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법철학, 형법학에 큰 족적 남긴 장영민 교수, 그의 이야기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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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법철학, 형법학에 큰 족적 남긴 장영민 교수, 그의 이야기를 듣다.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8.09.06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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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0월호에 실릴 글입니다 ※

장영민 교수
형법과 법철학을 전공하였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인하대학교 법정대학 교수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법과대학,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재직하다가 2018년 8월 퇴임하였다. 2004-2005년 한국법철학회 회장, 2008년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2010년 이화여대 중앙도서관장, 2012년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형법총론』(공저, 2008), 『형법이론연구』(2007), 『현대의 법철학』(2007), 『자유주의의 가치들』(공저, 2011), 역서로는 드워킨의 『법의 제국』(2004), 니콜라 레이시의 『국가형벌론』(2012), 논문은 「법실증주의의 현대적 전개 : 도덕포용적 법실증주의에 관한 약간의 고찰」(『법철학연구』, 2001), 「하트-풀러 논쟁 50년 회고」(『법학논집』, 2007), 「형법총칙상 공범규정의 개정방향」(『법학논집』, 2010) 등이 있다.
 

▲ 사진 김주미 기자

강단을 떠나며...

우선 별다른 업적도 없는 저에게 귀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Law & Justice>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개인사의 한 매듭에 불과한 저의 정년의 감회를 읽어주실 독자들께도 미리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40년 가까이(정확히는 37년 반) 학계에 몸을 담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미숙한 저를 믿고 귀한 기회를 주셨던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그간 힘닿는 대로 제가 얻은 지식은 논문으로, 저의 힘이 채 미치지 못한 주제는 다른 학자의 사상을 소개함으로써 학문 활동을 하여 왔습니다. 강단을 떠나면서 돌이켜 보니 저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약간은 생겼습니다(웃음). 부질없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하여 같은 길을 가는 후학들에게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자그마한 디딤돌이나마 마련해 놓겠다는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동안 그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초기에) 저의 설익은 강의를 참고 들어 준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학생의 사고체계 자극하는
장 교수만의 독자적 교수법,
그 배경은

강의의 현장에서는 (교수 자신의 이론을 화려하게 전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우선 정확한 ‘문제의 제기’ 그리고 그 해결책인 학설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차근차근 이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물론 강의 방법 자체가 결국은 교수의 철학의 반영일 것입니다). 독일 형법학을 계수한 한국의 형법학은 상당한 전제적 지식을 토대로 갖추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인과관계의 문제에 관하여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만, 이 학설들은 동일 평면 상의 대안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뿌리에서 나온 학설입니다. 조건설은 논리적 (조건)관계(‘필요조건’)의 이론, 상당설은 ‘확률론’에서 나온 학설이라는 점이 이해되지 않으면, 이 학설들이 적용될 때 나타나는 난맥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법철학 역시 (일정한 고유의 주제들이 있지만) 왜 ‘그’ 주제가 그 시점에서 화두가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컨대 1950년대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롤즈의 ‘정의론’(1971년 작)이 왜 1970년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주목되기 시작하였을까요? 법철학은 보편적인 문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늘 시의성을 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법철학의 좁은 테두리를 넘어서까지 화두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문제제기와 대답이 시대적 적실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아우구스티누스도 하이데거도 시간을 논했지만, 하이데거는 (인간의 주관적) 시간의 끝(=죽음)이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항상 현재적이라는 것, 즉 인간은 항상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킴으로써 시대(2차대전 후 실존주의 시대)의 총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오던 ‘법의 효력’이라는 문제가, 미국에서는 60년대 징병거부 사태에 직면해서 비로소 법효력에 대한 ‘양심에 입각한 거부’의 형태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이 법철학(적 사유)에 시대에 대한 응답의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이상적인 강의실의 상황이란, 학생들이 사전에 강의 주제에 관한 지식 내지 문제의식을 머리에 담아오고 교수는 자신이 연구한, 그리고 자신이 얻은 (독자적) 인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함으로써 학생들의 머리에 그 내용을 ‘화룡점정’하는 일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이에는 몇 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장애는 학생들이 독자적으로 공부하는데 서투르다는 점입니다. 학생들은 대체로 왕성한 암기력을 바탕으로 법전원에 이르기 까지 생존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너무 지나친 말일까요?). 그러나 법학에서 ‘요건⋅효과’의 관계까지는 암기하는 데 친하지만, 사안에 대한 (규범적 판단이든 사실적 판단이든) ‘판단’을 하는 데는 암기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통상 ‘법의 적용’이라고 알고 있는 ‘포섭’과는 다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삼단논법이라는 틀 안에서 설명하자면) 사실관계를 정리하여 소전제를 정립하는 과정이 가장 문제됩니다.

