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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한산의 단시와 김승희 시인의 “오른편 심장 하나 주세요”
오시영  |  sunwhis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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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1  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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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가을이 스스로를 추워한다. 서재에 앉아 한 잔의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한산시(寒山詩)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산시를 읽다 보면 마음에 욕심이 없어지고 평화로워진다. 당나라 시대 때 가난한 고승 한산자가 천태산 나무와 바위에 써놓은 시를 이름 모를 국청사 스님이 베껴와 세상에 알렸다는 한산의 단시 삼백여편은 현대와 동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현대와 맞닿아 있다. 깊어가는 가을 저녁, 한산시 한 편을 같이 보았으면 한다. “탐욕 많은 사람 재물을 모으는 것은/ 올빼미 그 새끼를 사랑하는 것 같아,/ 그 새끼 자라 어미를 먹는 것처럼/ 재물 많아지면 도로 내 몸 망치나니,/ 재물을 흩으면 복이 생기고/ 재물을 모으면 화가 생기나니,/ 진실로 재물도 없고 또 화도 없으면/ 저 푸른 구름 속에서 날개를 치리” (한자 원문 생략)

한산자는 짧은 단시를 통해 탐욕 많은 사람과 어미 잡아먹는 올빼미를 상호 대칭시키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며칠 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판결 과정이 전국에 티비로 생중계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탐욕이 스스로를 옭아매 15년의 징역형과 거액의 벌금형을 받는 것을 지켜보며 국민들은 허탈함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직”을 가훈으로 삼아 평생을 살았다는 그의 자랑이 헛자랑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평생 종교인으로서 존경을 받았던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가 마지막 고비에서 자신의 아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아들을 자신의 후임목사로 청빙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자신에 대한 비리가 추적되고 800억 원의 비자금으로 상징되는 불법자금 조성 의혹이 MBC PD수첩을 통해 고발되는 것을 지켜보며, 탐욕이 응고되는 곳에는 결코 선함과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없다는 깨우침을 새삼스레 배운다. 욕심쟁이가 재물에 빠져드는 거나, 올빼미가 장차 자라 자기를 잡아먹을 새끼에 빠져드는 거나 다 같이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라는 한산의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의 어리석음으로 이어져 우리에게 동일한 가르침을 안겨준다.

한산시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드는 생각은 한참 인간으로서 욕심이 극에 달하려던 때에 변호사생활을 접고 학교로 옮겨와 탐욕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살 수 있었음이 필자에게 큰 축복이었구나 하는 감사가 넘쳐난다는 점이다. 제자들에게 법률 지식을 전수하면서 스스로도 부족한 지식의 축적을 노력 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왔던 삶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법학도로서 정의를 올바르게 직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함께 주기 위해 애쓰다 보니 교수로서도 올바르게 사는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다 보니 어느 듯 세상 탐욕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음에 감사가 계속 생겨나는 것이다. 변호사로서만 살았더라면 스스로 진흙탕 속에서 엉망진창인 삶을 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면서 그렇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것이다.

