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82)-풍등과 풍전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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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82)-풍등과 풍전등화
  • 강신업
  • 승인 2018.10.1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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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무오류가 신의 속성이라면 오류는 인간의 속성이다. 무과실이 신의 속성이라면 과실은 인간의 속성이다. 인간의 실수는 인간내재적인 것이다. 때문에 현실에서 실수가 가져온 결과를 도덕적으로 문제 삼는 경우는 드물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실수가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소설 속에서 가능하다.

법의 영역에서 실수는 도덕에서와는 사뭇 다른 대접을 받는다. 법은 기본적으로 질서 유지와 형평성을 목적으로 하는 까닭에 사회질서를 해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은 비록 과실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 특히 피해 회복의 추구를 본질로 하는 민사법에서는 고의와 과실은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민사법의 관심은 행위보다는 결과에 있다.

반면 형법이 문제 삼는 것은 주로 인간의 고의적 행동이다. 우리 형법은 과실범은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만 처벌한다. 주의가 요구되는 몇 가지 경우, 가령 실화, 교통과실, 과실치사상 등 사회 생활상 주의가 꼭 필요한 경우에 주의의무를 부과하고 태만히 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법의 정신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할 수 없다. 정상적인 주의의무를 다한 경우 처벌할 수 없다. 행위자가 주의를 다 했더라면 결과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그 예견된 결과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는데도 주의를 다하지 않아 회피 수단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중과실은 결과가 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주의의무를 현저히 결하였기 때문에 중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2018. 10. 7. 일요일 오전 10. 30경, 고양시 덕양구 저유소 주변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27살의 스리랑카 청년이 풍등을 하늘로 날렸다. 돌을 치우는 일을 하다가 인근 초등학교에서 날아온 풍등 하나를 주웠던 터였다. 그로부터 약 6시간 후 그는 경찰에 전격 체포 됐다. 그가 날린 풍등이 300미터 떨어진 휘발유 저장소가 폭발하는 큰 화재로 이어졌다는 이유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CCTV엔 피의자로 입건된 스리랑카 청년이 풍등을 날리고, 그 풍등이 저유소 쪽으로 날아가 저유소 주변 잔디밭에 떨어지고, 풍등이 떨어진 잔디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날아가던 풍등을 급히 따라가던 스리랑카 근로자가 풍등 쫒기를 그만두고 돌아서는 장면이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스리랑카 청년은 죄를 지은 것인가. 형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실화다. 그의 실수로 잔디밭에 불이 붙어 저유소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일단 그를 중실화죄로 입건했다. 그가 풍등을 날릴 때 주위에 저유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풍등을 날리면 저유소에 화재가 날 수 있다는 것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었는데도 최소한의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 발표 후 많은 국민은 과연 저유소 화재의 책임을 스리랑카 청년에게 묻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오히려 기본적인 관리조차 하지 않은 대한송유관공사와 정부가 책임을 엉뚱한 사람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거세다. 문제는 풍등(風燈)이 아니라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지경에 이른 정부의 안전관리시스템이라는 말도 나온다. 오죽하면 전쟁이 나면 포격도 필요 없고 풍등 수십 개만 날려도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란 비아냥까지 나오겠는가.

이 사건은 관계기관과 정부당국이 위험물 관리에 대한 기본적인 주의의무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지탄받아야 대상은 먼 이국 땅 공사장에서 무거운 돌을 나르다 우연히 주은 풍등을 하늘로 날려본 스리랑카 청년이 아니라 불성실하고 무능한 관계기관과 관리자들이다.

법은 불가능한 것을 강요할 수 없다. 외국에서 온 청년이 과연 저유소 300미터 지점에서 풍등을 날리면 저유소에 불이 난다는 것을 예견하지 못하고 풍등을 날린 것이 더 문제인가. 아니면 송유전문가가 저유소 주변을 콘크리트 포장이 아닌 잔디밭으로 조성하고, 그 잔디와 저유소 사이에 경계석을 세우지 않고, 유증기회수장치도 달지 않은 것이 더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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