이 과정은 ‘사안의 실질 또는 성격’을 파악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인데, 이는 (역설적으로 포섭 이전에) 사안과 법(률)과의 대응관계의 정립을 전제합니다. ‘전형적인 사안’을 바탕으로 한 ‘판단력’의 훈련이 결정적으로 필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전형적인 사안들 중에는 ‘교과서적’ 사안도 들어 있습니다. 이를 백안시하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이 전형적인 사안들이 실제로 발생하든 않든, 이는 법적 사유(나아가 ‘구체적’ 판단)에 중요한 기준점들을 설정해 줍니다. 학생들 중에는 (구성)요건을 잘 외우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인(내지 가상적인) 사안에 대한 포섭을 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학생들이 공부가 부족하다든가 세상물정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법적 사고가 구체적 사유로서 ‘판단력’을 요구한다는 점을 소홀히 한 교육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법철학자는 적절하게도 소전제의 정립과정을 (삼단논법적 추론과정이 아니라) ‘유비적’(analogical) 추론과정이라고 규정한 바도 있습니다.

둘째 문제는 우리나라의 법학도 뿐 아니라 전반적인 식자층이 (그들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적 문맹상태에 있다는 점입니다. 다소 과장되게 표현했지만 법학을 포함하여 중요한 지적 자원을 제공해 주는 고전(적 저작)의 번역서들 가운데 충실하게 번역된 책은 생각보다 찾기가 어렵습니다. 학생들을 포함한 독자들은 책을 읽지만 그 책의 정교한 메시지를 얻지 못하고 대강의 의미만을 파악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어려운 문헌의 행간을 읽고 생각해보는 것 자체가 사유의 (훈련)과정이지만, 부실한 텍스트 때문에 원전을 읽으면서도 난해한 지점(보통은 여기가 그 텍스트의 핵심인 경우가 많습니다)은 놓침으로써 결국 다이제스트를 읽는 결과가 되는 것이지요.

결국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강의를 하였기 때문에 주제에 따라서는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그림도 그리고 예를 많이 드는 방법을 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는 그늘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진도를 순조롭게 나가지 못했다는 점인데요, 강의시간에 이러한 내용을 언급하게 되면 진도는 지체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 로스쿨 교육 전반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