법률저널 1000호 지령이 되던 날, 고맙게도 법률저널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지난 18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오시영의 세상의 창” 코너를 맡아 한 주도 빠뜨리지 않고 칼럼을 게재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해 받은 것이다. 스스로 되돌아보니 지난 18년 가까운 세월 동안 외국에 장기간 출타할 때도 있었고, 몸이 아파 입원한 때도 있었으며,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때도 많았었는데, 한 주도 빼먹지 않고 신문 마감시간을 지킬 수 있었던 성실성에 스스로 대견(?)해 하면서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패를 받았다. 되돌아보니 칼럼에서 바람풍이라고 했으니 내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 역시 바람풍이어야 한다는 자기 검열의 세월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결국 세상의 창 칼럼이 내 자신의 18년 동안 일기였고, 스스로 삶의 방향타였으며 내 자신의 내면을 향한 자기 성찰의 고삐 조임이었다. 18년 동안의 내면의 다짐이 지금의 나를 존재케 한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한산이 천태산 바위와 나무에 삼백여 편의 시를 새기며 자신의 내면에 끓어오르는 욕망을 자제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수많은 칼럼 내용이 필자를 숙성시킨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면 말과 행동이 겉도는 경우를 참으로 많이 발견하게 된다. 정치지도자로서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여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거짓말”은 우리 모두를 절망케 하였다. 결국 서울중앙지방법원 정계선 부장판사는 “다스는 이명박 대통령 소유”라고 결론짓고 자신의 소유인 다스의 이익을 위해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수많은 불법행위를 저질러온 범죄사실 거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하였다. “다스는 이명박 것”이라는 세상을 향해 그러한 말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새빨간 거짓말”을 하며 혀를 날름거리던 그는 최소한의 양심과 신뢰마저 져버린 참담함을 국민에게 안겨주었다. 명성교회라는 국내 최대 단일교회의 원로목사인 김삼환 목사 역시 연간 400억 원이 넘는 헌금에 대한 예산집행권과 수많은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 그리고 무엇보다도 10만 명의 교인을 수족처럼 부리며 그들 위에 절대적 예언자로서 군림해왔던 종교지도자로서의 가면 뒤에서 비자금이라는 의심을 받는 거액의 자금을 조성하고, 스스로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통해 명성교회 내에서 절대자로 군림해 왔다는 사실이 신앙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마저 져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 서글픈 것이다.

선한 백성과 선한 교인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그렇게 허위의 탈을 쓴 지도자들의 교언영색에 현혹되어 영혼에 상처를 입고 자존심에 모멸감을 느껴야 하는지 참으로 알다가 모를 일이다. 1,300여 년 전의 한산은 말한다, 재물을 버리라고. 그렇게 되면 푸른 구름 속에서 날개를 치듯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재물에 얽매여 살아가면서 탐욕의 노예가 되어 있다. 가을은 사유의 계절이다. 바쁘게 살아온 삶을 조금 멈추고, 정중동의 자세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잘 되었는지 스스로를 반성하며 변화된 내일을 꿈꾸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좋은 시를 읽고 음악을 들으며 마음에 여유와 평안을 가득 채워야 한다.

탐욕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이는 바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바뀌려면 저렇게 확실히 바뀌어야 한다. 핵무기정책을 포기하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핵포기를 포함한 일체의 협상을 추진해 나갈 용의를 내비치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 보이는 그의 언행은 상당히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믿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불신의 마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이들 중에는 의외로 기독교인들이 많다. 교회 장로로서 수많은 다른 교회 장로 또는 목사들과 교류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많은 교계 지도자들 중에 의외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믿을 수 없다며, 박멸의 대상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범한 잘못을 이제는 용서해 줄 때도 되었다고 말해 보지만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로마의 프란체스코 교황을 북한에 정식 초대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을 보면 동토의 땅,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던 북한에도 멀지 않은 시기에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 본다.

한산의 단시에 이어 얼마 전 제4회 한국서정시문학상을 수상한 김승희 시인의 현대시 한 편을 보자. “사랑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칼/ 손으로 잡으면 늘 다치는 것/ 사랑은 가슴 위로 떨어지는 피/ 피하려고 해도 꼭 적시는 것// 세상은 온통 배롱나무 꽃 천지/ 지금의 꽃의 피가/ 사방 고기에 다 물들었다// 앞으로 갈 길에는 주유소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 기름이 거의 떨어져 가는데/ 다음 주유소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여기서부터다/ 주유소가 안 나오면/ 꽃의 피로 가야지,/ 못 박힌 자리마다 쏟아지는 피,/ 오른편 심장 하나 구하려고 배롱나무 꽃그늘에” (‘오른편 심장 하나 주세요’ 전문, 월간 문학사상 2017년 1월호).

