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9,19 평양선언, 3자(Triad)게임의 공은 이제 한국으로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9,19 평양선언, 3자(Triad)게임의 공은 이제 한국으로
  • 신희섭
  • 승인 2018.09.21 1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화려한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다. 2018년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임기 중 3번째이다. 이번은 평양이었다. 역대 5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체제가 보여주는 ‘과잉’으로 시작하여 ‘과잉’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는 모든 일정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9월 20일 오전 행사가 백두산인 것을 볼 때 그렇게 끝이 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제 정상회담의 ‘공(buck)’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외교적-정치적 부담도 함께.

이번 정상회담은 정치학의 개념 두 개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는 ‘과잉’이다. 두 번째는 ‘삼자(triad)게임’이다.

먼저 ‘과잉’에 대해 살펴보자. 정상회담의 시작은 화려했다. 평양순안공항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이설주 여사가 마중을 나왔다. 경호원 없이 두 사람은 여유롭게 대한민국 공군 1호기 앞으로 와서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 때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했던 깜짝 마중의 재현.

이어 예포가 21발 발사되었고 인민군의장대의 절도 있는 사열이 진행되었다. 의장대지휘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통령각하’라는 호칭을 붙였다. 공항에 나온 평양주민들은 손에 꽃을 들고 조국통일을 열렬히 외쳐댔다. 공항에는 “문재인대통령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공개적으로 붙어 있었다. 이 모든 행사를 주관하면서 이리 저리 움직인 이는 다름아닌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공항을 출발해 백화원의 영빈관까지 가면서 71층짜리 고층아파트가 있는 ‘평해튼’을 거쳤다. 이동 중 문대통령은 무개차를 타고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평양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중간에 내려서 악수를 하기도 하였다. 평양시민들은 문대통령이 지나가는 길에 손에 꽃을 들고 환호하였다.

왜 이렇게 북한은 과도하게 준비를 한 것일까? 문재인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체제 특성. 이것이 과잉의 본질이다.

북한체제는 기본적으로 전체주의 체제이다. 개인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이라는 집단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장마당이 서고 자유연애가 일상화되고 있고 아파트 소유권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등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정치체제 자체는 여전히 전체주의체제이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당이 국가의 상부에서 하부의 경제와 사회를 지도한다. 주체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체제를 운영하며 인민들에게 대한 막강한 동원이 이루어진다. 이런 전체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정치과잉’이다. 모든 것을 동원하고 정치화한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관계로 개인들에게 선택권으로서 정치는 사라지고 지도자가 요구하고 강요하는 정치만이 강조된다.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북한의 준비는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동원된 여성들은 촌스러운 ‘한복’을 입고 있다. 반면에 남성들은 어두운 색 ‘양복’을 입고 있다. 일제히. 한복의 색깔만 제외하면 일제시대가 연상된다. 이렇게 동원된 이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한 꽃을 들고 길에서 목청껏 환호를 한다. 게다가 꽃을 격렬하게 흔드는 연습까지 해서 준비를 한다. 이러한 동원 구조는 전체주의에서 주민들에게 체제 정당성을 각인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동원의식은 대체로 ‘과장’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장이 일상화되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지 신경을 안 쓰게 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과장’전략은 보는 사람을 처음에는 불편하게 하지만 압도적인 웅장함으로 이내 그런 불편을 잊게 만든다. 이런 과장전략은 과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과장을 통한 감정의 과잉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민족과 같은 개념이 끼어들면 이러한 감정과잉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

9.19일 발표된 평양선언은 많은 내용들이 담겼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고 안정을 희구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약속들은 바람직하다.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남북 경제협력의 토대를 구축하며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과 함께 다양한 분야의 교류협력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유용하지만 당위적으로도 바람직하다.

그런데 문제는 3자(triad)게임이라는 구체적 도식에 대입할 때 생긴다. 현재 북한은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UN을 통한 국제제재를 받고 있다. 그리고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그래서 북한이 핵문제를 통해서 안보를 보장받고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고 싶어 하는 국가도 바로 미국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북미정상회담을 연계하는 의미가 더 크다. ‘한반도 운전자론’이 말하듯이 중개자 혹은 중재자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중개자로 하여 미국과 북한이라는 3개의 국가들이 역동적으로 게임들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3자게임의 진행은 복잡하다.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와 연계하면 제 3자가 고립될 수 있다. 만약 남한과 북한이 협력의 속도를 내면서 북한과 미국사이의 협상이 지체가 되면 미국은 고립되게 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남한은 트럼프정부와 먼저 협의를 해가면서 북한 문제를 풀어왔다. 이번 정상회담도 그러한 맥락에서 진행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걸린 문제가 있다. 이 3자게임을 지켜보는 관객들이 가장 관심이 있어 하는 북한의 비핵화문제이다. 이번 9.19선언에는 북한이 ‘동창리 엔진시험장을 폐기하고 외부사찰을 받겠다는 것’과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영변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는 것’ 이 문서로 들어가 있다,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독대한 자리에서 어떤 구체적인 구두 약속이 나왔는지는 9월 24일 UN에서 문재인대통령과 트럼프대통령이 만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위의 내용만으로는 관객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물론 북한이 초도적인 조치를 취하고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면 궁극적으로는 핵관련 리스트를 모두 공개하고 페기수순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북미관계를 볼 대 낙관적인 기대만 가지기는 어렵다.

북한입장에서는 비핵화문제를 너무 빨리 풀어 모든 패를 다 보여줄 수도 없는 입장이다. 트럼프 정부도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재선을 고려할 때 시간을 끌면서 북한 문제를 지켜볼 수만도 없다. 그러니 비핵화문제는 상당히 시간이 걸릴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간의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져있는지 모르겠지만 남북 간의 경협이 구체적인 일정을 가지고 발표된 것이나 남북한 간의 군사합의를 이룬 것은 한국 정부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북미 간의 비핵화 교섭이 삐끗하면 북한에 대한 UN의 제재가 풀리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경협을 어렵게 할 것이다. 핵문제가 원만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남한의 재래식전력운용을 제한하는 군사적 합의는 안보문제를 소홀히 한다는 공격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3자 게임에서 중개자는 어렵다. 다루어야 할 대상이 2개나 되기 때문이다. 신뢰가 구축된 상황에서도 2개의 대상을 연결하기 어려운데 아직 초보적인 단계의 신뢰도 없는 북한을 대상으로 중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문재인 정부는 어려운 처지이다. 일을 빨리 진행하면 뒤따르는 두 국가가 보조를 안 맞출 것이 걱정이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쪽 행위자는 지나치게 과장과 과잉전략을 사용하고 있어 그쪽 편을 들면 3자간 시각 차이로 불편해질 수도 있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개자라는 어려운 결단을 내린 만큼 그리고 3차례나 정상회담을 만들어낸 만큼 향후 3자를 아우르는 결단들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어두운 경제 상황에 북한문제해결이 한줄기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북한이 사용한 과장과 과잉전략에 너무 경도되지 않기를 바란다. 중개자가 시간을 조절해주어야 3자간의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과잉의 정상회담이 끝났으니 이제 명징한 이성의 시간이 돌아왔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