로스쿨 제도의 도입은 괴리되어 있던 법학교육과 법조인 자격부여를 일치시키는 방향(이른바 ‘법조일원화’)으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는 치밀한 검토를 거치지 못한 채 졸속으로 도입되는 바람에 나름의 문제점도 노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에 대한 다각적인 개선책이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선책 보다는 개선 시에 고려할 문제점을 몇 가지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로스쿨 도입 시 논의되었던 법학교육에 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 오해를 다소 거칠게 이분법적으로 표현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법률가)는 (조문암기식의) ‘개념법학’에 매몰되어 있으므로, 판례라는 실제로 발생한 사안을 다루는 ‘현실법학’으로 전환해야 한다. (조문해석에 치중하는) 강의식은 나쁜 교육방법이고, 판례를 공부하는 케이스 메소드는 좋은 방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케이스 메소드는 미국식 ‘개념법학’이었고, 그래서 이 방법은 미국식 ‘현실법학’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법현실주의’(american realism)의 신랄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케이스 메소드는 법의 주요 분야(예컨대 계약법(contracts), 물권법(property), 불법행위법(torts) 등)가 판례법으로 이루어져 있는 나라인 미국에서 (‘판례’를 가르치는 것이라기보다는) ‘법’을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이 방식에 의한 교육의 결과 학생들이 얻는 최종적인 인식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예컨대 “계약위반에 의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은 통상적인 손해에 한 한다”는 식의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이 내용은 이미 조문화되어 있습니다. 이 조문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함으로써 학생들은 이에 대응하는 사안을 둘러 싼 법(제도)을 알게 됩니다. 요컨대 케이스 메소드는 (판례법 국가인) 미국에서의 (‘현실’을 가르친다기보다는) ‘법’을 가르치는 나름의 과학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케이스 메소드의 장점은 (이러한 식으로 조문화할 수 있는) 법을 얻는 과정을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밟아 나가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정리되어 압축적으로 규정된 모든 법리가 교수됩니다. 따라서 학생들 스스로 당해 법제도를 구성하는 법리들을 생각해 보고 추론해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 법률지식에 대하여 (대체로) 암기의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 머릿속에 남는 것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성자(聖者)의 생생한 실천의 모습이 아니라 ‘성자의 유골’인 것이지요. 미국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와 같이 이러한 핵심인식(법리)들을 정리하여 조문화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결집하여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자는 운동이 있었고, 이를 ‘리스테이트먼트(restatement) 운동’이라고 합니다만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물론 미국의 로스쿨 언저리에도 이러한 요약정리형 참고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 로스쿨의 케이스 메소드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법률가들이 케이스 메소드에 의하여 얻은 지식을 교조(도그마)화한 나머지 새롭게 제기되는 사회적 요구에 둔감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Lochner(1905년) 판결을 들 수 있겠습니다. (케이스 메소드가 시작된 것은 1860년대입니다.) 미 연방대법관들은 제과공의 근로시간을 주 60시간으로 제한하는 뉴욕 주 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인 이 판결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법률이 ‘계약자유의 법리’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즉 제과공이 자신의 노동시간을 자유롭게 (계약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법현실주의자들은 이 판결이 ‘형식주의’(우리로 치면 ‘개념법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형식주의’라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구에 얽매인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사안을 둘러싸고 (상충하는) 법리가 경합할 때 보수적인 법리(이 사안에서는 ‘사회권적 원리’가 아니라 ‘계약자유의 원리’)를 취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판례를 중시하자는 부르짖음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현실법학 지향이라는 초심과는 달리 판례중시 태도는 한국의 로스쿨에서는 판례‘외우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작 하버드 대학에서 케이스 메소드를 구상하고 정착시킨 랭들(C. C. Langdell)이 여망했던 것처럼 “주어진 사안에 대하여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추론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다소 과장해서 말한다면−자신의 추론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답안지는 학설들(A, B, C...)을 간단히 열거하고 판례는 A이므로 A로 판단한다고 결론짓습니다. 판례의 ‘판결이유’ 조차도 거론하지 않고, 판례는 ‘이유 없이’ 판단의 이유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법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는 법(responsive law)을 유념하라는 것일 것입니다. 이는 위의 예에서 계약자유의 법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상충하는 사회적 이익의 결이 (어느 일정 지점에서) 계약자유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현상을 예민하게 감지하면서, 그러한 변화를 가져 온 (새롭게 형성되는) 법리를 찾는데 개방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통상 우리나라의 법률가들은 예컨대 근로자에 대한 사회법적 고려가 계약자유의 ‘법리’와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라는 식으로 (어중간하게) 표현합니다만, 이 말은 크게 보면 타당하지만 엄격하게 말한다면 이 경우(에 한해서) 계약자유는 고려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조화가 아닙니다. 이 경우 계약자유의 법리가 사멸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떤 개념으로 포착하든 간에, 이러한 현상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법철학(=법리학)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약자유를 고려하지 않는 새로운 법리에 입각한 ‘이’ 판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에서 자주 거론되는 ‘현실법학’의 요청이란, 사실은 바로 이 방향으로의 판단력 부재(내지 이 판단력의 성격에 대한 해명부족)가 야기한 착시현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현실을 고려한다고 하여 법관이 당해 사안의 판단을 갤럽에 맡기지는 않을 것이고, 판례를 외우는 일이 이러한 판단력을 함양하는데−멀리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정공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법조인들이 곧잘 입에 담는 이른바 ‘정무적 판단’이라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도 정무적 판단을 했다면 1954년 당시의 (흑백차별의) 상황에서 (흑백차별을 철폐하는 방향을 취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브라운 사건’과 같은 판결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법관에게 ‘정무적’ 판단을 하라는 국민의 수권은 헌법 상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를 하나 내 보지요. 판사들이 정무적 판단을 했다면 위의 로크너 사건은 어떻게 판결되었을까요?

