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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변화, 문화, 진화?
신희섭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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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1  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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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본인들은 특별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배웅문화. 일본인들의 배웅을 받아본 사람들은 그들이 배웅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대는 과한 친절함을 알 것이다. 한국 사람들도 배웅을 친절하게 그리고 오래 하지만 일본인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친절함이랄까.

일본인들의 배웅문화에는 특별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과거 일본은 사무라이들이 사회의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군주를 지키는 것을 인생의 최고 덕목으로 여겼다. 만약 자신의 군주가 모욕을 당하거나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는다면 이들은 모욕을 준 사람이나 공격을 한 무리를 공격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암살하였다. 이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암살은 하나의 관습처럼 되었다. 따라서 상대에게 암살당하지 않으려면 그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을 흔들며 친절하게 배웅을 해야 했다. 손을 흔들어 친절함을 드러내는 것이 내가 공격의 의도가 없음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친절한 배웅의 문화적 맥락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21세기 지금 일본인들이 친절하게 배웅하는 것은 암살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과거의 문화는 다른 의미들을 가지고 변화하는 것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또 다른 문화를 만들며 변화한다. 전통적인 일본인들의 문화, 즉 소규모 조직 내에 어떻게든 속해야 하는 문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거나 사회와 외면하는 이들도 있다. 문화의 변화.

문화가 변화하기는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1980년 신군부의 쿠테타는 한국 사회에 변절과 배신이 아무렇지 않은 문화를 만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직업안정성 선호라는 변화를 이끌었다. 2002년 월드컵과 광장의 응원문화는 ‘Be the Reds'를 외치면서 빨갱이 신드롬을 없애는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시위 문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문화의 변화는 특정인이나 특정조직에 의해 의도된 대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암살이 웃으며 끝까지 손을 흔드는 방식의 문화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이들이 대응한 다양한 방식 중 특정 방안이 다른 이들의 더 많은 지지를 받으면서 문화는 변화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문화는 진화해간다. ‘암살’에서 ‘친절함’으로의 진화처럼.

2018년 현재 밀레니얼세대 혹은 에코세대에는 새로운 문화들이 많이 있다. 이 세대는 취직이 어렵기 때문에 스펙형성에 많은 투자를 한다. 물론 과거 세대들도 노력했지만 밀레니얼세대가 투자하는 시간에 비할 바 아니다. 또한 이들 세대에게 인터넷과 모바일은 생활의 일부이자 생활 그자체이다. 실시간 뉴스도 유튜브로 시청할 정도로.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얻어진 정보 덕에 쏠림 현상도 강하다. 특정 지역이 핫 플레이스라고 소문이 나면 그 지역에 밀물처럼 사람들이 몰린다. 과거 세대들의 놀이터였던 종로와 신촌 대학로가 한물 간 것을 보라. 이제 젊은이의 놀이터는 홍대와 건대와 연남동이다. 그러나 몇 해 뒤에는 이곳들도 어찌 될지 모른다.

최근 방송을 보다 눈여겨보게 된 것이 있다. 방송들의 한 쪽에서는 취업의 고통, 청년실업의 문제, 비싼 물가와 직장인 소득으로는 어림도 없게 치솟는 집값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또 한쪽에서는 가까운 외국에 얼마나 저렴하게 갈 수 있는지를 경쟁적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물론 여행이 반드시 에코세대만을 위해 권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송이 타겟으로 한 주된 층은 겹친다.

고통과 여행. 두 중심축은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한 축은 치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문화를 만든다. 다른 한 축은 복잡하고 고단한 경쟁에서 잠시 나와 쉬라고 한다. 일명 휴식을 권하는 사회.

누군가가 고통을 만들지도 않았고 누군가가 휴식을 만든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가 고도 성장기를 지나 중년기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차원의 고통과 세계경제구조로 만들어진 고통들이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몇몇 제조업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고용창출을 해내기 어려운 상황과 기존 세대들이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과 또한 기업들도 신규채용보다는 경력직을 채용함으로서 비용을 줄이고 불확실성을 줄이는 상황이 만들어낸 고통들이 있다. 모두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그러니 어느 누가 나서서 쉽게 해결책을 내놓을 상황도 못된다. 쉽게 말해 단기적인 해법이 없다. 그저 경쟁구조에서 자신이 살아남는 것에서 한 시름 놓는 수밖에.

다른 문화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한 걸음 비켜서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거나 이 경쟁구조의 치열함에서 한 발 물러서라는 것이다. 여행은 이렇게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것도 비행기의 엔진소리를 듣고 외국 공항에 내릴 때의 특유의 공기를 맡으면서.

“고통스럽지, 그럼 즐겨”라고 방송은 부추긴다. 한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매우 자세히 알려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지 그리고 여행에서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 방식을 소개해준다. 구조적 문제들로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현재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잘 짜여진 기계처럼 고통을 상기시키고 약을 발라준다. 그런데 그 약을 사기 위해서는 또 고통이 따른다. 돈을 모아야하고 실패할 확률이 적은 계획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계처럼 작동하는 사회문화는 ‘에코세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에코세대의 부모들인 ‘꼰대세대’에도 해당한다. 그들은 마치 시지프스가 돌을 밀어올리고 다시 굴러 떨어진 그 돌을 밀어 올리듯이 치열한 경쟁구조에서 고통 받고 치유책을 찾는다. 게다가 자식세대인 에코세대까지 데리고 여행이란 피난처를 찾아야 한다. 꼰대세대의 부모인 ‘보릿고개 세대’들도 마찬가지이다. 은퇴를 하고 수입이 별로 없는 이 세대도 삶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식세대와 여행을 가는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이다. 다른 방식의 치유책을 찾아 일상에서 한 걸음 여유를 가져야 하지만 이것도 녹록한 일이 아니다.

오늘도 TV를 틀고 신문을 펴면 그리고 인터넷을 열면 무수한 고통의 흔적과 치유의 처방들을 본다. 이렇게 변화를 만들어가는 우리 시대의 문화는 과연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게 될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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