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 – 추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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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 – 추자도
  • 호문혁
  • 승인 2018.09.2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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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호문혁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前 사법정책연구원장
前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
제1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2008년 2월,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예비인가가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주대에서 서울법대와의 교류협정을 제안해왔다. 우리 입장에서야 전국의 어느 법과대학이나 법전원이든 서로 교류하면서 필요하면 지원도 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기꺼이 응하여 교류협정을 체결하였다. 그 해 5월 말로 학장 임기가 끝났고, 다음 해 1학기에 연구년을 받았다. 강의를 면제 받은 그 1년 간 어디로 갈까, 자주 가는 독일에 가서 머물까, 여러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제주대와의 교류협정이 생각났다. 대학생 때부터 되뇌던 ‘pacta sunt servanda(약속은 지켜야한다)’를 떠올리면서 제주대 법전원 준비단장을 지낸 김상찬 교수께 제주대에 가서 1년 가까이 있어도 되겠냐고 메일을 써서 허락을 받았다.

▲ 사진 1.

2009년, 그러니까 법전원 출범 첫 학기 4월 2일에 집사람과 제주로 향했다. 공항에는 법전원 송석언 원장이 마중을 나와 우리를 캠퍼스 안의 교수아파트로 안내했다. 마침 학교 주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경치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연구실도 받고 며칠 지내보니 참 호젓하고 좋았다. 여기서 11개월 있으면 법전원 준비하느라고 피폐해진 심신이 건강해지고 뭔가 그럴듯한 연구서도 하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꿈은 그 해 6월, 문자 그대로 ‘난데없이’ 서울대 교수협의회를 떠맡게 되면서, 또 하필 그 때 정부와 서울대가 법인화 추진 작업을 시작하는 바람에 시도 때도 없이 서울에 왔다 갔다 하느라고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도 서울에 일 없을 때에는 제주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 사진 2

제주대에서의 첫 학기는 법전원 첫 해 첫 학기였기 때문에 민사소송법 관련 과목이 개설되어 있지 않았다. 오창수 교수가 자주 학생들과 한라산이나 여러 오름에 오를 때 고맙게도 집사람과 나도 불러서 학생들과 어울릴 기회가 자주 있었다. 때로는 학생들에게 곡차를 이용한 몇 가지 친목 증진 기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2학기가 되어 ‘독일법특강’을 맡아 금요일 오후마다 강의를 하였다. 말하자면 민사소송법 심화과정인 셈이었다. 로마법에서 비롯된 민사소송법의 역사로 시작해서 주제별로 독일의 이론도 곁들여서 학설, 판례를 설명해 갔다. 학생들이 적어도 ‘말로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 많아서 재미있게 듣는다고 했다.

▲ 사진 3

그러던 어느 날 제주대에서도 블록세미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였는데, 학생들이 추자도를 추천했다. 참석자가 14명이어서 2인1조로 발표조 7개를 짜도록 하였고, 발표 주제는 당시 최근 대법원 판결을 10여 개 선정해서 각 조별로 평석하고 싶은 판결을 고르도록 하였다. 학생들이 여기저기 알아봐서 숙소는 상추자도의 민박집으로 정했는데, 세미나 장소가 문제였다. 7개의 주제로 세미나를 하려면 적어도 14시간은 앉아 있어야 하는데, 민박집에서는 너무 힘들고, 별도의 세미나실이나 회의실이 필요했다. 학생들이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마침내 멋진 장소를 구했다. 바로 추자면사무소 회의실이었다. 세미나 다녀오는 비용은 보통은 학생들이 나누어 부담하는데, 제주대 법전원에서 상당 부분을 지원해주어 학생들이 크게 격려를 받았다.

▲ 사진 4

모든 준비를 끝내고 11월 6일 제주항에서 추자도행 배를 탔다. 나이 든 학생들이었지만 모두 소풍 가는 초등학생들처럼 즐거워했다. 뱃전에서 바닷물을 내려다보니 해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참을 가니 멀리 세모꼴의 섬이 보였다. 관탈섬이라고 했다. 옛날에 제주에 귀양 가는 선비들이 가는 길에 그 섬에 들러 관을 벗고 옷도 갈아입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두 시간 가까이 잔잔한 바다를 가니 멀리 추자도 실루엣이 나타났다. 하추자도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사자를 꼭 닮은 섬이 추자도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사진1). 하추자도 신양항에 내리니 민박집에서 보낸 소형 트럭 두 대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비록 대부분 트럭 짐칸에 올라타고 갔지만 다들 즐겁기만 했다(사진2). 트럭은 우리를 상추자도 민박집으로 안내했다. 짐을 풀고 추자항 부두 길을 따라 면사무소로 갔다. 우리 일행이 세미나를 하기에 딱 알맞은 곳이었다.

