교수

한 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시작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기치로 한 남북정상회담, 미북정상회담, 남북고위급회담 등으로 연결되고, 남북 간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력조절, 문화교류, 경제협력 회담 등이 줄줄이 이어져 어느 때 보다 통일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북한의 선 비핵화조치 없이는 경제제재를 해제할 의향이 없음을 누누이 천명하는 한편 남한 정부나 민간 기업을 향하여 미국의 제재에 위반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강하게 날리고 있다. 반면, 북한은 종전선언 및 제재 완화 등 상응조치 없이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과거에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채택” 등을 통해 수많은 약속을 하고도 수시로 이를 어겨 우리의 뒤통수를 처 온 북한의 전례로 보아 북한 통치자의 말을 쉽사리 믿을 수 있겠느냐며 경계하는 시각도 상당하다. 달콤하지만 얼마나 지속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중대국면 앞에서, 우리는 주저하기 보다는 “최선을 기대하면서도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라(hope for the best, but prepare for the worst)”는 영국의 속담과 같이 최선과 최악의 가능성을 함께 염두에 두면서 진지하면서 조심스럽게 행동하여 나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통일을 향한 희망적인 조치들을 적극 추진하면서도 일이 어그러졌을 때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의 연장선에서 통일의 희망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우리 법률가의 역할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치인이 열심히 협상하여 얻어낸 합의들이 최종 성과로 귀결되려면 결국 입법화를 통하여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 법률가의 역할이 긴요하다. 그 중에도 각자의 체제를 보위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사명을 가진 형법의 통일작업이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전문성을 지닌 법률가의 역할과 지혜가 가장 필요한 분야가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지체하지 말고 남북의 법률가 간 교류협력을 통하여 상대법제의 이해와 통일법 제정을 위한 상호협력방안을 찾아가려는 노력에 착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시행되어 온 형법 등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법률을 다룸에 있어서는 단순한 법 기술적인 문제에 더하여 구성원의 의식구조, 언어 및 생활방식, 역사와 법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견이 있는 부분은 장기간 토론을 거쳐 합일점을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무부 등 정부가 나서는 것도 좋겠고, 형사법학회 등 학회나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단체가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기에서 필자의 체험을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03. 10. 6. 유경 정주영체육관개관식 행사 참가단의 일원으로 2박 3일간 법률가 10여명과 평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기회를 틈타 북한 형법, 형사소송법 등 형사법 해설서와 판례 등 연구용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개인적인 관심사였다. 방문했던 김일성대학, 국립도서관 등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시중 서점에도 비치된 것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는 이런 자료를 비밀로 분류하여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북한 형법전이 외부에 공개되고는 있으나 실제 적용사례는 외부에 내놓지 않아 알 수가 없다. 간혹 탈북자의 체험적 진술을 통해 단편적으로 그 일면이 알려지고는 있으나 그 정확성이나 체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국내에 알려진 해설서는 “조선형법해설”(1957), “형법학(1)”(1986) 등 소수에 불과하지만 제한적이나마 북한 형법 체제에 관하여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공화국 형법”이라고도 불리는 1950년 제정 형법은 1926년 구소련 형법과 실무를 참작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형법의 이해를 위하여 구소련의 법이념을 잠간 살펴보면, 마르크스-레닌의 공산주의 이념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독재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산당 1당 독재가 필요하고 반대 세력의 인권은 인정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들에 대한 탄압은 정당화된다 한다. 그리하여 형법은 반혁명범죄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이라는 원칙하에 공산주의체제 안정화의 수단으로 제정되었다. 또한 공산주의 혁명가들로 구성된 당과 국가는 ‘법치주의의 예외’라는 우월적 특권도 인정받았다. 속성상 1당 독재는 1인 독재로 자연스레 향하게 된다. 북한은 공산주의의 계급적 특성과 김일성의 빨치산 혁명정신을 계승하여 주체사상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혁명적 수령관”, “사회주의 대가정론” 등의 이론을 통해 인민대중은 사회적 생명체를 이루고 개별적 사람들의 생명의 중심이 뇌수인 것처럼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은 이 집단의 최고뇌수인 수령이므로 수령과 당의 방침을 잘 따르는 것이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라고 가르친다. 현재 최고뇌수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져 세습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법상 최고의 규범은 김일성 교시 등을 떠받치는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의 10대 원칙”이고, 그 밑에 노동당규약, 헌법, 형법이 위치한다. 북한의 해설서에 의하면 “주체의 혁명위업의 승리를 반대하고 저해하는 반혁명범죄자들에게 가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폭력적 진압수단이며 제재수단”이 형벌이라 한다. 그리하여 유추해석이 허용되고, 구성요건이 불명확 하였다. 제정형법 이후 2015년까지 27차례 개정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국제사회의 인권침해 논란을 의식하여 2004년 개정에서 유추해석 허용규정을 삭제하고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신설했고 사형범죄의 수를 대폭 줄이고 용어들도 많이 순화하였다. 그러나 실제 운영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남북의 형법 사이에 다름이 많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통일형사법을 제정함에는 개인의 인권보장을 위한 최대의 안전장치인 죄형법정주의 와 적법절차 원칙을 잘 반영시킬 수 있는지 여부가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다. 교류협력을 통한 변화를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되, 천부 인권인 인간존엄성을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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