현재 로스쿨의 학생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법률직업인이 되기 위하여 암기사업에 성실히 복무하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 법조인의 교육 매커니즘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학생들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야하기 때문에 변호사 시험과목 이외의 다른 과목은 거의 수강하지 않습니다. 변호사 시험과목에 대해서도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만, 전략적으로 판례를 암기하는 식으로만 공부를 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모든 로스쿨은 (사법시험 시대의 학원가의 본산이었던 ‘신림동’을 생각할 때) 신림 제 N대학이 되어 버렸습니다. 로스쿨 교육은 법조일원화의 성과를 제외하고는 과거 사법시험 시대보다 못한 (교과서조차도 읽지 않는) 요점정리형 교재와 판례의 암기로 고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로스쿨 도입의 초심인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기본 소양을 갖춘 법률가, 다양한 응용력을 구비한 법률가의 양성은 꿈이 되어 버렸습니다. 현재 로스쿨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교육체제 내지 법조인 양성체제로 전락한 것입니다. 유능한 법률가의 양성은 그저 (우연적인) ‘개인의 성취물’ 일 뿐 (교육)제도의 결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법’의 핵심인 ‘정의의 불꽃’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
‘법철학’의 ‘사명’

물리학자가 물리 현상을 탐구하지 않고 ‘물리(학)이란 무엇인가?’를 평생의 화두로 삼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물리학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묻는 것은 어떨까요? “왜 도대체 이 모든 것이 있는가? 아무 것도 없지 않고.” 이 물음은 철학자 하이데거의 물음입니다만, 물리학의 종점과 철학의 시작점을 잘 보여줍니다. 분업(‘학문의 분과화’)이라는 면에서 물리학과 철학(=형이상학)의 분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법은 이와는 다릅니다. 법은 늘 두 물음이 동시에 제기됩니다.

철학에서 쓰이는 ‘open question argument’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물의 속성이 명제에 제대로 표현되었는가를 검증하는 방법으로서, “X는 a이다. 그런데 a는 X인가?”라는 식의 물음을 던져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음이 동어반복이 되면 이 명제의 표현은 문제가 없는 것이지만 이 물음이 의미 있게 성립하는 경우에는 ‘X는 a이다’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을 법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이것이 법인가?”라는 물음은 언제나 의미가 있습니다. 왜 이 물음이 ‘언제나’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법이 ‘법체계’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 즉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물음은 일반적으로는 ‘합법성’과 ‘정당성’이라는 문제로 제기됩니다만, 나라마다 학자에 따라 그 문제제기의 방식과 밀도는 다릅니다.

아무튼 법은 항상 ‘이’ 이중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법철학과 법학(나아가 사법(司法))의 분업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버마스는 ‘사실성’(Faktizität)과 ‘타당성’(Geltung)이라는 다소 어려운 말로 이 긴장관계를 표현했습니다만, 우리가 잘 아는 표현으로 바꿔 말하자면 이것은 ‘존재와 당위’의 관계의 문제 바로 그것입니다. 사법(司法)은 대체로 정당성의 문제를 괄호치고 합법성의 측면만을 문제 삼고 있다는 이유에서 양자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장르를 불문하고) 미술 작품을 출품하는 응모전에 훌륭한 사진작품이 출품되어 결선에 올라왔다고 합시다. 이때 그 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사진은 미술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낙선시킬 것을 주장하는 심사위원이 있다고 합시다. 이에 대한 답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술장르의 통상적인 분류만으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술(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이 문제에 답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식의 법철학적 문제는 이렇듯 늘 제기되는 것이지만,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을 누구나 잘 알고 있어서 그 답을 다투지 않음으로써 견해차이가 없는 사안(예컨대 자동차 운행시 속도위반)에서 이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기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에 관한 견해차이가 없기 때문에 제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이것이 법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 답이 동어반복이 아니라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 ‘이것이 법인가’의 문제와 동시에 ‘이것이 정당한 법인가’의 문제가 제기됩니다(다시 하이데거의 말을 빌면 양자는 이른바 ‘동근원적’이라는 것입니다). 드워킨 같은 분은 이 현상을 놓고 “법철학은 모든 사법(司法)의 서론”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법철학은 법(학)과 불가분적, 동근원적 관계에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법(학)의 지향점이 ‘정의’라고 한다면, 법학과 법철학의 관계는, 근자에 한 독일 학자(Johann Braun)가 말한 것처럼, “법의 핵은 정의의 불꽃이다. 법철학의 사명은 ... 이 불꽃을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장 교수가 짚어주는 법철학의 큰 맥,
따라가 보니...

