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좋은 재판’, ‘좋은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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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좋은 재판’, ‘좋은 법원’
  • 강신업
  • 승인 2018.10.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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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해 9월 25일 취임하면서 ‘좋은 재판’ 실현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독립된 법관이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통해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는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올 신년사에서도 국민의 신뢰 없이는 사법부가 존재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며 좋은 재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전국의 법관들을 비롯한 법원 구성원 모두와 함께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이 실현되는 ‘좋은 법원’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결의를 다진 것이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지 1년이 지났다. ‘사법농단’ 수사에 빛이 바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재판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와 닿는 것은 딱히 없어 보인다. 사실 법원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을 하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서, 굳이 ‘좋은 재판’이라는 이름까지 붙혀가며 목표로 삼는 것 자체가 생경하기도 하다. 어쩌면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법원의 궁여지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때 까지 떨어진 지금 그 신뢰를 되찾는 길은 오직 국민이 원하는 재판을 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은 간단하다.

오직 공정하게 재판해야 한다. 정의의 여신 디케의 눈이 가려진 건 권력과 편견에서 공평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한 손엔 저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칼을 든 건 저울처럼 공정하게 칼처럼 엄정하게 재판하라는 것이다. 법관이 누구인지, 당사자가 누구인지, 소송대리인이나 변호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선 안 된다. 우리 현실에서 공정한 재판을 위해선 먼저 정치편향성 시비와 전관예우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가능한 신속하게 재판해야 한다. 대법원이 최근 발간한 ‘2018년도 사법연감’에 따르면 1심 민사 본안사건의 경우 소장접수부터 첫 기일까지 소요된 기간이 117.5일이었다. 약 4달이 걸린 셈이다. 민사 항소심 사건의 처리기간은 평균 264.4일이었는데, 이 가운데 항소장을 접수한 후 첫 재판이 열리는 날까지 소요된 기간이 평균 133.5일이었다. 기다리는데 4달 반을 소비한 셈이다. 소장 접수 후나 항소장 접수 후 첫 기일까지의 기간을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재판부가 석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피고가 답변서를 제출하면 바로 변론기일을 정해 재판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방법을 찾아 재판에 돈이 많이 들지 않게 해야 한다. 재판 받을 권리가 돈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민사 항소심 인지대는 1심의 1.5배, 상고인지대는 1심의 2배로 되어 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상소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 외에 다른 특별한 이유도 없어 보인다. 특히 상고심에서 인지대를 1심의 2배나 받아놓고도 십중칠팔의 사건을 심리불속행기각으로 처리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항소심과 상고심 인지대를 1심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 법률보험을 공적보험으로 도입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형사소송비용 국가 보상제도’를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 적어도 무죄확정 판결을 받은 피고인에 대해서는 변호사비용 등 소송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국민이 재판을 신뢰하도록 해야 한다. 민사에선 소액·중액 재판을, 형사에선 단독 재판을 경륜이 풍부한 원로법관들이 맡는 것도 방법이다. 법관의 제척, 기피, 회피 제도의 활성화에 법원이 먼저 적극 나서야 한다. 사법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비밀이 많으면 의심이 생긴다.

법원은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권리관계에 다툼이 있다면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정의의 선언을 받을 수 있고 소송에 진 사람도 깨끗이 승복할 수 있는 재판이 되어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재판제도, 법관인사, 그리고 사법행정 등 전 분야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제발 ‘좋은 재판, 좋은 법원’ 구호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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