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4) / 풍등과 중실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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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4) / 풍등과 중실화죄
  • 신종범
  • 승인 2018.10.18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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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가천대 겸임교수
http://nulimlaw.com/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경기도 고양에서 발생한 화재 연기를 잠실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하니 대단히 큰 화재였다. 지난 10월 7일 고양에 있는 유류저장소에서 일어났던 화재 말이다. 사고가 난 다음날 화재와 관련해 한 외국인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라는 보도를 접했다. 얼핏 라디오 뉴스를 통해 외국인이 무엇인가를 하늘로 날렸고, 그게 원인이 되어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그 때 마침 아들이 드론을 사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던터라 ‘드론을 이용한 테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우리나라도 이제 테러에 안전지대가 아니구나’ , ‘드론을 이용해 어떻게 화재를 일으켰을까?’, ‘어느 테러단체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심각한 걱정이 민망함으로 바뀐 건 기사를 검색하고 나서다.

경찰이 수사를 통하여 유류저장소의 화재를 일으킨 외국인을 붙잡은 것은 맞는데, 그 외국인이 날린 것은 ‘드론’이 아니라 ‘풍등’이었다. 경찰이 CCTV 화면과 함께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유류저장소 인근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스리랑카인 노동자가 풍등을 날렸고, 그 풍등이 날아가 유류저장소 잔디밭에 떨어져 불이 붙은 후 유류저장탱크에 옮겨 붙으며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국가의 주요 시설물이 풍등 하나에 타 버렸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경찰은 그 스리랑카인에 대하여 중실화죄를 적용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화재원인이 밝혀졌고, 피해규모가 중대하다는 점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했겠지만, 중실화죄를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고개가 갸우뚱했다. 그 외국인이 풍등을 날린 곳은 유류저장소로부터 300m 떨어져 있는 곳이었고, 그는 “공사장 바닥에 떨어져 있는 풍등을 보고 순간 호기심이 일어 불을 붙였다. 갑자기 분 바람 때문에 풍등이 저유소로 날아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경찰의 구속영장신청을 반려했다. 지금까지 수사만으로는 중실화죄를 적용하기 무리라는 취지였다.

‘중실화죄’는 형법 제171조에 규정되어 있다.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제170조의 죄를 범한 자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기서 제170조는 ‘실화죄’로 “과실로 인하여 제164조(현주건조물 등에의 방화) 또는 제165조(공용건조물 등에의 방화)에 기재한 물건 또는 타인의 소유에 속하는 제166조(일반건조물 등에의 방화)에 기재한 물건을 소훼한 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우리 형법은 ‘실화죄’와 ‘중실화죄’를 구별하여 같은 목적물이라도 ‘(단순)과실’로 불을 냈느냐, ‘중대한 과실’로 불을 냈느냐에 따라 형량에 현저한 차이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중실화죄’에서 ‘중대한 과실’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 판례는 중실화죄에 있어 ‘중대한 과실’이란 “행위자가 극히 작은 주의를 함으로써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부주의로 이를 예견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라고 하면서 ‘경과실’과의 구별은 구체적인 경우에 사회통념을 고려하여 결정될 문제라고 한다. 법원은 성냥불로 담배를 붙인 다음 그 성냥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지 아니한 채 휴지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휴지통에 던져 화재가 발생한 사안에서 중실화죄를 인정하였지만, 전기석유난로를 켜 놓은 채 귀가하여 전기석유난로 과열로 화재가 발생한 사안에서는 중실화죄를 부정하는 등 구체적 사안에 따라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해왔다.

고양 유류저장소 화재 사고가 풍등으로 인하여 발생했고, 그 피해가 매우 중대했다고 해도 풍등을 날린 지점과 그 당시 상황 등을 보았을 때 이에 대해 중실화죄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다만, 수사결과에 따라 단순 실화죄의 성립은 가능할 수도 있겠다. 또한, 민사상으로는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가 문제될 수 있는데, 불법행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책임이 감경될 여지가 크다고 보인다.

‘드론에 의한 테러’가 아닌 ‘풍등에 의한 실화’여서 그나마 안도가 되었지만, 허술한 안전시스템과 안전불감증에 언제까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하는지 답답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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