법철학자들에 대한 품평을 한다는 것은 썩 적절하지는 않겠습니다. 각 학자들은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법철학의 주제와 대결했고, 그 결과 의식했던 아니던 당대에 영향력 있는 독자적인 시각을 정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높낮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20세기의 주요 법사상의 지형도를 그려보기 위하여 표를 하나 만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법이라는 대상의 성격과 관련하여 법을 당위(규범)로 보는 시각과 이를 사실로 환원해서 보는 사고방식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법은 물론 규범이고 당위의 세계에 속하는 것입니다만, ‘법사회학’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분류하는 것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리고 법에 대하여 관찰자의 시각에 서는 입장과 참여자의 시각에 서는 입장으로 연구자의 태도를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이 두 구별기준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체로 전자가 후자를 (논리적으로) 수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서 양자 간에 약간의 차이는 있고, 이렇게 분류하는 경우 편광(내지 위상차)현미경이 그렇듯이 대상의 미묘한 차이를 부각시켜 줍니다). 이렇게 분류하면 4개의 칼럼이 생기게 되는데, 20세기는 이 네 개의 칼럼이 모두 채워진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분류기준에 의할 때) 나올 수 있는 사상은 다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생각되는) 법을 규범적으로 보면서, 참여자적 입장에 서는 시각(아래의 IV)을 펼쳐 보인 드워킨이 등장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19세기에는 자연과학의 발달에 따라 법(학)도 나름의 (검증가능한) 과학성을 갖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법의 심리학화 내지 사회학화 현상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관습법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법적 확신’을 요구하는 것은 법을 ‘심리적 사실’로 환원하려는 이 시대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의 대표자는 비얼링(심리학), 베버, 에를리히(사회학) 등입니다. 이들은 법현상을 이러한 ‘(사회적) 사실’로 환원하여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당부의 판단을 하지 않고) 관찰자적 입장에서 관찰하면서, 여기에 나타나는 ‘법칙성’을 찾는 것이 그들의 관심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안에 대한 규범적 판단을 얻으려는 법학(=법해석학)의 시각에서 볼 때 이 시각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존재에서 당위는 추론되지 않는다’는 흄의 법칙에 어긋납니다. 같은 말이지만 검증가능한 반복되는 (법칙적) 사회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법이 되지는 않습니다. (간통죄의 예에서 보듯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이는 ‘심리적 사실’이 하루아침에 무력화되기도 합니다.) 이 이론은 법‘현상’을 기술(記述)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탁월한 이론이지만, (구체적 사안에 대한) 법을 찾아내는 데에는 미진합니다.

이에 비하여 법을 순수한 규범현상으로만 관찰하려는 시각(II)도 나타났습니다. 즉 사회적 사실인 정치권력, 금력, 무력, 여론 등으로부터 철저하게 절연된 ‘규범으로서의’ 법만을 자기완결적 틀 속에서 보려고 하는 시각인 것이지요(법효력의 근거를 (법외적 요소가 아니라) 법 자체로 본다는 의미에서 오늘날 이를 자가생식적autopoiesis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켈젠의 이론이 그것입니다. 이 이론은 위에서 언급한 사실적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중력’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이론은 법이 규범으로서 갖는 순수한 위상을 파악함으로써 법이론상의 많은 문제를 해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름의 약점도 없지 않습니다. 보통 이 이론의 약점으로, 그 이론적 전제와는 달리 법의 효력의 궁극적인 지점에서 결국 당위가 아닌 사실력(실효성)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는 점이 지적됩니다만, 이러한 비판은 다소 단견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컨대 (페널티 킥, 옐로우 카드 등) 규칙이 잘 지켜지면서 축구경기가 진행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축구규칙의 효력은 위에서 열거한 어떤 ‘현실적인 힘’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일까요? 켈젠의 이론의 문제점은 오히려 법과 관련된 사실을 너무 도외시하였다는 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의 법단계설상 하위의 법단계로 진행하는 과정(예컨대 법률→판결 또는 행정처분)은 공직자에 대한 ‘입법’(=법의 ‘창설’)에의 수권으로 이해되고, 이때의 법창설 즉 법관(또는 행정청)의 판단은 (상위규범의 수권과 문언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자유’라고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이해입니다. 왜냐하면 법관(또는 행정청)은 스스로를 전혀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물론 여기에 켈젠이론의 관찰자적 시각이 갖는 ‘냉정함’의 위력이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문언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 ‘마음대로’ 입법을 한다는 것이지요).

