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밀레니얼 세대, 꼰대 세대, 보릿고개 세대의 불편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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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밀레니얼 세대, 꼰대 세대, 보릿고개 세대의 불편한 동거
  • 신희섭
  • 승인 2018.10.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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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어릴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남이 밥 먹고 있을 때 그 쪽은 쳐다보지 마라.”

어려서 할머니가 키워주셨던 탓에 가장 많이들은 소리이다. 가난했던 시절. ㄷ자 형태의 집의 중간에는 주인집이 있었고 한 칸 짜리 셋방들이 양 측면을 둘러싸고 있었다. 여러 가구들이 한 집에 모여 살아서 상호의존성이 높은 이 집 구조는 밥 때가 되면 누가 무엇을 해서 먹는지를 냄새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할머니는 가난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거나 비굴하지 않기를 교육하셨다. 특히 어린 시절에 가장 유혹적인 먹을 것 앞에서. 의례 누군가 무엇을 먹으면 쳐다보게 되는 본능과 그 본능의 억제.

한번은 주인집 가족들이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멀뚱히 본 적이 있었다. 그 집 할머니는 와서 밥 한 그릇하라고 권하셨다. 그때 내 할머니가 집에 들어오셨다. 곧 내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곤 정말 불같이 화를 내셨다. 할머니는 나를 장손이라 평소 귀하게 여기셨지만 그때는 정말로 화를 많이 내셨다. 그래서 그 뒤에 누가 무엇을 먹을 때 그 쪽은 쳐다도 안 보게 되었다.

예전 이야기다. 40년 정도 전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경험한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들.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꼰대 감수성” 공유.

그런데 현재시대는 다르다. 요즘은 TV를 틀어 남이 먹는 것을 찾아서 즐긴다. 아니 열광한다. 이런 흐름은 몇 년째 ‘먹방 TV’시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먹방은 더 진화하고 있다. 유튜브까지 동원되어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 한 번에 라면 5개 먹기 같은.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이 중의 한 사람이 ‘밴쯔’다. 250만 명의 관객이 유튜브를 통해 그가 빨리 그리고 많이 먹는 모습을 보고 열광한다. 그리고 먹방 관람은 그에게 10억 이상의 수입을 가져다준다. 자본주의의 엄청난 힘. 먹기⇨관람⇨부의 창출.

“남이 먹는 것을 쳐다보지 마라”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꼰대세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것의 사회적 의미해석은 가장 단순하게 보면 세대 차이가 될 것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꼰대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의 문화 차이. 1960년대에서 1970년대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 ‘꼰대세대’는 오프라인의 이성과 집단의 정서를 강조하는 세대이다. 반면 1980년대에서 2000년 초반 출생자들을 지칭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온라인세계와 자기중심성이 강한 이들이다. 나르시즘. 이 세대의 자기중심성을 정의할 수 있는 용어. 따라서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군사주의와 민족주의와 같은 집단주의로 무장한 꼰대세대를 이해하기 어렵다.

또 다른 한 가지 해석이 있다. 세대 차이보다는 산업화에 따른 설명이다. 논리는 이렇다. 꼰대세대가 후진국 국민들이었다면 밀레니얼세대는 선진국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 다른 국가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국가의 세대 간의 문화차이가 아니라 다른 국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대단히 재미있을 뿐 아니라 분석적이다. 만약 후진국국민과 선진국국민으로 나눌 수 있다면 같은 공간 안에는 다른 시간과 다른 사회가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사회현상 중 하나인 소황제를 설명하는 것과 유사하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인 주링허우 세대(九零後 世代)와 개혁개방이후 태어난 1980년대 세대인 바링허우 세대(八零後 世代)가 갈릴 정도로 각 세대가 새로운 방식으로 살고 있다.

여기서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는 것이 있다. 한국이나 중국 모두 개발도상국이라는 과정을 거쳤고 거치고 있다. 한국은 29년 만에 농업사회를 탈출한 세계적 기록을 가지고 있다. 빠르게 개발도상국의 시기를 보내면서 가난을 공유한 이들과 부유해진 세대들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에 따른 사회변동이 한 세대와 이전세대를 전혀 다른 부류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 선진국민인 밀레니얼세대가 볼 때 이전 세대의 문화는 꼰대 문화, 후진국 문화가 되는 것이다. 같은 국가 내에 다른 두 개의 국민들은 갈등하게 되어 있다.

요즘 두 국민간의 차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랜선 라이프’이다. 랜선 라이프란 오프라인이 아닌 랜선 즉 온라인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꼰대 세대가 볼 때 밀레니얼 세대의 랜선 라이프가 잘 이해될 리 없다. 나가서 친구를 만들면 될 것을 인터넷 랜선에서만 친구를 만드는 행위가 꼰대들에게는 납득이 될 리 없다. 또한 실제 동물을 키우면서 교감을 나누면 될 것을 인터넷에서 누군가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될 리 없다. 반면에 자신이 중요한 밀레니얼 세대 입장에서 오프라인상의 친구 관계나 실제 애완동물사육은 자칫 부담이나 구속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쿨하게 보고 대리만족을 즐기다 맘에 안 드는 어느 순간에는 그 사이트에서 나가면 된다.

이 분석을 확장해 보면 한국 사회가 좀 더 명확히 이해된다. 빠른 산업화를 경험한 한국에는 단지 두 세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꼰대 세대 위에는 그 세대의 부모세대인 일명 ‘보릿고개 세대’가 있다. 보릿고개라는 시기를 보내면서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할 수 있다는 절박함을 느낀 후진국세대가 있는 것이다. 후진국 국민인 ‘보릿고개 세대’가 한국을 개도국으로 만들면서 ‘꼰대세대’도 만들었다. 그리고 개도국세대인 ‘꼰대세대’가 산업화를 심화시켜 선진국 국민인 ‘밀레니얼세대’를 탄생시킨 것이다. 한 공간 내 3개국 국민의 공존.

그래서 한국은 불편하다. 후진국국민과 개도국국민과 선진국국민이 문화와 관습에서 모든 분야에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자녀 간에, 조부모-부모 간에, 조부모와 손자 간에 갈등이 상존한다. 태극기와 촛불의 갈등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빠른 산업화의 후폭풍은 오늘도 한국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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