지난해 재직하던 서강대를 은퇴한 김승희 시인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자신의 모습에서 기름이 거의 떨어져 가는 자동차를 연상한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는 새로운 주유소가 나타날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면서도 사랑은 머리 위에 떨어지는 칼 같은 것이라며, 손으로 잡으면 늘 다치는 것이라며 새로운 사랑과 그로 인한 상처를 꿈꾸는 소녀가 된다. 어디 그뿐인가? 사랑은 가슴 위로 떨어지는 피 같은 것이라며, 피하려고 해도 꼭 젖게 되는 운명 같은 것이라며 사랑을 그냥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유소가 안 나타나면 꽃의 피로라도 가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전의를 다진다. 사랑의 칼을 통해 누군가를 기다리는 숙명을 받아들이면서도, 못 박힌 자리마다 피를 쏟았던 예수라는 남자를 떠올리고, 사랑에 벌떡거리는 오른쪽 심장 하나를 구하려고 발버둥 친다, 자기 스스로 왼쪽 심장이 되어서. 새로운 부활을 꿈꾸며 배롱나무의 화려함에 손 내민다.

한산은 욕심을 버리라며, 세월이 흐를수록 욕심은 버리는 것이라고 일갈하는데, 김승희 시인은 사랑의 칼에 손을 베이고 피를 쏟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주유소가 나타나지 않는 곳부터가 새로운 인생이라며 붉은 배롱나무 꽃 피로라도 가야 하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을 기대한다. 새로운 부활의 욕심을 버리지 말라고 강변한다. 한산의 버림과 김승희의 붙잡음은 서로가 붙잡음이고 서로가 버림이다. 버림이 곧 붙잡음이고, 붙잡음이 곧 버림인 것이다. 한산의 버림은 버림을 통한 극렬한 붙듦의 자기애(自己愛)이고 자유로움을 향한 무한한 욕망이다. 김승희의 붙잡음은 구원을 향한 자기 절망이자, 피 흘림을 통한 희생이고 구원이다.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날씨가 너무 좋아 야외활동하기에도 좋지만,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만들어주는 청량함은 머리를 맑게 하고 몸을 개운하게 하여, 똑 같은 글을 읽어도 가슴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어느 계절보다 맛깔스럽다. 이미 몸과 마음이 글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김승희 시인은 시에 대하여 “달의 뒤편에 대하여 쓰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리고 시인은 “달의 이면을 다녀온 사람”으로 정의한 바도 있다. 달의 표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과 달리 달의 이면을 다녀온 시인은 세계의 부조리 속에 홀로 침몰해가야 하는 고독한 자아의 편린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나의 자아가 타자에게 흩어져 있음과 타자 속에 숨어 있는 자기 자신의 편린을 만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세월호 아이들의 모습에서, 영화배우 이은주나 최진실, 장자연 같은 찬란한 빛의 이면에서 비극적 어둠을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자아의 편린을 찾아내 함께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시인의 아픔이 시를 통해 독자에게 전해지고, 독자가 함께 공감할 때 가을은 제대로 된 가을이 될 수 있다.

탐욕과 버림은 언제나 공존하면서 공멸한다. 한산이 아무리 탐욕을 버리라 절규한들 그 누가 탐욕을 버릴 수 있겠는가? 탐욕의 버림은 곧 죽음이라며 탐욕을 붙들고 있는데, 어찌 탐욕을 버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대통령도 못 버리고, 최대 교회의 성직자도 못 버리는 탐욕을 어찌 필부더러 버리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다 자란 새끼 올빼미가 어미를 잡아먹듯, 다 자란 탐욕이 탐욕자를 잡아먹듯, 그때쯤, 바로 잡아먹힐 때쯤에야 탐욕이 공멸의 동일체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까닭에 잡아먹히기 전에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상책 중의 상책이다.

이 가을, 좋은 시를 읽으며 독자분들께서 마음에 기쁨이 가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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