법을 사실로 환원하여 보면서도 참여자적 관점에서 보려는 시각(III)은 어떤 것일까요? 이들은 당해 사안에서 법이 무엇인가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여전히 법을 사실의 차원에서 보는 태도를 취합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법관의 머리 속’(법추론)에 주목하지 않고 법관의 ‘입’(행태)에 주목했습니다. 미국의 법률가 올리버 웬들 홈즈 그리고 법현실주의의 대표자 칼 르웰린을 그 대표자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앞에서 언급한 랭들 류의 법형식주의를 극복하려고 했지만, 규범으로서의 법을 찾아가는 (안정된) 길을 모색하기보다는 (진보적인) 사회과학적 인식을 중시하라는 식의 권고를 하는데 그치고, 규범모색의 길을 법관(내지 공직자)의 행태로 환원해 버렸다는 점에서 미흡함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참여자로서 규범적 관점에 서는 시각(IV)의 출현은 고대해 왔던 것인데, 이를 시도한 것이 드워킨입니다. 독일 풍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권리’ 중심의 법찾기(그의 만년에는 ‘가치실현’)의 방향에서 법(학)방법론을 정교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영미권 법리학에서 쓰는 말 중에 ‘Theory of Legisl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벤담(Principles of Legislation)적 의미의) ‘입법을 하는 데 필요한 이론’이라는 뜻이 아니라, ‘입법된 것(을 해석하는 데)에 관한 이론’이라는 뜻입니다. 판례법 국가인 영미권에서도 방대한 양의 입법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이를 해석하는 (대륙법 풍의) 이론이 필요하겠지요. 이는 말하자면 영미법식 법(학)방법론인 셈입니다. 드워킨은 common law의 이론과 제정법의 이론을 종합한 ‘권리중심의’ 법찾기의 일반이론을 세운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라드브루흐와 하트는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을까요? 라드브루흐는 ‘법을 법가치 실현에 봉사하는 현실태’로 정의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IV를 지향하는 I의 자리에 서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하트는 법에 대한 ‘기술사회학’(descriptive sociology)을 표방하면서 법을 ‘규칙들의 체계’로 보았습니다. 나아가 그는 ‘최소한의 참여자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I, II, III에 걸치는 시각을, 역으로 말하자면 드워킨을 포위한 (또는 역설적으로 드워킨에 의하여 포위당한) 이론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의 도식은 이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대체로 I, II는 실증주의적 경향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III은 가치지향을 갖는 경우도 있고(예컨대 웅거. 그는 가치에 대하여 열정적인 분입니다) 아닌 경우(홈즈. 그는 가치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도 있습니만, 그 방법적 경향은 ‘실증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IV는 자연법론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종래의 자연법론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당사자의 권리(내지 사안에서 구현되어야 할 ‘가치’)는 무엇을 거점으로 해야 할까요? 이는 영구불변의 보편타당한 자연법적 원리가 아니라, 당대의 ‘정치적 도덕성,’ 즉 헌법에 침전되어 있는 근대적(나아가 현대적) 정치적 도덕성이라는 관념적 형성물(예컨대 자유, 평등) 속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이 이러한 근대적(현대적) 의식에 깊게 물들어 있는가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근대적(내지 현대적) 의미의 헌법 하에서 살고 있는 법관(내지 공직자)은 이를 찾아 주어야 할 ‘정치적’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이지요.

