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비판받고 철회된 “납북자 → 실종자” 법률개정안, 그 교훈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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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비판받고 철회된 “납북자 → 실종자” 법률개정안, 그 교훈과 과제
  • 이영환
  • 승인 2018.09.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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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
통일부 북한인권조사 자문위원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0월호에 실리는 글입니다 ※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의원 12명은 기존 법률들에 명시된 ‘납북자’를 각각 ‘전시실종자’와 ‘전후실종자’로 바꾸자는 법률개정안 2건을 발의했다. 「6·25전쟁 납북 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6·25납북자법)」 개정안과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 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전후납북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송갑석 의원은 제안이유로 “납북자라는 표현은 북한 측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단어”라며 용어를 고쳐 “남북관계에서의 충돌을 완화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제 장관급 회담 등 실무회담에서는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식으로 우회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며 법률상 용어도 실종자로 바꾸자고 했다.

납북피해가족들은 즉각 항의하고 송 의원을 고소했다. (사)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송갑석 의원 등의 주장은 북한 정권의 주장과 일치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는 70여년 동안 북한 정권의 범죄에 고통받고 있는 전시납북자과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삭발까지 하며 눈물을 뿌렸다. 의원실 항의방문과 규탄집회는 계속됐고, 여론의 비판도 고조됐다. 마침내 발의 약 한 달만인 9월 11일 두 법안은 철회됐다. 대표발의자인 송 의원까지 포함해 발의한 전원이 철회했다. 여론의 비판이 더 거세지기 전에 무마하려는 결정이지만, 피해가족들에게 남긴 상처는 크다. 피해가족들이 성토하고 나선 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침묵한 것도 아쉽다. 국가인권위원회법 19조 1항은 “입법과정 중에 있는 법령안을 포함”하여 인권 관련 법령에 권고 또는 의견을 내는 것을 인권위 주요업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철회 소식을 듣고 가족들은 진정성 있는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또한 납북문제해결이 종전선언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군포로와 억류자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늘었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전쟁범죄이면서 반인도범죄인 북한의 납치범죄 성격을 더 분명히 하는 계기로 삼을 일이다.
 

▲ 납북자 김재봉 씨의 아내인 김항태 회원이 증언하는 모습

“누가 어떻게 끌고 가는지 똑똑히 봤는데 납치이지 어떻게 실종이에요?”

가족이 사라지면 실종신고를 한다. 경찰은 신고내용을 기초로 단서를 수집한다. 목격자를 찾고, 탐문을 벌이며, 사라진 사람의 평소 동선을 따라 폐쇄회로(CCTV) 영상도 확보한다. 단순가출로 추정되는지, 납치나 유괴 같은 범죄피해로 보이는지 가늠할 단서를 확보하면 본격적 대응 방법을 결정한다. 반면, 마땅한 단서가 없는 사건은 미제 실종사건으로 남는다. 어떤 경우를 납치·유괴사건으로, 어떤 경우를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실종사건이라고 불러야 옳을지는 굳이 법조문을 찾지 않더라도 별 이견 없는 보편상식의 영역이다. 구체적 정보가 있거나 가해자 또는 집단을 지목할 수 있는 납치사건은 여타의 실종사건과 엄연히 구분된다.

납북도 마찬가지이다. 북한 정권이 우리 국민들을 계획적·조직적으로 납치해온 것을 “납북” 대신 “실종”이라고 고쳐 부르자고 말하면, 실제 납북됐다가 탈북해 돌아온 당사자나 피해가족들은 물론 국민과 유권자들의 눈높이와도 한참 어긋난다. “납치가 실종이면, 살인(피살)은 자살이냐”는 납북피해가족들의 반문이 상식에 부합한다.

국내법에 납북자라는 용어가 있어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는 충돌요인이 된다는 식의 논지는 과장된 논리적 비약이었다. 왜냐하면 두 법은 모두 납북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필요한 배·보상과 지원 목적 등에 한정된 법이기 때문이다. 즉, 남북대화나 외교적 접촉에서 납북이라는 용어를 반드시 쓰도록 강제한 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을 위한 국내법을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법인 것처럼 왜곡했다.

사실 송 의원 등이 변경하려했던 두 법은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4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의장과 국무총리에게 보낸 “납북자가족 관련 특별법 제정 권고”에 국회와 정부 내 공감대가 확대되면서 제정됐다. 당시 인권위는 납북피해자와 가족·친인척들이 국가의 보호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역대 정부로부터 감시와 조사, 거주·이전과 직업선택 등에서 각종 제한과 인권침해를 당했음을 인정하고,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전후납북자법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던 2007년에, 6.25납북자법은 자유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이 다수당이던 2010년 제정되었다. 지금의 여·야 모두 납북피해가족들이 겪은 오랜 고통을 이해하고 당사자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국회의 상식이 되는 흐름이었다는 뜻이다.

