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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2) / 미국 민사 소송과 문서 보존
박준연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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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30  16: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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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원고로서든 피고로서든 미국 소송의 당사자가 되면 소송과 관련된 문서 보존의 의무가 발생한다. 증거 보존은 궁극적으로는 미국 소송절차 특유의 광범위한 증거 제출(디스커버리)과 깊은 관련성을 갖는다. 디스커버리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연방 및 주 소송관련 규칙은 문서 보존을 소홀히 하는 경우 혹은 고의적으로 증거를 훼손하거나 삭제, 처분하는 경우, 해당 소송 당사자에 대한 제재를 규정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사실 관계의 파악은 소송 전략 수립과 효과적인 대리에 필수적인 만큼, 문서 보존은 사실 관계 파악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첫 단계이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아직 생소한 한국 기업이 미국 소송의 피고가 되는 경우, 미국 절차에서 요구되는 문서 보존 절차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드물게는 불리한 증거를 의도적으로 파기하여 무거운 제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문서 보존의 의무는 민사, 형사 소송을 불문하고 발생하지만, 이번 달에는 민사 소송과 관련한 문서 보존 실무와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소송 관련 문서를 파기하는 경우의 제재에 대하여 정리하여 보았다.

언제 증거 문서 보존의 의무가 발생하는가

소송이 개시된 시점은 물론이지만 소송 개시 전이라 할지라도 소송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reasonably foreseeable) 경우에는 문서 보존이 필요하다. 소송이 임박하거나 개연성을 띨 필요까지는 없고, 합리적인 당사자가 소송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기만 하면 충분하다. 유사한 소송이 개시된 경우, 소송 전에 소송을 암시하는 서한 등을 수령하는 경우, 사고 등으로 재산, 인명 상 피해가 발생하여 소송이 불가피한 경우 등이 그러한 예이다.

어느 범위까지 보존해야 하는가

회사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을 보존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업무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과 막대한 비용을 고려하면 소송과 관련된 문서에 한하여 보존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범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소장(complaint)을 이미 수령한 경우에는 소장을 참고하여 보존의 범위를 결정해야 하지만, 소송 진행과정에서 소송의 범위가 확대되는 경우 역시 드물지 않다. 소송 절차가 개시되기 이전에 문서 보존 의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그나마 참고할 수 있는 소장 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 , 소송과 관계되어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요구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견되거나, 소송 증거로서 채택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견되는 문서의 범위를 파악하기 위해 큰 참고가 되는 것이 소송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과의 면담이다.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문서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여 어떤 문서가 어떤 형태로 어디에 존재하는지 정리한 데이터 맵(data map)을 준비하고, 중복되는 문서는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를 파악하여 중복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존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당장 문서 보존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소송 전략을 수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보존 대상과 전자 문서 (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

종이 문서, 전자 문서의 저장 수단을 불문하고 문서 보존의 대상이 된다. 기업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대부분의 업무는 전자 문서의 형태로 송수신, 저장된다. 미국 연방 민사소송규칙에 따르면 전자문서(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 전자적으로 저장된 정보)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사용을 필요로 하는, 디지털 형식으로 작성, 변경, 송수신, 저장되고 디지털 형식으로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정보로 정의된다.

전자문서는 이메일, 컴퓨터 로컬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된 정보, 클라우드 컴퓨팅을 비롯한 서버 저장 자료, 백업 테이프, 컴퓨터상 대화 기록, 휴대전화를 비롯한 개인 통신 기기상의 정보(통화 기록, 음성 메시지, 녹음 기록, 문자 메시지, 통신 어플리케이션 및 다른 어플리케이션 관련 정보), 회사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데이터베이스내에 저장된 정보, 소송 관련 당사자의 소셜 네트워크 접속 기록, 사용자 정보, 포스팅이나 메시지 등을 포함한다. 일단 삭제한 정보, 컴퓨터 및 기기 설정에 따라 자동 삭제된 정보도 포렌식 기술을 통해 전부 또는 일부 복구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보존하는가

대부분의 회사가 문서 보존 연한을 설정하여 문서의 종류에 따라 연한이 경과되면 폐기 조치를 취한다. 이메일의 경우 시스템의 설정을 통해 따로 보존하지 않으면 특정 일수가 경과한 후 자동 삭제하는 경우도 많다. 소송이 개시되거나 합리적으로 예견되면 관련된 문서에 적용하는 보존 연한,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폐기 및 삭제 절차를 정지해야 한다.