20세기의 법철학의 큰 틀은 이렇게 형성되었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든 현재 법철학계는 이 거장들이 모두 타계하고 소강상태에서 이들의 이론을 정련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법철학(적 사유)의 유형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것은 우선 20세기 법사상의 결을 개관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양차대전이 끝난 20세기 후반에 여러 선진국은 대체로 민주국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국가체제 정립을 위한 정치투쟁은 별다른 적실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외적으로 좌파적 경향의 학자들이 그 이념의 실천을 위하여 어떻게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인가, 어떻게 ‘적과 동지’를 대립시키는 (칼 슈미트 류의) ‘정치의 개념’을 활용할 것인가 등을 논하고 있기는 합니다.) 주권의 문제 역시 크게 상대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삶의 정치적 골격은 대체로 정립된 셈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피가 통하는 혈관, 그것도 대동맥이 아니라 온 몸에 속속들이 퍼져 있어서 생명력을 부여하고 유지시켜주는 모세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헌법이념의 모세혈관적 구현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유형학은 이러한 골격과 혈관의 분포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나아가 우리의 현실을 성찰의 대상으로 한 법철학을 정립하기 위하여는 이 유형학에서 어느 결을 따라 갈 것인가를 한번 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기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왜 황혼녘일까요? 그것은 ‘철학화할 대상이 (대낮에) 마련된’ 후에야 (그 눈부신 밝음을 진정시키고) 철학화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이와는 달리 늘 실천의 마당 한 가운데 있고 싶어하는 프랑스의 지성 한 사람은 ‘철학화’가 아니라 ‘절제된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정오의 사상’(그리스 풍의 윤리를 ‘대낮’에 구현하려는 사상)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이 대비는 (철학사조를 떠나서) 시민혁명이 없었던 나라와 있었던 나라의 대비로서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요? 위에서 언급한 착상이 법철학을 하는 후학들에게 다소의 길잡이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법과 정의’

 

법이 정의를 이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일까요? 정의에 관한 식자층의 논의는 20세기에는 맑스(Karl Marx)의 구상에 의해서 지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능력 만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배분 받는다’). 이에 비하여 21세기의 논의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롤즈(John Rawls)의 문제의식으로 리셋되어서, 롤즈 풍의 논의가 모든 정의 문제의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법의 이념으로서의 정의가 가진 특유의 측면이 다소 가리워지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롤즈의 정의론을 포함한 정의론의 전체상을 살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법의 이념은 법가치라고도 한다는 점을 지적해 둡니다. 즉 법이 실현하려는 가치라는 것이지요. 법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는 보통 ‘정의’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법’가치에는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은 ‘법적 안정성’(‘법에 의한 평화’)도 기하여야 하고, 법의 목적도 살려야 합니다(교육법의 목적과 병역법의 목적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좁은 의미의) 정의는 바로 이러한 가치실현 작업에 ‘형식’을 부여해 줍니다. 법적 안정성을, 합목적성을 어떤 틀 속에서 실현할 것인가? 정의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답합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각자에게 그의 것을”이라고요. 합목적성이 법가치의 내용을 채워주고, 법적 안정성이 법가치 실현의 수단을 부여해 준다면, 정의는 그 형식적 틀을 부여해 줍니다(이러한 가치들의 내적 변증법을 포괄하여 (넓은 의미의) 법이념을 ‘정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법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미시적인 이러한 법가치론에 대하여, 법을 넘어서는,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정의의 논의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거시적 차원의 배분적 정의, 즉 ‘사회적’ 정의의 문제도 제기됩니다. 이 사회가 (총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어떻게 배분해야 그 사회를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지요. 여기에도 다시 미시적인 기준들이 생각될 수 있지만(예컨대 ‘각자에게 그의 공적(功績)에 따라’ 등), 더 거시적으로 볼 때 사람들 중에는 공적을 쌓을 수조차 없는(또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평등’의 문제가 정의의 문제의 초미의 관심사가 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정의의 문제는 평등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19세기 초 이래 (영미에서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진) 나름 진보적인 공리주의라는 사회정책 원리가 지배하던 서구 사회에, 공리주의가 적용되기가 거북한 사태가 20세기 중엽부터 전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다수가 아니라 소수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지요. 서구, 특히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약 20년간의 호황으로 중산층이 크게 두터워져서 이들이 다수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다수의 행복’은 대체로 달성되게 된 것입니다. 국가제도의 손길이 필요한 사회정책의 방향이 소수자(아프리카계, 중남미계, 아시아계)에게로 향하여야 할 시점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수를 위하여’를 표방하는 공리주의의 원리는 이제 이에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 것입니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다수결)은 결코 소수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회정책의 원리가 소수를 시야에 넣는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극적으로 표출된 사건이 바로 (학생운동이 일상화되어 있던 우리나라에는 큰 충격이 없었지만) 서구에는 큰 충격을 주었던 ‘68년 사태’입니다. 올해가 바로 그 반세기가 되는 해입니다. 롤즈의 이론은 이 시기에 체계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여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공리주의의 사회정책원리를 논파하고 그에 대한 (칸트 풍의) 대안을 제시한 것이지요. 롤즈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는 지위(‘존엄성’)를 전제하면서(‘인간’으로서의 평등), 가장 못사는 사람에게 최대의 수혜가 돌아가는 경우(‘자기해소적 불평등의 인정’) 그 결정은−외관상의 불평등에도 불구하고−정의롭다고 주장합니다. 롤즈는 (개인의 덕성이 아니라) ‘제도의 덕성’으로서의 정의를 생각했고 제도가 ‘공정’(fair)하게 운영되는 경우, 이러한 의미의 정의(justice)는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justice as fairness’).