비판받고 철회된 개정안의 발의자들은 그에 역행한 것이었다. 국회의원들이 5.18특별법, 세월호특별법처럼 인권침해 피해구제나 범죄피해자 보호, 사회적참사 특별법 제·개정안을 만들 때, 당사자나 유가족 의견을 청취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소속정당이나 12명 의원들의 개별 차원에서도 피해가족들이 의견 청취 기회를 갖지 않았다. 앞서 납북피해가족들은 청와대가 정전협정을 종전선언 내지 평화협정으로 끌고 가자는 방향을 내놓자 “납북문제의 선결과 북한정권의 가해 책임을 묻지 않는 종전선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집회를 열고, 대통령 앞 탄원서를 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집권여당 의원들이 논란의 개정안을 냈다. 애초부터 해당 법안들은 송 의원이 8월 13일 ‘남북 7법’이라며 낸 7개 법안 중 발의자가 12명밖에 되지 않아 10명 이상 찬성을 요하는 법안 발의요건을 간신히 넘겼을 정도로 같은 여당에서도 지지받지 못했다.

피해가족들은 “피해자들은 안중에 없고, 가해자인 북한 정권의 비위만 맞추려는 시도”로 규정했다. “공동발의자들의 면면을 보면 더 화난다”고 말했다. 2013년 4월 국회 외통위 통일부 업무보고 중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공식 호칭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던 심재권 의원의 이름을 보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정 의원은 작년 11월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이 임진각에 문을 열자 지역구 의원으로 참석해 납북피해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한다고 축사했다. 피해가족들은 정치인에게 기만당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 1년도 안 걸렸다고 성토했다.

아시아에서 7개국에서 북한인권시민연합 등 12개 인권단체와 납치·강제실종 피해단체들도 공동서한을 작성해 일제 비판했다. “이 개정안들이 한국 국회에서 채택되면, 납북자에 대한 법적 재정의가 이루어질 것이고, 남한 피해가족들이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와 북한인권 침해 책임규명 유엔 독립전문가그룹의 권고에도 언급된 정의실현과 진실규명을 추구하는 데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한은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대표,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유엔 강제적ㆍ비자발적 실종 실무그룹 의장, 유엔 진실ㆍ정의ㆍ배상ㆍ재발방지 특별보고관 앞으로 보내 대한민국 각 부처와 국회, 국가인권위원회로 우려서한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납치와 강제실종은 대한민국 국회가 비준한 국제인권협약과 조약들에 범죄로 규정되어 있고, 어떠한 국제인권문서나 유엔 보고서에서도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들을 “실종자”라는 법적 개념으로 분류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의외일 수 있지만, 우리 형법 조문에는 납치라는 용어가 없다. 가장 가까운 용어로 약취(略取)를 써왔다. 그러나 의미는 명확하다. 우리 형법은 약취를 폭행, 협박 또는 불법적인 사실상의 힘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피해자를 자유로운 생활관계나 보호관계로부터 이탈시켜 자기 또는 제3자의 사실상 지배하에 두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법을 다루지 않는 사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납치의 개념이다. 북한은 어떨까? 북한은 형법 제61조 “테로죄(테러죄)”의 정의에서 “랍치”를 범죄행위의 하나로 두고 있다. 5년 이상 징역(로동교화형)을 기본으로, 무기징역·사형·재산몰수형까지 처할 수 있는 중범죄로 명시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납치를 테러죄로 포함하여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만, 2017년 미국이 북한을 9년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자 “일방적 압살책동”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2011년 워싱턴D.C.에 위치한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흩어져 있던 북한에 의한 국제적 납치피해 현황을 모아 6.25전쟁시부터 지금까지 12개국에서 18만명이 넘게 납북됐다고 보고했다. 6·25 당시 납북된 우리 국민 8만2,952명, 휴전 이후 납북된 어부와 공중납치된 KAL기 탑승자 등 3,824명, 일본에서 북송사업으로 건너간 재일동포 9만3천여명과 그에 포함된 일본 국적자 6천여명, 그밖의 일본인 납북자 17명 등이 포함됐다. 북한은 남한, 일본, 중국,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를 넘어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루마니아, 레바논, 요르단 국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납치한 것으로 보고된다.

빙산의 일각이지만 유엔 강제적·비자발적실종 실무그룹(WGEID)에 진정되고 있는 북한에 의한 납치·강제실종사건으로 최근 1년간 66건이 추가되어 총 233건으로 늘었다. 이 실무그룹은 세계적으로 횡행하던 납치와 강제실종에 대응하기 위해 1980년 유엔 최초의 인권특별절차로 세워졌다. 그러나 지난 38년 간 사건이 100건 이상 보고된 27개국 중 단 한 건도 납득할만하게 해명하지 않은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납치·강제실종은 공소시효 즉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간의 한계가 없고, 사망 원인 등이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밝혀지지 않으면 범죄가 계속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정권 수립 후부터 70년간 북한 내부에서 벌어져온 납치와 강제실종 규모는 헤아리기도 어렵다.

유엔 실무그룹은 북한은 방문조사를 받아들여야 하고, 유엔회원국들은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계속 시도해야 하며, 남북한 당국에는 4.27 남북정상회담 후속 과정에서 납북문제를 꼭 해결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을 감싸는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에도 불구하고 안보리를 통한 ICC 회부를 재강조한 것은 외국인 납치와 자국민 강제실종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을 북한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고, 남북한에 대한 권고는 이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할 주체는 한국정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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