또 소송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사원들에게는 보유, 관리하는 문서를 보존해야 한다는 취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내용은 문서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송과정에서 소송 상대방이 문서 보존 절차가 불충분하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에 대비하여 문서 보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기록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

문서를 통한 소송 관련 문서 보존 지시를 문서 보존 명령(litigation hold)이라고 부른다. 문서 보존의 의무, 보존 대상이 되는 문서의 예시를 포함한 소송의 이슈, 예측 가능한 이슈, 질문이 있을 때 문의할 연락처 (많은 경우 사내 법무팀 담당 변호사 연락처) 등을 포함하는 것이 문서 보존 명령의 일반적인 형식이다. 소송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사원은 물론 전자 문서 관리를 담당하는 IT 부서의 직원들에게 문서 보존 명령을 보내면, 문서 보존 의무를 수행했다는 증거로서 그 기록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

문서 보존 명령을 보낸다고 문서 보존의 의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문서 보존 명령 수신과 내용 이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 미국 소송이 다년간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그 사이에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새로운 직원이 입사하는 것을 감안하여 시간이 경과하면 재송신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소송 진전에 따라 보존 대상이 확대, 변경되면 이에 따라 문서 보존 명령의 내용을 바꾸거나 새로운 직원을 추가하여 송신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가급적이면 변호사의 지휘와 감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변호사의 개입없이 실무직원에게 내용 설명도 충분히 하지 않고 문서 보존을 맡긴 경우 문서 보존의 의무를 충분히 수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판례도 있다. 또 위에서 언급한 보존 과정은 문서 보존 의무가 발생한 후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문서 보존의 의무가 발생한 며칠 내, 늦어도 몇 주 내에는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문서 보존을 위한 합리적인 조치: 비례성

소송과 관련된 문서를 완벽하게 보존하는 것은 많은 경우 불가능에 가깝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남용과 이에 따른 과도한 소송 비용과 부담의 발생은 미국 디스커버리 제도의 문제점으로 종종 지적되어왔다. 2015년 개정된 연방 민사소송규칙은 비례성(proportionality)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상대방에 대한 증거 제공은 소송과의 관련성 이외에도 소송에서 사안의 중요성, 다툼이 있는 금액, 소송 당사자들의 쉽게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지의 여부, 소송 당사자들의 재원 (resources), 그리고 디스커버리의 비용과 그 효용의 비교를 감안해야 한다. 민사소송규칙의 공식 평석(official commentary)은 문서 보존은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증거 훼손에 대한 제재

진행중이거나 합리적으로 예견되는 소송의 증거를 파기하거나 중대한 훼손을 가하는 행위, 증거를 보존하지 않는 것을 증거 훼손(spoliation of evidence)이라고 한다. 문서 보존의 의무가 있는데도 적시에 문서 보존 명령을 발행하지 않거나, 관련된 당사자와 증거를 식별하여 보존 절차를 취하지 않는 경우, 연방 민사소송규칙에 따라 제재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2015년 개정된 연방 민사소송규칙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황에서 증거 훼손에 대한 제재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첫째로는 증거를 잃어 다른 소송 당사자에게 불이익(prejudice)이 발생한 경우, 그 불이익을 상쇄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배상, 문서 제출 명령, 증거를 훼손한 당사자에 불리한 가정, 소송 각하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둘째로는 다른 소송 당사자의 정보 이용 기회를 박탈할 의도(intent to deprive another party of the information’s use in the litigation)를 가지고 행동한 경우, 사라진 정보가 증거 훼손을 한 당사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가정하거나, 배심원에게 그런 가정을 지시하거나, 소송을 각하 또는 결석판결(default judgment)을 내릴 수 있다.

2015년 개정에서는 다른 소송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초래하지 않는 증거 훼손에 대해서는 그 증거 훼손이 다른 당사자의 정보 이용 기회를 박탈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개정 전 규칙에 비해 증거 훼손에 대한 제재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의도는 문서 보존 의무의 의도적인 무시, 불합리한 문서 보존 조치, 의도적인 증거 파기 등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맺으며

문서 보존의 의무와 관련된 미국법 상 원칙은 일률적이라기 보다는 구체적 사실 관계에 근거한 (fact-specific) 판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송이 제기되거나 제기되기 직전에 문서 보존과 관련하여 외부 변호사와 기업내 법무 팀, 기업내에서 소송 관련 업무를 담당한 직원들간의 논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현행 연방 민사소송규칙이 제재를 초래하는 의무 위반의 범위를 상당 부분 축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주의나 고의로 인한 의무 불이행은 여전히 소송 과정에서 추가적 금전적 부담이나 본안 판결에서 불리한 해석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감안하여 미국 민사 소송 대응에서 관련 문서 보존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보존 계획 수립, 보존 시행, 상황 변화에 따른 업데이트 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한편, 그 기록도 자세하게 보존할 필요가 있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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