롤즈의 이론은 그 사회에 총체적으로 부존하는 자원(내지 기회 등 good(가치 있는 것))의 증대 보다는 그 평등지향적 배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같은 경향의 법철학자 드워킨 역시 파이의 증대가 평등의 증대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극한적인 빈곤을 겨우 빠져 나온 우리나라로서는 파이의 증대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체험한 바 있습니다. 각인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 사회의 총체적인 파이의 함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 사회철학자가 든 예를 인용하기로 하지요. 미국의 어느 미식축구 감독에 대한 선수들의 평입니다. “감독님은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하십니다. 개처럼이요.” 이것을 국가정책으로 채택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파이를 유지 내지 키울 것인가, 그리고 그 파이를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일 겁니다. 이것은 너무도 진부한 문제이지만, 그 해답은 썩 명확하지 않습니다. ‘일정한’ 파이를 갖는 단계가 되어도, 시민사회가 자동적으로 평등지향으로 돌아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는데, 이때 당연히 전제되는 것은, 국가가 개미에게서 빼앗아서 (병든 개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베짱이에게 주는 식으로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반복되면 모두가 베짱이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파이를 유지 내지 (서서히) 증대시키면서 배분의 몫 자체를 키우는 일은 문자 그대로 절묘한 정치비법(statecraft)일 것입니다.

롤즈는 후기 저서에서 정의 문제에서 나아가, 서로 극한적으로 다른 가치관을 갖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공동의 삶의 터전을 이룰 수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라드브루흐 식으로 해석하자면 정의의 문제에서 법적 안정성(‘법적 평화’)의 문제에로 중점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공통의 이익 뿐 아니라 법의 ‘힘’이 이 시점에서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 점에서 롤즈는 법철학자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답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정의가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점도 언급해야겠군요. “정의가 (완벽하게) 실현되지도 않았는데 웬 말인가”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당연한 물음입니다. 그러나 정의를 평등으로 치환해서 생각해 봅시다. 인간의 ‘삶’에서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평등하게 돌아가는 것은 역설적으로 ‘죽음’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부켄발트(Buchenwald) 유대인 수용소 정문에 ‘Jedem das Seine’(‘각자에게 그의 것을’)라는 ‘정의의’ 표어가 쓰여져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절망적인) 것을 시사합니다. 정의가 ‘인간관, 가치관 내지 세계관’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정의라는 가치는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승인되는 인간의 가치 위에 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승인되는 인간의 가치란 무엇일까요? 라드브루흐 보다 3년 연장이었던 (그러나 4반세기 먼저 작고한) 같은 신칸트학파의 법철학자 마이어(Max Ernst Mayer)는 궁극적인 법가치를 인도성(人道性 Humanität)이라고 보았습니다. 법제도는 인간을 ‘인간의 길’에서 궤도이탈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이 모든 면에서 서로 (다소간) 다르고, 관심과 이해관계도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최종적인 법가치는 이를 포괄하는 ‘유격’을 갖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법에서 ‘인간의 존엄’을 전제로 한 관용과 상호이해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법으로 완벽하게 ‘각자에게 그의 것을’, 완벽하게 ‘같은 것은 같게’를 달성할 수는 없습니다. 완벽한 정의는 (신으로서는 몰라도) 인간으로서는 단지 여망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큰 산이어서 놀라워 하면서 멀리 가다보면, 그 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더 큰 산이 그 뒤에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정의의 배후에 다른 더 숭고한 가치가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진, 선, 미, 용서와 사랑이 그것입니다. 신앙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각자에게 그의 것’을 묻지 않고, ‘그 각자’의 과오를 모두 대신 짊어지고 간 ‘사람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법으로서는 (나아가 이른바 ‘율법가’(=율사)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이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도 마음에 새겨 둘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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