▲ 사진 5

첫날 오후 조금 늦은 시각이지만 본격적으로 세미나를 시작했다. 일정을 마치고 민박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11월이라 한창 제철인 방어회가 반찬으로 푸짐하게 나와서 약간의(?) 곡차를 곁들여 포식을 하였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동행한 집사람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우리 방으로 가자고 했다.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놀게 하자는 취지였는데, 정작 우리가 일어서서 방을 나서려고 하니 학생들이 집사람 듣지 못하게 살짝 이따가 신호를 보내겠다고 했다. 방에 들어가 집사람이 잠이 든 뒤에도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가 오지 않아서 나도 자리에 누웠다. 다음날 아침. 학생들이 신호를 보냈는데 왜 나오지 않았냐고 묻길래 무슨 신호를 보냈느냐고 되물었더니 대답이, “뻐꾹, 뻐꾹”이었다.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아 그 소리가 신호인 줄 모르기도 했지만, 뻐꾸기 소리가 하도 그럴싸해서 진짜 뻐꾸기가 우는 줄 알았던 것도 문제였다.

▲ 사진 6

둘째 날도 세미나 강행군이 진행되었다. 따라온 집사람은 출발 전부터 세미나에도 내내 같이 참석하겠다고 했다. 법학에는 문외한이어서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을 텐데, 그래도 청강(?)을 하겠다고 해서 아무리 청강이지만 수강료로 세미나 중 과자와 음료 등 간식거리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그리하여 집사람이 미리 제주에서 맞춰간 떡과 현지에서 마련한 간식 및 음료 등의 수강료가 세미나로 인한 피로를 많이 덜어주었다.

▲ 사진 7

오전 세미나를 마치고 점심 식사 후에 산보하러 뒷산으로 올라갔다. 한 편으로는 하추자도와(사진3) 그 앞의 사자섬을 비롯한 예쁜 섬들이(사진4), 다른 쪽으로는 상추자도 어항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사진5). 추자도는 기대 이상 멋진 섬이었다. 장난꾸러기 막내가 부두 바로 앞까지 와 있는 해파리에 장난을 쳤는데, 나중에 그 학생 바지가 찢어지는 불상사가 생겼다. 모두 해파리의 저주였다고 놀려대었다. 오후에 남은 세미나를 저녁 늦게까지 강행했다. 아마 추자도나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의 어느 동네 면사무소에서도 이처럼 대학원생들이 세미나를 한 곳은 없었을 것이다. 법학을 처음 접한 학생도 있었는데, 판례 평석 발표도 수준이 상당했고, 토론도 거의 난상토론처럼 활발해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 사진 8

셋째 날은 다른 일정 때문에 일찍 제주로 돌아간 학생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남아서 추자도를 더 둘러보았다. 면사무소 뒷산에 올라가니 최영 장군 사당이 있었다(사진6). 장군이 탐라국 원정길에 풍랑을 만나 여기 머무는 동안 어부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하추자도 부두에 가니 고기잡이배에서 갓 잡은 생선을 퍼서 올리고 있었다(사진7). 최영 장군이 어떤 방법으로 잡으라고 가르쳤을까 궁금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이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일었다. 그래도 우리는 어선을 하나 빌려 추자도 인근 민정시찰(?)에 나섰다. 항구를 나서서 얼마 있지 않아 갈매기들이 전속관할로 애용하는 해우소를 발견하였다(사진8). 파도가 제법 있어서 우리 일행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면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출렁이는 뱃머리로 나가 손을 흔들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날씨가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바람은 상쾌했고 섬과 고기잡이배가 어울린 주변 경관도 아름다웠다(사진9). 민정시찰을 마치고 부두에 닿아 어선 주인께 부탁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사진 나온 것을 보고 어느 학생이 “북에서 어선 타고 내려온 탈북민 가족 같다”고 해서 다들 웃었다(사진10).

▲ 사진 9

제주에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는 그 당시 수강생이 금년 4월에 페이스북에 이 사진과 함께 동기들이 보고 싶다면서 아래 글을 올렸다: “뉴태성호를 타고 탈북에 성공한 일가족은 추자면사무소의 도움으로 추자도 관광 후 성공적으로 남한사회에 정착하여 자식들은 모두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

▲ 사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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