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법으로 양념한, 맛있는 무비토크-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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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법으로 양념한, 맛있는 무비토크- ‘청원’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8.09.20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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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변호사와 한 명의 영화감독. 그들의 영화 이야기에 법이라는 양념을 치면 제법 맛깔이 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세 명의 영화 수다는 과연 달랐다.
‘법으로 양념한, 맛있는 무비토크’ 다섯 번째 이야기는 인도 영화 <청원>이다.
취재, 정리 김주미 기자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이소림 (이하 ‘소림’)
위드윈필름 대표이사, 변호사, 前CJ E&M 영화사업부문 전략기획팀장
 

이정향 (이하 ‘정향’)
영화감독,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 「오늘」
 

이병화 (이하 ‘병화’)
법무법인 광장, 前한국사내변호사회장, 前영화진흥위원회 고문 변호사

제5장.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 <청원>

 

드라마/ 인도/ 126분/ 2011. 11. 2. 개봉
(2017. 3. 16. 재개봉, 2017. 11. 22. 재개봉)
출연 : 리틱 로샨 (이튼 역), 아이쉬와라 라이 (소피아 역)
줄거리 : 14년 전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감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당대 최고의 천재 마술사 이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라디오 DJ로 제2의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제는 자신부터 행복해지고 싶다. 결국 불행한 삶 대신 행복한 죽음을 택하기로 한 이튼.
하지만 12년간 한결같이 그를 간호해 온 매력적인 간호사 소피아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출처 : 네이버 영화-

정향 : 제가 인도 영화를 좋아해서 <청원>을 강력하게 추천했는데, 인도 영화들의 완성도가 대단해요. 볼리우드 (Bollywood-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란 말이 있듯이 영화산업이 상당히 발달한 곳이에요. 온 국민의 대표 오락거리가 바로 영화거든요.

병화 : 저는 인도 영화하면 먼저 <신상>이 떠오르네요. 우리 어릴 때 굉장히 유명했던 인도영화잖아요. 추석이나 명절 때 항상 틀어줬던 가족 영화죠. 아마 <신상>은 영화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다 봤을 거예요.

정향 : 우리나라에 수입된 최초의 인도영화였죠. 대중들은 오늘날 이렇게까지 인도 영화가 뛰어난 줄을 모를 거예요. 우리나라가 수입을 거의 안 하잖아요. 그 이유는 러닝 타임 때문일까? 인도 영화들은 보통이 세 시간이거든요.

병화 : 아 그럼 <청원>은 러닝 타임이 짧은 편이라 수입이 됐는지도 모르겠네요. 스토리만 보면 더 짧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소림 : 인도 영화는 스토리전개 방식이 확실히 달라요. 우리 영화처럼 기승전결 공식에 따르지 않거든요. 스토리 전개가 급박하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건 인도 영화에서 볼 수 없을 거예요.
이정향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인도 영화는 대중의 오락거리라서 영화를 보는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어야만 통하거든요. 마치 우리가 호프집에서 축구 볼 때와 유사하게, 관객들이 다 같이 즐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죠. 관객들이 영화 보다가 일어나서 같이 춤을 추기도 하고요.

정향 : 인도의 극장은 한국의 극장과 다른 가요?

소림 : 제가 인도에 다녀온 때가 벌써 오래 전인데요, 뭄바이에 갔거든요. 단관도 있지만, 멀티플렉스가 공존하고, 이게 또 극장마다 다 달라요. 한 극장에서도 의자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달라서 오페라 하우스처럼 테라스 같은 곳에서 보려면 더 비싸죠.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애들까지 다 와서 같이 즐기더라고요. 인도는 관객들이 영화를 행복해지려고, 순간을 즐기려고 보는 거라는 관념이 잡혀 있어요.

정향 : 이 영화의 여주인공 아이쉬와라 라이는 인도의 대표적인 미녀 배우죠. 그녀의 시아버지도 우리로 치면 안성기씨 같은 국민 배우예요. 남편 아비셱 바찬도 배우이고요.
 

인도의 여배우 아이쉬와라 라이

병화 : 그러게요. 아이쉬와라 라이는 미모뿐만 아니라 연기도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눈동자 색깔이 참 신기하면서도 아름답더라구요. 아, 찾아보니까 미스 월드 1위를 한 경력도 있더군요.

정향 : 주연인 리틱 로샨 역시 인도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예요. 인도의 마이클 잭슨이라 불릴 정도로 춤의 제왕이죠. 재미있는 건, 아이쉬와라 라이가 2006년 <둠2>를 찍을 때 리틱 로샨, 아비셱 바찬과 같이 출연했어요. 이때 아비셱 바찬과 연애를 해서 다음 해에 결혼을 했죠.

소림 : 저는 배우들도 그렇지만 감독의 특별함에 눈길이 많이 갔어요. 인도 영화 중에서도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영화는 또 다른 특별함이 있는 것 같거든요.

정향 : 반살리 감독이 우리나라에서는 헬렌 켈러를 소재로 한 영화 <블랙>으로 유명해졌죠. 그 영화도 정말 좋은데, 이 감독은 영화의 색감을 감각적으로 잡아내요. 원색을 써도 결코 촌스럽지 않게.

소림 : 맞아요. 반살리 감독만의 특유한 분위기, 오묘하면서도 섹시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어요. 파스텔 톤만 보다가 강렬하고 깊은 색감을 만난 것처럼.
만일 같은 소재로 한국에서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이런 분위기가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병화 : 그렇죠. 안락사를 소재로 한 한국 영화라면 더 무거운 분위기에 주인공부터 더 피폐하게 그려졌을 거예요.
사실 영화제작자가 안락사라는 어려운 소재를 택해서 이 정도 대박을 거두었다는 게 참 놀라워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정향 : 감독이 각본도 쓰고 음악까지 맡았어요. 같은 안락사를 다룬 영화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The Sea Inside>가 있는데, 그 영화는 볼거리보다는 내용에 집중했고, <청원>은 눈이 아주 호강을 하는 영화죠.

소림 :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그 차이점을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문 것 같아요. 존엄사가 말 그대로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며 죽는 것을 말한다면, 안락사는 죽음의 시기를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죠.
안락사가 약물투여 등 작위적 방법을 쓰는 ‘적극적 안락사’와 연명치료 중단과 같은 ‘소극적 안락사’로 나뉘어져서, 소극적 안락사가 존엄사와 같은 의미로 종종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법원 판결도 양자는 엄연히 구분된다고 했죠. “비슷하지만 소극적 안락사도 존엄사의 한 방법일 뿐”이라고...

병화 : 그렇죠. 적극적 안락사 같은 경우 우리 법대로라면 명시적 청탁이나 촉탁이 있을 때면 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죄, 그렇지 않으면 일반 살인죄가 성립되죠. 영화 <청원>에서는 주인공이 적극적 안락사를 원했던 거구요.

정향 : 저는 영화를 보고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주인공처럼 전신마비가 되어서 주변에 의존해야만 겨우 살아가는 처지가 된다면...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이 되면, 누구는 그래도 어떻게든 살고 싶은데 병구완하는 가족이 ‘이제 좀 안락사 하면 좋겠다, 딴 집은 하던데 왜 아직 안 하지?’라면서 눈치를 주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도 이제 부분적으로나마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잖아요. 김할머니 사건으로 유명세도 치렀고.

병화 : 환자연명의료결정법이라고,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더군요. 마침 금년 2월 4일부터 시행됐구요.

소림 : 아, 저도 찾아봤는데 연명의료 중단의 조건은 ‘회생 가능성이 없을 것,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을 것,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일 것’이에요. 그리고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한 명으로부터 임종과정이라고 하는 의학적 판단을 받아야 하구요.
허용되는 질병도 법으로 정해놨어요. 암, 에이즈, 만성 폐쇄성 폐질환, 만성 간경화, 그리고 그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이라고 하네요.

정향 : 그런데 김할머니 사건은 병원이 욕을 많이 먹었잖아요. 김할머니가 의식불명이 된 것도 병원에서 폐 조직 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그런 건데, 존엄사 결정에서도 병원이 죽음에 임박했다고 판단한 것과 달리,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떼고서도 200일이나 더 살았으니.

병화 : ‘김할머니 사건’과 흔히 비교되는 사건이 ‘보라매 병원 사건’인데, 이건 유죄로 인정된 경우예요. 58세 남성이 구급차에 실려 와서 병원이 응급 수술을 했지만 회복가능성이 매우 낮았거든요. 그런데 부인이 찾아오더니 병원에다가 돈이 없다,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며 퇴원을 시켜 달라고 했죠 심지어 ‘누가 수술해 달라고 했냐’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해요.
병원 측은 퇴원하면 사망하기 때문에 극구 말렸지만 아내가 막무가내라서 “환자의 죽음에 대해 병원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부인으로부터 받고 퇴원시켰고, 결국 남성이 얼마 안 가 사망했어요. 이걸 검사가 살인죄로 기소한 사안이죠. 부인뿐만 아니라 관련된 의사들까지 살인죄 공범으로 기소가 됐어요.

정향 : 의사들까지요? 이 경우 의사들은 왜 살인죄가 되죠?

소림 : 부인의 뜻에 따랐다고는 해도 의사로서 져야 할 보호의무를 저버린 채 호흡기를 떼는 조치 등을 했기 때문에 살인행위 가담으로 봤던 것 같아요. 결국 법원에서는 부인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정범, 관련 의사 두 명에 대해서는 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방조범을 인정했죠.

병화 : 우리 초등학교 동창 사건이 떠오르는데, 그 친구가 인턴으로 혼자 당직을 설 때 응급환자가 왔는데 자신이 처리할 능력이 안 돼서 다른 병원에 보냈더니, 가는 도중에 환자가 사망했어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운이 없어서인지 뉴스에 크게 터졌어요.

정향: 맞아. 그 친구 그때 뉴스에 매일 나오고, 비난 받고, 얼굴까지 팔려서 후유증이 꽤 컸지.

병화 : 호주의 데이비드 구달 박사라는 사람의 안락사 사례도 꽤 유명해요. 이 사람이 104세였는데, 치명적인 질병도 없는 상태에서 안락사를 원했죠. 자기 나라에서 불법이니까 스위스까지 가서 결국 의사의 조력으로 안락사를 했어요.

정향 : 영화 <Me before you>에서도 주인공이 안락사 하려고 영국에서 스위스로 가거든요. 안락사에 가장 관대한 나라가 스위스인가요?

병화 : 네덜란드가 더욱 전향적이에요. 네덜란드는 우울증 등 정신 질환으로 고통 받던 29세 여성이 의사의 조력을 받아 안락사 한 경우가 있어요. 네덜란드 법이 안락사에 관해선 세계에서 가장 관대하다고 해요. 이 법률 때문에 네덜란드에서는 정신 질환자들이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소림 : 저는 <청원>의 주인공을 보면서 처음엔 ‘왜 이런 식으로 죽고 싶어 하지? 이게 청원을 할 만한 일인가? 그냥 자살하겠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주인공이 죽으려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러면 주변은 살인을 하는 게 되거든요. 이걸 합법적으로 하고 싶은 거예요. “죽을 권리”라는 주장으로...
원칙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살고 싶어 하도록, 더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 분들이 죽고 싶어 할 때, 즉 죽을 권리를 주장할 때,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야 하는가까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정향 :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카페에서 읽은 인상 깊은 구절이 있는데요. “태어날 때 신의 인증이 필요하듯 죽을 때도 신의 인증이 필요하다”는 말이었어요.“ 내 아이가 죽은 일이 의미 없이 어쩌다 그리된 게 아니고, 철저히 신의 뜻 안에서 이뤄진 일이다” 라는 생각이 위로가 되는 거죠.
태어나고 죽는 게 인간의 의지를 초월한다는 말인데, 존엄사가 광범위하게 인정을 받게 되면 죽음의 의미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죽을 시간과 장소와 방법을 정한 다음에 죽기 전에 이벤트 열고, “자, 이제 난 간다.” 하는 거죠.

병화 : 정말. 축제처럼 죽어가겠네요, 어쩌면 ‘존엄’하게. 이 영화에서도 그랬잖아요. 애이불비(哀而不悲).

소림 : 하와이 국민 가수 이즈리얼 카마카비올레의 장례식이 떠오르네요. 비만 등 합병증으로 38세에 요절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우쿨렐레를 대중화한 가수죠. 그의 장례식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나와 그의 노래로 즐거워하며 축제처럼 장례식을 치른 영상이 있어요.

병화 : 우리나라 장례식은 너무 엄숙하고 슬프긴 하죠. 관습이라 그렇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정향: 떠나는 사람은 남겨진 이들이 슬퍼하지 않고 즐겁게 치르길 바라겠지만, 막상 떠나보내는 입장에서는 그게 참 힘들죠.

소림 : 그런데 사실 저는 오래 사는 게 목표입니다.(하하) 오래 살면서 그 때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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